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45강(마8: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 17:10

마태복음 강해 제45(8: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22()

 

산상수훈의 복음이 능력으로 역사하기를 시작하다; 불치병을 가진 나병환자가 예수님을 창조주가 보내신 메시아로 알고서 담대하게 신앙고백을 하자 그 은밀한 믿음에 대하여(8:1-2) 주님으로부터 은밀한 응답이 상급으로 주어지다(8:3-4).

 

사도 마태는 그의 복음서 제5장에서부터 제7장에 이르기까지 예수님께서 산에서 제자들에게 가르쳐주신 복음에 대하여 그 핵심내용을 간추려서 싣고 있습니다. 소위 산상수훈으로 알려진 그 가르치심이 끝나자 예수님이 제자들과 함께 하산을 하고 있습니다(8:1a). 그 동안 예수님 일행이 산에서 내려오기를 기다리고 있었던 많은 백성들이 다시 그들을 에워싸게 됩니다(8:1b). 그들 가운데 더러는 예수님께서 전해 주시는 천국의 복음을 듣고 싶어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불치의 병이나 장애를 고치고자 예수님을 만나 뵙기를 소원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사도 마태는 당시 불치의 병으로 알려지고 있는 나병을 가진 환자 한 사람이 즉석에서 낫게 된 이적에 대하여 가장 먼저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8:2-4).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그것은 다음과 같이 산상수훈의 가르침 가운데 일부가 그 이적과 관련이 되고 있기 때문일 것입니다;

첫째로, 하나님 신앙의 출발은 하나님이 창조주라는 사실을 솔직하게 인정하는 것입니다(1:1, 5:34-36). 환언하면, 인간의 힘으로 할 수 없는 그것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하실 수 있다는 사실을 겸손하게 라고 인정하는 것입니다(5:37). 본문에서는 나병환자가 그 점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예수님을 따라오면서 절을 하고 있습니다(8:2a). 그리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8:2b). 그 의미는 자신의 나병 그 불치의 병을 완전히 치료하실 수 있는 유일하신 존재가 창조주 하나님이신데 그 분의 권능을 가지고 이 세상에 구원을 주기 위하여 메시아가 오셨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3:2).

둘째로, 그 나병환자가 은밀하게 자신의 신앙을 고백하고 있다는 사실을 사도 마태는 다음과 같이 시사를 해주고 있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8:4). 많은 무리가 따르고 있었지만 거의 눈치를 채지 못하도록 은밀하게 병 고침과 후속조치가 취해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 나병환자는 살짝이 신앙고백을 했으며 조용하게 지시사항을 듣고서 물러가고 있습니다. 그 모든 행위는 은밀하게 기도를 하고 긍정적인 응답을 은밀하게 얻는 것과 관련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6:6).

셋째로, 그렇게 은밀하게 신앙고백과 치료의 행위가 이루어질 수밖에 없는 속사정이 있습니다. 율법을 기록하고 있는 모세오경에서 다음과 같이 규정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나병환자는 옷을 찢고 머리를 풀며 윗입술을 가리고 외치기를 부정하다 부정하다 할 것이요, 병 있는 날 동안은 늘 부정할 것이라. 그가 부정한즉 혼자 살되, 진영 밖에서 살지니라”(13:45-46). 한 마디로, 불치의 병인 나병은 전염병으로 분류가 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나병환자는 격리의 대상입니다. 사람이 살고 있는 진영의 바깥에서 혼자 살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이 모르고 자신에게 접근을 해올 경우에는 먼저 자신이 부정한 나병환자임을 밝혀서 접근을 막아야만 합니다. 비록 모세의 친누나인 미리암이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나병이 발병하여 낫기 전까지 일주일간 그러했습니다; “미리암은 나병에 걸려 눈과 같더라. 아론이 미리암을 본즉 나병에 걸렸는지라”(12:10), “미리암이 진영 밖에 이레 동안 갇혀 있었고 백성은 그를 다시 들어오게 하기까지 행진하지 아니하다가”(12:15). 따라서 나병환자가 버젓이 대낮에 많은 사람들이 몰려들고 있는 예수님 앞으로 접근을 한다고 하는 것은 불가능한 일입니다. 그렇다면 사도 마태가 허위의 사실을 기록하고 있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그것은 다음과 같은 세상살이의 이치를 따져보면 사실일 수 밖에 없습니다;

(1)  열두 해 혈루병(血淚病, 피가 몸에서 계속 흘러내리는 병)으로 고생을 하던 여인의 경우가 본문의 나병환자의 경우와 아주 비슷합니다. 그 내용을 참조하면 다음 사실을 알 수 있습니다; “불치의 병이란 이 세상에서 의학적으로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는 병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대로 방치할 수가 없습니다. 재산이 남아 있는 동안에는 명약과 명의를 찾아서 전국방방곡곡을 떠돌게 됩니다. 마침내 재산이 모두 탕진이 되고 이 세상에서 낫게 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는 사실이 완전히 확인이 되고 나면 그때서야 불치의 병자들이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찾게 됩니다”(5:25-29).

