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61강(마10:34-3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10. 22:34

마태복음 강해 제61(10:34-3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517()

 

주적(主敵)의 개념, 사랑의 능력, 그리고 십자가와 검(10:34-39)

 

예수님은 전도여행을 떠나고 있는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요 검을 주러 왔노라”(10:34). 그런데 막상 자신을 위하여 검을 휘두르고 있는 수제자 베드로에 대해서는 또 야단을 치시고 있습니다; “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 칼을 도로 칼집에 꽂으라. 칼을 가지는 자는 다 칼로 망하느니라”(26:52). 두 말씀 사이에는 모순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의문부터 해소를 해야 본문의 말씀이 비로서 이해가 될 것으로 보입니다;

첫째로, 베드로가 휘두르고 있는 칼은 물리적인 폭력의 수단에 불과합니다. 물론 스승이신 예수님을 지키고자 하는 좋은 의도의 칼부림입니다. 하지만 그것이 사람을 해칠 수 있는 폭력의 수단임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그와 같은 폭력으로써는 영적인 문제를 해결할 수 없다고 다음과 같이 말씀하고 계십니다; “내가 만일 그렇게 하면 이런 일이 있으리라 한 성경이 어떻게 이루어지겠느냐?”(26:54). 성경의 예언이 이루어진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이 땅에서 성취가 된다고 하는 의미입니다. 그것은 영적인 진리가 이 땅에서 실현이 되는 것을 말합니다. 그러므로 영적인 문제의 해결을 위해서는 세상의 칼이 아니라 다른 도구 곧 영적인 검을 사용해야만 한다는 뜻을 알게 됩니다.

그렇다면 세상적인 칼이 아니라 영적인 검은 무엇일까요? ‘영적인 검이 무엇인지 사도 바울이 정확하게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의 씨름은 혈과 육을 상대하는 것이 아니요, 통치자들과 권세들과 이 어둠의 세상 주관자들과 하늘에 있는 악의 영들을 상대함이라. 그러므로 하나님의 전신갑주를 취하라 이는 악한 날에 너희가 능히 대적하고 모든 일을 행한 후에 서기 위함이라”(6:12-13), “구원의 투구와 성령의 검하나님의 말씀을 가지라”(6:17). 사도 바울이 하나님의 말씀을 가지고 악한 영을 물리칠 수가 있다고 하는 사실을 자신 있게 설명하고 있는 대목입니다. 그의 확신은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마귀를 물리치시는 장면을 복음서에서 이미 보았기 때문일 것입니다; “사람이 떡으로만 살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입으로부터 나오는 모든 말씀으로 살 것이니라”(4:4). 하나님의 말씀을 정확하게 알고서 검처럼 휘두를 때 악한 세력은 견디지를 못하고 쫓겨나가게 됩니다(4:11).

여기서 한 가지 사실을 알게 됩니다; “영적인 칼을 휘둘러 싸워야만 되는 진짜 원수는 마귀를 비롯한 악한 영들이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의 꾀임을 받고 있는 사람을 향하여 칼을 휘두르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원수는 자신을 배척하고 나아가서 죽이려고 도모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아닙니다. 그들을 영적으로 지배하면서 배후에서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들입니다(16:23, 11:51, 13:27, 6:12). 그들이 예수님의 주적(主敵)입니다. 악한 영들은 심판의 대상이지 구원의 대상이 결코 아닙니다. 따라서 그들의 죄악에 대해서는 용서함이 있을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악한 영들에 의하여 단지 이용을 당하고 있는 원수들은 구원의 대상입니다. 그들이 구원을 받기 위해서는 십자가를 바라보고서 회개하며 예수님께 용서를 구해야만 할 것입니다. 마찬가지로 갈릴리 여러 고을로 전도여행을 떠나고 있는 사도들도 사람을 미워하지 말고 사탄의 세력을 미워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을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선포하는 현장에 어떠한 갈등이 발생하는가를 사전에 짐작할 수 있어야만 합니다.

둘째로, 복음전파의 현장에서 발생할 수 있는 갈등과 시험에 대하여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미리 말씀해주시고 있습니다; “내가 세상에 화평을 주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왔노라. 내가 온 것은 사람이 그 아버지와, 딸이 어머니와, 며느리가 시어머니와 불화하게 하려 함이니 사람의 원수가 자기 집안식구리라”(10:34-36). 예수님이 하나님의 말씀과 그 속뜻을 복음으로 요약하여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었습니다. 이제 제자들은 갈릴리 여러 고을로 파견이 되어서 복음사역을 하게 될 것입니다(10:1, 6-8). 그러면 하나님의 말씀이 듣는 사람들의 폐부를 마치 칼처럼 도려내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영적인 검이기에 듣는 사람의 영과 및 관절과 골수를 찔러 쪼개기까지 하며 또 마음의 생각과 뜻을 판단할 것입니다(4:12). 그렇게 되면 피조물은 부끄럽게도 사도들 앞에 벌거벗은 모습으로 서게 될 것입니다(4:13). 그때 자존심이 상하게 된 청중들 곧 유대교인들은 사도들을 도리어 이단으로 몰아세우면서 공격할 것입니다.

