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51강(마9:9-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6. 01:37

마태복음 강해 제51(9:9-1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28(주일)

 

예수님의 복음과 제자 마태를 부르심(9:9-13, 2:13-17, 5:27-32)

 

흔히 사람은 중요한 인물을 인생 가운데 만남에 따라서 몇 번 그 삶이 달라진다고 합니다. 먼저 어떠한 부모와 가문에서 태어나는가에 따라서 그 사람의 인생이 상당히 결정이 되어나가고 있습니다. 누구나 가족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하는 법이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에는 어떠한 스승을 만나게 되는가에 따라서 제2의 변화를 시작합니다. 물론 배우자와의 만남도 하나의 변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의 제자들은 스승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게 됨으로써 획기적으로 새로운 인생살이 곧 공생애를 살게 된 사람들입니다.

그 가운데에는 예수님의 예언에 따라서 아예 자신의 이름이 달라진 경우가 있습니다. 갈릴리 벳새다의 어부출신 시몬이 그러합니다. 시몬을 만나자 마자 그를  반석이라는 뜻을 지니고 있는 게바로 장차 부르겠다고 예수님이 말씀을 하십니다(1:42). 그래서 시몬은 게바라고 하는 아람어와 같은 뜻을 지니고 있는 헬라어 이름 베드로로 바뀌어서 성경에 기록되고 있습니다(1:44). 실제로 그는 새로운 이름 그대로 초대 예루살렘 교회에서 반석과 같은 역할을 수행하게 됩니다. 첫 번째 총회장이 되며 예루살렘과 유대 땅 전도에 힘있게 앞장을 서게 되는 것입니다(2:14-4:22).

그런데 여기에 그 인생이 크게 바뀌게 되는 또 한 사람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가 세리 레위입니다(Levi, 2:14, 5:27). ‘레위라는 그의 이름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의 뜻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레위 지파라는 것입니다(49:5-7). 둘째, ‘연합이라는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29:34).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게 되는 세리 레위에 대해서는 흔히 학자들이 손쉽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그가 레위 지파출신일 것이라는 점과 하나님과의 연합보다는 현실적으로 세상과 연합하여 살아갔던 유대인이라는 의미가 담겨 있다고 하겠습니다”. 만약 세리 레위가 레위 지파라고 한다면 그는 레위 인들이 본래 담당하고 있는 하나님께 대한 헌신과 봉사라는 책임을 스스로 가벼이 벗어 던져버린 삶을 선택하고 있는 것입니다(25:34, 32:26, 3:6-9).

특히 레위는 유대인들의 멸시와 손가락질을 받고 있는 직업에 종사를 하고 있습니다. 세관에서 로마황제에게 바치는 관세를 징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갈릴리 출신인 그가 고향사람들이 보고 있는 가운데 버젓이 가버나움 세관에서 하루 종일 세관원으로서 직무를 수행하고 있습니다. 인근 시리아나 먼 나라에서 갈릴리로 들어오고 있는 물품에 대하여 관세를 매기는 일입니다. 그 관세는 전부 로마로 보내어지게 됩니다. 그 때문에 유대인들은 외국에서 들어오는 물건을 비싸게 사야만 합니다. 가뜩이나 로마의 속국으로 가난하게 살고 있는 동족들에게 물건 값을 비싸게 만들고 있는 자들이 바로 세관원들입니다. 그래서 로마의 앞잡이이며 민족의 반역자라고 욕을 얻어먹고 있습니다. 아예 도적이나 창기처럼 죄인취급을 받고 있습니다(9:11, 2:15-16, 5:29-30).

