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28강(마5:13-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5. 03:15

마태복음 강해 제28(5:13-1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4()

 

마태가 복음을 설명하기 위하여 동원하고 있는 소금과 빛은 유대인들의 삶에 있어서 어떻게 친숙한 것인가? 소위 빛은 갈릴리에서, 소금은 염해에서라고 말할 수 있는 근거(5:13-16)

 

가나안 지도를 약식으로 그리는 것은 상당히 쉽습니다; 먼저, 세로줄을 나란히 두 개 그립니다. 왼쪽 세로줄이 지중해를 접하고 있는 가나안 땅의 해안선입니다. 그 다음에 오른 쪽 세로줄의 윗부분과 아랫부분에 각각 큰 동그라미와 작은 동그라미를 그립니다. 위의 큰 동그라미가 갈릴리 호수이고 아래의 작은 동그라미가 일명 사해로 불리고 있는 소금바다 곧 염해(鹽海)입니다. 갈릴리 호수에서부터 물이 아래로 흘러서 낮은 지역 사해로 들어갑니다. 그런데 사해 남쪽은 지면이 높아지므로 물이 아래로 흐르지를 못하고 그만 갇혀버립니다. 물이 빠져나갈 수가 없으므로 사해는 죽은 바다와 같습니다. 설상가상으로 그곳의 암염’(巖鹽, 바위소금)이 물에 녹아서 염도가 무지하게 높습니다. 따라서 물고기가 살 수가 없습니다. (, 반대방향)으로 삼투압(渗透壓)이 작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물고기 몸 속의 염분이 농도가 짙은 바깥으로 빨려나가게 되니 생물학적으로 생존이 불가능해지고 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가나안 땅의 지형적인 특징을 잘 알고 있는 성경학자들이 흔히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갈릴리 호수가 물을 흘려 보내듯이 그렇게 하나님의 은혜를 세상에 흘려 보낼 수 있는 복의 통로로서의 성도의 삶을 살아가라. 만약 은혜를 자기 자신만 누리겠다고 할 때에는 사해와 같이 죽은 믿음이 되고 말 것이다”. 그런데 사도 마태가 본문에서 전하고 있는 복음은 더 큰 의미를 다음과 같이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로, 짠맛을 세상에 전해줄 수 있는 소금과 같은 인생을 살아가라고 합니다(5:13). 사람이 소금을 먹지 아니하면 생존이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고대사회에서 소금의 값이 비쌉니다. 역사적으로, 염해 아래쪽의 고대도시들이 소금을 팔아서 번창했습니다. 아브라함 시대에 소돔, 고모라, 아드마, 스보임 등의 도시국가가 부자로 살다가 그만 사치와 향락 그리고 성적인 타락으로 망하게 됩니다(18:20, 19:24-25). 그 다음에 호리 족속들이 그 땅을 차지하고서 중개무역과 위락(慰樂)산업으로 또 부유해집니다(36:20, 24). 훗날 그들을 정복한 에돔 족속이 바로 아브라함의 손자인 에서의 후손들입니다(36:9). 그들은 하스모니안 왕가에 의하여 나중에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소금을 팔아서 부자가 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그저 아브라함처럼 하나님의 큰 복을 받아서 가는 곳곳마다 이방인들에게 나누어 주면 됩니다(12:3). 구체적으로 아브라함과 그의 믿음을 계승한 이삭은 블레셋의 땅에서 우물을 파서 원주민들과 나누어 함께 사용하고 있습니다(26:15-22). 그렇지만 그들이 더 좋은 것을 나누어주고 있습니다. 그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모시고 사는 선지자의 거룩한 삶의 모습을 이방인들에게 생생하게 보여준 것입니다(20:7, 23:6, 26:28). 그것이 소금의 짠맛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있는 성도의 삶의 모습입니다.

아브라함은 장조카인 롯처럼 도시의 향락에 물이 드는 사람이 아닙니다(13:10-11, 19:8). 그리고 이삭은 이스마엘처럼 무력으로 성공하기를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믿음의 선조들인 아브라함과 이삭 그리고 야곱은 끝까지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을 믿으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의지하는 인생을 살아가게 됩니다(21:33, 22:12). 그것이 세상사람들에게 생명을 살리는 진정한 소금을 나누어주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사도 마태가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니 소금이 만일 그 맛을 잃으면 무엇으로 짜게 하리요. 후에는 아무 쓸데없어 다만 밖에 버려져 사람에게 밟힐 뿐이니라”(5:13).

