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69강(마12:9-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4. 09:38

마태복음 강해 제69(12:9-1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15()

 

안식의 개념과(2:1-3) 안식일의 제정에 관하여(16:5, 23, 12:12)

 

안식일의 개념은 창세기 제2장에 수록이 되어 있습니다; “천지와 만물이 다 이루어지니라.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그치고 일곱째 날에 안식하시니라. 하나님이 그 일곱째 날을 복되게 하사 거룩하게 하셨으니 이는 하나님이 그 창조하시며 만드시던 모든 일을 마치시고 그 날에 안식하셨음이니라”(2:1-3). 창세기 제1장에서는 하나님이 천지만물을 6일 동안에 모두 지으신 내용을 설명하고 있습니다. 특히 여섯째 날 마지막으로 자신의 형상과 모양대로 사람을 창조하시고 있습니다(1:26-27). 그리고 나서 사람이 자리를 함께 하고 있는 천지만물을 감상하시면서 얼마나 기뻐하고 있는지 모릅니다. 그 결과 평소 그냥 좋았더라”(1:4, 10, 12, 18, 21, 25)고 평가하시던 감탄사가 엄청나게 격상이 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지으신 그 모든 것을 보시니 보시기에 심히 좋았더라. 저녁이 되고 아침이 되니 이는 여섯째 날이니라”(1:31).

그런데 제2장과 제1장을 비교해보면 의문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1장에서는 천지창조가 6일 동안에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제2장 제2절에서는 제7일에 창조를 마치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모순처럼 보이는 그 표현 가운데 무슨 의미를 숨겨두고 있는 것일까요?그 해답의 실마리를 얻기 위해서는 안식의 개념이 무엇인지부터 따져 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첫째로, 그냥 일을 마치고 편안하게 쉬는 것을 안식이라고 흔히 부르고 있지만 그것은 6일 동안에 모든 창조가 이루어졌다는 사실을 전제로 하여 말하고 있는 개념에 불과합니다. 그런데 창세기 제2장 제2절에서 하나님이 그가 하시던 모든 일을 일곱째 날에 마치시니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에 그 개념은 수정을 요하고 있습니다. 어떻게 수정하면 될까요? 6일까지 마친 일과 제7일에 마친 일에 차이가 있음을 먼저 생각해야 합니다.

창세기 제1장에 따르면, 하나님께서 제6일까지 천지만물을 만드시고 사람까지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닮도록 창조하신 것이 맞습니다. 하지만 사람이 있는 풍경이 어떻게 하나님의 의도대로 움직여져 나가는지를 점검하고 확인을 할 수가 있어야 비로서 창조가 마감이 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제7일에 반드시 해야만 하는 일이 하나 분명히 남아 있습니다. 그것은 일종의 소프트웨어’(software)를 작동시켜서 하드웨어’(hardware)가 어떻게 제대로 움직이고 있는지를 점검하는 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7일에 하는 일이 점검만으로 끝나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이 치밀하게 계산을 하여 권능의 말씀으로 천지만물과 인간을 창조했다고는 하지마는 하나님의 의도와 달리 움직이고 있는 것들이 반드시 나타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 특히 그 자유의지까지 닮도록 창조가 되어 있는 사람의 경우가 대표적입니다. 사람의 잘못은 인간사회에만 머무르지를 않습니다. 하나님의 창조의 의도와 뜻을 무시하고 제멋대로 하고자 하는 인간의 본성 때문에 주위의 생물들이 영향을 받고 있습니다. 다 함께 포악해짐으로 말미암아(6:11-13) 훗날 노아의 시대에 사람은 물론이고 모든 자연과 환경이 함께 멸망을 하게 되는 전면적인 홍수심판이 발생할 정도입니다(7:21-23). 따라서 제7일에 작동점검과 더불어 안전점검과 잘못된 것을 바로 잡는 작업이 함께 진행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은 제7일에 혼자서만 그 일을 감당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반드시 하나님의 종으로서 세상을 위임 받아 경영하고 있는 사람을 불러서 함께 점검을 하십니다. 만약 청지기의 업무수행에 있어서 문제점이 발견이 되면 차제에 고쳐주십니다. 고쳐서 다시 업무를 수행하도록 하고 지켜보십니다. 그 결과 완전히 하나님의 뜻대로 경영이 되고 있으면 만족을 하십니다. 마침내 모든 일을 마치시고 사람과 함께 안식의 복을 누리고자 하십니다(2:3).

