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목; “하나님(God)과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과 주님(my lord)의 차이”(창1:1-5, 2:7-9, 15-18, 참고구절은 출3:14-15, 시110:1)
설교일; 주후 2023년 6월 25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6월 20일 화요일 작성)
지난 20세기 후반에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유명한 정치철학자가 한사람 있습니다. 그의 이름이 지오바니 사르토리(Giovanni Sartori)입니다. 그는 조국인 이탈리아의 다당제 정당체계를 연구하면서 동시에 유럽의 대륙식 정당체계와 선거제도 그리고 섬나라 영국의 정당체계와 선거제도를 깊이 연구하였습니다. 그 결과를 집대성하여 그는 민주주의란 무엇인가?에 대하여 나름대로 정치철학적인 대답을 하고 있습니다;
사르토리 교수의 강의와 저작이 세상에 알려지자 미국의 대학에서는 그를 초빙하여 교단을 맡겼습니다. 그는 미국의 여러 유명대학에서 정치철학을 가르치는 한편 국제정치학회에서 특이한 활동을 하나 했습니다. 그것은 정치학자들이 자주 사용하고 있는 정치학 용어에 대하여 먼저 그 개념을 명료하게 정의하고자 노력한 것입니다.
그가 보기에는 정치학자들이 학회에서 서로 심하게 논쟁하고 있는데 대부분의 경우 그들이 사용하고 있는 용어가 상이하여 발생하고 있는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용어의 개념에 대하여 먼저 합의를 하고나서 논쟁을 시작하는 것이 올바른 토론의 방법인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사르토리가 민주주의란 무엇인가? 또는 정당체계란 무엇인가? 등의 개념을 조작적으로 규정하고자 노력한 것은 다른 학문의 분야에서도 본받을 필요가 있습니다. 똑같은 문제가 발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특히 성경신학의 논의에 있어서도 지오바니 사르토리의 관점과 연구는 그 시사성이 크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모세오경과 시편의 말씀을 살펴보면 다음과 같은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첫째로, 창세기 제1장에서 천지와 만물을 창조하고 계시는 하나님과 제2장에서 아담을 창조하시고 그와 에덴동산에서 동거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그 의미가 상당히 다릅니다.
1) 창세기 제1장에서는 다음과 같이 그야말로 우주 바깥에서 피조세계를 창조하시는 절대적인 초월자 하나님(God)의 존재가 돋보이고 있습니다; “1. 태초에 하나님(God, NRSV, NIV, KJV)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KJV)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God)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God)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God)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God)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1-5). 매 구절마다 창조의 신이 공통적으로 하나님(God)이라고 기록되고 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영도 그 모습을 드러내고 있습니다(2절);
2) 그와 달리 창세기 제2장에서는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어 주시는 생명의 주인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의 청지기인 아담과의 개인적인 관계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 NIV, KJV)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7-9). 특히 제2장에서는 여호와 하나님이 창조물인 사람과 에덴동산에서 함께 거주하시면서 아담에게 가정을 이룰 수 있도록 하와를 만들어서 데려다 주고 그들 부부와 대화하며 지내신다고 하는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3) 그 점은 훗날 주전 15세기에 모세를 호렙산 중턱 불꽃 가운데 불러서 그와 개인적으로 대화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의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7. 여호와(the Lord, NRSV)께서 이르시되, 내가 애굽에 있는 내 백성의 고통을 분명히 보고 그들이 그들의 감독자로 말미암아 부르짖음을 듣고 그 근심을 알고”(출3:7), “14. 하나님(God, NRSV)이 모세에게 이르시되, 나는 스스로 있는 자(I am who I am, NRSV, אֶֽהְיֶ֖ה 히브리어로 여호와, 그 의미는 스스로 존재하는 자임)이니라. 또 이르시되, 너는 이스라엘 자손에게 이같이 이르기를, 스스로 있는 자(אֶֽהְיֶ֖ה 히브리어로 여호와, 결코 피조물이 아니라는 의미임)가 나를 너희에게 보내셨다 하라”(출3:14); 여기서 모세는 피조물입니다. 그와 말씀하고 계시는 여호와는 스스로 존재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 그 분이 모든 창조물의 생명의 주인이시며 모세의 인생 가운데 거룩한 사명을 부여하십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라는 용어 가운데 담겨 있는 것입니다;
(2) 둘째로, 시편 제110편에서 다윗이 성령의 감동으로 천국에 있는 하나님의 보좌를 바라보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는 주님에게 말씀하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에 관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the Lord, NRSV)께서 내 주(my lord, NRSV, 나의 주님)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1) 여기서 다윗은 먼 훗날 이 세상에 성육신하시고 복음사역을 하시다가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는 예수 그리스도를 영적으로 미리 보고 있습니다.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신 그리스도가 승천하여 아버지 하나님의 보좌 옆에 좌정하고 계심을 다윗이 영적인 눈으로 보고 있는 것입니다.
