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72강(마12:22-2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5. 16:14

마태복음 강해 제72(12:22-2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18(주일)

 

예수님이 귀신 들려 눈 멀고 말 못하는 사람을 고쳐준 사건과 바리새인들의 예수님 모함사건을 함께 기술하고 있는 이유(12:22-24)

 

귀신이 들려 있으며 눈이 멀어 있고 말을 할 수가 없는 사람이 예수님 앞에 나타나고 있습니다(12:22a). 그는 귀신이 들려 있기 때문에 제 정신이 아닙니다. 눈이 멀어 있기 때문에 혼자서 길을 찾아서 갈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말을 할 수가 없기 때문에 쉽게 남의 도움을 청할 수가 없습니다. 그래서 가족이 그를 전적으로 돌보고 있습니다.  가족이라도 하더라도 그를 돌보기가 쉽지가 않습니다. 그렇게 지쳐가고 있는 가족에게 좋은 소식이 하나 전해져 오고 있습니다. 메시아 예수에게 데려가게 되면 고침을 받을 수 있다는 것입니다.

세상에 그 소식보다 더 좋은 소식은 없을 것입니다. 그 귀신들린 자만이 나음을 입게 되는 것이 아닙니다. 그를 돌보느라고 삶의 기쁨과 여유가 사라져버린 가족들에게도 좋은 치유의 기회가 될 것입니다. 그래서 얼른 그를 가족들이 예수님 앞으로 데려온 것입니다(12:22b). 그 뜻은 한 마디로 부디 사람구실을 할 수가 있도록 고쳐달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마다하지 아니하시고 즉시 고쳐주고 있습니다(12:22c). 그 이유는 그리스도의 사역의 본질이 바로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맹인이 보며 못 걷는 사람이 걸으며 나병환자가 깨끗함을 받으며 못 듣는 자가 들으며 죽은 자가 살아나며 가난한 자에게 복음이 전파된다 하라.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실족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시니라”(11:5-6).

그 말 못하는 사람이 말하며 보게 된 것을 보고서 백성들이 놀라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능력이 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3:2). 하나님의 능력을 이 땅에 베푸는 자는 선지자이거나 메시아입니다. 그 가운데 예수님은 다윗의 자손인 메시아임에 틀림이 없다고 수군거리고 있습니다(12:23, 7:31). 그 이유는 귀신을 쫓아내고 동시에 소경과 벙어리를 고쳐줄 수 있는 하나님의 능력은 선지자의 수준을 넘어서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백성들 가운데에는 예수님을 메시아로 전혀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그들이 바리새인들이며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실족하고 있는 자들입니다(11:6). 그들은 자신들의 생각을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나사렛 예수)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고서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12:24). 그 말의 뜻은 예수가 하나님으로부터 온 메시아가 아니고 귀신의 왕인 바알세불이 보낸 거짓 메시아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의 왕의 힘을 빌려서 그 부하인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는 것입니다. 바리새인들이 왜 그와 같은 진단을 행하고 있는 것일까요?

첫째로, 그들은 복음의 말씀을 들어도 그것을 깨닫지를 못하는 귀를 가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귀라고 하여 다 같은 귀가 아닙니다. 열려있는 귀가 있으며 반대로 닫혀있는 귀가 있습니다. 복음의 말씀이 들려올 때에 열려있는 귀와 닫혀있는 귀는 서로 반대로 작용을 합니다. 열려있는 귀는 그 복음의 말씀이 왜 기존 유대교리와 다른가를 생각하면서 깊이 묵상을 하도록 종용을 하고 있는 사람의 귀입니다. 반면에 닫혀있는 귀는 기존 유대교리와 다르다고 생각이 되면 곧 듣지 않도록 조치를 하고 있는 막힌 귀입니다. 바리새인들이 후자와 같은 귀를 가지고 있습니다(12:24). 그 반대로 귀신이 들려서 보지도 말하지도 못하고 있는 환자는 오히려 복음을 듣는 귀를 가지고 있으며 그 때문에 귀신이 떠나가고 소경과 벙어리 신세를 면하는 엄청난 은혜를 만끽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2:22).

둘째로,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 대하여 관심을 기울이고 있습니다. 만약 그들의 물리적이고 산술적인 유일신론(唯一神論)이 삼위일체(三位一體, three in one) 하나님의 신비를(4:5-6) 인정할 수 있는 영적인 유일신론으로 바뀌어지기만 한다면 바리새인들은 크게 하나님의 일을 할 수가 있는 자 소위 종교적인 열심이 대단한 자’(10:2)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런지 예수님이 바리새인들에게 관심이 많으며 그러한 바램을 가지고 그들에게 꾸중과 질책을 심하게 하고 있습니다(23). 만약 관심과 기대가 없었다고 한다면 아예 무관심했을 것입니다.

참고로 하나님은 영이시기 때문에(4:24) 인간의 두뇌로 그 존재의 양식이나 역사의 섭리를 모두 파악할 수가 없습니다. 만약 바리새인들의 주장과 같이 그들 선민들의 머리로 하나님의 정체가 모두 해석이 되고 하나님 말씀이 모두 설명이 되고 체계화가 될 수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사람이 만든 우상으로 전락하고 말 것입니다. 더 이상 초월적인 존재인 창조주로 섬길 필요가 없는 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만약 하나님의 존재와 작용의 원리를 바리새인들이 다 파악했다고 한다면 유대교야말로 하나님을 아는 유일한 종교이며 유일한 구원의 방책이 될 것입니다. 그러나 그들의 믿음과 자부심은 한 마디로, 우물 안 개구리와 같습니다. 감히 영적인 신비의 세계를 사람의 이성과 학습만으로 모두 이해할 수가 있다고 자신하고 있는 자력구원의 신앙과 동일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랍비 사울이 그렇게 사고(思考, thinking)를 하고서 예수님과 복음을 배척하였다가 훗날 다메섹에서 예수님의 모습으로 나타나신 하나님을 만나고서 완전히 생각이 바뀌게 되는 큰 사건이 발생하기도 합니다(9:3-22).

셋째로, 바리새인들이 자신들의 유대교리를 수호하기 위하여 예수님을 이단으로 몰아가고 있습니다. 그것도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숭상하고 있는 거짓 선지자로 만들고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은 듣고 이르되, 이가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지 않고는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느니라 하거늘”(12:24).

참고로, 바리새인들의 유일신론에 따르게 되면 여호와 하나님은 한 분이십니다(6:4-9). 그 분에게는 아들이 없습니다. 그리고 그 분의 영이 따로 인격을 가지고 역사를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주장은 유대교리와 전혀 다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믿고 있으며(5:19-29) 스스로 자신이 하나님 아버지와 하나라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10:30).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께 부탁을 하여 제자들에게 성령님을 보내어 줄 것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4:16)”.

그러한 이단사상을 설파하고 있는 예수님이 백성들이 보고 있는 자리에서 백주(白晝, 벌건 대낮)에 하나님의 능력을 버젓이 행하고 있으니 바리새인들은 미칠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들은 하나의 결론을 내리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의 힘을 빌려서 귀신을 쫓아내고 있다”(12:24). 한 마디로, 그렇게 스스로를 납득시킬 수 밖에 없는 딱한 형편에 처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유대교의 선생인 바리새인들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