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60강(마10:24-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9. 22:02

마태복음 강해 제60(10:24-3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6()

 

복음사역에 제자를 파송하면서(10:1) 주시는 예수님의 추가적인 권면 세 가지;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라(10:24-26), 창조주를 믿고 담대하라(10:27-31), 그리고 심판대를 ‘free pass’할 수 있는 방법(10:32-33).

 

첫째로, 예수님은 열두 사도들을 갈릴리 여러 고을로 파송하시면서 무엇보다도 원수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격려하십니다. 그 이유에 대해서는 이미 말씀을 하신 바가 있으며 그 근거에 대해서는 본문에서 제시하시고 있습니다;

(1) 그 이유는 나라와 권세와 영광이 모두 창조주이신 아버지 하나님께 영원히 있기 때문입니다(6:13). 따라서 원수 마귀가 마치 천하만국의 주인이며 세상영광이 모두 자신에게 속하고 있는 것처럼 과시를 하고 있는 것은 전부 거짓말입니다(4:8-9). 그 실상은 하나님의 천사장이었다가 죄를 범하여 이 세상으로 쫓겨나 있는 사탄이 천하만민을 꾀기 위하여 스스로 마귀가 되어서 거짓말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12:9); “너희는 너희 아비 마귀에게서 났으니 너희 아비의 욕심대로 너희도 행하고자 하느니라. 그는 처음부터 살인한 자요, 진리가 그 속에 없으므로 진리에 서지 못하고 거짓을 말할 때마다 제 것으로 말하나니 이는 그가 거짓말쟁이요, 거짓의 아비가 되었음이라”(8:44).

(2) 그 근거는 본문에서 다음과 같이 제시가 되고 있습니다; “제자가 그 선생보다, 또는 종이 그 상전보다 높지 못하나니 제자가 그 선생 같고 종이 그 상전 같으면 족하도다. 집 주인을 바알세불이라 하였거든 하물며 그 집 사람들이랴? 그런즉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감추인 것이 드러나지 않을 것이 없고 숨은 것이 알려지지 않을 것이 없느니라”(10:24-26). 귀신의 왕이라고 할 수 있는 바알세불도 그리스도 예수 앞에서는 힘을 쓰지를 못합니다(11:14-20). 예수님이 가시는 곳마다 귀신들이 쫓겨나고 있습니다(4:24, 8:16). 군대귀신들도 돼지 떼에게로 쫓겨서 들어갔다가 몰살을 당하고 있습니다(8:28-33, 8:30). 그러므로 바알세불의 부하들인 귀신들을 사도들이 두려워할 필요가 없습니다. 이미 예수님께서 사도들에게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셨기 때문입니다(10:1).

둘째로, 사도들이 담대하게 복음을 전파할 수 있는 이유는 창조주 하나님께서 그들을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강력하게 보호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세상의 악한 영들이 권력자들을 동원하여 사도들의 복음사역을 방해하고 신변에 위협을 가한다고 하더라도 한 가지 어찌할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사도들이 누리고 있는 구원과 영생의 은혜를 어찌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비록 물리적인 세상의 힘을 동원하여 성도들의 목숨을 일시적으로 빼앗을 수 있을지 몰라도 그 영혼이 부활의 몸을 입으며 승천하여 영생을 누리는 것을 방해할 수가 없습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예수님이 사도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에게 어두운 데서 이르는 것을 광명한 데서 말하며 너희가 귓속말로 듣는 것을 집 위에서 전파하라.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벌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10:27-28).

