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3-24년 설교문(손진길)

실락원에서 필요한 믿음 5가지(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3. 02:16

제목; “실락원에서 필요한 믿음 5가지”(4:1-15)

설교일; 주후 2023618일 주일

작성자; 손진길 목사(613일 화요일 작성)

 

창세기 제1장에서는 주전 15세기의 선지자 모세가 창조주 여호와께서 6일 동안에 피조세계를 창조하신 이야기를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것은 단지 태초에 우주와 만물을 만든 이야기 곧 하드웨어의 구축을 말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제는 천지와 만물을 창조주 여호와의 뜻에 맞게 계속 경영할 수 있는 청지기의 교육과 훈련이 시급합니다.

그것은 일종의 소프트웨어입니다. 그 점을 창세기 제2장에서 설명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피조세계를 창조주의 뜻대로 경영하도록 아담을 에덴동산에 두고서 필요한 훈련을 시키고 있습니다. 특히 영육합일체로 창조가 된 아담을 돕도록 동일한 정체성의 배우자를 만들어 주어 일부일처제의 아름다운 가정을 이루게 합니다.

그리고 여호와께서는 영적으로 아담부부와 교제하면서 안식의 복을 베풀어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아담부부가 여호와를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고 겸손하게 종의 법도를 지키면서 에덴동산에서 계속 살아갔다고 한다면 그들은 창조주의 생명의 기운을 매일 호흡함으로써 영생을 누리는 복된 존재가 될 수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창세기 제3장에서 아담부부는 피조물이 결코 범해서는 아니되는 죄악을 범하고 맙니다. 그것은 피조물이 감히 창조주가 되고자 하는 과욕을 부린 것입니다(3:5-7, 14:13-15). 아무리 사랑하는 자신의 청지기라고 하더라도 주인의 것을 제멋대로 탐하는 것만은 용서할 수가 없습니다.

아담의 아내인 하와가 주장하기를 자신은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으로 말미암아 범죄를 하였다고 말하지만 그것은 설득력이 약합니다. 따라서 뱀과 함께 아담부부는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쫓기고 맙니다;

 그리고 아담부부가 실락원(失樂園, the Lost Paradise)에서 받게 되는 고통과 여호와의 심판의 내용이 창세기 제3장 후반부에 구체적으로 기록되어 있습니다.

그런데 제3장의 말미의 내용을 묵상해보면 선악과를 따먹고 하나님께 범죄한 인간이 에덴동산에서 생명나무의 과일마저 따먹게 되면 죄악 가운데 영생하는 영벌의 저주를 받게 된다는 사실을 창조주 여호와께서 우려하고 계십니다(3:22-24). 따라서 아담부부를 에덴동산 바깥으로 내보내시는 여호와의 깊은 뜻을 어렵지 아니하게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부디 아담부부와 그 자손들이 실락원에서 대속자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들의 죄악을 진심으로 회개하고 다시 여호와께로 돌아오기를 창조주께서 바라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지난 주일에는 누가복음 제15장에 기록되어 있는 탕자의 비유를 먼저 살펴보았습니다.

이번주일에는 또 다른 측면을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를 받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돌아와서 생명나무의 과일을 먹고서 영생하는 존재가 되자면 실락원에서 아담부부의 후손들이 장차 어떠한 믿음생활을 영위하여야 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 점을 창세기 제4장 오늘의 본문에서는 의미상 5가지로 나누어 설명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구절풀이에 들어가기 전에 먼저 그 점을 다음과 같이 체계적으로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1)  첫째로, 비록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범죄자 아담부부이지만 그들의 여호와신앙이 남다르다는 사실이 득남과정에서 잘 드러나고 있습니다;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4:1);

