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44강(마7:24-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6. 2. 00:38

마태복음 강해 제44(7:24-2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20()

 

예수님이 선포하시는 말씀의 특징과(7:13-27) 백성들이 그 가르치심에 놀란 이유(7:28-29)

 

마태복음 제7장에 실려 있는 예수님의 말씀은 한 마디로, 단정적이고 확정적입니다. 겉으로 보면, 예수님의 말씀은 온유하고도 겸손해 보입니다. 하지만 그 내용을 깊이 음미를 해보면 굉장히 단호합니다. 외식으로 일관하고 있는 율법주의자에게는 하나님의 말씀이 그들과 상관없는 것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7:1-6). 그리고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지 아니하고 백성들 앞에서만 거룩한 척 하며 축복만 빌어주는 그와 같은 종교생활을 계속하게 되면 심판을 견디지 못하고 멸망하게 된다는 강력한 경고입니다(7:13-27).

과연 그러한 내용인지 알기 위하여 사도 마태의 글의 의미를 한번 재구성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유대인들은 자신들의 눈에 들보가 들어 있는 데도 그것을 깨닫지 못하고 상대방을 비판하고 있다. 사람의 중심을 보시는 하나님의 눈을 깨닫지를 못하고 사람들의 눈만 의식하면서 율법을 지키고 스스로 의인이라고 생각하고 있다. 그와 같은 외식적인 신앙생활을 청산하라고 지적을 했지만 요지부동이다. 그러므로 거룩한 하나님의 말씀을 마치 개에게 던지는 것과 같다. 나는 사람의 중심을 꿰뚫고 있는 하나님 말씀의 진의를 복음으로 전했지만 그들은 세상이 인정해주는 의로움과 정치적인 영향력 그리고 종교적인 기득권만을 탐하고 있는 돼지와도 같아서 나와 너희들을 해칠 것만 같다. 그들은 진정으로 하나님의 뜻을 구하거나 실천하고자 노력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대로 남을 대접하지 아니하고 있다. 그저 종교적인 기득권을 누리고 대접만을 받으려고 한다. 그러므로 그와 같은 거짓 선지자들을 조심하고 좁은 문으로 들어가라. 복음을 듣고 회개를 하며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만이 천국에 들어갈 것이다. 결론적으로, 회개하지 아니하고 복음을 영접하지 아니하는 자들은 예수님 말씀의 반석이 없어서 심판의 날을 견디지를 못하고 망하게 될 것이다”(7:1-27).

예수님 말씀의 깊은 의미를 묵상해보면 참으로 참혹한 말씀입니다. 선민 유대인들에게 히브리 정경을 가르치면서 백성들의 존경을 한 몸에 받아오고 있는 바리새인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진정한 이해와 신앙의 기반이 없어서 심판의 날에 망하고 만다는 결론이기 때문입니다(7:24-27). 그러므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유대인들이 크게 놀라고 있습니다(7:28). 수백 년 동안 듣지 못하고 있던 강력한 질책의 말씀이 쏟아지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마치 성령님이 이 땅에 오시게 되면 행하실 것으로 예언이 되고 있는 세 가지 질책과 같은 것입니다(16:8-11).

분명히 히브리 정경 선지서에는 기록이 되어 있지만 그 오랜 세월 별로 강조가 되지 아니했던 하나님 말씀의 뜻이 다시 드러나고 있는 장면입니다. 그저 전설로만 알고 있었던 그 옛날 선지자들의 음성이 다시 들려오고 있는데 그것은 그들 백성들이 익숙한 바리새인들이나 서기관들의 성경해석과는 많이 다른 것입니다(7:29). 그저 백성들의 입맛에 맞고 듣기가 좋은 말씀의 해석이 아닙니다. 따가운 질책이며 마치 깊은 마음 속의 음흉함을 햇빛 아래에 끄집어 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그 말씀 앞에 감히 변명조차 할 수가 없습니다. 창조주의 권위와 같은 서늘한 메스가 그 가운데 들어 있기 때문입니다(7:29, 4:12-13).