그렇다면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영혼구원이 중요하기 때문에 악한 영들의 세력에 의하여 성도가 육체의 죽음을 맞이하고 있는 것을 좌시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성도가 육체를 입고 있는 동안에 복음의 사역에 임할 수가 있다는 사실을 너무나 잘 알고 계십니다. 따라서 사도와 제자들이 주님을 대신하여 그리고 주님의 뒤를 이어서 복음을 전파하고 믿는 자를 많게 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확장해나갈 수 있도록 신변의 안전에 대하여 강력하게 보호조치를 하시고 계십니다. 얼마나 치밀하게 보호해주실 것인가에 대하여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비유로써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참새 두 마리가 한 앗사리온에 팔리지 않느냐? 그러나 너희 아버지께서 허락하지 아니하시면 그 하나도 땅에 떨어지지 아니하리라. 너희에게는 머리털까지 다 세신 바 되었나니 두려워하지 말라. 너희는 많은 참새보다 귀하니라”(10:29-31).

셋째로,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에서 종말로 모든 사람의 부활을 말하고 있습니다(5:25-29). 죽은 자들이 하나님의 아들의 음성을 듣고서 일단 부활을 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심판대가 그 앞에 놓여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어떤 나라에 입국하기 위하여 절차상 입국심사창구와 세관검사대를 통과해야만 하는 것과 같습니다. 그런데 주님에 의하여 신원보증이 되고 세관에 걸리는 물품이 없다고 증명이 된 자에 한해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계시는 보좌 앞으로 바로 인도가 되어 영생에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5:24). 만약 그 심판대 앞에서 주님께서 나를 모른다고 부인하시게 되면 그때에는 꼼짝없이 영원한 형벌의 길로 들어서게 될 것입니다.  

동일한 의미를 전달해주고 있는 사도 마태의 글이 다음과 같습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시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시인할 것이요,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10:32-33). 여기서 마태의 글을 요한의 글과 비교를 해보면 다음 사실을 알 수가 있습니다;

(1)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자신의 주인이신 주님으로 시인을 한다는 것은 배교(背敎)를 하지 아니한다는 뜻으로 일단 볼 수가 있습니다. 역사적으로 유대교지도자들이 그리고 로마의 정치권력이 기독교인들에게 배교를 강요했습니다. 성도가 주님의 구원주되심을 부인하기만 하면 핍박과 박해를 멈추겠다고 회유한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은 그와 같은 장래 일을 염두에 두시고서 미리 언급을 하시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사람 앞에서 나를 부인하면 나도 하늘에 계신 내 아버지 앞에서 그를 부인하리라”(10:33). 반면에 신앙을 지킨 성도에게는 심판대를 프리 패스하여 천국으로 직행을 하게 되는 특권이 주어지고 있습니다.

(2) 단순히 사람들 앞에서 주님을 나의 구원주라고 말로 시인하는데 그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의 복음의 말씀을 듣고서 하나님 아버지가 어떤 분이신가를 정확하게 믿는 자에게 영생의 은혜가 주어진다는 뜻이 그 속에 들어 있습니다. 따지고 보면 유대교인들은 모세의 율법을 공부하면서 하나님이 어떤 분이신가를 배우고 있습니다. 율법이란 신정국가인 이스라엘의 행위규범입니다. 종교적인 법의 성격이므로 자율규제가 원칙입니다. 그렇지만 역시 국가의 법률의 성격을 지니고 있으므로 강제규범적인 성격을 동시에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웃의 눈치를 보면서 신앙생활을 하도록 만들고 있는 것이 율법입니다. 그러한 율법 위에 건축이 되고 있는 하나님의 상은 무엇일까요? 한 마디로, 두려우신 처벌을 행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반면에 예수님은 다른 측면을 더 강조하고 있습니다.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본뜻을 복음으로 드러내시고 있습니다. 처벌과 징계 이전에 회개와 용서를 강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 십자가 대속의 제물이 됨으로써 하나님과 사람들 사이에 화해의 길을 모색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예수님을 부활시킴으로써 복음이 옳다는 것을 증명하게 됩니다(1:17). 따라서 하나님의 증거를 얻고 있는 복음을 생활화하는 자가 천국에 들어가며 영생을 얻게 될 것입니다. 그것이 10:32’ 절과 5:24’ 절을 비교함으로써 얻을 수 있는 하나의 소중한 결론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