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56강(마10:1-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8. 04:35

마태복음 강해 제56(10:1-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2()

 

사도 마태가 기록하고 있는 예수님의 열두 제자가 소위 열두 사도로 불리게 되는 이유(10:1, 5-8) 그리고 마태가 그들을 나열하고 있는 순서의 의미(10:2-4)

 

예수님이 열두 제자를 따로 부른 이유는 예수님이 하던 복음사역을 그들에게 맡기기 위한 것입니다(10:1, 7-8). 예수님이 갈릴리 지방에서 복음을 전파한 결과 고향 나사렛을 제외하면(13:57) 대단히 성공적입니다. 예상 밖으로 많은 백성들이 연일 모여들고 있습니다. 그래서 기쁜 마음으로 그들에게 천국의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를 고치며 귀신을 쫓아내고 있습니다. 그런데 문제가 하나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온 지방에 예수님의 복음사역의 상세한 내용이 소문으로 빠르게 전달이 되자 갑자기 방문을 원하고 있는 고을들이 엄청 늘어나고 있다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영이신 하나님의 아들이지만(4:24) 사람으로 태어나셨기에(1:18, 2:11) 지금 그 몸이 하나입니다. 그 몸을 쪼개어서 한꺼번에 여러 곳에서 복음사역을 하실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그들의 요구를 현실적으로 모두 만족시킬 수가 있을까요? 그 방법은 예수님의 몸을 쪼개는 것이 아니라 자신의 분신과 같은 제자를 만들어내어 권능을 부여하고 각 고을에 파송을 하는 것입니다(10:1-8).

그렇다면 여기에서 세 가지의 질문이 있게 됩니다; 첫째, 예수님의 분신과 같은 제자를 만드는 구체적인 방법은 무엇일까요? 둘째, 예수님께서 하시던 사역을 그대로 재현하자면 어떠한 권능이 주어져야만 하는 것일까요? 셋째, 마태가 열두 사도의 이름을 순서와 그룹에 입각하여 열거하고 있는데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 점은 항목을 달리하여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의 분신과 같은 제자를 만드는 방법은 한 마디로, 예수님과 공생애를 함께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제자들이 스승 예수님과 함께 먹고 마시며 같이 생활을 하면서 배우는 것입니다. 제자들이 스승의 전도여행에 빠짐없이 동참을 합니다. 그래서 복음전파의 현장에서 스승의 사역을 도우면서 복음이 무엇인가를 직접 경험하고 배우는 것입니다. 의문이 나는 것은 한꺼번에 질문을 하고 가르침을 받을 수 있는 시간이 있습니다.  한가하게 되면 예수님은 따로 제자들을 불러서 천국복음의 깊은 의미를 가르쳐주었기 때문입니다(5:1-2, 13:10-13).

스승이 공생애를 통하여 제자를 길러내는 방법이 동서양에 남아 있습니다; 영국에 가면 칼리지’(college) 제도가 있습니다. 그것은 오랜 전통을 지니고 있는 일종의 기숙사학교입니다. 기숙사에서 학생들이 24시간 7데이로 스승과 함께 생활을 하면서 학문과 학풍을 배우는 것입니다. 똑같은 제도가 물론 한국과 일본에도 있었습니다. 큰 학문을 가진 스승이나 큰 기술을 가진 명인들이 사숙’(私塾)을 열어서 제자들을 길러내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은 도제’(徒弟)라고 불리며 사숙에서 스승과 함께 지내면서 학문과 기술을 몸과 마음으로 배웠습니다. 학문과 기술은 그렇게 전수가 되었으며 스승의 인품까지 제자에게 대물림이 되었습니다. 그러한 과정을 거친 제자가 스승 누구에게서 사사(師事)를 했다고 말합니다. 일종의 학파(學派, school)가 그렇게 형성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초기의 기독교는 나사렛 예수파라고 하는 하나의 종교적인 학파에서 발생을 하고 있다고도 볼 수가 있을 것입니다.

둘째로, 예수님의 복음사역을 보고서 제자들이 배울 수 있는 것과 배울 수 없는 것이 있습니다. 배울 수 있는 것은 말씀의 선포와 가르침입니다. 그러나 백성들의 병을 낫게 하고 귀신을 쫓아내며 장애가 떠나가게 하는 것은 흉내를 낸다고 하여 그 효력이 발생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배울 수가 없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의 하나님으로부터 성령님의 권능이 위에서 주어져야만 하는 것입니다(24:49, 20:22, 1:8).