(2)  그 몸에서 피를 흘리고 있는 동안 그 여인은 부정합니다(15:25-27). 그러므로 혈루병 여인은 격리의 대상입니다. 문둥병자와 마찬가지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목숨을 걸고서 예수님 앞으로 나아오고 있습니다. 이 세상에서 자신의 병이 나음을 얻을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 그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그것은 영생의 구원을 얻고자 하는 거창한 것이 아닙니다. 아니면 온 인류에게 구원을 주기 위하여 자신의 남은 인생을 복음의 일꾼으로 사용해달라고 하는 헌신적인 서원도 아닙니다. 다만 자신의 문제가 가장 절실하기 때문에 이 세상을 구원하기 위하여 오신 그리스도를 당장 자신의 병을 낫게 해주는 명의로 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을 자신의 불치병을 낫게 해주시는 고마운 분으로 모시고자 하는 것입니다.

(3)  그것은 초보적인 신앙이지만 그 절실함은 보통의 경우를 훨씬 초월하고 있는 절박한 것입니다. 그러한 경우에 있어서는 율법에서 격리 수용을 명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을 따질 수 있는 겨를이 없습니다. 그리고 사람들의 눈치를 보지도 않습니다. 그저 예수님 앞에 나아가서 그 옷을 붙들고서 사정을 할 따름입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8:2). 만약에 주변에 몰려든 사람들에게 자신이 나병환자라는 사실이 알려지게 되면 돌에 맞아 죽을 입장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나병환자는 예수님에게 접근을 한 것입니다. 그것은 매우 은밀한 것이며 목숨을 걸고서 사정을 하고 있는 일생일대의 가장 절실한 도박이라고 하겠습니다.  

 

넷째로, 지금까지 살펴본 문둥병자의 처지와 그 때문에 이루어지고 있는 그 은밀한 접근을 생각하면 예수님의 답변도 은밀할 수밖에 없음을 알게 됩니다. 그 문둥병자는 사람들의 귀에 자신의 병이 문둥병이라는 사실이 구체적으로 밝혀지지 아니하도록 은밀하게 예수님에게 속삭이고 있습니다; “주여 원하시면 저를 깨끗하게 하실 수 있나이다”(8:2). 그 말이 무엇을 의미하고 있는지 예수님께서 즉각 알아채시고 있습니다. 그 사람은 사람들 앞에 공개적으로 나설 수가 없는 문둥병자입니다. 그래서 그 답변도 나병이라는 병명을 전혀 언급하지 않는 것입니다;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8:3a), “삼가 아무에게도 이르지 말고 다만 가서 제사장에게 네 몸을 보이고 모세가 명한 예물을 드려 그들에게 입증하라 하시니라”(8:4).

끝으로, 본문에 나타나고 있는 나병환자의 경우나 공관복음에서 공히 기록이 되고 있는 열두 해 혈루병을 앓고 있던 여인의(9:20-22, 5:25-34, 8:43-48) 경우나 모두 치유의 기적을 맛보고 있습니다. 세상 그 어떤 의원이나 능력자도 깨끗함을 줄 수가 없었는데 나사렛 예수가 그 불치의 병을 낫게 해주고 있습니다. 당장은 워낙 병 치료가 급한지라 염치불구하고 뛰어들어서 나음을 얻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다음이 문제입니다. 예수님이 손을 내밀어 그 몸에 대시면서 내가 원하노니 깨끗함을 받으라고 말했을 뿐입니다(8:3a). 그런데 신기하게도 나병이 떠나가고 있습니다(8:3b). 혈루병 여인의 경우에는 더욱 기가 막힙니다. 겨우 접근하여 예수님의 옷자락을 만졌을 뿐인데도 피가 흘러내리는 근원이 깨끗하게 말라버린 것입니다(5:27-29). 한 마디로,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예수님을 통하여 이 땅에 흘러내리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도 유일한 소망을 창조주 하나님께 두고 있는 자들에게 임하고 있는 은혜입니다. 그 은혜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오늘 날에도 이 세상에 오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사도 마태는 산상수훈을 적고 나서 이제는 나병환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이 원하시는 신앙인의 모습을 그 가운데 다음과 같이 담아두고 있습니다; 첫째, 사람들은 모두 죄인이며 불치의 나병환자와 같다. 이 세상에서는 깨끗함을 받을 수가 없다. 둘째, 그러므로 유일한 소망을 창조주에게 두고서 하나님께 나아오라. 그 심정으로 하나님이 보내신 그리스도 예수님에게 나아와서 소원을 말하라. 셋째, 은밀한 중에 보시는 하나님께서 예수님을 통하여 치유하여 주실 것이다. 넷째, 하나님의 능력으로 깨끗함을 받은 인생이니 이제부터는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인생을 살아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7:21). 그것이 바로 사도 마태가 전하고자 하는 예수님의 복음의 핵심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