그렇게 하나님의 일을 생각하지 아니하고 동족이 싫어하는 직업을 가지고 그날 그날의 삶만을 이어가고 있었던 세리 레위에게 큰 변화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와의 만남입니다. 그때부터 레위는 자신의 이름을 스스로 마태라고 부르고 있습니다. 그는 예수님의 제자로 부름을 받게 되는 그때부터 아예 자신의 이름을 마태라고 적고 있습니다(9:9). 마가복음이나 누가복음에서는 세리 레위라고 기록하고 있는데(2:14, 5:27) 유독 마태복음에서만 그러합니다. 따라서 그 복음서의 저자가 마태라는 사실을 알려주고 있는 대목으로 손꼽히고 있습니다. ‘마태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것입니다. 왜 세리 레위가 스스로 세리 마태라고 자신의 이름을 변경하고 있는 것일까요? 이와 더불어 여러 가지 사실을 함께 파악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그는 더 이상 먹고 살기 위하여 세상적인 방법으로 권력과 연합하여 살지 않겠다고 결심하고 있는 것입니다. 이제부터는 하나님의 선물인 메시아 예수님과 연합하여 나머지 인생을 그 분의 제자로 살아가겠다고 하는 확고한 결단을 그 새로운 이름 마태에 담고 있습니다. 일찍이 레위 지파의 조상인 레위 역시 자신의 인생 가운데 연합의 방향을 크게 바꾼 사람입니다. 그는 형 시므온과 연합하여 세겜 살육사건의 주인공이 됩니다(34:25). 하지만 나중에는 동생 유다와 연합하여 하나님 앞에 의미 있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따라서 훗날 레위 지파에서 출애굽의 영웅인 모세와 초대 대제사장인 아론이 나타나게 됩니다(6:16-20).

둘째로, 세리 레위가 예수님의 제자인 마태가 됨으로써 죄인과 세리가 하나님의 사람이 되어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 마태의 집에서 그를 예수님의 제자로 받아들인다는 잔치가 벌어지게 됩니다(9:10). 그 모습을 보고서 바리새인들이 이상하게 생각합니다(9:11). 만약 나사렛 예수가 유대인의 왕 메시아로 이 세상에 왔다고 한다면 그는 그 옛날 다윗 대왕처럼 이스라엘 제국의 영광을 재현해야만 합니다. 로마제국을 물리쳐야만 합니다. 그렇다면 그들의 앞잡이가 되고 있는 세리를 제자로 거두어서는 아니 되는 것입니다. 그런데 세리 레위를 제자로 삼고서 그의 집에서 환대를 받고 있습니다.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메시아라고 주장하고 있는 예수님의 정체에 대하여 크게 의심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의 답변은 바리새인들의 상상을 초월하고 있습니다. 메시아인 자신이 죄인을 부르러 왔으며 병든 자를 고치기 위하여 이 세상에 왔다는 것입니다(9:12b, 13b). 그렇다면 스스로 하나님의 거룩한 백성이며 의인이라는 유대인들은 어떻게 되는 것입니까? 그렇게 스스로 영적으로 건강하다고 자신하고 있는 자에게는 예수님이 별로 필요하지가 않다고 하는 의미입니다(9:12a, 10:3). 긍휼을 베푸시기를 원하시는 하나님의 속성이 차제에 예수님의 말씀을 통하여 바리새인들에게 여지없이 선포가 되고 있습니다; “내가 긍휼을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노라 하신 뜻이 무엇인지 배우라”(9:13a), “나는 인애를 원하고 제사를 원하지 아니하며 번제보다 하나님을 아는 것을 원하노라”(6:6), “나는 은혜 베풀 자에게 은혜를 베풀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33:19).

넷째로, 당시에 세관원의 세리가 되기 위해서는 업무상 세 가지 언어에 정통해야만 합니다. 히브리어와 아람(시리아)어 그리고 헬라어입니다. 예수님의 열두 제자 가운데 마태가 세관원 출신이기에 그렇게 어학에 밝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그는 좋은 복음서를 저술할 수 있는 위치에 서게 됩니다. 학문도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사도 마태를 통하여 그 점을 확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같은 맥락에서 교포출신이며 헬라의 학문과 유대인의 학문에 양수겸장으로 뛰어났던 바울이 후속 사도로 초대교회의 역사에 참여하게 되는 이유도 짐작을 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모든 달란트가 모두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로 새로운 인생을 살아가게 되는 자들에게는 이미 하나님께서 주신 재능과 학문이 모두 보람 있게 사용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여기서 결론 삼아 말할 수가 있습니다. 그 점을 알고서 세리 마태처럼 성도들도 하나님께서 자신에게 주신 달란트를 모두 사용하여 하나님의 나라를 신실하게 이루어나가야만 할 것입니다.