이세상에서 자식을 낳고서 하와처럼 신앙고백을 하는 경우가 실로 흔하지 않습니다. 창세기의 기록을 참조하면 열국의 어미라는 이름(17:16)을 가진 사라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5. 아브라함이 그의 아들 이삭이 그에게 태어날 때에 백세라. 6. 사라가 이르되, 하나님이 나를 웃게 하시니(불임여성 그것도 90세의 할머니 사라가 여호와의 능력으로 회춘하고 치유함을 받아서 노년에 득남하게 되니), 듣는 자가 다 나와 함께 웃으리로다. 7. 또 이르되, 사라가 자식들을 젖먹이겠다고 누가 아브라함에게 말하였으리요마는 아브라함의 노경에 내가 아들을 낳았도다 하니라”(21:5-7). 요컨대, 여호와의 배려와 섭리로 말미암아 자신의 자손들이 이 세상에서 번성하게 된다고 믿는 믿음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믿음을 후손들에게 영적으로 상속하는 것이 훗날 대속의 그리스도를 만나 회개하고서 아버지 하나님께로 돌아가는 은혜를 맛보게 되는 관건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2)  둘째로, 아담부부의 차남 아벨처럼 어린양을 제물로 삼아 그 피를 흘리고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4:4). 어째서 그러한 것일까요? 그 이유가 출애굽기 제12장에서 유월절 양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태양력으로 주전 1,446414일이 시작되는 그 밤에 유월절양을 잡아 그 피를 문인방과 좌우 설주에 바른 집안은 장자의 죽임을 면하게 됩니다. 반면에 그러한 처방을 하지 아니한 애굽인들의 집안에서는 그 밤에 장자의 죽음과 가축의 초태생의 멸절이라는 초유의 참사가 발생하고 맙니다. 그것이 창조주 여호와의 명령이며 섭리이기에 죽임에서 구원을 얻자면 피조물인 인간들은 무조건 그 말씀에 따라야 합니다. 더구나 먼 훗날 주후 32년경이 되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스스로 골고다언덕에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마치 유월절 어린양처럼 희생제물이 되고 맙니다(1:29, 36, 19:28-30, 23:34, 2:21-36). 그러므로 예수님의 대속의 십자가 희생을 바라보고서 자신의 죄를 회개하는 자들이 아버지 하나님으로부터 죄의 용서와 칭의의 은혜를 얻게 되는 것입니다(2:1-4, 37-42, 8:1-4).

(3)  셋째로, 여호와께서는 가인의 마음속에 동생을 시기하여 죽이고자 하는 살의가 가득함을 이미 보고 계십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4:7);

그런데 인간에게는 자신의 죄의 소원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어떻게 하면 가인의 잘못에서 벗어날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이 훗날 사도 바울에 의하여 다음과 같이 기록되고 있습니다; “24. 오호라 나는 곤고한 사람이로다. 이 사망의 몸에서 누가 나를 건져내랴? 25.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께 감사하리로다. 그런즉 내 자신이 마음으로는 하나님의 법을, 육신으로는 죄의 법을 섬기노라. 1. 그러므로 이제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자에게는 결코 정죄함이 없나니, 2. 이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생명의 성령의 법이 죄와 사망의 법에서 너를 해방하였음이라. 3. 율법이 육신으로 말미암아 연약하여 할 수 없는 그것을 하나님은 하시나니, 곧 죄로 말미암아 자기 아들을 죄 있는 육신의 모양으로 보내어 육신에 죄를 정하사, 4. 육신을 따르지 않고 그 영을 따라 행하는 우리에게 율법의 요구가 이루어지게 하려 하심이니라”(7:24-8:4).

(4)  넷째로, 창조주 여호와의 눈을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속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런데 가인은 그러한 인식이 전혀 없습니다. 그는 사람들의 눈을 피할 수만 있다고 하면 창조주 하나님의 눈도 속일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인은 들판 중앙에 동생 아벨을 불러내어 주위에 다른 사람이 없는 것을 확인한 후에 동생을 죽여서 암매장하고 맙니다(4:8). 시공간에 구애를 받지 아니하고 계시는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모든 것을 보고 계십니다(4:10-11). 그 점을 모르고 가인은 여호와의 물음에 대하여 자신이 마치 완전범죄를 실행한 것처럼 오인하고 있습니다. 그가 버젓이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4:9). 그 결과 그는 죄인들이 살고 있는 놋 땅으로 유배를 가게 됩니다. 훗날 가인과 전혀 다른 믿음의 인물이 야곱의 11번째 아들 요셉입니다. 그는 애굽에서 권력자 보디발의 아름다운 아내가 빈방에서 은밀하게 유혹하지만 절대로 응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바로 여호와의 눈을 속일 수 있는 장소가 이 세상에 없다는 사실을 그가 정확하게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 “9. 이 집에는 나보다 큰 이가 없으며 주인이 아무 것도 내게 금하지 아니하였어도 금한 것은 당신 뿐이니 당신은 그의 아내임이라. 그런즉 어찌 내가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39:9);