지금 예수님은 자신의 제자 열두 명을 선발하여 갈릴리의 각 고을에 스승을 대신하여 복음사역을 하도록 파송을 하고자 합니다. 그 동안 천국의 복음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상당히 많이 가르쳐주었습니다(5:1-7:29). 그리고 물세례를 베풀 수 있는 권세도 이미 부여하였습니다(4:2). 이제 남은 문제는 제자들에게 축사의 능력, 병 치료의 능력, 그리고 말씀의 능력을 부여하는 것입니다. 영적으로 추수할 곳은 많은데 일꾼이 적으므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아버지 하나님에게 기도를 하여 그 권능을 얻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9:36-38). 성령의 능력을 얻고자 하는 제자들의 기도가 끝나자 예수님께서 열두 명의 제자들에게 사도의 권능을 부여하여 각 고을로 파송을 하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그의 열두 제자를 부르사 더러운 귀신을 쫓아내며 모든 병과 모든 약한 것을 고치는 권능을 주시니라”(10:1).

그런데 열두 사도가 가게 되는 지역은 갈릴리에 있는 각 고을로 한정이 되고 있습니다. 그러한 의미를 담고 있는 사도 마태의 문장이 다음과 같습니다; “예수께서 이 열둘을 내보내시며 명하여 이르시되, 이방인의 길로도 가지 말고 사마리아인의 고을에도 들어가지 말고 오히려 이스라엘 집의 잃어버린 양에게로 가라. 가면서 전파하여 말하되, 천국이 가까이 왔다 하고 병든 자를 고치며 죽은 자를 살리며 나병환자를 깨끗하게 하며 귀신을 쫓아내되 너희가 거저 받았으니 거저 주라(10:5-8). 갈릴리 호수에서 동편으로 제법 나아가게 되면 데가볼리 가다라 지방이라는 이방인의 땅이 있는데(8:28, 34) 그 길로 가지 말라는 것입니다. 그리고 남쪽으로 한참 가게 되면 사마리아인의 고을인(4:4-5) 이스라엘 중부지방이 나타나는데 그곳으로 가지도 말라고 합니다. 결국 갈릴리 호수를 끼고 있는 서편과 남부지방 곧 갈릴리 일대를 말하고 있습니다. 그 지역이 한 마디로 예수님의 홈 그라운드’(home ground)라고 볼 수 있습니다. 예수님을 크게 환영한 지역입니다. 물론 고향 나사렛을 빼고서 하는 이야기입니다(13:54-58). 그렇게 호응도가 높은 지역으로 열두 사도를 파송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로, 스승 예수님을 대신하여 각 고을에 가서 복음사역을 할 수 있도록 권능을 받은 제자들이 바로 사도입니다(10:1, 5-8). 그들은 공통점이 하나 있습니다. 열두 명 모두가 예수님과 공생애 36개월을 함께하고 있다는 것입니다(1:21-22). 그 가운데 억울하게도 여자 제자들이 빠지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남성이기에 그 옛날 가부장사회에서 여자 제자들과 함께 생활을 할 수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남자 스승이 여자 제자와 함께 먹고 마시며 함께 여행을 하고 같이 생활을 하고 있다고 한다면 종교적인 지도자가 될 수 없을 뿐만 아니라 지탄의 대상이 되고 말 것입니다. 반면에 만약 예수님이 여성이었더라면 그 수제자는 틀림없이 막달라 마리아나 베다니의 마리아였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들이 먼저 사도가 되었을 것입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의 순서와 다섯 개 그룹의 의미(10:2-4)

 

 마태는 열두 사도의 이름을 그의 복음서에서 기술할 때에 그 순서에 대하여 신경을 쓰고 있습니다. 고대 서열사회에 살고 있는 그가 그 서열의 중요성을 모를 리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마태는 일종의 기준을 마련하고 있습니다; 첫째, 제자로 부름을 받은 순서대로 열거한다. 둘째, 형제간인 경우에는 형을 먼저 기록한다. 그러한 기준에 따라서 다음과 같은 기록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열두 사도의 이름은 이러하니 베드로라 하는 시몬을 비롯하여 그의 형제 안드레와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그의 형제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세리 마태,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가나나인(열심당원인 셀롯인, 1:13) 시몬 및 가룟 유다 곧 예수를 판 자라”(10:2-4).

자세히 들여다 보면 마태는 열두 사도에 대하여 5개의 그룹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1) 베드로와 그 동생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인 형제 야고보와 요한, (2) 빌립과 바돌로매, (3) 도마와 마태, (4)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5) 열심당원인 시몬과 가룟 유다 등입니다. 각 그룹의 색깔과 특징은 다음과 같다고 하겠습니다;

첫째로, 요한복음에 따르면 안드레가 첫 번째 제자입니다(1:35-40). 그는 일찍이 요단 강가에서 선지자인 세례 요한의 수행제자로 있다가 선지자보다는 능력이 많고 격이 높은 메시아 예수를 만나자 그의 제자가 되기로 한 사람입니다. 그는 예수님과 동행하여 갈릴리 지방으로 왔으며 고향 벳새다를 방문하여 친형 시몬을 역시 예수님의 제자로 입문을 시킵니다(1:41-42). 그런데 마태는 시몬이 형이기 때문에 먼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둘째로, 마태는 그의 복음서에서 그와 같은 속사정을 모두 배제하고 있습니다. 단지 그의 복음서 제4장에서 예수님이 갈릴리 해변에서 베드로라 하는 시몬과 그의 형제 안드레 그리고 세베대의 아들 야고보와 요한을 모두 제자로 불렀다고만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4:18-22). 어쨌든 벳새다에서 제자로 부름을 받은 그 네 사람이 제1그룹의 제자입니다.

