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49강(마8:28-3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5. 02:52

마태복음 강해 제49(8:28-3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27()

 

가다라 지방의 귀신추방사건에서 엿볼 수 있는 것들(8:28-34, 5:1-20, 8:26-39)

 

사도 마태가 본문에서 기록하고 있는 귀신추방사건의 내용은 다음과 같습니다; (1) 예수님이 갈릴리 건너편(동편) 가다라 지방에서 귀신을 쫓아내셨다(8:28-32). (2) 무덤 사이에서 나온 두 사람 귀신들린 자가 소리를 쳤다(8:28). 아직 때가 이르지 아니했는데 메시아가 왜 자기들에게 왔는가 하는 시비였다(8:29). (3) 그러나 메시아에 의하여 당장 쫓겨날 운명임을 알고서는 인근의 돼지 떼에게 들어갈 수 있도록 허용해달라고 요청했다(8:30-31). (4) 예수님의 허락을 얻어 귀신들이 들어가자 돼지 떼는 견디지를 못하고 물에 뛰어들어 모두 떼죽음을 맞이하고 말았다(8:32). (5) 손해를 본 양돈업자들이 들고 일어나자 그 지역 주민들이 모두 예수님에게 부디 떠나달라고 요청을 하게 된다(8:33-34).

그런데 같은 사례를 역시 기록하고 있는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의 내용은 다소 마태복음의 내용과 다릅니다. 예를 들면 다음과 같이 기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1) 가다라 지방의 이름이 거라사 지방으로 적혀 있습니다(5:1, 8:26). (2) 귀신들린 사람이 단수입니다(5:2, 8:27). (3) 무덤 사이에 거처를 하도록 쇠사슬로 매어 놓았으나 번번히 그 사슬을 끊었다는 것입니다(5:3-4, 8:29). (4) 자해행위를 합니다(5:5). (5)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임을 알고 있으며 자기를 괴롭히지 말라고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5:7, 8:28). (6) 자신의 정체가 군대라고 합니다(5:9, 8:30). (7) 쫓겨날 운명임을 알고서는 부디 돼지 떼에게라도 들어가게 해달라고 요청합니다(5:12, 8:32). 여기서 마가는 그 돼지의 수가 거의 이천 마리가 되는 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13a). (8) 그리고 마가는 그 돼지의 떼가 모두 바다로 내달아 몰사를 했다고 합니다(5:13b). 하지만 의사 누가는 호수로 달려들어가서 몰사를 했다고 합니다(8:33). 갈릴리 호수를 두고서 마가는 바다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9) 마을사람들이 와서 귀신들린 자가 멀쩡히 나은 것을 보고 두려워합니다(5:15, 8:35). 그러나 여러 마을 사람들이 의견을 모아서 예수님께 부디 자신들의 마을을 떠나달라고 요청합니다(5:17, 8:37). (10) 축사(逐邪, 귀신을 쫓아냄)의 기적을 맛본 자가 예수님을 따라가고자 했으나 거절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고향사람들에게 예수님이 행하신 일을 증거하라는 것입니다(5:19, 8:39).

이상의 내용을 비교해보면 다음의 사실을 엿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귀신들린 자가 하나님의 일을 상당히 많이 알고 있습니다. 귀신도 영이므로 귀신들린 자가 영매의 역할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사실을 이미 알고 있습니다(8:29a). 그리고 종말의 때가 되면 자신들이 이 세상에서 쫓겨난다는 사실까지 벌써 알고 있습니다(8:29b).

둘째로, 자신들이 이미 알고 있는 영적인 사실에 의존하여 시비를 걸지 말고 부디 조용히 지나가시라고 예수님께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예수 그리스도는 완강하십니다. 사람을 상하게 하고 있는 귀신을 그냥 둘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종말이 아니라 당장 사람에게서 쫓아내고자 하십니다. 예수님의 태도에 귀신은 매우 당황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이 이미 시작이 되었으며 종말이 벌써 예수님의 공생애로 현실화되고 있는 것입니다. 따라서 인근 돼지 떼에라도 들어갈 수 있도록 해달라고 간청하고 있습니다(8:31).

셋째로, 예수님이 허용하십니다. 그러나 귀신의 운명은 돼지 떼의 운명과 같이 되고 맙니다.  돼지 떼들이 모두 비탈을 달려 내려가 갈릴리 호수에서 몰살을 당하고 말기 때문입니다(8:32). 비록 시간의 차이는 있을지 몰라도 악한 영인 귀신의 말로는 꼭 같습니다.

넷째로, 귀신이 쫓겨나자 제 정신을 차리게 된 사람이 차제에 예수님을 따르고자 합니다(5:18, 8:38). 그러나 예수님께서 허락을 하시지 아니하십니다. 그 이유는 이방 땅 거라사 지방과 인근 데가볼리 지역에 예수님의 축사능력에 관하여 그 사람이 증거를 해야만 하기 때문입니다. 귀신이 쫓겨나고 복음이 선포되고 있으니 이제는 예수님이 하나님의 아들이며 그리스도라고 믿게 되는 그 땅의 이방인들에게도 그 마음 속에 하나님의 나라가 임하게 될 것입니다(11:20, 17:20-21).

