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96강(마15:7-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7. 01:34

마태복음 강해 제96(15:7-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1()

 

외식(外飾, 바깥을 꾸미는 것)하는 자들에 대한 예수님의 질책(15:7-12),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15:8)라고 지적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을(29:13-14) 인용하시다.

 

유대인들은 하나님을 전심으로 자손대대로 섬기고 있는 유대교인들입니다(6:4-9). 오랜 외세의 지배하에 있으면서도 종교적인 자치권만은 보장을 받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 당시에도 비록 정치적으로는 강대국 로마제국의 속국으로 살고 있지만 종교적으로는 자부심이 대단합니다. 유대인들은 창조주 하나님이 선택한 유일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라고 하는 자긍심을 가지고 살아가고 있는 소위 선민’(選民, chosen people, 19:3-6)들입니다. 그들은 다윗의 후계자가 메시아로 그들의 땅에 오면 외세인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몰아내고 다시 이스라엘 제국을 건설할 수 있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 메시아의 등장과 활약으로 유대인들은 다시 중동 땅에서 패권을 행사하게 될 것이고 선민의 위상과 영광은 천하에 빛나게 될 것입니다. 유대교지도자들과 백성들이 그렇게 믿고서 율법을 지키고 그들의 성전문화를 자랑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사렛 예수가 등장하여 전혀 다른 복음사역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자칭 타칭 메시아로 불리고 있습니다(14:33, 6:14-15). 하지만 그는 로마제국이나 헤롯 왕가를 비난하고 있지를 않습니다(11:5-6, 22:21). 오히려 유대교지도자들의 외식적인 율법생활에 대해서 질책을 하고 있습니다(15:3-14). 그리고 유대인들의 선민사상이야말로 온 세상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구원계획에 가장 큰 지장이 되고 있다고 비판을 하고 있습니다(8:10-13).

그래서 예루살렘에서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 갈릴리로 예수님을 찾아와서 그의 진심을 떠보고 있습니다(15:1-2). 그는 과연 모세의 율법을 지키고 선민의 위상을 드높일 생각일까요? 아니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고 선민사상을 버릴 생각일까요? 마침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음식을 먹고 있으므로 결례의 규정을 가지고 내심을 탐지하고자 질문을 하고 있습니다(15:2).

예수님의 답변 가운데 본문에서 성경전체를 관통하고 있는 올바른 신앙자세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입술로만 하나님을 섬기는 것이 아니라 마음으로 먼저 하나님을 섬겨야만 한다”(15:8), “입으로 들어가는 것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 아니라, 입에서 나오는 그것이 사람을 더럽게 한다”(15:11). 처음에 언급이 되고 있는 말씀은 구약 이사야 선지자의 다음과 같은 예언을 인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주께서 이르시되, 이 백성이 입으로는 나를 가까이 하며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나 그들의 마음은 내게서 멀리 떠났나니 그들이 나를 경외함은 사람의 계명으로 가르침을 받았을 뿐이라. 그러므로 내가 이 백성 중에 기이한 일 곧 기이하고 가장 기이한 일을 다시 행하리니 그들 중에서 지혜자의 지혜가 없어지고 명철자의 총명이 가려지리라”(29:13-14).

깊은 묵상을 통하여 한번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외식적인 신앙생활은 한 마디로, 마음과 입이 따로 따로 움직이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 원형적인 모습은 창세기 에덴동산에서 발생한 선악과 사건에서 엿볼 수가 있습니다(3:1-7). 아담과 하와 부부야 말로 에덴동산에서 하나님과 동거를 하는 인류최초의 신앙인들입니다(2:20-25).  하지만 제멋대로 선악과를 따먹고 있습니다. 피조물에 불과한 그들이 선악과를 따먹고 싶은 이유는 단 하나입니다; “선과 악을 분별해주시는 하나님의 지혜를 그들도 스스로 가지고 싶었기 때문입니다”(3:5-6). 선과 악을 스스로 분별할 수만 있다면 만사를 하나님에게 모두 물어보지 아니해도 됩니다. 하나님 없이도 만물의 영장으로서의 삶이 가능해집니다. 피조물이 스스로 창조주의 위세를 가질 수 있게 되니(3:5) 그것 이상으로 바랄 것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마음가짐으로 선악과를 따먹고 만 것입니다.

둘째로, 그 결과 하나님과의 동거관계가 깨어지게 되고 에덴동산에서 내어 쫓겨(3:24) 소위 실락원’(失樂園, lost paradise)에서 자손대대로 살게 됩니다. 그 다음부터 하나님이 원죄에 빠진 인류를 구원하고자 하는 방법은 동일합니다. 사람의 마음에서 먼저 스스로 선과 악을 재단하고 판정하고자 하는 생각을 몰아내는 것입니다. 일일이 하나님 아버지에게 물어보고서 그 대답을 듣고 신앙생활을 하도록 만드는 것입니다. 따라서 하나님의 아들이 이 세상에 성육신을 했지만 그 신앙의 자세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솔선수범으로 그 점을 한결같이 보여주고 있습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들이 아버지께서 하시는 일을 보지 않고는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나니 아버지께서 행하시는 그것을 아들도 그와 같이 행하느니라”(5:19),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내가 아무 것도 스스로 할 수 없노라. 듣는 대로 심판하노니, 나는 나의 뜻대로 하려 하지 않고 나를 보내신 이의 뜻대로 하려 하므로 내 심판은 의로우니라”(5:30).

셋째로, 예수 그리스도는 철저하게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따르기 위해서 항상 기도로써 묻고 있습니다. 그 뜻을 따라서 심판을 행하고 있습니다. 모든 판단의 근거가 바로 하나님의 뜻인 것입니다. 결코 자신이 선과 악을 모두 분별할 수 있다고 주장하지를 않습니다(10:18). 자신의 생각을 가지고 사람을 판단하지도 않습니다. 요컨대, 예수님은 아버지 하나님을 전적으로 믿고 의지하며 그 판단을 따라서 사물을 인식하고 말과 행동을 하고 있는 사람입니다. 만약 예수님의 그 모습을 제자들이 그대로 보고 배워서 재현할 수만 있다면 하나님의 뜻에 맞는 신앙생활이 이루어지고 그 반대급부를 받을 수가 있을 것입니다(5:24). 예수님께서 얻으신 그 구원과 영생이 바로 제자들의 것이 될 것입니다.

끝으로, 그런데 유대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의 생각을 반대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예루살렘 성전에 있는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모든 결정을 내리고 있습니다. 마치 그 옛날 모세처럼 그리고 지혜의 대왕이었던 솔로몬처럼 선과 악에 대한 판결을 유대교지도자들이 내리고 있는 것입니다(18:13-16, 왕상3:9, 16-28). 그러므로 유대교의 머리는 하나님이 아니라 사실은 산헤드린 대 공회가 되고 있습니다. 여전히 사람의 선과 악을 분별하는 최종결정권을 행사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입니다. 그것은 창세기의 말씀과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 그리고 예수님의 말씀과 정면으로 배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예수님은 하나님을 섬긴다고 하면서 사실은 인간들이 종교적인 권력을 장악하여 제멋대로 선과 악을 최종적으로 판결하고 있는 한 그것은 사람을 구원할 수 있는 올바른 신앙생활이 아니라고 강조하고 계십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지적하고 계시는 외식주의종교생활의 병폐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