(5)  다섯째로, 실락원에서 최초의 살인자가 가인입니다. 그는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능력을 마치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 정도로 치부하고 맙니다. 더구나 자신의 곡식 제사를 열납하지 아니한 여호와를 좋지 아니하게 생각하고 있습니다. 감히 자신이 정성껏 바친 곡식에 대하여 퇴짜를 놓고 있으니 그것이 분하다는 것입니다. 그 때문에 얼굴색이 달라지고 있는 가인은 창조주 여호와를 자신의 인생의 주인으로 그리고 생명의 주인으로 모시지 아니하고 있는 불신자입니다(4:5-6). 그렇지만 마지막 순간에 그는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악한 자들이 가득한 세상 놋 땅으로 자신이 유배를 가게 되면 죽은 목숨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그 험한 세상에서 목숨이라도 부지할 수 있도록 자신을 도와달라는 것입니다(4:14). 가인은 그때서야 창조주 하나님의 전능성을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것을 보고서 여호와께서는 살 방도를 다음과 같이 마련하여 주고 있습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4:15).

이상과 같은 사실을 염두에 두고서 이제부터 본문말씀에 대한 구절풀이에 들어가고자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묵상 가운데 얻은 귀중한 교훈을 다음과 같이 말씀드리고자 합니다;  

첫째로,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 2. (하와)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4:1-5); 다음과 같이 3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보고자 합니다;

(1)  1. 아담이 그의 아내 하와와 동침하매 하와가 임신하여 가인을 낳고 이르되, 내가 여호와로 말미암아 득남하였다 하니라”(4:1);

1)    에덴동산에서 창조주 여호와의 명령을 아담부부가 탐욕에 이끌려서 그만 어기고 맙니다.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을 받아 욕심이 충동질을 하자 선악과 열매를 따 먹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이 자기 분수를 지키지 아니하고 감히 창조주의 자리에 올라서고자 하는 범죄행위입니다.

2)    그 때문에 창조주의 생명의 기운을 더 이상 얻지 못하고 에덴동산 바깥으로 추방이 되고 맙니다. 그러나 실락원에서 타락한 존재로 살아가게 되는 아담부부에게서 엄청난 신앙고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아담부부가 득남을 하게 되자 아내 하와가 여호와의 은혜로 말미암아 아들을 얻게 되었으니 참으로 기뻐한다는 소중한 믿음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3)    그러한 믿음이 대물림이 된다고 하면 아담부부의 자손들은 훗날 여호와신앙을 회복하고 다시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서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 이미 모두(冒頭, 글의 앞부분)에서 말씀드린 바와 같이 그와 같은 귀한 신앙고백은 열국의 어미 사라가 득남하여 약속의 아들 이삭을 낳게 되었을 때에도 나타나고 있습니다(21:5-7).

(2)  2. (하와)가 또 가인의 아우 아벨을 낳았는데, 아벨은 양치는 자였고 가인은 농사하는 자였더라”(4:2);

1)    실락원에서 살아가고 있는 아담의 가정에서 자손의 번성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맏아들 가인을 얻은 다음에 차남 아벨을 또한 얻고 있는 것입니다. 그에 따라 이 세상에서는 직업의 분화가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 가장 먼저 나타난 직업이 농업인데 이제는 거기에 목축업이 더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장남인 가인이 부모님을 도와서 농사를 짓고 있는데 그의 동생은 분가를 하여 농사 대신에 가축을 모아서 기르고 있습니다.

2)    차남 아벨은 그 성격이 온순한 양을 많이 사육하고 있습니다. 양이 새끼를 낳고 번성하자 아벨이 목축업으로 생활이 가능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특히 양치기인 그는 양유와 양고기 그리고 양가죽을 얻고 있습니다. 그것으로 먹거리를 얻고 동시에 천막을 만들고 의복까지 짓고 있습니다. 그리고 물물교환을 통하여 필요한 생필품을 조달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이 세상은 점점 복잡해지고 직업의 분화와 더불어 이제는 살기다툼이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과정에서 여호와신앙은 어떻게 변모하게 되는 것일까요? 그 점이 다음 구절에서부터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

(3)  3. 세월이 지난 후에 가인은 땅의 소산으로 제물을 삼아 여호와께 드렸고, 4. 아벨은 자기도 양의 첫 새끼와 그 기름으로 드렸더니, 여호와께서 아벨과 그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5. 가인과 그의 제물은 받지 아니하신지라. 가인이 몹시 분하여 안색이 변하니”(4:3-5);

1)    모세가 여호와의 영의 감동으로 기록하고 있는 모세오경의 주제는 실락원에서 살고 있는 인간들의 여호와신앙이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실락원으로 쫓겨난 아담부부가 처음에는 여호와신앙을 믿음으로 고백하고 있지만 자식들의 대에 와서는 영적인 타락이 크게 발생하고 있습니다. 그 점을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는 방법의 차이에서부터 모세가 설명하고 있습니다.

