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94강(마14:33-15: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6. 03:36

마태복음 강해 제94(14:33-15: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10()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바라보는 네 가지 시각(14:33-15:2, 6:15)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바라보고 있는 사람들 가운데 네 가지의 다른 시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1) 물 위를 걸어오시며 광풍을 잠재우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서 제자들이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소이다”(14:33)라고 신앙고백을 하고 있습니다. (2) 오병이어의 기적을 베푸시는 예수님을 바라보고서 모인 무리들이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고자 합니다(6:15). (3) 다만 예수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는 것을 보고서 백성들이 하나님의 능력을 행하는 선지자라고 굳게 믿고 있습니다(14:36). (4) 산헤드린 대 공회의 서기관들과 예루살렘의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의 복음과 만민구원사상이 유대교의 율법과 선민사상에 정면으로 도전하고 있는 이단사상이라고 정죄를 하고 있습니다(15:1-2).  이와 같은 네 가지 다른 시각들 때문에 어떠한 일들이 발생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본문을 중심으로 하여 잠깐 묵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제자들이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고백하고 있는 내용에 대해서 주님은 동의를 하시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베드로가 주는 그리스도시요 살아계신 하나님의 아들이시니이다”(16:16)라고 신앙고백을 했을 때에 바요나 시몬아 네가 복이 있도다. 이를 네게 알게 한 이는 혈육이 아니요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시니라”(16:17)고 예수님이 칭찬을 하시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로,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했던 무리들이 예수님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으려고 하는 논의에 대해서 예수님은 외면을 하시고 있습니다(6:15). 그 이유는 이미 말씀을 드린 바와 같이 예수님이 백성들의 경제적 문제해결과 선민의 독립과 위상강화를 위해서 이 세상에 오신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통하여 드러나는 하나님의 뜻은 그와 정반대입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셋째로, 변방 갈릴리의 가난한 백성들은 선민 이스라엘의 독립이나 다윗의 영광보다 더 선호하는 것이 있습니다. 당장 가난한 생활을 면하고 싶고 병든 몸이 낫고 싶습니다. 오병이어의 기적을 경험하고서 너무 좋아서 예수님을 자신들의 임금으로 삼고자 했더니 그만 몸을 피해버리시고 있습니다(6:15). 그래서 예수님의 뜻을 알아챌 수가 있었습니다. 경제적인 문제해결을 위해서 오신 분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백성들이 또 한 가지 원하고 있는 것이 있습니다. 병든 몸이 낫고자 하는 것입니다. 혹시 그것마저 거절하실지 몰라서 백성들이 서두르고 있습니다; “그들이 건너가 게네사렛 땅에 이르니 그곳 사람들이 예수이신 줄을 알고 그 근방에 두루 통지하여 모든 병든 자를 예수께 데리고 와서 다만 예수의 옷자락에라도 손을 대게 하시기를 간구하니 손을 대는 자는 다 나음을 얻으니라”(14:34-36). 여기서 게네사렛땅이라고 말하고 있으므로 한 가지 사실을 짐작할 수 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막달라 사이에 살고 있는 게네사렛평야의 백성들이 십리 길을 마다하지 아니하고 가버나움 예수님이 계신 곳으로 병자들을 데리고 몰려 왔다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참고로, ‘게네사렛(14:34, 6:53)이라고 하는 것은 갈릴리 호수 북서쪽에 위치하고 있는 작은 평야지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북쪽 가버나움에서 서쪽 막달라 사이에 열 개의 동산을 가지고 있는 길이 5km, 2.5km의 평야이며 그곳은 갈릴리 호수 때문에 물이 풍부하고 비옥합니다. 그래서 야자나무가 잘 자리고 호두, 무화과, 올리브, 포도 등이 풍성합니다. 의사 누가는 갈릴리 호수를 게네사렛 호수라고 부르고 있습니다(5:1). 헬라어 게네사렛은 히브리어로 긴네렛이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구약에서는 긴네렛 평야를 언급하고 있습니다(34:11, 3:17). 유대인들은 갈릴리 호수를 긴네렛 바다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그리고 로마시대에는 막달라 남쪽 오래된 마을에 신도시를 건설하고 테베리우스 황제를 기념하여 디베랴라고 불렀습니다. 따라서 그 앞 갈릴리 호수를 디베랴바다 또는 호수라고 불렀는데 사도 요한이 그 이름을 사용하고 있습니다(6:1, 21:1).

넷째로, 예루살렘의 유대교지도자들이 갈릴리에서 복음사역을 하고 있는 예수님을 방문하고 있습니다(15:1). 변방 갈릴리에서 행하시고 있는 예수님의 사역이 그들의 눈에 거슬리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 일행이 율법과 안식일 규정을 어기고 있다고 시비를 걸고 있습니다(15:2). 그들의 불편한 심기를 그렇게 드러내고 있는 것입니다. 기본적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은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의 나라를(19:6) 다윗 왕조의 이스라엘 제국이 이 세상에 건설한 바가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다윗의 후계자로 이 세상에 오시는 메시아는 당연히 다윗 제국을 재건하는 영웅 왕이어야만 합니다. 다윗의 칼이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으로 외세 로마제국과 헤롯 왕가를 물리치고 이스라엘의 독립을 쟁취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선민 이스라엘의 영광을 온 세상에 드러내어야만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다윗의 제국이 칼과 피로 세워졌으며(왕상5:3, 26:52) 선민들이 이방인들을 닮아서 우상을 섬기고 세상영광을 추구하다가 결국은 망하게 되었다는 것입니다(왕하21:11-16). 이방인들을 구원하기 위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되라고 했더니 이방인을 멸시하고 심판을 받아 마땅하다고 정죄를 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선민들이 자신들의 속죄와 영광만을 위한 제사를 드리기에 급급합니다. 그와 같은 선민사상은 모든 피조물에게 구원과 영생의 기회를 제공하고자 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의 뜻에 정면으로 위배되고 있는 것입니다(3:16-17, 8:19-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