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29강(마5:17-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5. 21:54

마태복음 강해 제29(5:17-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5()

 

율법의 본뜻을 드러내려는 선지자들의 노력, 그리고 율법의 요구를 만족시키고 있는 예수님의 복음의 능력(5:17-20)

 

예수님이 말씀하신 팔복의 내용은 하나님의 복이 어떠한 사람에게 집중되고 있는가를 정확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5:3-10). 그런데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는 복의 대상은 고대사람들이 생각하고 있는 복 받은 사람의 경우와 상당히 다릅니다. 거의 정반대의 개념입니다. 만약 선민인 유대인을 포함하여 세상사람들에게 복을 받은 사람이 어떠한 사람이냐고 묻게 되면 다음과 같이 답변을 할 것입니다; 복을 받은 사람은 이 세상에서 (1) 부유하고, (2) 애통한 일이 피해가며, (3) 강한 자이고, (4) 의로운 자로 추앙을 받으며, (5) 남의 동정을 받을 필요가 없는 자이고, (6) 도덕성 시비에 휘말리지 않으며, (7) 강력한 지배력을 행사하고, (8) 백성들의 지지를 받고 있는 자라고 할 것입니다.

선민인 유대인들은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전해준 율법으로 이해를 하고 있습니다. 그 율법을 잘 지킴으로 세상에서 형통하며 복 받은 자의 삶을 원 없이 누릴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전혀 반대의 측면에서 천국의 복과 현세의 복을 말씀하고 있습니다. 이제는 율법과 복음 사이의 충돌이 예상됩니다. 그렇지만 사도 마태는 재빨리 그러한 충돌이 없을 것이라고 예수님의 입을 빌려서 다음과 같이 적고 있습니다; “내가 율법이나 선지자를 폐하러 온 줄로 생각하지 말라. 폐하러 온 것이 아니요, 완전하게 하려 함이라.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천지가 없어지기 전에는 율법의 일점일획(一点一劃, 하나의 점 하나의 획)도 결코 없어지지 아니하고 다 이루리라”(5:17-18).

율법을 지키는 방법은 기본적으로 두 가지입니다; 첫째, 마음 속으로부터 진지하게 율법을 지키는 것입니다. 율법을 하나님의 말씀인 줄 알고서 하나님을 사랑하는 마음으로 지킵니다. 율법을 지키는 것은 자신과 하나님 사이의 문제입니다. 그러므로 신앙양심에 입각하여 남이 보든지 아니 보든지 상관하지 아니하고 율법을 모두 지키려고 노력을 하는 것입니다. 둘째, 율법을 행위규제적인 종교국가의 법률로 이해를 하고서 지키는 것입니다. 마치 법률을 지키는 것처럼 법에 저촉되는 행위만 하지 아니하면 곧 법을 준수한 백성으로 간주가 됩니다. 그것은 이웃의 눈만 피하면 됩니다. 정리를 해보자면 전자는 소위 마음에 할례’(10:16, 2:29)에 해당이 되는 개념입니다. 반면에 후자는 외식주의’(23:5, 13)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은 복음입니다. 그것은 외형적인 만족이나 정의로움보다는 내면적인 의로움과 충만함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현세적인 눈에 보이는 복이라기 보다는 내면 깊은 곳에서 솟아나오고 있는 생명수와 같은 복입니다(4:14). 그러한 차원이 높고도 깊은 복은 사람이나 세상이 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창조주이신 하나님께서 줄 수 있는 구원과 영생의 복입니다. 율법으로 그 복을 얻지를 못하고 예수님의 복음으로 그것을 얻을 수 있다고 한다면 이제는 율법을 폐기해야만 하는 것일까요? 그와 같은 의문에 대하여 예수님이 위와 같이 제자들에게 속 시원하게 설명을 해주고 있습니다. 참고로, 그 말씀의 의미를 나름대로 새겨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복음은 율법을 폐기하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완전하게 만들고자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은 율법을 주신 하나님의 취지를 잘못 받아들여서 형식적인 율법생활을 영위하고 있는 선민들에게 대오각성을 촉구하고 있는 내용입니다. 이제는 마음 속으로부터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그 사랑으로 공동체의 신앙고백이며 생활규범인 율법을 지켜나가도록 하라는 것입니다

구약시대에 있어서도 많은 선지자들이 예수님과 같은 생각으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의 대오각성을 촉구했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외침은 헛된 메아리가 되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은 선지자들의 선포내용이라고 하더라도 유대인들이 따르기를 거부했습니다(7:51-52). 그 이유는 자신들이 지키고 있는 전통적인 율법의 가르침과 어긋난다고 판정을 하였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어떻게 하면 성도들이 예수님의 복음을 받아들이고 그것으로 율법을 완전히 지킬 수가 있을까요? 예수님의 처방의 일단이 다음과 같이 적혀있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이 계명 중의 지극히 작은 것 하나라도 버리고 또 그같이 사람을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지극히 작다 일컬음을 받을 것이요, 누구든지 이를 행하며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크다 일컬음을 받으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너희 의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낫지 못하면 결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하리라”(5:19-20).

풀이를 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1) 성도들은 서기관과 바리새인보다 더 의로워야 천국에 들어갈 수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5:20). 성도들의 의와 바리새인의 의가 어떻게 다른지에 관하여 사도 바울은 다음과 같이 실마리를 제공하고 있습니다. “그들(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하나님께 열심이 있으나 올바른 지식을 따른 것이 아니니라. 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리스도는 모든 믿는 자에게 의를 이루기 위하여 율법의 마침이 되시니라”(10:2-4). 한 마디로, 천국은 자신의 의로움으로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공의를 예수님을 통하여 배우고 그것을 실천할 때에 들어갈 수가 있습니다.

(2) 예수님의 복음은 역시 하나님의 말씀인 율법의 입법취지를 밝혀주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복음으로 율법을 재조명하고 그 뜻을 깨달아 실천하면서 가르치게 되면 천국에 너끈히 들어가며 존귀함을 얻을 수가 있습니다(5:19b).

(3) 하지만 복음과 율법을 갈등과 대립관계로만 보고서 취사선택을 하여 가르치게 되면 문제가 발생하게 됩니다. 그와 같이 행하는 자는 천국에서 그 존재가 미미해지고 말 것입니다(5:19a). 반대로, 율법을 완전히 행하면서 그것을 백성들에게 가르치는 자는 천국에서 높임을 받을 수가 있습니다.

여기서 율법을 완전히 행한다고 하는 것은 행위로만이 아니고 마음 속으로도 완전히 지키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과연 그럴 수가 있을까요? 사람의 능력으로는 불가능하다는 것이 사도 바울의 발견입니다(7:22-25). 오로지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가능해지는 것입니다(8:1-8:4). 그러므로 그저 사람의 안목으로 율법을 취사선택하여 사람들을 가르치는 것은 잘못입니다. 그것은 율법을 완전히 이루기 위한 예수님의 복음이 아닌 것입니다. 그렇게 행하는 자는 천국에서 작은 자로 취급이 될 것이라고 예수님께서 언급을 하시고 있습니다. 결론적으로, 율법을 제대로 행하기 위해서라도 하나님 말씀에 대한 온전한 깨달음과 성령님의 도우심이 절실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