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47강(마8:14-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3. 19:12

마태복음 강해 제47(8:14-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24()

 

예수님이 베드로의 장모의 열병을 고치시고 그 동네에서 많은 치유의 능력을 선보이신 이유(8:14-17)

 

가버나움에서 이방인인 백부장의 하인의 나병을 왕진도 하지 아니한 채 말씀 한 마디로 낫게 해주신 예수님이십니다(8:5, 13). 그 다음에는 큰 도시 가버나움에 계속 머무시지 아니하시고 구태여 발걸음을 가버나움 근교 동쪽에 있는 가난한 어부들의 마을 벳새다로 향하십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공관복음이 다음과 같이 정확하게 기술을 하고 있습니다; “(가버나움에서 그날의 사역을 마치신, 8:5) 예수께서 베드로의 집에 들어가사 그의 장모가 열병으로 앓아 누운 것을 보시고”(8:14), “(가버나움, 1:21) 회당에서 나와 곧 야고보와 요한과 함께 시몬과 안드레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누워 있는지라, 사람들이 곧 그 여자에 대하여 예수께 여짜온대”(1:29-30), “예수께서 일어나 (가버나움, 4:31, 33) 회당에서 나가사 시몬(베드로, 1:42)의 집에 들어가시니 시몬의 장모가 중한 열병을 앓고 있는지라”(4:38). 여기서 상황을 보다 정확하게 이해하고 예수님 일행의 움직임을 파악해보기 위하여 두 가지 질문을 먼저 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왜 큰 도시 가버나움에 머물지 아니하시고 구태여 가난한 근교마을로 들어가시고 있는 것일까요? 둘째, 그 가운데에서도 특히 가난한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신 이유는 무엇일까요? 가능한 이유를 발견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예수님 일행이 큰 도시 가버나움에서 숙박을 하지 아니하고 오후 늦은 시간에 가난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교외의 마을 벳새다로 발걸음을 옮긴 이유는 한 마디로, 대도시 예루살렘에서 숙박을 하지 아니하고 역시 동쪽 교외마을 베다니로 가서 일박을 한 이유와 동일합니다(8:1-2). 예루살렘이나 가버나움과 같은 대도시에서는 숙박비가 비쌉니다. 예수님과 열두 제자 그리고 갈릴리에서 온 여자 제자들까지 감안을 한다면 일행의 수가 많으므로(8:1-3) 그 단체의 숙식비가 만만하지가 않습니다. 그러므로 가능하다면 근교의 시골마을로 이동을 하여 그곳에서 숙식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하는 것이 가장 바람직합니다. 한 마디로, 전도의 경비 곧 현실적인 경제적 부담을 최대한으로 줄이고자 하는 것입니다.

둘째로, 좀 더 거룩한 목적이 역시 들어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역은 천국의 말씀을 모인 많은 무리에게 선포하는 것, 병자를 치유하고 귀신을 쫓아내는 것, 그리고 격리된 장소에 모인 제자들에게 복음에 대하여 상세하게 가르쳐주는 것 등입니다(4:23-24). 그와 같은 기쁘고 복된 일을 권력자들과 부자들이 살고 있는 큰 도시에서 행할 것만은 아닙니다. 힘이 없고 가난한 백성들에게 더욱 절실한 것이 복음사역입니다. 그리고 유대 땅의 중심지인 남쪽 예루살렘 지역에서만 행할 것도 아닙니다. 변방인 북쪽 갈릴리 지역에서도 역시 사역을 하셔야 합니다. 따라서 예수님은 공평하게 행하시고 있습니다. 그 결과 공생애 기간 중에 가버나움과 벳새다, 예루살렘과 베다니의 이름이 번갈아 가면서 등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훗날 사도 바울의 선교사역에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그는 예수님의 재림이 늘 임박하고 있다고 생각하면서 이방지역 로마제국에 빨리 선교를 하고자 합니다(13:11, 15:23-24). 그래서 대도시 위주로 선교를 하고 교회를 개척하고 있습니다. 시리아의 안디옥에서 파송을 받아 소아시아의 에베소, 마케도니아의 빌립보와 데살로니가, 그리스의 아테네와 고린도, 그리고 로마의 순서로 행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사도 바울을 죄수로 만들어 수송을 하는 도중에 그 배가 난파를 당합니다(27:14-20). 그래서 자연스럽게 오지와 외딴 섬 지역에도 선교가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예수님의 공생애의 움직임을 참조하면 왜 그와 같은 뜻하지 아니한 일정이 잡히고 있는지 알 것만 같습니다.