2) 그 분이 시공간을 초월하여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들의 심령속에 성령님과 함께 내주하여 언제나 역사하시는 주님이십니다. 그와 같은 영적인 동행관계가 벌써 성립되고 있기에 주님의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고 있는 성도들은 장차 부활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함께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마28:18-20, 눅22:28-30, 롬8:14-18, 빌3:10-16).
(3) 셋째로, 주후 1세기 하나님의 독생자가(요1:14, 18) 유대 땅에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여자의 후손으로 태어났으며(창3:15, 눅1:34-35) 30세가 되자 제자들과 함께 복음전파의 공생애를 살아가고 있습니다(눅3:23). 그가 나사렛 예수로 불리고 있는 하나님의 아들(son of God) 그리스도입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피조물이 되어 인간의 몸으로 태어났기에 자신을 인자(人子, son of man)라고 부르고 있습니다(요3:13-14). 그는 아버지 하나님의 만민구원과 영생구원의 복음을 백성들에게 전파하고 마침내 대속의 십자가를 지십니다. 그리고 무덤속에서 3일후에 영생의 몸을 입고 하나님의 능력으로 부활하십니다. 그 이유가 다음과 같이 두가지입니다;
1) 첫째 이유는 자신이 전파하고 있는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이 진리라고 하는 사실을 온세상에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 유대교인들이 주장하고 있는 선민사상과 메시아에 의한 다윗제국의 재건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의 뜻이 아니라고 하는 사실을 그리스도는 자신의 죽음과 부활로써 증거하고 있습니다. 요컨대, 그리스도의 죽음과 부활은 이 세상에서 이기적인 선민의 나라 현세적인 다윗의 제국을 재건하는 것이 아니라 땅끝까지 하나님의 복음의 말씀을 전파하고 만민을 구원하여 다 함께 천국에 들어가고자 결단하는 자신의 제자들에게 장차 영광스러운 천국의 상급이 기다리고 있다는 사실을 증거하기 위한 것입니다(눅22:28-30).
2) 둘째 이유는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예수 그리스도가 유한한 인간의 몸을 벗고 시공간을 초월하여 제자들의 심령속에 성령님과 함께 임재하여 역사하기 위한 것입니다(롬8:2). 그야말로 우리 성도들의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영적으로 아버지 하나님과 함께 성도들에게 임재하여 역사하십니다(요14:16-20). 그러므로 성도들은 거듭난 인생을 주님(my lord)과 동행하면서 살아가게 되는 것입니다(행16:6-7). 그와 같이 성도들이 남은 인생을 삼위일체 하나님과 영적으로 동행하고 있기에 사도 바울은 이 세상을 이기신 예수님처럼 그 제자들도 승리의 인생을 살아갈 수가 있다고 다음과 같이 강조하고 있습니다; “37. 그러나 이 모든 일에 우리를 사랑하시는 이로 말미암아 우리가 넉넉히 이기느니라. 38. 내가 확신하노니,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39.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어떤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으리라”(롬8:37-39).
이상과 같은 사실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의 말씀을 한 구절 씩 살펴보고자 합니다. 아울러 말씀의 묵상 가운데 얻은 교훈을 함께 말씀드리겠습니다;
첫째로, “1. 태초에 하나님(God, NRSV, NIV, KJV)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KJV)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God)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 4. 빛이 하나님(God)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God)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God)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1-5);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태초에 하나님(God, NRSV, NIV, KJV)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 2.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고, 하나님의 영(the Spirit of God, KJV)은 수면 위에 운행하시니라. 3. 하나님(God)이 이르시되, 빛이 있으라 하시니 빛이 있었고”(창1:1-3); 여기서 태초에(영어로는 in the beginning, 히브리어로는 בְּרֵאשִׁ֖ית 베레쉬트임)는 창조주 하나님이 이 세상을 창조하시는 최초의 시점을 말하고 있습니다(1절). 그러므로 하나님(God)의 의미는 무질서하게 땅이라는 물질이 제멋대로 영원히 암흑의 세계에 떠돌고 있는 것을 보시고 그것의 팽창을 수면으로 막고 계시는 영적인 절대자이십니다(2절). 그 분이 창조의 질서를 만들기 위하여 혼돈의 물질인 땅에게 명령하고 계십니다; “서로 부딪침이 없이 영원히 어두움의 세계를 떠돌고 있는 혼돈의 땅은 이제 서로 부딪쳐서 빛을 생성하라. 그리고 생명을 키워낼 수 있는 토양을 형성하도록 하라”(3절의 의미).
