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57강(마10:6-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9. 00:23

마태복음 강해 제57(10:6-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3()

 

열두 사도를 파송하면서 예수님이 당부하시는 5가지 명심사항은 무엇인가(10:6-11)

 

첫째로, 열두 사도의 갈릴리 지방 전도 파송은 예수님의 전도 및 선교전략을 일부 보여주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은 자꾸만 그 지경을 넓혀가고 있는 것입니다. 결코 움추려들거나 침체되는 경우가 없습니다. 우후죽순처럼 비가 오면 싹이 자라나듯이 그렇게 성령님이 역사하시면 자꾸만 새 싹이 돋아나고 그 지경을 넓히고 있습니다. 당장은 예수님의 고향이 있으며 열두 사도 가운데 여덟 사도의 고향이 있는 갈릴리 지방이 전략적인 전도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10:5-6). 그러나 그 다음에는 사마리아의 여러 동네가 전도의 대상이 됩니다. 열두 사도가 아니라 그때에는 70명의 제자를 양성하여 두 명씩 팀을 만들어 35개 팀을 전도 파송합니다(10:1). 그 다음에는 예수님이 제자들을 이끌고 직접 남행을 하여 예루살렘과 그 주변을 전도하고 마지막으로 요단강 동편의 오아시스 마을 일명 또 다른 베다니지역까지 선교를 합니다(7:1-14, 8:1, 10:39-42).

갈릴리 지방, 사마리아 지방, 예루살렘 지방, 그리고 이방인의 땅으로 복음의 빛이 퍼져나간다는 사실을 이사야 선지자와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예언해주고 있습니다;

(1)  먼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이 다음과 같습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1-2). 복음의 빛이 비추게 되는 순서가 첫째, 전에 고통 받던 자들이고 둘째, 흑암에 행하던 백성입니다. 그 의미를 교묘하게 풀이하면서 이사야가 다시 한번 그 순서를 강조해주고 있습니다. 전에 고통을 받던 자들이란 이스라엘 열두 지파 가운데 동족들로부터 멸시를 당하고 있었던 변방사람들입니다. 예를 들면, 변방 갈릴리에 살고 있었던 스불론과 납달리 지파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흑암에 행하던 백성들이란 갈릴리 북쪽과 요단강 동편의 이방인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말씀의 전파를 얻지 못하여 영적으로 사망의 그늘에서 살고 있는 백성들입니다. 선민 이스라엘의 시각에서 보자면 그들은 심판의 대상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일찍이 요나 선지자가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1:2, 3:2-4).

(2)  복음의 빛이 선민만이 아니라 이방인에게 더욱 찬란하게 퍼져나갈 것임을 예수님이 복음사역의 현장에서 이미 말씀하시고 계십니다; “동서(東西)로부터 많은 사람이 이르러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과 함께 천국에 앉으려니와 그 나라의 본 자손들은 바깥 어두운데 쫓겨나 거기서 울며 이를 갈게 되리라”(8:11-12), “악하고 음란한 세대가 표적을 구하나 선지자 요나의 표적 밖에는 보일 표적이 없느니라. 요나가 밤낮 사흘 동안 큰 물고기 뱃속에 있었던 것같이 인자도 밤낮 사흘 동안 땅속에 있으리라. 심판 때에 니느웨 사람들이 일어나 이 세대 사람을 정죄하리니 이는 그들이 요나의 전도를 듣고 회개하였음이거니와 요나보다 더 큰 이가 여기 있으며”(12:39-41).

(3)  예수님이 부활하시고 승천하시면서 제자들에게 성령님의 오심과 관련하여 더욱 전도대상지역을 정확하게 말씀해주시고 계십니다; “하늘과 땅의 모든 권세를 내게 주셨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가서 모든 민족을 제자로 삼아 아버지와 아들과 성령의 이름으로 침례를 베풀고 내가 너희에게 분부한 모든 것을 가르쳐 지키게 하라.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 하시니라”(28:18-20), “오직 성령이 너희에게 임하시면 너희가 권능을 받고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땅끝까지 이르러 내 증인이 되리라 하시니라”(1:8).

둘째로, 복음사역은 하나님 말씀에 대하여 전혀 모르고 있는 민족보다는 이미 알고 있으나 실족하여 믿음에서 떠나 있는 사람들에게 먼저 전하는 것입니다. 그 사실을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말씀하시고 있습니다;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10:6-7). 그와 같은 예수님의 전도전략은 굉장히 현실적인 타당성을 지니고 있습니다. 실제로 예수님이 성전과 회당을 방문하여 하나님 말씀의 본래 취지를 복음으로 드러내어서 설명을 해주자 많은 유대인들이 하나님을 정확하게 믿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도 유대인들이 모여있는 성전과 회당에서 국내외적으로 전도를 먼저 행하게 됩니다(3:1, 5:12, 6:9, 9:20, 14:1).