셋째로, 예수님에게는 벳새다 출신 제자들이 몇 명 있습니다. 시몬과 안드레 형제 그리고 빌립 등입니다(1:44) 그런데 특별히 시몬 베드로의 집으로 들어가고 계십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로 추정이 됩니다; 첫째, 그 집이 자기의 집처럼 편하기 때문입니다. 시몬은 비록 가난하지만 동생 안드레는 물론 장모까지 함께 모시고서 살고 있는 인심이 좋은 사람입니다(1:29-30). 그러므로 시몬과 나이가 비슷한 예수님은 제자 시몬의 집이 마치 절친한 친구의 집처럼 마음이 편한 것입니다. 둘째, 병자가 그곳에 있음을 이미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보통 병자가 아닙니다. 다음과 같이 예수님의 관심을 끌기에 충분한 이유를 가지고 있는 여인입니다;

(1)  마치 친구처럼 지내고 있는 나이든 제자 시몬의 장모입니다. 예수님 일행이 신세를 많이 지고 있는 그 집의 어른입니다.

(2)  평소 예수님 일행의 복음사역을 돕기 위하여 헌신적으로 손님대접을 했던 여인입니다. 그래서 시몬의 장모가 열병으로 고생하고 있는 것을 영적인 눈으로 미리 보시고 있는 예수님이 평소보다 조금 일찍 가버나움에서의 사역을 마치고 벳새다 시몬의 집으로 가신 것으로 보입니다.

(3)  시몬의 장모의 평소 헌신을 잘 알고 있는 일행들이 모두 예수님께 당장 치유를 해달라고 이구동성으로 부탁을 올리고 있습니다(1:30, 4:38).

(4)  예수님이 신위적인 능력으로 열병을 낫게 해주자 시몬의 장모는 당장 예수님 일행을 대접하기 위하여 나서고 있습니다(1:31, 39). 평소 손님대접하기를 힘썼던 그 여인의 성품을 넉넉하게 엿볼 수 있게 해주고 있습니다. 그러한 헌신적인 여인의 병을 우선적으로 고쳐주고 계시는 예수님의 모습을 복음서가 잘 보여주고 있는 것입니다.

 

시몬의 장모가 예수님의 능력으로 열병에서 금방 낫게 되었다는 소문이 벳새다 온 동네에 삽시간에 퍼졌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 일행은 그날 밤 편한 잠을 잘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온갖 병자와 장애자 그리고 귀신들린 환자를 동네 주민들이 모두 데리고 왔기 때문입니다. 날이 이미 저물었는데도 계속 데리고 옵니다(8:16a). 예수님은 그들이 불쌍하다고 모두 말씀으로 귀신을 쫓아내고 질병을 다 고쳐주고 계십니다(8:16b). 예수님이 그들의 다음과 같은 처지를 잘 알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1)  하루 종일 갈릴리 호수에서 어로작업을 하여 겨우 먹고 사는 어부들의 마을입니다. 혹은 인근 대도시 가버나움에 가서 일을 해주고 피곤한 몸으로 많지 아니한 일당을 받아서 저녁에 돌아오는 사람들입니다.

(2)  그러므로 환자인 가족을 제 때에 도시의 의원에게 데리고 갈 수가 없습니다. 시간과 돈이 모두 없는 가난한 사람들입니다. 그들이 그 저녁 늦은 시간에 체면불구하고 예수님에게 환자를 데리고 오고 있습니다(8:16a).

(3)  그 눈물이 나는 속사정을 깊이 알고 계시는 예수님께서 자신의 잠자는 시간을 줄이면서까지 정성을 다하여 그들을 치유해주고 있습니다(8:16c). 그리고 귀신을 철저하게 쫓아내어주고 있습니다(8:16b).

(4)  이제부터는 깨끗한 몸과 마음으로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라고 복음을 설명해주는 것도 잊지 아니하신 것으로 추정이 됩니다. 

끝으로, 사도 마태는 스승이신 예수님의 그 마음을 알 것만 같습니다. 그 역시 자신의 집을 가지고 있는 나이가 제법 든 제자였기 때문입니다(9:10). 그래서 다소 학식이 있는 마태는 히브리 경전에 실려 있는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찾아서 메시아 예수님에 대하여 다음과 같이 그 행적을 적고 있습니다; “우리의 연약한 것을 친히 담당하시고 병을 짊어지셨도다 함을 이루려 하심이더라”(53:4, 8:17). 요컨대, 나사렛 예수님이 바로 여호와의 종이며 그리스도라는 주장인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