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79강(마13:10-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9. 03:07

마태복음 강해 제79(13:10-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25(주일)

 

예수님의 제자가 된다는 것, 그 희생적인 선택으로 말미암아 제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엄청난 은혜에 대하여(13:10-18)

 

예수님이 제자들과 일반백성들을 차별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천국의 복음을 일반백성들에게는 비유로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는 그 비유를 풀어서 자세하게 가르쳐주시고 있기 때문입니다(13:10-13, 16-17). 왜 그와 같은 차별을 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에 대하여 예수님은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시고 계십니다;

첫째로, 천국의 비밀을 아는 것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는 허락이 되어 있지만 일반백성들에게는 허락이 되어 있지 아니하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13:11). 그 허락은 물론 하나님 아버지께서 하시고 계십니다. 그 내용은 요한복음에서도 나타나고 있습니다; “나를 보내신 아버지께서 이끌지 아니하시면 아무도 내게 올 수 없으니 오는 그를 내가 마지막 날에 다시 살리리라”(6:44). 그렇다면, 예수님의 제자들이 어떠한 사람들이기에 그들에게는 천국의 비밀을 알게 하는 하나님의 허락이 특별히 주어지고 있는 것일까요? 말을 바꾸어보자면,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어떠한 사람을 예수님에게 제자로 끌어다 주시고 있는 것일까요?

그 실마리가 사도행전에 다음과 같이 기록되어 있습니다; “이러하므로 요한의 침례로부터 우리 가운데서 올려져 가신 날까지 주 예수께서 우리 가운데 출입하실 때에 항상 우리와 함께 다니던 사람 중에 하나를 세워 우리와 더불어 예수께서 부활하심을 증언할 사람이 되게 하여야 하리라 하거늘 그들이 두 사람을 내세우니 하나는 바사바라고도 하고 별명은 유스도라고 하는 요셉이요 하나는 맛디아라”(1:21-23).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할 수 있는 성품의 사람을 하나님께서 제자로 끌어다 주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공생애를 함께 할 수 있는 성품이란 어떤 것일까요? 항목을 달리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있는 사람은 기본적으로 자신의 희생을 감수하고 남을 살리기 위하여 십자가를 질 수 있는 성품의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누구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16:24)고 예수님이 말씀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희생적인 제자의 삶을 살아가는 자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주어지고 있습니다. 그 은혜에 대하여 예수님은 본문 가운데 다음과 같이 언급하시고 있습니다; “너희 눈은 봄으로, 너희 귀는 들음으로 복이 있도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많은 선지자와 의인이 너희가 보는 것들을 보고자 하여도 보지 못하였고 너희가 듣는 것을 듣고자 하여도 듣지 못하였느니라. 그런즉 씨 뿌리는 비유를 들으라”(13:16-18). ‘씨 뿌리는 비유가운데 예수님의 제자에게 주어지고 있는 특별한 하나님의 은혜가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렇다면, 일반백성들에게는 주어지지 아니하고 있는 그 은혜는 과연 무엇일까요? 역시 본문 가운데 그 설명이 들어 있습니다. 항목을 달리하여 살펴봅니다.

셋째로,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따르면 이 백성의 마음을 둔하게 하며 그들의 가 막히고 그들의 이 감기게 하라. 염려하건대 그들이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닫고 다시 돌아와 고침을 받을까 하노라 하시기로”(6:10)라고 되어 있습니다. 그 예언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그대로 인용을 하고 있습니다; “이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여져서 그 는 듣기에 둔하고 은 감았으니 이는 눈으로 보고 귀로 듣고 마음으로 깨달아 돌이켜 내게 고침을 받을까 두려워함이라 하였느니라”(13:15). 이 구절을 가지고 씨 뿌리는 비유를 다시 해석을 해보면 예수님의 제자들에게 주어지고 있는 특별한 은혜가 무엇인지 알 수 있을 것만 같습니다. 한번 시도를 해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거절하게 되는 이유는 백성들의 마음이 완악하기 때문입니다. 출애굽기를 참고하면 바로와 그의 신하들의 마음이 그러합니다; “바로의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그들의 말을 듣지 아니하였으니 여호와의 말씀과 같더라”(8:19), “바로가 비와 우박과 우렛소리가 그친 것을 보고 다시 범죄하여 마음을 완악하게 하니 그와 그의 신하가 꼭 같더라”(9:34). 사람이 자신의 이념이나 생각이 하나님의 말씀보다 더 옳다고 여기게 되면 그 마음이 완악하게 되어 결코 하나님의 말씀을 그 마음속에 받아들이지 아니하게 됩니다. 그것은 마치 딴딴한 길가에 복음의 씨를 잘못 뿌린 경우와 같습니다(13:4, 19).

(2)  하나님의 말씀이 귀로 들려옵니다. 그 말씀을 깨닫고 생활에 적용시켜보려고 합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박해와 탄압이 주어지게 되면 사람이 하나님의 말씀을 떠나게 됩니다(13:21). 아예 귀를 막아버리는 것입니다(13:15).

(3)  눈앞에서 하나님의 말씀이 능력으로 역사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말씀에 따라 귀신이 떠나가고 불치의 병이 나으며 장애자가 일어서고 있습니다(4:23-24). 눈으로 보게 되니 믿지 않을 도리가 없습니다. 하지만 말씀을 생활화하는 것은 별도의 문제입니다. 생활의 불편과 손해가 발생하게 됩니다(13:22). 예를 들면, 안식일을 지키고 주일성수(主日聖守, Keeping Sunday holy)를 하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십일조를 바친다고 하는 것도 대단한 결심이 아니면 안됩니다. 따라서 그만 하나님의 말씀보다는 세상적인 편의와 이익을 쫓아가게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역사를 바라보고 있던 눈을 돌려서 세상적인 것을 다시 바라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에, 예수님의 제자로 공생애를 주님과 함께 살아가게 되면 그 마음과 눈과 귀가 영적으로 열리게 되는 은혜가 임하게 됩니다(13:12, 16-17);

(1)  구체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예수님의 복음에 비추어서 마음속으로 깨닫고 이해하게 됩니다. 그 결과 제자의 마음이 스승이신 예수님의 마음을 닮아갑니다.

(2)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를 믿음의 눈으로 다시 보게 됩니다. 말씀이 살아 숨쉬는 현장을 예수님의 생애 가운데서 눈으로 보게 되니 믿음생활이 한결 쉬워집니다(11:27-30).

(3)  귀로 하나님의 말씀이 복음으로 들려옵니다. 그 말씀이 자신의 생각과 행동을 변화시키는 능력으로 역사하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4)  그 모든 일들이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고자 애를 쓰고 있는 제자들에게 이루어지고 있는 구체적인 성령님의 역사하심입니다(14:16, 26, 16:13-15). 결론적으로, 옛날 선지자들이 그토록 얻고 싶어하던(11:13-16) 그 은사를 얻고 있는 자들이 바로 예수님의 제자라고 하겠습니다(11:11-15, 13: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