2)    가장 간단한 하나의 모형을 가지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가인은 자신이 지은 농사의 소출을 가지고 여호와께 제사를 드리고 있지만 동생 아벨은 양을 잡아서 제사를 드리고 있습니다(2절과 3a). 두가지 제사 가운데 어느 것이 속죄의 제사일까요? 가인의 제사는 감사의 제사의 의미가 강하지만 아벨의 제사는 속죄의 제사의 의미가 더 강합니다. 그런데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피의 제사를 먼저 받고자 하십니다;

3)    그 이유는 창조주 여호와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자는 누구나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여호와 앞에 서기 위해서 속죄의 제사를 먼저 드려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은 출애굽기 제29장에서 상세하게 기록하고 있습니다. 제사장이라고 하더라도 자신의 속죄를 위한 위임제사를 먼저 드려야만 하는 것입니다(29:35-37). 그런데 장자인 가인이 그와 같은 여호와의 뜻을 모르고 자신이 여호와 앞에 서게 되면 죄인이라는 사실을 완전히 외면하고 있습니다.

4)    그는 동생 아벨과 물물교환하여 양을 사서 먼저 속죄의 제사를 드려야 하는데 그것을 생략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여호와께서는 아벨의 속죄의 제사를 흔쾌히 받으시고 절차상 하자가 있는 가인의 제사는 열납하지 아니하십니다(4b&5a). 그것을 보고서 가인이 여호와의 행위에 대하여 분노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창조주 여호와의 뜻보다 자신의 뜻을 더 우선시하고 있는 불신앙입니다(5b).  창조주 여호와에 대한 불만과 분노가 마침내 세상에 대한 원망과 살인사건으로 이어지고 만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4:6-11); 다음과 같이 2부분으로 나누어서 살펴봅니다;

(1)  6.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찌됨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찌됨이냐? 7.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 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 8.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4:6-8);

1)    사람을 지으신 창조주 여호와께서는 인간의 내심을 모조리 통찰하고 계십니다. 특히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따라 사람을 지으셨기에 더욱 인간의 속사람과 겉모습의 변화를 익숙하게 살필 수가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창조주 여호와에 대한 가인의 불만과 분노가 피조물에 불과한 인간의 엄청난 죄악임을 지적하십니다(6). 그리고 죄의 소원을 다스릴 수 있도록 여호와신앙을 회복하라고 말씀하십니다(7).

2)    그러나 가인은 여호와의 말씀을 완전히 무시하고 있습니다. 피조물인 그가 창조주인 여호와를 어찌할 수는 없지만 자신과 같은 창조물인 동생 아벨에 대해서는 분풀이를 쉽게 할 수가 있기 때문에 드디어 아우를 해치우고 마는 것입니다(8). 가인의 범죄는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이고 의도적입니다. 왜냐하면 가인이 동생 아벨을 아무도 보지 아니하고 있는 들판으로 불러내어 살해한 후에 시신을 암매장하고 말기 때문입니다(8);

3)    가인의 생각으로는 사람의 눈에 뜨이지 아니하면 창조주 여호와의 눈도 속일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시공간을 초월하여 천하만물을 전부 통찰하고 계시는 창조주의 능력을 피조물인 인간 정도의 것으로 치부하고 있는 크나큰 인본주의적 불신앙입니다. 그것이 얼마나 잘못된 사상인지를 창조주 여호와께서 신랄하게 지적하십니다(9-10). 그리고 그에 대한 심판이 이어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11-12).  