참고로, 예수님의 복음이란 하나님의 말씀의 본래의 취지와 의미를 다시 완전하게 드러낸 것입니다. 예수님은 자신의 정체가 처음부터 아버지 하나님의 말씀을 주관하고 있던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11:27). 말씀의 주관자가 스스로 이 땅에 와서 백성들에게 하나님 말씀의 정확한 뜻을 올바르게 전달해준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인간의 삶을 사시면서 전달해준 것이기에 경험적으로 이해하기가 쉽고 확실한 것입니다(11:28-30). 나아가서 그 말씀의 실현가능성이 이 땅에서 이미 검증이 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이방인들에게나 믿음에서 실족하여 있는 자들에게는 말로만 해서는 통하지가 않습니다. 아무리 복음을 전하는 말씀이 반갑고 기쁜 소식이라고 하더라도 마음중심에 믿고서 받아들이는 것이 쉽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능력이 복음이 진리라는 사실을 입증해주어야만 합니다. 그 작업은 두 가지로 진행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 진리의 성령님이 내주하여 역사하시면서 복음을 점점 더 확실하게 믿을 수 있도록 만들어주는 것입니다(14:16-17, 26). 둘째, 하나님의 능력이 백성들의 병을 고치며 장애를 낫게 하고 귀신을 떠나게 만드는 것입니다(10:8a).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의 역사를 직접 눈으로 보고서 믿는 것이 가장 빠른 방법입니다.

특히 창조주 하나님을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무신론자나 우상을 섬기고 있는 이방인들에게는 가장 효과적인 방법입니다. 그리고 유대교리만이 구원의 길이라고 자손대대로 믿고 있는 선민들에게도 편협한 시각을 교정시키는 기회가 됩니다. 그 사실을 말하고 있는 사도 바울의 명쾌한 지적이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복음을 부끄러워하지 아니하노니, 이 복음은 모든 믿는 자에게 구원을 주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됨이라. 먼저는 유대인에게요, 그리고 헬라인에게로다. 복음에는 하나님의 의가 나타나서 믿음으로 믿음에 이르게 하나니 기록된 바 오직 의인은 믿음으로 말미암아 살리라 함과 같으니라”(1:16-17).

  넷째로, 예수님이 열두 사도들에게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10:8b)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사실 가장 귀중한 것은 값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거저 주어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깨끗한 자연환경, 충분한 산소, 지구와 해와의 적당한 거리, 바닷물과 육지와의 경계선, 목숨을 이어가게 해주는 각종 먹거리 등이 모두 그러합니다. 마찬가지로 복음의 말씀과 창조된 상태로의 회복을 말하고 있는 각종 치유의 행위도 영적으로 믿는 자에게 은혜로 거저 주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러한 하나님의 은혜를 사도나 제자가 이익을 얻겠다고 돈으로 계산하여 거두어서는 안됩니다. 그리고 그것을 구실로 하여 공짜 숙식과 전도의 경비를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스승이신 예수님께서 그러하시지 아니하셨기 때문입니다. 그 모든 비용은 하나님의 은혜로 사도나 제자에게 자연스럽게 주어지게 됩니다. 사람의 마음의 중심을 보시는 아버지 하나님께서 사람의 마음을 감동시키셔서 충분하게 후방지원을 해주시기 때문입니다. 예를 들면, 훗날 사도 바울에게 유럽선교의 비용을 끝까지 적극 제공해준 빌립보 교회의 경우와 같은 것입니다(1:5-6, 4:15-19).

 다섯째로, 복음사역은 전도나 선교의 여행으로 이루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고 예수님께서 명령을 하시고 있으니 여행경비를 사도나 제자들이 지니고 다녀야 할 것입니다. 하지만 그렇게 하지 말라고 하십니다. 무일푼으로 그것도 여분의 옷가지나 먹을 것도 지니고 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그렇다면 누가 재워주고 먹여주며 옷가지도 제공해줄까요? 그것은 사도나 제자들의 관심사항이 아닙니다. 그 일을 시키시고 계시는 주님과 하나님 아버지께서 신경을 쓰고 계시는 분야입니다. 종들이 주인의 뜻대로 제대로 전도여행을 하면서 복음사역을 하게 되면 전방지원과 후방지원을 확실하게 해주신다고 하는 말씀이 예수님의 입을 통하여 다음과 같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너희 전대에 금이나 은이나 동을 가지지 말고 여행을 위하여 배낭이나 두벌 옷이나 신이나 지팡이를 가지지 말라. 이는 일꾼이 자기의 먹을 것 받는 것이 마땅함이라. 어떤 성이나 마을에 들어가든지 그 중에 합당한 자를 찾아내어 너희가 떠나기까지 거기서 머물라”(10:9-11).

  여기서 사도나 제자가 신경을 써야만 하는 것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전도대상지역에 들어가게 되면 어느 집이 유숙할 집으로 선택이 되고 있는지를 기도로써 아버지 하나님께 묻는 것입니다(10:11a). 그러면 가르쳐주실 것입니다. 기도의 응답으로 합당한 자의 집이 선택이 되고 있습니다. 둘째, 그 고을에서 복음사역이 끝날 때까지 그 집에 머물게 되는 것이 원칙입니다. 조금 더 편하고 좋은 조건을 제시한다고 하여 함부로 옮기지 말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10:11b). 언제 그 집을 떠나야만 되는지는 예수님이 별도로 지시하고 있습니다(10:12-15). 그 내용에 대해서는 다음 번 강해에서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