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98강(마15:21-2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8. 04:27

마태복음 강해 제98(15:21-28)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3()

 

가나안 우상문화의 발상지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예수님의 복음이 전파된 이유(15:21-28)

 

첫째로, 예루살렘에서 온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에 대해서 시비를 걸어왔기 때문입니다(15:1-2).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파견한 율법선생들과 학자들이 갈릴리로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그들 바리새인들과 서기관들은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에 대하여 이의를 제기했습니다. 유대교의 정경적 기초인 율법과 장로들의 전통을 무시하고 있는 처사라고 비판한 것입니다.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으로 하나님의 율법의 취지인 계명을 대신하고 있으니 유대교지도자들이 그 잘못을 깨달아야만 한다고 반론을 제기했습니다(15:3-9). 하지만 그들뿐만 아니라 제자들과 백성들이 예수님의 말씀에 대하여 이해를 하지를 못했습니다(15:10, 15-16). 참으로 피곤한 해명이며 응대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은 제자들을 이끌고 아예 가나안 원주민들과 헬라인들이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 지역으로 북상을 해버리고 말았습니다(15:21).

둘째로,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가나안 사람이 선민 이스라엘 출신 선지자 예수님의 도움을 필요로 하고 있습니다(15:27). 본문을 보면, 가나안 여자 하나가 예수님을 찾아와서 소리를 지르고 있습니다; “주 다윗의 자손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내 딸이 흉악하게 귀신 들렸나이다!”(15:22). 반면에, 예수님의 고향인 갈릴리 나사렛에서는 예수님을 단지 목수 요셉의 아들로만 인식을 했습니다(13:55). 다윗의 자손이며 메시아라고 인정을 하지를 아니했습니다(13:56). 그 결과 예수님이 고향 나사렛에서는 그리스도의 사역을 왕성하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13:58).

손바닥도 마주쳐야 소리가 나듯이 하나님의 능력과 백성들의 믿음이 하나로 마주칠 때에 신위적인 치유의 역사가 일어나는 법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방인들이 살고 있는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가나안 원주민인 여자가 예수님을 다윗의 자손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11:22). 그리고 예수님이 하나님의 능력을 지니고 있다고 믿으면서 자신의 딸을 흉악한 귀신에서부터 해방을 시켜달라고 간절하게 요청을 하고 있습니다(15:22). 예수님은 그 여인의 간구를 들어주고 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15:28).

셋째로, 하나님이 사람들에게 말씀을 주시고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이유가 만민을 구원하기 위함이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는 피조물을 차별하지 아니하십니다. 천지만물과 동식물을 만드시고 좋았더라!”(1:4, 10)고 평가하신 하나님이십니다. 특히 마지막으로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아 있는 인간을 창조하신 다음에는 사람이 모든 피조물과 함께 어울려있는 광경을 보시고서 심히 좋았더라!”(1:31)고 만족해하신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하나님의 관심과 구원의 대상입니다. 세상의 많은 족속 가운데 이스라엘 족속을 출애굽시켜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삼으신 뜻도(19:6) 따지고 보면, 세상 모든 족속을 구원하기 위하여 속죄의 제사를 드려주는 제사장나라가 필요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율법으로 백성들에게 전했다고 하는 것은 그것이 이스라엘 자손들을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만드는데 기여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음과 같이 모세의 율법을 잘못 해석하고 엉뚱하게 적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주신 율법과 할례 그리고 성전문화는 선민의 우월한 지위를 말해주고 있으며 나아가서 이 세상에 선민의 영광을 드러내기 위한 도구들이라고 여긴 것입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아전인수격인 유대교를 잘 지키면 하나님의 신위적인 도움을 얼마든지 얻을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이스라엘 자손들은 다윗과 솔로몬 시대 이스라엘 제국의 영광이 바로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율법을 주시고 그들을 선민으로 삼으신 뜻을 잘 드러내고 있다고 확신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오랜 외세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다시 한번 다윗의 후계자인 메시아가 그들의 땅에 오기를 학수고대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예수 그리스도를 이 세상에 보내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은 다릅니다.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까지 모든 인류에게 구원과 영생의 기회를 제공하고 싶어하십니다(3:16-17).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정신에 합치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지만 본문에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 반드시 다음과 같은 필요한 절차가 있음을 밝혀주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그 여인을 외면하거나 쫓아 보내지 아니하고 있습니다(15:23). 그 대신에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 “나는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 외에는 다른 데로 보내심을 받지 아니하였노라 하시니”(15:24) (2) 그 여인의 대답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여인은 자신의 요구사항만 늘어놓고 있습니다; “주여 저를 도우소서!”(15:25). 만족한 답변이 아닙니다. 여인은 자신의 형편이 급한 것만 알았지 예수님 말씀의 의미를 파악하지 못한 것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부연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자녀의 떡을 취하여 개들에게 던짐이 마땅하지 아니하니라”(15:26). (3) 모욕적인 언행입니다. 온유하고 겸손한 예수님의(11:29) 입에서 거친 말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나름대로 중요한 의미가 숨어 있는 대목입니다. 잠시 후에 항목을 달리하여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그런데 그 여인은 그러한 모욕을 당해도 마땅하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드디어 그녀의 답변이 예수님을 만족시키고 있습니다; “주여, 옳소이다마는 개들도 제 주인의 상에서 떨어지는 부스러기를 먹나이다 하니”(15:27). (4) 마침내 예수님이 그녀의 딸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어주고 있습니다. 직접심방을 하신 것이 아닙니다. 그녀의 믿음을 보시고 즉석에서 원거리의 딸을 고쳐주신 것입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15:28).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의 입술을 통하여 폭발적으로 나타나고 있는 현장입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예수님이 선민 이스라엘과 이방인 특히 시돈과 두로의 백성들을 구별하고 있는 이유와(15:21-26) 이방여인의 딸이 낫게 된 이유(15:27-28)