다섯째로, 거라사 지방의 양돈업자들의 말을 들은 그 지역과 이웃지역의 주민들이 모두 예수님 일행을 자신들의 영역에서 떠나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 왜 귀신까지 쫓아내어준 고마운 예수님 일행을 선지자로 맞이하지 아니하고 오히려 부디 떠나달라고 요청을 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한 마디로, 하늘의 신령한 축복보다는 현세적인 경제적 손실을 더 이상 보지 아니하겠다는 생각이 훨씬 앞서있기 때문입니다. 그들 거라사와 데가볼리 지역의 이방인들은 누가 하나님의 능력으로 병이 낫고 귀신이 떠나가고 했는가에 그다지 큰 의미를 두고 있지 않습니다. 그저 그들이 먹고 사는 생계수단 곧 밥그릇에 손을 대지 아니하는 것만을 바라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으로부터 큰 복을 얻겠다고 하는 생각보다는 그저 당장 먹고 사는 현세적인 복이라도 그대로 지금처럼 계속 유지가 되었으면 좋겠다고 하는 아주 소박한 생각에 머물러 있는 신앙입니다.

여섯째로, 똑 같은 이야기인데 세 가지 공관복음의 기술에 있어서 차이가 나고 있습니다. 그 기록의 특징은 무엇보다도 사도 마태가 가장 간략하게 기술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한 사람이 아니고 귀신들린 사람이 두 사람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왜 간략하게 말하면서 그것도 마가나 의사 누가와는 달리 귀신들린 사람이 두 사람이라고 기술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아무래도 사도 마태가 갈릴리 호수 동쪽 건너편 이방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에 대하여 관심이 적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태의 직업이 세관원이었기에 유대인들의 존경을 받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나 마태 역시 유대인의 강한 선민의식을 자기도 모르게 지니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러한 사도 마태에 비해서 마가나 의사 누가는 훨씬 개방적이며 헬라적인 사람입니다. 참고로 마가는 부모님이 모두 구레네 섬 곧 오늘 날의 키프러스섬에서 이주를 해온 레위 지파 교민입니다. 외삼촌 사도 바나바도 그러합니다(4:36-37, 4:10). 그리고 의사 누가는 시리아의 안디옥 출신의 교민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교포출신인 마가나 의사 누가는 본토출신 유대인인 사도 마태보다는 이방인에 대한 관심이 더 크다고 말할 수가 있습니다.

일곱째로, 그 돼지의 수가 이천 마리에 가깝다고 숫자를 정확하게 제시하고 있는 사람은 마가입니다(5:13). 마가가 왜 숫자에 민감할까요? 그것은 그가 장사꾼이었거나 사업가이었기 때문일 것입니다. 마가의 다락방은 굉장히 큰 방입니다(14:14-16). 예수님과 열두 명의 제자들이 그곳에서 최후의 만찬을 가질 수 있을 정도로 넓은 방입니다(14:17-18). 그렇게 큰 다락방을 가진 이층집을 예루살렘 성내에 보유하고 있는 마가의 집안은 큰 부자입니다. 그들이 큰 집을 일종의 객실로(14:14) 가지고 있었던 이유는 무엇일까요? 로마제국시대에 구브로 고향과 예루살렘 사이의 무역을 중개하기 위하여 그 집에 키프러스에서 온 상인들을 숙박시켰을 가능성이 큰 집안입니다. 마가가 부모의 무역중개업을 대물림했다고 본다면 그 역시 숫자개념에 밝은 상인출신이라고 하겠습니다.

끝으로, 마가와 의사 누가가 모두 거라사라고 말하고 있는 지방을 사도 마태는 가다라라고 적고 있습니다. 왜 그와 같은 차이가 발생하고 있는 것일까요? 교포출신인 마가와 의사 누가는 요르단의 지명에 대해서 유식합니다. 그래서 작은 도시 거라사의 존재를 잘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본토 유대인 출신인 사도 마태는 그러하지가 못합니다. 그래서 넓은 지명 가다라를 그대로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보입니다. 

사족을 더하자면, 오랜 세월 동안 성경학자들은 마가복음 제5장 제1절에서 언급하고 있는거라사인의 지방이 어디인지를 대하여 연구했습니다. 그 결과 다수설은 요르단에 있는 제라쉬(Jerash)를 거라사라고 보고 있습니다. 제라쉬는 요르단의 수도 암만에서 북쪽으로 45km 떨어진 곳에 위치한 고대 도시입니다. 그곳은 옛날 길르앗 땅에 속한 곳이었으며 데가볼리 영지에 속한 가다라 지방의 한 지역입니다. 그곳을 예수님 당시에는 거라사라는 이름으로 불렀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는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