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31강(마5:27-3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6. 23:00

마태복음 강해 제31(5:27-3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27(주일)

 

7계명을 주신 하나님의 진정한 뜻을 예수님이 밝히시다(5:27-32)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전한 십계명 가운데 일곱 번째의 계명은 간음하지 말라는 것입니다(20:14, 5:18). 간음이라고 하는 것은 유부남과 유부녀가 혼외정사를 하는 것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만드신 아담과 하와라는 일부일처제’(一夫一妻制) 가정의 윤리(2:20-25)를 파괴하는 행위입니다. 따라서 살인죄 다음에 위치를 하고 있습니다. 사람의 목숨을 빼앗는 것 다음으로 악한 행위가 바로 사회의 기초인 가정을 파괴하는 행위라는 뜻입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땅에 들어와 원주민들의 우상문화에 물이 들게 되면서 그 문제가 두드러지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나안 원주민들의 주신(主神)인 바알 신을 섬기면서 자신들의 성적인 타락을 합리화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알 신은 농사의 신이며 풍요의 신입니다. 그런데 남자 신 바알 혼자서 그 땅에 풍년을 가지고 올 수가 없습니다. 반드시 여신인 아스다롯과 함께 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바알 신을 섬기는 백성들 가운데 남성들이 종교적으로 다산을 기원하는 행사를 치러야만 합니다. 그것이 바로 바알을 섬기는 여사제들과 잠자리를 같이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많은 생산과 풍년을 기원하는 행사라고 하더라도 그것은 간음의 합리화입니다. 그때부터 종교적인 간음행위는 사회적으로 널리 퍼지고 맙니다(4:11-14).

유부남들이 어떻게 사회적으로 간음을 합리화하고 있을까요? 그 방법이 바로 신명기 제24장에 기록이 되고 있는 다음 조항입니다; “사람이 아내를 맞이하여 데려온 후에 그에게 수치 되는 일이 있음을 발견하고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면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낼 것이요”(24:1), “그의 둘째 남편도 그를 미워하여 이혼증서를 써서 그의 손에 주고 그를 자기 집에서 내보냈거나”(24:3). 한 마디로, 아내가 음행을 한 경우에 국한하여 제한적으로 이혼증서를 주고서 집에서 내보낼 수 있도록 되어 있는데 그 제도를(5:31) 악용한 것입니다. 음행이 아닌 경우에도 이혼증서를 써서 이혼을 성립시키고 다른 여자를 아내로 취한 것입니다. 그와 같은 악습에 대하여 예수님이 다음과 같이 질타를 하시고 있습니다;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음행한 이유 없이 아내를 버리면 이는 그로 간음하게 함이요, 또 누구든지 버림 받은 여자에게 장가드는 자도 간음함이니라”(5:32).

육체적인 타락이 사회전반을 지배하게 된다면 하나님께서는 육신화된 약육강식의 사회를 다시 떠나실 것입니다(6:3). 그리고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은 신중하게 다시 검토가 될 것입니다(6:5-8). 그와 같은 사태의 재현을 예수님께서 결코 원하지 아니하십니다. 그래서 제자들에게 다음과 같이 단호하게 대처를 하라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또 간음하지 말라 하였다는 것을 너희가 들었으나 나는 너희에게 이르노니, 음욕을 품고 여자를 보는 자마다 마음에 이미 간음하였느니라. 만일 네 오른 눈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빼어 내버리라. 네 백체(百體, 백 가지의 지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며 또한 만일 네 오른 손이 너로 실족하게 하거든 찍어 내버리라. 네 백체 중 하나가 없어지고 온몸이 지옥에 던져지지 않는 것이 유익하니라”(5:27-30).

요약을 해보면 첫째, 여자를 보고 음욕조차 품지를 말도록 하십시오. 만일 마음 속에 음욕이 일어나는데 그것을 제어하지 아니하면 이미 마음 속으로 간음한 것과 같습니다(5:28). 둘째, 마음을 다스리는 것이 결코 쉽지가 않습니다. 안목의 정욕과 간음을 행하려는 손속을 제어하기 위하여서는 자신의 눈을 빼버리고 손을 찍어버리겠다는 결단이 필요합니다(5:29-30). 그 정도의 사생결단이 없다면 애초에 불가능합니다.

 

그 지적은 과연 실천이 가능한 것인가? 실천이 가능하도록 만들고 있는 복음적인 방법론은 무엇인가?

 

그런데 만약에 자신의 눈을 뽑아버리고 손을 찍어버린다고 하여 다시는 음욕을 일으키지 아니하고 기타 손발이 구습에 따라 동원이 되지를 아니할까요? 그렇지가 않는다는데 문제의 심각성이 존재하고 있습니다. 그 정도로 강력한 정신적 결단과 육체적 처방으로도 죄악에 물든 인간의 마음과 몸을 모두 정화를 시킬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율법의 정죄로부터 자유스러운 사람이 존재할 수가 없습니다(3:9-10, 7:23-24). 인간의 힘과 지혜만 가지고서는 구원과 영생을 바랄 수가 없습니다. 한 마디로, 자력구원(自力救援, self-salvation)이 불가능합니다.

따라서 하나님 아버지께서 두 가지의 조치를 취하시고 계십니다; 첫째, 십자가 대속의 제사입니다. 그 제물이 하나님의 아들이므로 영원한 속죄의 제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8:3-4). 둘째, 성령님의 강림과 임재의 역사가 이루어질 것입니다. 성도들이 악한 영과 싸울 수 있도록 성령님이 능력을 직접 공급하실 것입니다(1:8, 8:2, 6:18). 그렇게 되면 거듭난 성도의 여생은 예수 그리스도의 것이 되며 그 인생길을 성령님이 직접 인도해나갈 것입니다(21:18, 고전6:19-20). 그와 같은 하나님의 특단의 조치가 없으면 결코 사람의 정신사조와 습관을 모조리 지배하고 있는 악한 영의 세력을 도려낼 수가 없을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