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88강(마14: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3. 03:55

마태복음 강해 제88(14:1-2)

작성자; 손진길 목사(오픈 바이블 스타디 인도자)

작성일; 주후 201524()

 

세례 요한의 정체에 대한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관념과 예수님의 생각과의 차이(14:1-2, 11:14-15)

 

헤롯 왕가는 이두매 출신의 왕가입니다(3:8). 그들은 본래 에돔 족속입니다. 그런데 그들의 족속이 망할 때에 다행히 유대교로 개종을 함으로써 가나안 남쪽 국경지대에서 살아남은 자들입니다. 따라서 그들은 유대교를 믿으며 유대인처럼 행세를 하고 있지만 여전히 에돔 족속의 관념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들 관념의 일단을 헤롯 안디바가 본문에서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때에 분봉 왕 헤롯이 예수의 소문을 듣고 그 신하들에게 이르되, 이는 세례 요한이라. 그가 죽은 자 가운데서 살아났으니 그러므로 이런 능력이 그 속에서 역사하는도다 하더라”(14:1-2).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분봉 왕 헤롯이 일종의 부활사상을 지니고 있습니다. 죽은 자가 다시 살아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2) 그런데 예수님의 부활사상과는 다른 것입니다. 죽은 자가 몸이 살아나는 것이 아닙니다. 그 영혼의 능력이 죽음에서 살아나는 것입니다. (3) 부활한 그 능력이 다른 사람에게 전이가 되고 있습니다. (4) 그 세 가지의 관념을 종합한 것이 분봉 왕 헤롯 안디바의 언급입니다. 죽은 세례 요한이 되살아나서 그의 능력이 예수에게 들어가서 역사를 하고 있다는 것”(14:2)입니다. 그것은 쉽게 말하자면 죽은 자가 귀신이 되고 산 자에게 빙의가 된다고 하는 통념으로서 아직도 귀신에게 사로잡혀 있는 관념이라고 하겠습니다.

이제는 예수님의 생각을 알아보고자 합니다. 먼저 예수님은 세례 요한의 정체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습니다;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세례 요한)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1:14-15). 여기서 오리라 한 엘리야에 대한 언급은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예언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있는 것입니다. 일찍이 말라기 선지자는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임하기 전에 승천한 엘리야가 다시 이 세상에 와서 메시아의 길을 예비할 것임”(4:5-6)을 예언한 바가 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엘리야 선지자가 살아 생전에 하나님의 은혜로 불수레를 타고서 승천을 했다고는 하지만(왕하2:11-12) 어떻게 온전한 사람의 몸을 입고서 다시 이 세상에 올 수가 있겠습니까?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은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환생(還生, reincarnation)을 한다거나 엘리야의 영혼이 세례 요한의 몸에 들어간 것이라고 하는 의미는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일단 믿는 자가 죽게 되면 그 영혼은 주님이 깨우러 올 때까지 잠을 자게 됩니다(5:25, 11:11). 생명의 주인이신 창조주 하나님 앞으로 그 영혼이 돌아가게 되어 있다는 사실을 일찍이 지혜의 대왕으로 불리고 있는 솔로몬이 증거를 하고 있습니다(3:21). 그리고 예수님의 마지막 말씀이 더욱 결정적인 증거가 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큰 소리로 불러 이르시되, 아버지 내 영혼을 아버지 손에 부탁하나이다 하고 이 말씀을 마치신 후 숨지시니라”(23:46). 따라서 믿는 자의 영혼이 이 세상에 귀신이 되어 나타난다거나 다른 사람의 몸에 빙의가 된다고 하는 일은 없다고 해석이 됩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이 왜 승천한 바가 있는 엘리야가 세례 요한으로 다시 왔다고 하는 사실을 은근히 말씀으로 비추고 있는 것일까요? 그리고 그 사실을 달리 생각하지 말라고 왜 그토록 제자들에게 조심스럽게 당부를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만일 너희가 즐겨 받을진대 오리라 한 엘리야가 곧 이 사람(세례 요한)이니라. 귀 있는 자는 들을지어다”(11:14-15). 그 의미에 대해서 생각을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세례 요한이 엘리야의 환생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이해하라고 하는 당부의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예컨대, 불교의 한 종파가 하나의 국가를 이루고 있는 경우가 있습니다. 그들 백성들은 깨달은 자 곧 살아있는 부처를 왕으로 모시고 있다고 생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왕이 죽음을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다음 왕위는 누가 잇게 될까요? 환생의 이론을 가지고 후임 왕을 결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엄밀하게 말하자면 그들의 환생이론이라는 것이 문제가 있습니다. 죽은 자의 영혼이 다른 사람으로 태어나는 경우라야 정확한 환생(reincarnation)일 터인데 그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왕위를 오래 비워둘 수가 없기 때문에 당장 어린아이들 가운데서 죽은 왕의 영혼이 들어가 있는 적임자를 찾고 있을 뿐입니다. 그것은 일종의 빙의와 같은 것이 아니겠습니까? 역시 완전한 ‘reincarnation’으로 부를 수 있는 환생을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성육신(成肉身, incarnation)으로 태어나신 분입니다(1:14). 성령의 능력으로 모태에서 아기로 태어나신 것입니다(1:18, 1:34-35). 일찍이 믿음의 조상들의 가정에서 완전한 성육신은 아니지만 비슷한 사례가 많이 있습니다; (1) 아브라함과 사라 부부는 늙어서 아들 이삭을 얻습니다. 아내 사라의 경우에는 평생 아기를 낳을 수 없는 불임여성입니다(11:30). 이미 경수도 끊어진 나이입니다(18:11). 그런데 89세에 그 몸이 회춘이 되고 90세에 아들을 얻고서 젖을 물리고 있습니다(21:1-7). (2) 이삭이 40세에 리브가와 결혼을 했지만 아기가 생기지를 아니했습니다. 20년 동안 태를 여시는 하나님에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 결과 60세에 아들 쌍둥이를 얻게 됩니다(25:20-26). (3) 야곱이 84세에 라헬과 합방을 했습니다. 그러나 7년 동안 아기가 생기지를 아니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라헬의 태를 닫아버렸기 때문입니다(29:31). 드디어 라헬의 태를 여셨을 때에 아들 요셉을 얻게 됩니다(30:22-24). 성경은 한 마디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사람들이 태어나게 됨을 믿으라고 합니다. 사람 역시 창조주의 능력으로 태어나서 자라고 있는 피조물이라는 사실을 명심하라고 가르치고 있는 책이 바로 성경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말씀을 듣고 깨달을 수 있는 사람이 곧 예수님이 말씀하고 계시는 진정한 영적인 믿음의 귀를 소유하고 있는 자입니다(11:15).