참고로, 유대 땅에서는 주전 400년에서 420년 사이로 추정이 되고 있는 구약의 마지막 선지자 말라기의 활동 이후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에 서는 날 주후 27년까지 선지자가 나타나지를 못했습니다. 만약 선지자의 외침이 있었다고 한다면 말라기의 글과 마태복음의 글 사이에 또 다른 선지서가 오늘 날 자리를 잡고 있을 것입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전통적으로, 유대 땅에서는 기름부음을 받게 되는 세 가지 종류의 하나님의 일꾼이 있습니다.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입니다. 그들은 기름부음을 받음으로 말미암아 성령님이 임재를 하실 수 있는 조건을 갖추게 됩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통치를 하거나 제사를 드리거나 말씀을 선포하게 되면 하나님의 영이 임재를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가운데 왕과 제사장은 세습제입니다. 마치 계급이 정해져 있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나 자신이 원한다고 하여 왕좌를 차지하거나 유다 나라에서 제사장이 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가문과 상관없이 하나님의 큰 일꾼이 될 수 있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선지자가 되는 길입니다. 누구에게나 하나님의 영이 임하시고 성령님의 감동으로 깨달은 말씀을 백성들에게 선포하고 가르칠 수가 있으면 선지자가 될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구약시대에 있어서 선지자는 평민들이 참여할 수 있는 유일한 하나님의 종의 모습입니다. 그리고 그 만큼 선지자의 생도가 될 수 있는 등용의 문도 넓은 것이었습니다(삼상19:18-20, 왕하2:3, 5, 7, 15).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전 400년경부터 주후 27년에 이르기까지 430여년간 선지자의 그림자가 유대인들의 땅에 일체 비치지를 아니했다고 하는 사실이 참으로 놀라운 것입니다. 그것은 한마디로, 하나님께서 유대교인들의 땅을 떠나버리신 것과 같습니다(6:3). 어찌하여 그러한 참담한 결과가 그 땅에 임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유대인들이 선지자들의 외침에 귀를 기울이지를 아니했으며 그들을 탄압했기 때문입니다.

구체적으로, 선민 유대인들이 회개를 하고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대로 그대로 행하라고 하는 선지자들의 소리를 듣기 싫어한 것입니다. 예를 들면, 430년만에 유대 땅에 나타난 선지자 세례 요한이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 안디바에게 이복동생 빌립의 아내 헤로디아를 자신의 여자로 취한 것이 잘못이라고 질책을 했지만 헤롯 안디바는 오히려 세례 요한을 감옥에 가두어버리고 말았습니다(14:3-4). 이두매 왕가의 왕이라고 하더라도 그 역시 유대교로 개종을 하고 있는 인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선지자의 소리를 싫어하고 투옥을 시켰으며 마침내 백성들의 눈치를 보다가 처형을 하고 맙니다(14:5-12). 그와 같은 시대가 이스라엘의 역사에 있어서 소위 제2성전의 시대인 중간기입니다.

바로 그와 같은 시대에 나사렛 예수님이 또 다른 선지자로 유대 땅에 나타나신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의 성경말씀의 해석이 유대인들의 귀에 생소할 수 밖에 없습니다. 430년 만에 생생하게 라이브로 들어보고 있는 선지자의 외침입니다. 그리고 그것도 하나님의 아들이 직접 완전 계시로서 하나님 말씀의 진의를 복음으로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5:30, 7:16-17). 따라서 백성들의 평가가 다음과 같을 수 밖에 없습니다; “예수께서 이 말씀을 마치시매 무리들이 그의 가르치심에 놀라니 이는 그 가르치시는 것이 권위 있는 자와 같고 그들의 서기관들과 같지 아니함일러라”(7:28-2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