(2)  9.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10. 이르시되, 네가 무엇을 하였느냐? 네 아우의 핏소리가 땅에서부터 내게 호소하느니라. 11. 땅이 그 입을 벌려 네 손에서부터 네 아우의 피를 받았은즉, 네가 땅에서 저주를 받으리니, 12. 네가 밭을 갈아도 땅이 다시는 그 효력을 네게 주지 아니할 것이요, 너는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되리라”(4:9-12);

1)    여호와께서는 형인 가인에게서 동생인 아벨의 행방을 묻고 있습니다(9a). 그것은 가인의 범죄행위를 이미 알고 계시는 여호와 하나님의 당연한 질문의 수순입니다. 그렇지만 한가지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피조물인 인간은 형제사이에 서로 관심을 두고 돌보아주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창조주 하나님을 사랑하는 그 사랑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서 창조한 이웃을 내 몸과 같이 사랑하는 아가페 사랑이며 창조주의 공의의 정신을 실천하는 성도의 삶입니다(12:30-31). 일부 학자들은 그것을 integrity라고 표현하고 있는데 그것은 사도 바울의 유기체 이론을 알기 쉽게 말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4:1-16);

2)    그러나 가인은 동생 아벨의 생명을 돌보고 살펴야 하는 자신의 책무를 망각하고 있습니다. 도리어 동생을 시기하고 미워하여 완전범죄를 꿈꾸면서 그를 살해하고 만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가인이기에 그가 여호와의 질문에 대하여 두가지로 대답하고 있습니다; 하나는, 자신의 범죄를 숨기고 모른다고 말하면 여호와도 증거를 찾지 못하여 어찌할 수가 없을 것으로 믿고 있습니다(9b). 또 하나는, 동생 아벨을 지키고 돌보는 책임이 자신에게 없다고 답변하고 있습니다(9c).

3)    창조주 여호와의 전지전능하심이 가인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왜냐하면 창조주 하나님은 피조물인 아벨의 피소리가 호소하는 것과 그 무죄한 피를 받아 먹게 되는 땅의 고통의 소리를 모두 듣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0&11a). 그 점에 대하여 먼 훗날 익명의 히브리서의 저자가 다음과 같이 잘 설명하고 있습니다; “12.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 있고 활력이 있어 좌우에 날 선 어떤 검보다도 예리하여 혼과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하나니, 13. 지으신 것이 하나도 그 앞에 나타나지 않음이 없고 , 우리의 결산을 받으실 이의 눈 앞에 만물이 벌거벗은 것같이 드러나느니라”(4:12-13).  

4)    에덴동산에서 마귀의 화신인 뱀의 유혹과 스스로 탐심에 이끌리어 창조주 하나님께서 금지하신 선악과를 따먹은 아담부부의 잘못으로 인하여 그들은 동산 바깥으로 쫓겨나서 땅을 경작하게 됩니다. 하지만 그들의 범죄로 말미암아 모집단인 땅이 더 이상 우호적이지 않습니다. 가시덤불과 엉겅퀴가 땅에서 발생하여 먹거리를 재배하고 있는 아담부부에게 고된 노동을 강요하고 있는 것입니다(3:17-19). 이제 실락원에서 범죄한 가인에게 더 큰 땅의 저주가 임하고 있습니다. 아예 농사꾼인 그가 직업을 잃어버리고 땅에서 내쫓기는 방랑자의 신세가 되고 마는 것입니다(11-12).

셋째로, “13. 가인이 여호와께 아뢰되, 죄벌이 지기가 너무 무거우니이다. 14. 주께서 오늘 이 지면에서 나를 쫓아내시온즉, 내가 주의 낯을 뵈옵지 못하리니, 내가 땅에서 피하며 유리하는 자가 될지라. 무릇 나를 만나는 자마다 나를 죽이겠나이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4:13-15);

(1)  땅을 더 이상 경작하지 못하고 세상을 떠도는 유랑민들이 마지막으로 찾아가는 곳이 놋 땅입니다(16). 부랑자들의 적나라한 살기다툼의 현장인 그곳에서는 살기가 등등합니다. 그 사실을 알고 있는 가인이 마침내 창조주 하나님 앞에 부디 살려달라고 호소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의 잘못을 진심으로 회개하는 영적인 내용이 아니라 단지 유배지 그 무법자의 땅에서 목숨이라도 보전할 수 있도록 한번만 도와달라고 하는 현세적이고도 이기적인 간구입니다;