(2) “4. 빛이 하나님(God)이 보시기에 좋았더라. 하나님(God)이 빛과 어둠을 나누사, 5. 하나님(God)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4-5);
1) 창조주 하나님의 명령을 듣자 혼돈의 물질인 땅은 처음으로 서로 만나서 부딪치며 마침내 빛을 생성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원자로 속에서 열(熱)중성자가 연료봉에 부딪쳐서 물 가운데 코발트의 빛을 생성하는 것처럼 아름답고 신비롭기가 그지 없습니다. 따라서 원자로 안에서 발생하고 있는 핵분열과 그로 말미암아 나타나고 있는 빛무리를 바라보는 사람들은 탄성을 지르게 됩니다.
2) 여기서는 태초에 창조를 시작하신 절대자 하나님께서 자신의 명령에 순종하여 혼돈의 땅들이 서로 부딪치고 아름다운 빛을 생성하는 것을 보고서 좋아하십니다(4a). 그와 같이 어두움보다는 빛을 사랑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다음 순간 일부러 빛 가운데 어두움을 만들고 계십니다(4b).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그 이유가 곧바로 밝혀지고 있습니다; “5. 하나님(God)이 빛을 낮이라 부르시고, 어둠을 밤이라 부르시니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첫째 날이니라”(창1:5);
3) 그 이유는 빛으로 가득 찬 낮과 어둠이 몰려온 밤의 시간대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절대자 하나님과 피조물과는 엄청난 차이가 있습니다. 가장 중요한 차이가 바로 창조주 하나님은 영이시기에 피조물이 갇혀 있는 이 세상의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훗날 세례 요한이 창조주의 선재성(先在性, pre-existence)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요1:30).
4) 그 점을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또한 증거하고 있습니다; “56. 너희 조상 아브라함은 나의 때 볼 것을 즐거워하다가 보고 기뻐하였느니라. 57. 유대인들이 이르되, 네가 아직 50세도 못되었는데 아브라함을 보았느냐? 58. 예수께서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브라함이 나기 전부터 내가 있느니라 하시고”(요8:56-58). 그리고 무덤에서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예수님께서는 문과 벽이라고 하는 공간도 그대로 통과하십니다(요20:19). 한마디로 영으로 임재하시는 주님이 되신 것입니다.
5) 그와 같이 시공간의 제약을 초월하고 있는 하나님과 주님에게 있어서는 어둠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모든 빛을 전부 볼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피조물에 불과한 사람은 그것이 아닙니다. 낮 동안에는 일정한 빛만 볼 수가 있으며 또한 밤에 깊은 잠을 자기 위해서는 어둠이 필요합니다. 그 점을 미리 아시고 빛을 좋아하시는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구태여 낮의 빛과 밤의 어둠을 시간대별로 배치하고 계십니다(4b&5a). 참으로 인간을 위하시는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렇게 낮과 밤이 번갈아 임하게 되자 그것으로 사람들이 하루라는 날짜를 인식하게 되는 것입니다(5b);
둘째로, “7.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 NIV, KJV)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 8.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7-9); 역시 다음과 같이 두 부분으로 나누어서 그 의미를 살펴봅니다;
(1) “7.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 NIV, KJV)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1) 창세기 제1장에서는 모세가 창조주 하나님(God)이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남자와 여자를 만드셨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창1:27). 그와 같이 소중한 창조주의 이미지와 모양을 사람에게 준 이유는 하나님의 명령을 듣고 그대로 실천하는 청지기를 만들기 위한 것입니다. 사실 피조세계를 창조하는 것만이 능사가 아닙니다. 그 다음에는 반드시 하나님의 뜻을 알아 듣고 그 지시에 따라 이 세상을 다스리고 관리할 수 있는 청지기의 역할이 필요한 것입니다.
