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71강(마12:16-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5. 16:12

마태복음 강해 제71(12:16-2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17()

 

여호와의 종이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주인의 일을 행할 때에 주인에게 어떠한 영광이 돌아가며 이 세상에는 어떠한 역사가 나타나는가?(12:16-21)

 

예수님은 바리새인들이 자기를 죽이고자 모의하고 있는 것을 눈치를 채고 있습니다(12:14-15a). 그래서 피신을 하고는 있지만 여전히 목숨이 위험하다는 사실을 인지하고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복음사역의 끈을 조금도 놓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죽음의 위협을 감지하면서도 왜 끝까지 복음사역에 매어 달리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하여 예수님이 이 세상에 보내어졌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을 이 세상에 파송하신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한시도 잊어버리지 아니하고 있습니다(5:30, 6:38-39, 8:16). 오히려 더욱 그 뜻을 실현하고자 힘쓰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죽음의 위협이 가까이 올수록 예수님은 복음사역을 더욱 활발히 전개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여호와의 종인 예수 그리스도의 이 땅에서의 사역의 모습입니다(12:18).

한편 바리새인들과 유대교지도자들은 백성들에게도 예수님 일행에게 가까이하지 말도록 주의를 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경고의 메시지를 유대교 관리들이 먼저 알고 있습니다; “관리 중에도 그(예수님)를 믿는 자가 많되, 바리새인들 때문에 드러나게 말하지 못하니 이는 출교를 당할까 두려워함이라”(12:42). 만약 나사렛 예수의 일행을 따라다니게 되면 이단인 나사렛 파에 가담한 것으로 간주하여 유대교에서 출교의 조치를 취하고 있다는 당시의 상황을 말해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도 함부로 예수님에게 다가갈 수가 없게 되고 맙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많은 백성들이 예수님에게 나아왔으며 예수님 일행을 따라오고 있습니다(12:15b). 왜냐하면, 그들은 간절한 소원이 있기 때문입니다. 그 소원은 천국의 복음을 듣고 회개하여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거듭난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하는 것이라기보다는 다른 것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각종 질병과 장애로부터 당장 고침을 받고 싶어서 예수님을 따라오고 있는 것입니다. 그 모습을 보시고서 예수님이 그들의 병과 장애를 모두 고쳐주시고 계십니다(12:15c).

지금까지의 내용을 한 마디로 정리를 해보자면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유대교지도자들의 위협을 받으며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조금도 위축이 되거나 중지가 되고 있지 않습니다. 복음의 전파는 오히려 탄압과 박해를 받고 있는 동안에 더욱 은밀하게 더 넓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도대체 무엇일까요? 사도 마태가 이제부터 그 이유를 나름대로 설명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예수님이 자신의 영광을 조금도 추구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출교의 위협을 무릅쓰고 자신을 따라오고 있습니다. 그들을 불쌍하게 여기시고 그들의 병을 모두 고쳐주고 계십니다(12:15). 그러면서 한 마디를 당부하고 있습니다; “자기를 나타내지 말라!”(12:16). 언뜻 보면, 예수님이 자신의 병을 고쳐주었다고 선전하지 말라고 경고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게 떠들게 되면 유대교지도자들로부터 불이익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사전에 예수님이 그들을 보호하고자 주의를 준 것으로 해석이 됩니다. 하지만 더 속이 깊은 의미가 두 가지 담겨있다고 하겠습니다. 항목을 달리하여 자세히 알아보겠습니다.

둘째로, 예수님은 자기를 나타내지 아니하고 아버지 하나님의 능력임을 나타내고자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백성들에게 불치의 병을 고쳐주신 고마우신 창조주 하나님의 영광을 찬양하라는 요청입니다. 자신은 종이므로 주인의 영광을 가로채지 아니하겠다는 각오를 새삼 밝히고 있는 대목입니다(12:16). 따라서 아버지 하나님의 신임이 더욱 두텁게 되며 더 많은 능력을 주고 더 많은 사역을 맡기고 있습니다; “보라 내가 택한 종 곧 내 마음에 기뻐하는 바 내가 사랑하는 자로다. 내가 내 영을 그에게 줄 터이니 그가 심판을 이방에 알게 하리라”(12:18). 사도 마태가 인용하고 있는 그 대목은 사실 이사야 선지자의 글 42:1’절의 내용입니다(12:17).

셋째로, 동시에 병이 낫게 된 백성들에게 또 다른 의미의 경고를 보내고 있는 말씀입니다. 백성들이 스스로 출교의 위험을 감수하면서 예수님을 따라 나섰기에 당당하게 얻게 된 전리품으로 병 나음을 생각하지 말라는 뜻입니다. 백성들에게 자신들의 결단과 충성으로 그와 같은 놀라운 치유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었다고 생각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만약 그와 같이 자신들의 능력과 힘으로 운명이 바뀌었다고 생각하게 되면 그때부터 영적인 타락이 찾아올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이스라엘 자손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가기 전에 모세가 엄중하게 경고를 하고 있는 내용과 동일합니다; “네가 가서 그 땅을 차지함은 네 공의로 말미암음도 아니며 네 마음이 정직함으로 말미암음도 아니요 이 민족들이 악함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앞에서 쫓아내심이라. 여호와께서 이같이 하심은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하신 맹세를 이루려 하심이니라. 그러므로 네가 알 것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이 아름다운 땅을 기업으로 주신 것이 네 공의로 말미암음이 아니니라. 너는 목이 곧은 백성이니라”(9:5-6).

넷째로,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게 되어도 여전히 심령 속에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있는 죄성이 숨어 있습니다(9:6, 7:21). 그렇게 목이 곧은 백성들을 거듭나게 하기 위하여 특단의 조치가 필요합니다. 진실한 여호와의 종 그리스도 예수가 그 길을 마련하기 위하여 스스로 완전한 대속의 제물이 되는 길을 선택하게 될 것입니다(6:4, 8:1-4). 그러한 의미를 전달하고 있는 이사야의 예언을(42:2-4) 신기하게도 사도 마태가 다음과 같이 그의 복음서에 수록을 하고 있습니다; “그는 다투지도 아니하며 들레지(cry out)도 아니하리니 아무도 길에서 그 소리를 듣지 못하리라. 상한 갈대를 꺾지 아니하며 꺼져가는 심지를 끄지 아니하기를 심판하여 이길 때까지 하리니 또한 이방들이 그의 이름을 바라리라 함을 이루려 하심이니라”(12:19-21).

풀이를 해보자면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특징은 공의로 사람들을 심판하자고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오히려 불쌍히 여기고 긍휼을 베풀어서 살 길을 마련해주는 것입니다. 큰 소리로 떠드는 것이 아니라 천국의 말씀과 하나님 아버지의 구원의 뜻이 사람들의 심령 속에 스며들게 만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을 이 세상에 보내셔서 대속의 제물로 삼으시고 그 사실을 믿고 회개하는 자들에게는 구원과 영생의 기회를 주겠다고 하는 것이 복음의 핵심입니다.

결론적으로, 본문에서 사도 마태는 이사야의 예언을 인용함으로써 구원주 메시아로 이 세상에 오신 예수님의 그리스도로서의 복음사역이 장차 어떻게 전개될지를 미리 설명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예수님은 유대교의 지도자들이나 바리새인들과 끝까지 다투지 아니하고 그들과 대항하여 심판을 행하지도 아니하실 것이라는 내용입니다(12:32). 오히려 그들까지 불쌍히 여기시고 그들의 잘못을 일깨워주며 그 잘못을 대신 하나님께 속죄하고자 십자가의 길을 선택하신다는 여운을 촉촉히 남기고 있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