(2)  그렇지만 그와 같은 호소에도 여호와께서는 귀를 기울이고 계십니다. 따라서 다음과 같은 자비를 베풀어 주십니다; “15.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시되, 그렇지 아니하다. 가인을 죽이는 자는 벌을 7배나 받으리라 하시고, 가인에게 표를 주사 그를 만나는 모든 사람에게서 죽임을 면하게 하시니라”(4:15). 여기서 가인에게 준 여호와의 표시가 무엇인지 정확하게 알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그것으로 말미암아 가인이 무법자의 땅 놋에서도 생존을 유지할 수 있게 된 것으로 미루어 보아 그것은 가인의 목숨과 재산을 능히 지킬 수 있는 엄청난 수단이며 보복의 능력이라는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3)  훗날 비슷한 약육강식의 현장 바란 광야에서 강자로 군림하게 되는 이스마엘과 가나안 땅과 에돔의 땅에서 무위를 떨치게 되는 에서의 경우를 살펴보면 그 내용이 다음과 같습니다; “20. 하나님이 그 아이(이스마엘)와 함께 계시매 그가 장성하여 광야에서 거주하며 활 쏘는 자가 되었더니, 21. 그가 바란 광야에 거주할 때에 그의 어머니가 그를 위하여 애굽 땅에서 아내를 얻어 주었더라”(21:20-21), “27. 그 아이들이 장성하매 에서는 익숙한 사냥꾼이었으므로 들사람이 되고 야곱은 조용한 사람이었므로 장막에 거주하니, 28. 이삭은 에서가 사냥한 고기를 좋아하므로 그를 사랑하고 리브가는 야곱을 사랑하였더라”(25:27-28), “6. 사자들이 야곱에게 돌아와 이르되, 우리가 주인의 형 에서에게 이른즉 그가 400명을 거느리고 주인을 만나려고 오더이다. 7. 야곱이 심히 두렵고 답답하여 자기와 함께한 동행자와 양과 소와 낙타를 두 떼로 나누고, 8. 이르되, 에서가 와서 한 떼를 치면 남은 한 떼는 피하리라 하고”(32:6-8). 조금 풀이를 해보고자 합니다;

(4)  이스마엘의 경우에는 광야에서 명궁의 솜씨를 보이고 있습니다. 그의 활솜씨를 당해낼 사람이 없습니다. 따라서 그는 바란 광야를 호령하는 인물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이스마엘과 비슷하게 그의 조카인 에서가 또한 무예가 뛰어납니다. 그는 특히 400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땅과 에돔 땅에서 누구나 에서의 무력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참조하면 놋 땅에서 살아가게 되는 가인 역시 여호와의 배려로 엄청난 무인으로 살아가게 된 것으로 보입니다. 그 결과 그는 자신의 아성을 마련하여 아들 에녹에게 상속해주기도 하는 것입니다(4:16-17);

결론적으로, 에덴동산에서 쫓겨난 아담부부와 그의 자손들은 그곳 실락원에서 그리스도를 만나 자신의 죄를 회개하고 영생의 구원을 얻어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믿음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어떠한 여호와신앙이 필요한지를 본문에서 지적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실락원에서 보전해야만 하는 여호와신앙인의 5가지 믿음의 내용을 다음과 같이 간략하게 요약하는 것으로 결론을 대신하고자 합니다;

(1)  첫째, 여호와의 배려와 섭리로 말미암아 자신의 자손들이 이 세상에서 번성하게 된다고 믿는 믿음이 참으로 귀한 것입니다. 무엇보다 모든 산 자의 어머니 하와처럼 생명의 역사가 창조주 여호와의 손에 있음을 인정하여야 합니다.

(2)  둘째, 아담부부의 차남 아벨처럼 어린양을 제물로 삼아 그 피를 흘리고 여호와께 속죄의 제사를 드리는 것이 필요합니다. 무엇보다 자신이 죄인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정할 때에 창조주 하나님과의 올바른 관계에 들어갈 수가 있는 것입니다.

(3)  셋째, 인간에게는 자신의 죄의 소원을 다스릴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그러므로 창조주 여호와께 도움을 호소하여야 합니다. 그 능력이 그리스도안에서 성령님의 능력으로 성도들에게 나타나게 되는 것입니다.

(4)  넷째, 창조주 여호와의 눈을 피조물인 인간이 결코 속일 수가 없다는 사실을 깊이 인식하고 있어야 합니다. 요셉의 경우에서 볼 수 있듯이 그것이 형통함의 비결입니다.

(5)  다섯째, 가인은 창조주 하나님의 전지전능성을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능력을 마치 피조물인 인간의 능력 정도로 치부하고 맙니다. 창조주를 무시하고 인간이 만든 우상정도로 여기고 마는 것이 불신앙입니다. 그와 같은 우상문화인본주의 사고방식을 벗어날 때에 비로소 믿음의 길에 들어설 수가 있는 것입니다.   

  아무쪼록 이상과 같은 5가지 믿음을 항상 유지하시는 저와 여러분들의 알찬 믿음생활이 될 수 있기를 축원하는 바입니다. 살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