2) 그와 같은 역할과 기능이 참으로 중요한 것이기에 창세기 제2장 본문에서는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7.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 NIV, KJV)이 땅의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생기를 그 코에 불어넣으시니, 사람이 생령이 되니라”(창2:7); 여호와 하나님이 사람의 육체를 먼저 만들고 있습니다. 그 소재가 땅의 흙입니다. 그것은 다른 동식물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창1:12, 24-25, 전3:20). 그러나 지혜의 대왕 솔로몬의 전도서 제3장의 기록에 따르면 인생들의 혼은 (창조주 하나님이 계시는) 위로 올라가고 짐승의 혼은 아래 곧 땅으로 내려갑니다(전3:21). 그 이유를 밝히고 있는 것이 사실은 본문 ‘창2:7절’ 말씀입니다.
3)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땅의 흙으로 사람의 육체를 만들고 그 다음에는 자신의 청지기로 사용하기 위하여 영적으로 하나님과 교제할 수 있도록 그 코에 영적인 기운 곧 생명의 기운을 불어넣으신 것입니다(창2:7). 그 때문에 다른 생명체와 달리 사람만이 이른바 영육합일체(靈肉合一體)의 성격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영적인 안테나를 사용하여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교제할 수가 있습니다. 그러한 개인적인 관계의 형성으로 인하여 초월자 창조주 하나님(God)의 존재가 이제는 개인적인 영적 교제가 가능한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으로 바뀌고 있는 것입니다.
4) 영과 육을 함께 지니게 됨으로써 사람은 이제 살아있는 혼적(魂的)인 존재가 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지식을 체득하고 감정을 조절하며 자유의지로 중요한 선택을 할 수 있는 소위 만물의 영장(靈長)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가 본문에서 ‘생령’(living soul, KJV)이라고 하는 다소 생소한 용어 가운데 내포되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점을 특히 영어번역본 가운데 흠정역인 ‘킹 제임스 성경’에서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2) “8.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 동방의 에덴에 동산을 창설하시고, 그 지으신 사람을 거기 두시니라. 9.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 그 땅에서 보기에 아름답고 먹기에 좋은 나무가 나게 하시니, 동산 가운데에는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도 있더라”(창2:8-9);
1) 개인적인 관계는 먼저 상대방의 이름을 불러줌으로써 형성이 됩니다. 따라서 여호와 하나님이 자신과 개인적으로 교제할 수 있는 사람의 이름을 제19절에서 ‘아담’(영어로는 Adam, KJV, 히브리어로는 אָדָ֛ם 아담임)이라고 부르십니다. 여기서 아담의 뜻은 흙에서 취했지만 하나님의 생기를 그 코로 호흡할 수가 있는 사람이며 성적으로는 남성입니다.
2) 남성인 아담은 비록 에덴동산에서 완전한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함께 살고 있지만 자신은 그와 달리 영육합일체의 특징을 지니고 있으므로 외롭고 쓸쓸합니다. 따라서 나중에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아담을 위하여 돕는 배필을 만들어 주십니다. 그 완벽한 배필이 아내인 여성이며 그녀는 흙이 아니라 아담의 갈비뼈로 만들어진다고 하는 이차적인 특징을 지니고 있습니다. 자신의 아내이며 사랑의 대상이 되고 있는 여성을 아담은 산 자의 어미라고 하는 의미를 지니는 ‘하와’라고 부르게 됩니다(창3:20).
3) 에덴동산에서 창조주 하나님과 개인적인 교제를 하고 있는 아담은 여호와의 생기를 코로 호흡함으로써 영생을 누리고 있습니다. 그렇지만 그와 같은 개인적인 영적인 교제가 계속되기 위해서는 창조주와 피조물이라는 엄격한 구별에 충실해야 합니다. 결코 피조물인 아담이 창조주의 지위와 신분을 탐내서는 안됩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에덴동산의 중앙에는 종의 법도를 엄중하게 지키도록 암시하고 있는 두가지 종류의 나무가 자라고 있습니다;
4) 그 하나가 선악과 나무입니다. 창조주 하나님과 피조물인 인간 사이에는 도저히 뛰어 넘을 수가 없는 선과 악을 구별할 수 있는 지혜의 차이가 있다는 의미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인간의 선악 개념은 상대적인 것입니다. 그와 달리 창조주 하나님의 선악개념은 절대적인 것입니다. 따라서 완벽하게 피조세계를 관리하고 그 생명을 전부 살리는 공의의 정신은 오로지 창조주 하나님만이 지니고 있는 특징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에서 아가페 사랑이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흘러나오고 있음을 훗날 복음서에서 증거하고 있습니다(마5:43-48, 막3:4, 12:30-31).