다섯째로, 마가복음과 누가복음에서는 마태복음 제9장 제11절처럼 단순히 바리새인들’(Pharisees)이라고 적지를 아니하고 바리새인의 서기관들’(the scribes of the Pharisees, NRSV, the teachers of the law who were Pharisees, NIV, 2:16) 또는 바리새인과 그들의 서기관들’(the Pharisees and the teachers of the law who belongs to their sector, NIV, 5:30)이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 뜻이 과연 무엇일까요? 본토 유대인인 사도 마태는 별 생각이 없이 단순하게 바리새인들이라고 지칭하고 있지만 교포출신인 마가나 의사 누가는 서기관들과 함께 바리새인들을 거론하고 있습니다. 그 의미의 차이는 먼저 바리새인의 발생과 서기관의 의미를 파악했을 때에 알 수가 있습니다.

참고로, 서기관은 율법국가인 이스라엘 왕국시대부터 존재하고 있습니다. 예를 들면, 다윗 왕 때의 서기관 스라야’(삼하8:17), 솔로몬 왕 때의 서기관 엘리호렙과 아히야’(왕상4:3), 히스기야 왕 때에 서기관 셉나’(왕하19:2) 등이 있습니다. 그들은 율법국가의 관료로서 공식문서의 기록자(the scribes)이며 왕의 비서입니다. 그리고 특히 율법서를 필사하고 연구하여 왕에게 보고하고 백성들에게 종교교육을 시키는 사람들입니다. 주전 586년에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이 멸망을 당하고 나자 왕국의 서기관들이 사라집니다. 그러나 주전 516년에 예루살렘 제2성전의 건축과 동시에 서기관들이 다시 레위인 제사장들과 함께 유대교의 권력을 장악하게 됩니다. 그 시조는 율법학자 에스라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주전 2세기에 헬라의 시리아 왕조가 유대교의 자주성을 침해하자 종교적인 위기가 닥칩니다. 제사장 마카비 가문의 독립운동과 더불어 강력한 유대교 수호운동이 백성 가운데서 전개가 됩니다. 그 일에 앞장을 서게 되는 율법연구자들이 많이 나타납니다. 그들이 바리새인들입니다. 그들은 레위 제사장 가문에서 하스모니안 왕가를 형성하고 정치적인 권력을 독점하자 그들과 결별을 하고서 백성들의 종교교육만을 전담하게 됩니다. 그래서 분리주의자 하시딤이라고 불리기도 합니다. 예수님 당시에는 그 수가 6,000명이나 된다고 합니다. 그들 가운데 뛰어난 율법학자들이 산헤드린 공회원이 되고 있습니다. 그들이 바로 바리새파의 서기관들’(the teachers of the law who were Pharisees)입니다. 참고로, 바리새파의 서기관들은 사두개인들인 제사장, 장로들과 더불어 산헤드린 공회 내의 삼대 구성원이 되고 있습니다(16:21).

사족을 더하자면, 예수님 당시는 로마제국의 속국시대입니다. 로마는 시리아를 관장하는 총독을 통하여 주전 55년경부터 유대인들의 거주지를 5개의 지역으로 분류했습니다. 그리고 각 지역에 유대교를 관장할 수 있는 산헤드린 공회를 설치했습니다. 특히 예루살렘 지역에는 산헤드린 대 공회를 설치하도록 하고 대제사장과 70인의 공회원을 두도록 했습니다. 그 가운데 서기관들이 들어 있습니다. 서기관들은 공회원이며 때로는 율법학자, 율법선생, 또는 교법사(5:34)로 불리고 있습니다.

끝으로, 유대인 교포출신인 마가나 의사 누가가 바리새인 서기관들을 주목하고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들 가운데 온건한 개방주의자 그룹 힐렐학파가 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찾아온 니고데모(3:1), 장례를 치러주고 자신의 부자 묘택을 빌려준 아리마대 요셉(19:38) 등이 그들입니다. 그들은 유대교를 개혁하고 개방하여 헬라세계에 선교활동을 활발히 하자고 주장을 하고 있습니다. 유대인 교포들이 그러한 힐렐학파의 움직임에 동조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움직임은 보수 샴마이 학파의 강력한 견제에 걸려서 성장하지를 못합니다. 그 대신에 만민구원과 전세계적인 하나님의 나라를 부르짖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운동이 유대 땅에서 전개가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유대교에 실망한 똑똑한 교포 유대인들이 드디어 예수님의 복음활동에 동참하게 됩니다. 그들은 훗날 헬라세계와 로마제국 내에 복음을 전파하고 교회를 개척하는 데 크게 기여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