사도 마태는 유대인들에게 역사적으로 익숙한 소금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복음적인 의미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소금을 팔아서 부자가 되려고 하지 말고 소금이 필요한 세상에 그것을 나누어주라고 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한편, 영적인 타락을 막고 세상의 부패를 방지하자면 어떻게 살아가야만 하는 것일까요? 믿음의 열조들처럼 나아가서는 예수 그리스도처럼 살아가야만 할 것입니다. 그것이 인생의 짠맛을 잃어버리지 아니하고 소금처럼 세상을 이롭게 하는 방법입니다.

둘째로, 사도 마태가 복음의 전파를 갈릴리의 빛으로 비유하고 있습니다(5:14-16). 그의 생각은 선지자 이사야의 예언을 받아들인 것입니다; “전에 고통 받던 자들에게는 흑암이 없으리로다. 옛적에는 여호와께서 스불론 땅과 납달리 땅이 멸시를 당하게 하셨더니 후에는 해변 길과 요단 저쪽 이방의 갈릴리를 영화롭게 하셨느니라.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9:1-2). 역사적으로, 갈릴리에 거주하고 있던 지파들은 크게 빛을 보지를 못했습니다. 그들은 유다 지파나 에브라임 지파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변방 갈릴리라고 불리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나사렛은 오지이며 산골입니다. 그곳에 다윗의 후손과 대제사장 가문이 숨어서 살아왔다고 하더라도 그들이 역사의 주인공으로 재등장하는 기회는 거의 없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아들 메시아가 그곳에서 자라고 있습니다(2:23). 그는 갈릴리와 그 주변지역에 집중적으로 복음을 전파하고 병자들을 고쳤습니다(4:23-25). 그리고 예수님의 제자 12명 가운데 8명이 갈릴리 출신으로 채워지고 있습니다(9:9, 10:24, 2:13-14, 1:40-47, 21:2). 따라서 복음의 빛은 변방 갈릴리에서 온 유대와 이방 땅으로 비쳐오고 있는 것이 사실입니다.

갈릴리의 빛 그 복음의 전파와 관련하여 사도 마태는 한 가지 사실을 더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아무리 복음의 빛이 온 사방으로 비치지 못하도록 방해를 한다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뜻에 의하여 반드시 온 세상 사람들에게 비추어지고 말 것이라는 주장입니다; “너희는 세상의 빛이라. 산 위에 있는 동네가 숨겨지지 못할 것이요, 사람이 등불을 켜서 말 아래에 두지 아니하고 등경 위에 두나니 이러므로 집안 모든 사람에게 비치느니라. 이같이 너희 빛이 사람 앞에 비치게 하여 그들로 너희 착한 행실을 보고 하늘에 계신 너희 아버지께 영광을 돌리게 하라”(5:14-16).

조금 알기 쉽게 다시 정리를 해봅니다;

(1) 사도 요한은 예수님이 세상의 빛이라고 증거하고 있습니다(8:12). 사도 마태는 성도들도 세상의 빛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5:14). 그 이유는 성도들이 예수님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생명의 빛으로 받아서 생활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4-5, 17:8, 13-14).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에 이어서 초대교회 때부터 성도들을 통하여 이 세상에 생명의 빛을 밝히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그리스도의 제자로서 제대로 살아가기만 하면 세상은 밝아질 것이며 어두움의 세력들이 물러가게 될 것입니다(1:5, 3:19-21, 12:35-36, 16:33).

(2) 예수님은 산 위에 있는 동네 나사렛 출신입니다. 가나출신 나다나엘은 갈릴리 산골에서 무슨 메시아가 나오겠느냐고 친구 빌립에게 반문했습니다(1:46). 그리고 고향사람들이 예수님을 가난한 목수 요셉의 아들이라고 그를 박대했습니다(13:55-57). 그러나 예수님의 복음의 빛이 결코 그 때문에 가려진 것이 아닙니다. 그 빛은 예루살렘과 온 유대와 사마리아와 그리고 헬라 세계와 땅끝까지 자꾸만 퍼져나가고 있습니다(12:20-24, 1:8).

(3) 하나님의 말씀이 이 세상에서 성취가 되고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세상 끝까지 퍼져나가는 것은 어째서 그런 것일까요? 사도 마태는 그 이유를 하나님의 섭리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이 생명의 빛을 필요로 하고 있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습니다. 따라서 사람들로 하여금 마치 등불을 등경 위에 높이 두듯이 복음의 빛을 높이 들어서 멀리 비추도록 만들고 있습니다(5:15). 아무리 정치체제나 이데올르기가 복음이 전파되어오는 것을 차단하려고 해도 그것은 실패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의 마음 속에 천국이 임하도록 섭리를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17:21, 24:14). 그리고 성숙한 신앙인들을 많이 만들어내어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도록 만들고 계십니다(5:1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