 

첫째로, 사도 바울이 잘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깨닫지를 못하고 그를 못박아 죽인 것은 잘못이지만(10:2-4) 그래도 한 가지 장점이 있다고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파수해온 민족이라는 것입니다”(9:4-5). 고대 족장사회에 있어서는 이스라엘 민족이 살고 있는 땅뿐만 아니라 셈족이 살고 있는 동방사회에 있어서도 하나님 신앙이 남아 있다고 말할 수 있습니다. 왜냐하면, 욥기를 보게 되면 욥이 살고 있는 지역뿐만 아니라 그의 세 친구와 엘리후가 살고 있는 동방지역에서도 하나님에 대한 지식이 상당함을 잘 보여주고 있기 때문입니다(1:1, 4:17, 8:3, 11:5-11, 32:8, 33:12-30).

그런데 세월이 지나게 되면 왕들이 통치하는 시대가 되자 신정국가가 사라지게 됩니다. 왕들이 그 무상의 권력으로 새로운 우상 현인신이 되어 힘으로써 세상을 나누어 지배하게 된 것입니다. 자연히 창조주 하나님을 섬기는 신앙과 그 지식이 자취를 감추게 됩니다. 유일하게 이스라엘 왕국에서만 하나님의 말씀을 소위 신정국가를 통치하는 법률인 율법으로 삼아 백성들을 통치하고 있습니다. 그나마 남북으로 갈라지자 북쪽 이스라엘 왕국에서는 금송아지 우상을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섬기다가 먼저 망하고 맙니다(왕상12:28, 왕하15:24, 17:6). 그래도 끝까지 여호와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율법을 해석한 히브리 정경을 남긴 민족은 다윗 왕조의 유대왕국입니다(왕하22:8-23:25).

예수님 당시에도 유대인들은 하나님 말씀을 율법으로 준수하고 있는 유대교인들입니다. 한 마디로, 유대인들이야 말로 하나님의 말씀을 율법으로 파수해온 공로가 있는 선민들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들 유대인들의 사회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이 세상에 나타난 것도 사실입니다(9:5). 하지만 히브리 정경에 기록되어 있는 하나님 말씀의 본뜻을 예수님이 만민구원의 복음이라고 주장하자 그것이 선민과 이방인을 엄격하게 구별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의 심기를 적대적으로 만들고 맙니다. 그 결과 신성모독죄로 죽임을 당하고 맙니다(10:33, 19:15-16). 하나님의 말씀은 오로지 유대교의 율법정신과 선민사상을 가지고 해석을 해야만 한다는 유대인들의 집단적 이기주의가 만민구원의 하나님 뜻을 세상에 전하고 있는 그리스도를 처단한 것입니다.

둘째로,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사도 바울은 이방인들이 선민 유대인들에게 감사를 해야만 한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27).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했기에 복음이 이방지역에 넘어갔기 때문입니다(11:11). 더 쉽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참 감람나무의 가지가 얼마 꺾어지고 그 대신에 돌 감람나무 가지가 접붙임을 받아 이제 함께 하나님 신앙과 지식을 진액으로 빨아 올릴 수 있게 되었다는 것입니다”(11:17).

셋째로, 이방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들여야만 합니다. 그 작업은 믿음을 통해서만 가능합니다(10:11-13).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믿음이 아니라 율법의 준수를 통해서 그리고 선민으로 편입이 됨으로써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주장은 유대교인들이 기독교인으로 개종이 된 후에도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입장을 율법주의자또는 유대주의자라고 초대교회에서 부르고 있습니다.

마치 위와 같은 다양한 견해를 모두 아시고 계시는 듯이 본문에서는 예수님이 가나안 원주민 여자에게 다음과 같이 시험을 하고 있습니다; (1) 하나님의 신앙을 지키고 있는 선민 유대인들의 공로를 인정하는가? 그대들은 하나님을 섬기지 아니하고 바알을 섬기는 우상문화를 중동 땅에 크게 보급시킨 시돈과 두로의 원주민이(왕상16:31) 아닌가? (2) 그 여인은 그러므로 하나님으로부터 와 같은 취급을 받아도 할 말이 없다고 인정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기특하게도 그 여인은 하나님으로부터 오시는 메시아는 하나님 신앙과 지식을 모두 잃어버리고 있는 불쌍한 이방인들도 그 넓은 창조주의 마음으로 구원해주실 것이라는 사실만은 믿고 있습니다. 그녀의 믿음이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이유와 합치가 되고 있으므로 믿음의 기적이 우상문화의 본거지인 두로와 시돈 지역에서 강력하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여자여 네 믿음이 크도다. 네 소원대로 되리라 하시니 그때로부터 그의 딸이 나으니라!”(15: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