사탄의 책략은 그 정도에서 멈추지를 아니할 것입니다. 가장 가까운 사람을 사용하여서 사도들의 손발을 묶어버리고자 획책할 것입니다. 예를 들면, 집안식구들이 원수인 사탄에게 이용을 당하여 사도들을 공격하게 될 것입니다(10:35). 그와 같은 상황이 반드시 초래가 될 것이기에 예수님은 화평이 아니라 검을 주러 이 세상에 왔다고 천명하고 계시는 것입니다(10:34).

셋째로, 그렇게 상황이 전개가 된다면 사도들은 어떻게 그 위기를 극복할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은 마치 원수처럼 보이는 집안사람들을 미워하지 말고 사랑하라고 가르쳐주고 있습니다(5:44). 그 이유는 간단합니다; “진짜 원수는 그들이 아니라 그들을 조종하고 있는 악한 영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어떻게 하면, 악한 영들의 앞잡이가 되어 있는 그들을 진심으로 용서하고 사랑하여 그들의 회개를 위하여 중보의 기도를 멋있게 드려줄 수가 있을까요? 한 마디로, 사람의 사랑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먼저 사랑함으로써 창조주로부터 피조물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을 공급받아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맥락에서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 “아버지나 어머니를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는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고 아들이나 딸을 나보다 더 사랑하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며 또 자기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지 않는 자도 내게 합당하지 아니하니라”(10:37-38). 하나님을 먼저 사랑해야만 그 사랑의 능력을 공급받을 수가 있습니다. 그때에야 그 능력으로 가족의 구원이 가능해집니다. 그것이 진정으로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사랑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그 순서를 흔히 꺼꾸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가족을 사랑하기 때문에 하나님에게 가족의 구원을 요청하며 그 구원이 이루어질 때에 비로서 하나님을 사랑하고자 합니다”. 그것은 가족을 하나님보다 더 사랑하고 먼저 생각하는 자의 삶의 모습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그렇게 우선순위가 바뀌어져 있으며 인간의 사랑의 능력을 창조주 하나님의 사랑의 능력보다 앞세우고 있는 자를 제자로 삼지 않겠다고 하십니다. 그러한 사람은 영적인 전투를 수행하지 못할 것이며 자기 십자가를 진다고 하더라도 예수님의 방식대로 지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예수님의 방법과 사람의 방법의 차이를 다시 한번 정리해봅니다;

(1) 예수님의 방법은 사람은 사랑하지만 그 속에 들어있는 악한 영에 대해서는 용서함이 없습니다. 철저하게 분리하고 말씀의 검으로 쫓아내고자 하십니다. 반면에 사람들의 방법은 가족을 사랑하고 자기 집단을 사랑하는 것을 최우선으로 삼고 있습니다. 따라서 영적인 잘못이 그 속에 내재되어 있다고 하더라도 아랑곳하지 않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모두가 그냥 구원을 받고 화목하게 지내기만을 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예수님 보시기에는 가면(假面, mask)적인 화목에 불과한 것입니다.

(2) 사람들은 인간적인 사랑으로 영적인 문제가 해결이 될 수 있다고 가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생각은 정반대입니다. 사람은 자신의 문제를 해결할 수가 없습니다. 영이 이미 타락한 존재이므로 진심으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사람을 사랑할 수 있는 능력이 없습니다. 따라서 대속의 십자가가 필요하고 회개가 필요합니다. 그 다음에는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을 얻어서 영적으로 거듭난 삶을 살아가야만 합니다(24:45-49, 1:8). 그때에야 비로서 먼저 하나님을 사랑하고 그 사랑의 능력으로 가족과 이웃을 올바르게 사랑할 수 있게 될 것입니다. 그렇게 새로 태어난 자들이 그리스도의 제자이며 하나님의 자녀들입니다. 그들은 사도들의 뒤를 따라 복음의 사역자들이 될 것이며 대속의 십자가를 지시고 부활하신 예수님처럼 장차 영생을 누리게 될 것입니다(10:39, 고전15:23-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