5) 또 하나가 생명나무입니다. 생명나무의 과실을 따먹게 되면 영생의 존재가 될 수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예수님이 무덤에서 영생의 몸을 입고 부활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므로 부활 승천하신 주님의 뒤를 따라 지상명령을 실천하게 되는 성도들이 훗날 천국에 입성하여 생명나무에 접근할 수가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이 세상에서 예수 그리스도가 지신 대속의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자신이 큰 죄인임을 깨닫고 회개하면서 그리스도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결단하는 성도들에게는 창조주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가 주어집니다.
6) 그로 말미암아 의인으로 간주가 된 성도들에게 성령님이 강림하여 내주 역사하시게 됩니다(요14:16-20, 행1:8, 2:1-4). 그와 같이 성령님의 임재로 인하여 악한 영들이 쫓겨나게 되면 성도의 심령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됩니다(마12:28). 따라서 영적으로 거듭난 성도가 그리스도의 제자가 되어 주님의 지상명령을 끝까지 실천하게 되면 무덤에서 부활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으로 천국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되는 것입니다.
7) 그것을 사도 요한은 그의 계시록 마지막 장에서 다음과 같이 증거하고 있습니다; “1. 또 그가 수정같이 맑은 생명수의 강을 내게 보이니, 하나님과 및 어린양의 보좌로부터 나와서, 2. 길 가운데로 흐르더라. 강 좌우에 생명나무가 있어 12가지 열매를 맺되, 달마다 그 열매를 맺고 그 나무 잎사귀들은 만국을 치료하기 위하여 있더라”(계22:1-2). 그와 같은 실락원에서의 인류의 구원을 준비하기 위하여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선악과를 따먹고 죄를 범한 아담부부를 에덴동산에서 내보내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아담부부가 생명나무의 열매마저 따먹고 죄 가운데 영생하게 되는 비극을 사전에 예방하기 위한 것입니다(창3:22-24);
셋째로, “15.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이 그 사람(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각종 나무와 땅)을 경작하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 18.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er as his partner, NRSV)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5-18); 역시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분설하고자 합니다. 이미 많은 설명을 하였기에 여기서는 간략하게 살펴봅니다;
(1) “15.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이 그 사람(아담)을 이끌어 에덴동산에 두어 그것(각종 나무와 땅)을 경작하며 (생명나무와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를) 지키게 하시고, 16.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이 그 사람에게 명하여 이르시되, 동산 각종 나무의 열매는 네가 임의로 먹되, 17.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는 먹지 말라. 네가 먹는 날에는 반드시 죽으리라 하시니라”(창2:15-17);
1) 창조주이신 여호와 하나님과 그 청지기로 창조가 된 인류의 조상인 아담이 에덴동산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15a). 하지만 창조주와 피조물의 관계이기에 다음과 같은 기본적인 법도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첫째, 에덴동산에서 밭을 일구어 경작하며 각종 나무를 돌보는 것이 아담의 책무입니다(15b). 경작의 결과 그 소출과 열매를 얻어 아담이 자신의 먹거리로 삼고 있습니다(16절). 둘째, 다른 피조물이 에덴동산을 침범하여 생명나무의 과일과 선악과를 따먹지 못하도록 파수하는 것이 또한 아담의 책무입니다(15c).
2) 셋째, 여호와 하나님의 청지기인 아담 역시 에덴동산 중앙에 있는 선악과를 따먹어서는 안됩니다(17a). 왜냐하면 그 열매를 따먹게 되면 하나님과의 영적인 교제가 끊어지며 반드시 죽고 말기 때문입니다(17b). 특히 선악과를 따먹은 다음에 생명나무의 열매마저 따먹게 되면 죄 가운데서 영생하게 되는 영벌(永罰, eternal punishment)에 처해지고 말 것입니다(창3:22). 그것은 죽지도 못한 채 매일같이 지옥불의 징벌을 영원히 경험하는 가장 저주스러운 운명에 처해지고 마는 것입니다(눅16:23, 계20:12-15);
(2) “18.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 NRSV)이 이르시되, 사람이 혼자 사는 것이 좋지 아니하니, 내가 그를 위하여 돕는 배필(a helper as his partner, NRSV)을 지으리라 하시니라”(창2:18);
1) 창세기 제1장에서 태초에 천지만물을 그 말씀으로 지으시고 창조의 질서를 바로 세우시는 하나님은 초월자이시며 그 영원한 보좌가 우주 바깥 천국에 자리잡고 있습니다(창1:1-2). 그와 달리 에덴동산에서 피조물인 아담에게 선한 청지기의 교육을 시키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왜냐하면, 영적으로 아담과 교제하시면서 필요한 것들을 항상 먼저 공급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2) 영이신 여호와 하나님은(요4:24) 아담이 영육합일체로 만들어져 있기에 하나님만으로 만족할 수가 없는 특징을 지니고 있음을 알고 계십니다(창2:7). 따라서 그에게 처음에는 동물을 애완용으로 만들어 줍니다(창2:19). 그러나 애완용 동물만으로 완전히 만족할 수가 없는 아담입니다(창2:20). 그에 따라 결국에는 아담과 완벽하게 닮아 있는 여성 하와를 창조하여 아내로 데려다 주십니다(창2:21-23).
