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97강(마15:8-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8. 04:25

마태복음 강해 제97(15:8-20)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2()

 

알곡과 가라지 그리고 썩어질 육적인 양식과 영원한 영적인 양식에 대한 예수님의 설명(15:8-20)

 

예루살렘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파견한 것으로 보이는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예수님 일행의 행적에 대하여 백성들 앞에서 그 이단성(異端性, a deviation from Judaism)을 드러내고자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15:1). 예수님의 제자들이 손을 씻지 아니하고 식사를 하고 있으니 그것은 장로들의 전통을 범하고 있는 것이라는 주장입니다(15:2). 그러한 시비에 대하여 첫째, 예수님은 장로들의 전통을 범한 것인지는 몰라도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은 아니라고 대응을 하고 있습니다(15:20). 둘째, 유대교지도자들이 산헤드린 대 공회에서 제정한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밝히 드러내고 있는 하나님의 계명을 범하고 있는 것이 더 큰 문젯거리임을 명심하라고 예수님은 강하게 지적하고 있습니다(15:3).

그 두 가지 주장에 대하여 예수님은 다음과 같은 논리를 전개하여 상세하게 뒷받침을 하고 있습니다;

(1) 예수님은 유대교의 지도자인 장로들이 제정한 결례의 전통이라고 하는 것이 일종의 썩어지는 육적인 양식을 먹는 일에 국한이 되는 규정에 불과한 것이라고 그 적용의 한계를 명확히 드러내고 계십니다(15:9, 17, 20b). 반면에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드러내고 있는 계명이라고 하는 것은 영원한 생명을 얻느냐 못 얻느냐를 규정하고 있는 소위 영적인 양식과 관련이 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히 알도록 제자들에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15:8-9, 18-20a).

(2) 그 대목에 대한 예수님의 말씀을 직접 적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이 백성이 입술로는 나를 공경하되, 마음은 내게서 멀도다. 사람의 계명으로 교훈을 삼아 가르치니 나를 헛되이 경배하는 도다”(15:8-9), “입으로 들어가는 모든 것은 배로 들어가서 뒤로 버려지는 줄 알지 못하느냐? 입에서 나오는 것들은 마음에서 나오나니 이것이야말로 사람을 더럽게 하느니라. 마음에서 나오는 것은 악한 생각과 살인과 간음과 음란과 도둑질과 거짓 증언과 비방이니 이런 것들이 사람을 더럽게 하는 것이요, 씻지 않은 손으로 먹는 것은 사람을 더럽게 하지 못하느니라”(15:17-20).

(3) 좀더 풀이를 해보자면, 예수님은 사람의 몸을 오염시키는 것과 정신을 오염시키는 것으로 먼저 나누고 있습니다. 사람의 몸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은 입으로 들어가는 식사입니다. 그러나 정신을 오염시키고 있는 것은 사람의 타락한 마음에서부터 비롯되어 입술을 통하여 나오고 있는 악한 말들과 행위입니다. 물론 반대의 경우도 성립이 됩니다. 좋은 음식을 입으로 먹게 되면 몸을 건강하게 만들어 줄 것입니다. 또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음으로 깨달아 입술과 삶으로 전하는 것은 사람의 정신을 살리고 영을 소생시켜 줄 것입니다(15:10, 16, 16:25-27).

예수님의 사상은 사도 바울에 의하여 더 구체적으로 풀이가 되고 있습니다. 일명 부활의 장이라고 부를 수 있는 고린도전서 제15의 내용입니다; “죽은 자의 부활도 그와 같으니 썩을 것으로 심고 썩지 아니할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욕된 것으로 심고 영광스러운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약한 것으로 심고 강한 것으로 다시 살아나며, 육의 몸으로 심고 신령한 몸으로 다시 살아나나니 육의 몸이 있은즉 또 영의 몸도 있느니라. 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주는 영이 되었나니, 그러나 먼저는 신령한 사람이 아니요, 육의 사람이요, 그 다음에 신령한 사람이니라. 첫 사람은 땅에서 났으니 흙에 속한 자이거니와, 둘째 사람은 하늘에서 나셨느니라”(고전15:42-47).

여기서, 사도 바울의 글을 한번 묵상해보고자 합니다; 먼저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 그리스도는 이 세상을 심판하려는 것이 아닙니다. 구원하기를 원하십니다(3:16-17). 그러므로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자신에게 시비를 걸고 있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도 구원의 대상입니다. 비록 그들의 교리와 주장이 잘못되어 있다는 사실을 밝혀내고 강하게 질책을 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깨달음을 주기 위한 것입니다(15:10). 그와 같은 예수님의 입장을 잘 헤아리고 있는 사도가 바울입니다.