셋째로, 요한복음에 따르면 빌립은 안드레의 동네 친구입니다(1:44). 그런데 예수님이 빌립을 보자마자 자신의 제자로 부르고 있습니다(1:43). 빌립은 친구 안드레로부터 예수님이 메시아라는 사실을 듣고서 그의 제자가 된 것이 신이 납니다. 그래서 서쪽의 마을 가나로 들어갔을 때에 자신의 절친인 나다나엘을 예수님께 데리고 옵니다(1:45-46). 나다나엘은 메시아가 갈릴리가 아니라 예루살렘 남쪽 다윗의 고향인 베들레헴에서 탄생한다는 미가 선지자의 예언을 알고 있는 사람입니다(1:46). 한 마디로 유대교 경전에 대하여 상당히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나사렛 예수가 메시아라는 사실에 대해서 의심을 합니다. 하지만 나다나엘의 속을 꿰뚫고 계시는 예수님의 혜안을 알게 되자 메시아가 틀림이 없다고 신앙고백을 하게 됩니다(1:47-49). 그와 같은 특이한 제자의 이름을 마태는 바돌로매라고 적고 있습니다(10:3a). 어쨌든 절친 사이인 빌립과 바돌로매가 제2그룹이 되고 있습니다.

넷째로, 갈릴리 지방에서 예수님이 두 명의 제자를 더 부르고 계십니다. 그들이 도마와 세리 마태입니다. 도마는 히브리어이며 쌍둥이라는 뜻입니다. 그는 사도 요한과 친한 사이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의 별명을 헬라어로 디두모라고 이름자 도마 앞에 겹쳐서 부르면서 요한이 그를 놀리고 있기 때문입니다(11:16, 20:24, 21:2). 요한은 도마를 그렇게 부르면서 80대의 노인이 되어서도 여전히 즐거워하고 있습니다. 세리 마태는 큰 도시 가버나움 출신이며 그곳 세관에서 관세를 부과하고 징수하던 관리출신입니다. 베드로와 안드레, 야고보와 요한, 빌립과 바돌로매, 도마와 마태 등 이상 8명이 모두 갈릴리 출신입니다. 12명의 사도 가운데 무려 3분의 2를 차지하고 있습니다.

다섯째로, 메시아인 예수님의 제자가 되겠다고 많은 사람들이 멀리 예루살렘에서 갈릴리로 찾아왔습니다. 그 가운데 4명을 선발하여 수행제자로 삼았습니다. 그들의 이름이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 그리고 열심당원 시몬과 가룟 유다입니다. 그런데 마태는 그들 4명을 두 명씩 두 그룹으로 분류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몬과 유다가 정치적인 색깔 또는 다른 색깔을 띄고 있기 때문입니다. 알패오의 아들 야고보와 다대오가 종교적인 열정 때문에 예수님의 제자가 되었다고 한다면 열심당원인 시몬과 가룟 유다는 그러하지가 않습니다.

구체적으로, 열심당원의 관심사는 메시아의 힘을 빌려서 로마제국을 물리치고 이스라엘 제국을 재건하는 것입니다. 무력투쟁이 필요하며 하나님의 능력이 무력으로 메시아를 통해서 나타나야만 한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러나 열심당원 시몬의 기대는 예수님에 의하여 무너지게 됩니다(26:52-54). 그렇지만 시몬은 자신의 뜻을 바꾸어 부활하신 주님을 계속 따르게 됩니다. 오순절 성령강림의 현장에 그가 출석하고 있는 것입니다(1:13). 반면에 가룟 유다는 민족의 독립에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저 유다 남부 척박한 고향 가룟에서 성장한 그는 출세지향주의자일 뿐입니다. 그는 메시아 예수에게서 철저하게 하나님의 능력을 행사하는 방법을 배워서 그것으로 자신도 선지자로서 성공을 해보겠다고 하는 욕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그가 얻고자 하는 것을 대충 얻게 되었을 때에 유다는 스승을 산헤드린 공회에 팔아버립니다(26:14-16). 그리고 유대교지도자들의 비호를 받고서 선지자로 개업을 하고자 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개입하심으로 번뇌에 시달리다가 자살로 생을 마감하고 맙니다(27:3-10, 1:16-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