3) 여호와 하나님께서 가장 좋은 것으로 만들어 주셨기에 아담과 하와가 한 몸이 되어 가정생활을 하면서 얼마나 기쁘게 살아가고 있는지 모릅니다(창2:24-25). 그것이 여호와 하나님의 뜻에 맞는 아름다운 ‘1부1처제’(monogamy) 가정의 탄생입니다. 그와 같은 아름다운 창조의 질서가 세월이 흘러가자 그만 가정에서부터 깨어지고 있습니다.
4) 구체적으로, 하나님신앙을 가진 집안의 아들들이 세상적인 아름다움만을 추구하고 있는 여자들을 자기 마음에 드는 대로 모조리 아내로 삼아 그만 ‘일부다처제’(polygamy)의 가정을 만들어버리고 말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세상적인 욕심과 정욕 때문에 노아의 시대에 폭력이 난무하고 포악함이 극에 달하고 있습니다(창6:1-5, 11-13). 바로 그때에 여호와의 전면심판인 홍수심판이 그 땅에 찾아오고 마는 것입니다(창6:6-8);
결론적으로, 적어도 창조주 하나님이 세가지의 모습으로 사람들에게 인식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가 태초에 이 세상을 말씀으로 창조하신 절대적인 능력자 하나님(God)이십니다. 그 점은 창세기 제1장의 기록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경말씀의 대미를 장식하고 있는 요한계시록에서 또한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에 대하여 묘사하고 있습니다. 다른 영적인 존재까지 하나같이 절대적인 주권자 하나님 앞에 머리를 조아리고 있는 것입니다(계4:2-11). 따라서 창조주 하나님의 보좌는 피조세계의 바깥 천국에 높이 자리를 잡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 그렇다면 만물의 영장으로서 피조세계를 다스리게 되는 하나님의 청지기 아담에게 있어서는 어떠한 하나님의 특혜가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그 대목에 대한 설명이 창세기 제2장에 수록되어 있는 에덴동산의 이야기입니다.
구체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함께 살아가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여호와 하나님(the Lord God)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 의미는 아담의 창조주이실 뿐만 아니라 청지기로 살아가게 되는 아담의 생명의 주인이 되신다고 하는 것입니다. 가장 큰 생명의 주인이시기에 ‘the Lord God’이라고 묘사가 되어 있습니다.
셋째, 이 세상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돌아가신 후에 무덤에서 창조주의 능력으로 인하여 영생의 몸으로 부활하신 주님에 대해서는 어떠한 이해가 가능할까요? 그 점에 대해서는 주전 10세기 초엽의 선견자 다윗이 그의 시편 제110편에서 정확하게 말하고 있습니다;
“1. 여호와(the Lord, NRSV)께서 내 주(my lord, NRSV)에게 말씀하시기를, 내가 네 원수들로 네 발판이 되게 하기까지 너는 내 오른쪽(my right hand, NRSV)에 앉아 있으라 하셨도다”(시110:1). 여호와 하나님의 오른쪽이 바로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이 살아 숨쉬는 곳이며 영생의 은혜가 주어지는 장소입니다(마25:31-36).
남은 인생동안 주님의 지상명령을 실천한 성도들이 무덤에서 부활하여 주님의 인도하심을 받아 천국에 입성하게 됩니다. 그곳에서 영생을 누리게 됩니다. 그와 같이 개인적으로 남은 인생의 주인이 되어 주시는 주님이 바로 ‘my lord’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아무쪼록 남은 인생 가운데 나의 주님(my lord)과 함께 끝까지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시는 저와 여러분들이 모두 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살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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