그래서 그는 다음과 같은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1) 썩어질 양식을 위하여 일을 하지 말고 영원한 양식을 얻기 위하여 일을 하십시오. (2)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입술로 그리고 삶으로 간증을 하게 되면 그것으로 생명을 살릴 수가 있습니다. (3) 예수님의 생애가 그 본보기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4) 창세기를 살펴보면, 아담은 흙으로 지음을 받고 하나님의 생기를 받아서 생령이 된 사람입니다(2:7). 하나님과 함께 영생을 호흡하면서 에덴동산에서 살 수 있도록 특이하게 지음을 받은 존재입니다. 하지만 영적인 타락으로 말미암아 육체적인 삶만을 영위하게 됩니다. 흙으로 돌아가 썩어질 육신을 위한 삶만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5) 그러므로 하나님의 생기가 다시 들어가서 그를 살려야만 합니다. 그것이 구원입니다. 시범적으로, 십자가를 지시고 무덤 속에 들어가 있는 예수님을 살리시는 이의 영 곧 하나님의 영이 살려내십니다(8:11) 구체적으로, 성령이 사람의 영을 살려주게 되면 이제는 영적인 삶이 가능해진다는 설명입니다(8:2-4). (6) 그러므로 이제는 육적인 삶이 아니라 영적인 삶을 살아가게 됨으로써 예수님처럼 부활을 맛보는 성도들이 되기를 바울이 진심으로 희구하고 있는 것입니다(고전11:1, 3:10-16).

마지막으로 본문 가운데 드러나고 있는 예수님의 몇 가지 보완적인 설명에 대하여 알아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예수님의 강한 반박에 대하여 은근히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이 말씀을 듣고 걸림이 된 줄 아시나이까?”(15:12). 그러나 예수님의 행동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오히려 모여 있는 백성들에게도 듣고 깨달음을 얻으라”(15:10)고 권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의 설명이 유대교의 문제점을 지적하고 있는 아주 중요한 대목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깨닫지를 못하게 되면 백성들이 율법주의와 선민사상의 틀에 갇혀서 만민을 구원하시려는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이지를 못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또한, 히브리 정경에 들어 있는 하나님 말씀의 본래 취지를 예수님이 복음으로 드러내고 있다는 사실을 깨닫지를 못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이른 바 알곡과 가라지의 비유를 가지고 다시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심은 것마다 내 하늘 아버지께서 심으시지 않은 것은 뽑힐 것이니, 그냥 두라. 그들은 맹인이 되어 맹인을 인도하는 자로다. 만일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면 둘이 다 구덩이에 빠지리라 하시니”(15:13-14).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에는 두 가지가 있다고 전제가 되고 있습니다. 하나는 하나님께서 심으시는 말씀입니다. 그것은 알곡입니다. 또 하나는 사람들이 제멋대로 해석을 하여 심고 있는 소위 장로들의 전통과 같은 가라지입니다. 서로 경쟁적으로 자라고 있는 동안에는 알곡이나 가라지나 구별이 잘 안되고 있습니다. 그러나 나중에 그 열매를 보면 정확하게 구분이 됩니다. 그러므로 다 자란 다음에 추수 때가 되면 가라지를 먼저 뽑아서 불태워버릴 것입니다(15:13, 13:29-30).

그러나 가라지가 알곡과 함께 자라고 있는 동안에도 문제가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장로들의 전통을 가지고 하나님 말씀의 본뜻인 계명을 어기고 있는 경우입니다. 하나님 말씀의 취지를 깨닫지를 못한 채 장로들의 전통만을 고수하면서 율법생활과 스스로 의인인 체 하는 신앙생활을 유지하고 있으니 참으로 불행한 일입니다. 그와 같은 자를 예수님은 눈이 있으나 보지를 못하는 맹인이며 귀가 있으나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 듣고 이해를 하지를 못하고 있는 자”(15:14, 13:9)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따라서 맹인이 맹인을 인도하여 함께 실족하고 있는 그것이 가라지의 특징”(15:14)이라고 언급을 하고 계시는 것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설명을 제자들이 제대로 알아 듣지를 못하고 있습니다(15:15-16). 그들은 그 동안 삼 년간이나 예수님과 함께 공생애를 살면서 하나님의 말씀을 복음으로 공부하고 있습니다. 하지만 아직 복음으로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 말씀의 기본취지가 완전히 이해가 되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왜 그러할까요? 적어도 두 가지의 이유가 존재하고 있습니다; 첫째, 유대교리와 선민사상이 그들의 발목을 잡고 있기 때문입니다. ‘선민구원사상을 버리고 이방인도 함께 구원한다는 소위 만민구원사상을 포용한다는 것은 코페르니쿠스 적인 인식의 전환을 필요로 하고 있는 것입니다. 둘째, 유대교리와 함께 선민사상이 죽어야만 하는데 아직 그 때가 도래하지를 않았기 때문입니다. 사실은 그러한 교리와 사상을 가진 사람들이 모두 죽는 대신에 예수님이 그 십자가를 대신 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아직 공생애 마지막 유월절에 이루어지는 그 때가 이르지 아니하였기에 제자들이 완전한 이해를 할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