셋째로, 그럼에도 불구하고 왜 예수님은 승천한 바가 있는 엘리야가 세상에 다시 왔으며 그가 세례 요한이라고 조심스럽게 제자들에게 알려주고 있는 것일까요? 몇 가지의 의미를 찾아볼 수 있습니다;

(1)  엘리야와 세례 요한은 분명히 시대가 다르고 역할이 다른 선지자입니다. 그러나 엘리야와 세례 요한이 수행하고 있는 일은 공통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엘리야는 종교적인 암흑시대 아합 왕가 때의 선지자입니다. 호렙 산에서 엘리야에게 맡긴 세 가지의 사명은 모두 아합 왕가를 끝장내고 새로운 시대를 준비하는 과제들입니다(왕상19:15-18). 그와 같은 의미에서 세례 요한은 말라기 선지자 이후 430년 동안 선지자의 그림자도 찾을 수 없던 유대교인들의 땅에 새로운 메시아의 시대가 온다고 하는 사실을 선포하는 선지자입니다. 요컨대, 사명이 동일한 선지자가 다시 오게 된다는 의미에서 예수님의 말씀은 큰 설득력을 지니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2)   엘리야 선지자는 승천이 이루어지고 갑절의 영감이 필요한 새로운 시대를 예고하고 있습니다(왕하2:9-11). 그 자신 불수레를 타고서 승천하고 있습니다. 앞으로 그러한 승천이나 휴거가 있을 것임을 시사해주고 있는 유일한 선지자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말라기 선지자의 예언처럼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이르기 전에”(4:5) 선지자 엘리야가 이 세상에 다시 오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세례 요한이 예수님을 그리스도라고 소개한 그 순간부터 여호와의 크고 두려운 날이 종말로서 시작이 되고 있다고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종말의 내용이 두 가지입니다. 첫째, 여호와 하나님의 심판이 이 세상에 전면적으로 임하게 될 것이기에 종말입니다. 둘째, 사람들에게 전체적으로 마지막 구원의 기회가 주어지는 것이기에 종말입니다. 더 이상의 기회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예수 그리스도가 공생애와 십자가 대속의 죽음 그리고 무덤 속 부활과 승천으로 만들어가고 있는 새로운 시대는 선민 이스라엘만을 위한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세상사람 누구나 그리스도의 복음을 믿고 예수님의 제자인 성도로서 살아가게 된다면 부활과 승천 그리고 휴거의 역사를 맞이할 수 있게 됩니다. 그렇게 생각해보면, 예수님의 부활 승천과 다시 오심 그리고 세상의 끝에 있게 될 휴거는 모두 선민 엘리야와 세례 요한의 시대를 과감하게 마감하면서(11:12-13) 마침내 이 세상에 임하고 있는 새로운 시대를 말하고 있는 큰 증거입니다(11:11).  곧 만민을 구원하고 온 세상을 구원하는 큰 은혜의 시대가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세상에 오고 있는 것입니다(11:9, 3: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