넷째로, 하나님께서 사람의 잘못을 고쳐서 다시 청지기로 소중하게 사용하고자 하실 때에 사람이 먼저 취해야만 하는 조치가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자신을 고쳐서 사용해달라고 온전히 하나님께 맡기는 것입니다. 그것이 안식의 개념에 포함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마치 환부를 수술하기 위하여 사람이 수술대에 자신을 눕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마취와 더불어 깊은 잠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그때 수술과 치료가 한꺼번에 이루어집니다. 그러한 맡김과 치유가 제7일에 이루어지는 안식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2:2). 그것을 본문에서 예수님은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12:12)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참고로, 출애굽기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일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 그러므로 백성이 일곱째 날에 안식하니라”(16:28-29).

요약을 해보자면, 성도가 하나님께 자신의 사정을 아뢰고 온전히 맡겨드리게 될 때에 치유가 이루어집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선한 일 곧 생명을 살리는 일입니다. 그 의미를 알고 있는 성도는 평안 속에서 안식을 취하게 됩니다. 그 결과 다음날 눈을 뜨게 되면 새로운 창조의 날을 맞이하게 됩니다.  

결론적으로 하나님과 함께 누릴 수 있는 안식일은 거룩한 날입니다(2:7b). 그리고 그 날에 치유와 회복의 역사가 이루어지므로 심히 복된 날이라고 하겠습니다(2:3a). 그렇게 거룩하고 복된 날을 매주 내려주시는(16:5, 23-30) 좋으신 아버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할렐루야!

 

안식일에 행하는 선한 일(12:9-13)

 

  안식일은 성전, 회당, 나아가서 하나님의 전에서 지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이 안식일에 회당에 들어가시고 있습니다(12:9). 예수님을 감시하기 위하여 따라 다니고 있던 바리새인들도 역시 회당에 들어옵니다. 그들은 예수님에게 다시 시비를 걸려고 합니다(12:10b). 좋은 소재가 마침 회당 안에 있습니다. 바리새인들이 한쪽 손이 마른 환자를 발견한 것입니다(12:10a). 그들이 드디어 예수님이 빠져나갈 수 없는 올무를 던지고 있습니다; “안식일에 병 고치는 것이 옳으니이까?”(12:10c).

만약 예수님이 손이 마른 환자의 병을 고쳐주게 되면 그것은 안식일에 일을 한 것으로 산헤드린 공회에 고발을 하면 됩니다. 반대로 병을 고쳐주지 아니하게 되면, 안식일에 성전 안에서 제사장이 하나님의 일을 하는 것이 정당하다고(12:5) 주장한 바 있는 예수님의 논리가 거짓이라고 정죄가 될 것입니다. 그와 같은 양면의 칼날을 예수님이 맞이하고 있습니다.

그 도전을 극복할 수 있는 방법은 하나입니다. 지금 본문에서 예수님이 보여주고 있는 그 방법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입에서 나오는 말씀으로(4:4) 악한 세력의 도전을 물리치고 올무를 벗어나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친절하게도 안식의 개념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미 창조한 세상과 인간을 고쳐서 온전하게 하나님 안에서 평안을 누리게 하는 선한 것이라고 하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예를 들어가면서 바리새인들에게 가르쳐주고 계십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너희 중에 어떤 사람이 양 한 마리가 있어 안식일에 구덩이에 빠졌으면 끌어내지 않겠느냐? 사람이 양보다 얼마나 더 귀하냐? 그러므로 안식일에 선을 행하는 것이 옳으니라 하시고 이에 그 사람에게 이르시되, 손을 내밀라 하시니 그가 내밀매 다른 손과 같이 회복되어 성하더라”(12:11-1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