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22강(마4:8-1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3. 03:04

마태복음 강해 제22(4:8-1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28()

 

마귀의 시험 가운데 마귀가 최종적으로 원하고 있는 것(4:8-9), 그것을 물리치고 하나님의 도우심을 받을 수 있는 방법이 다시 제시가 되다(4:8-11, 20:3-6)

 

마귀의 정체는 사탄입니다. 사탄은 하나님과 대적하고자 하는 교만한 영입니다. 본래 하나님의 천사장 루시엘이었지만 자신의 임무와 분수를 저버렸습니다(1:6). 그 이유는 스스로 창조주가 되어서 온 세상을 마치 창조주처럼 지배하려고 시도를 했기 때문입니다(14:13-14). 그 결과 하나님의 심판을 받고서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내어 쫓겼습니다(14:12, 15, 12:9). 이제는 천하만민을 꾀면서 거짓말을 하는 아비가 되고 있습니다(8:44, 12:9). 그 자가 바로 마귀입니다. 무엇이라고 거짓말을 하고 있을까요?

한 마디로, 여전히 자신이 창조주라고 거짓으로 속이고 있습니다(4:8-10, 8:44). 그 결과 다음과 같은 내용의 거짓말이 연결되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이 세상은 하나님의 뜻이 아니라 자신의 뜻에 의하여 움직여지고 있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둘째, 하나님의 심판이 없다고 속이고 있습니다. 사람 역시 이 세상의 삶으로 모든 것이 종료가 된다고 말하고 있는 것입니다. 셋째, 마귀는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타락한 존재가 아니라 자신이 하나님을 이기고 있는 의로운 존재라고 우기고 있습니다.

요컨대, 이 세상은 창조주가 지배하는 것이 아니라 자신이 지배하고 있다고 처음부터 끝까지 우기면서 그 말을 사람들이 믿도록 현혹하고 있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마귀의 그 뻔한 거짓말이 사람들에게 통할 수 있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기본적으로 자신의 뜻과 힘으로써 어찌할 수 없는 존재인 창조주를 싫어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진리에 입각하여 사람들의 악함을 지적하고 엄중한 심판을 행하겠다고 말씀하시는 하나님에 대해서는 거부반응을 드러내고 있습니다(7:7, 8:45).

하여간 창조주를 섬기며 하나님의 뜻대로 자신의 인생을 살아간다고 하는 것이 여간 어렵고 힘든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일일이 하나님에게 물어보아야만 합니다. 그리고 사람의 생각에는 현실적으로 맞지 아니하는 해법으로 보이는데도 불구하고 하나님의 입에서 나온 말씀이기 때문에 그 명령에 어쩔 수 없이 순종을 해야만 합니다. 그것이 영 마음에 불편한 것입니다. 스스로 판단하고 자신의 뜻대로 쉽게 한 평생을 살아보고 싶은데 마치 손오공의 머리띠처럼 엄청난 굴레가 하나 씌워져 있는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 굴레를 벗어버리고 쉽게 성공을 하고 자신의 욕심을 이룰 수 있기를 바라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생각과 욕심을 너무나 잘 알고 있는 존재가 마귀입니다. 이 세상을 두루 돌아다니고 있는 영적인 존재가(1:7) 어떻게 사람의 병든 영적인 생각과 교만함을 모를 리가 있겠습니까? 그래서 사람들의 야망과 욕심을 쉽게 성취할 수 있는 방법을 넌지시 일러주고 있습니다(4:8-9). 그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고 신앙생활을 하고자 노력하고 있는 사람들에게 다가오는 가장 무서운 시험입니다. 이제 막 공생애를 시작하려고 하는 하나님의 아들 그리스도 예수에게도 그 시험은 가장 큰 유혹으로 다가오고 있습니다. 인간의 육신을 입고서 이 세상에 태어났기에 결코 피해갈 수가 없는 시험이 되고 있습니다. 본문의 내용을 구체적으로 살펴보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마귀가 사람의 마음에 드는 달콤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먼저 마귀는 예수님을 지극히 높은 산으로 데리고 가서 천하만국과 그 영광을 보여주고 있습니다(4:8). 그리고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만일 내게 엎드려 경배하면 이 모든 것을 네게 주리라”(4:9). 문제가 많은 발언이지만 겉으로 보기에는 참으로 달콤한 제안입니다. 그 이유는 그저 마귀에게 엎드려 경배만 한번 하고 나면 마귀가 지배하고 있는 이 세상의 천하만국과 그 영광이 모두 예수님의 것이 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세상적인 권세를 가지고 사람들을 세상적인 굴레에서 해방을 시키고 그리스도의 나라를 건설할 수 있도록 만들 수가 있을 것입니다. 따라서 그것은 마음에 드는 매력적인 방법입니다. 하지만 그 방법은 목적을 뒤집어버리는 사악한 것입니다.

둘째로, 마귀와 타협한 방법을 가지고서는 신성한 하나님의 구원의 목적을 성취할 수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천하권세를 얻어서 온 세상을 구원하기 위함입니다(28:18-20, 3:16). 그 목적을 이룰 수 있는 방법은 오로지 하나님의 아들이 대속의 십자가를 지고서 처형을 당하는 것입니다(3:14-15). 그 결과 무덤 속에서 부활을 하게 되는 수순이 전개가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부활은 영광스럽고 좋은 것이지만 그것을 이룰 수 있는 방법 곧 십자가 처형은 정말 싫은 것입니다. 세상에서 가장 고통스러운 극형이 바로 십자가 형벌이기 때문입니다. 때마침 마귀는 참으로 쉽고도 효과적인 방법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저 눈 한번 질끈 감고서 자신에게 절을 올리게 되면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천하권세를 예수님에게 모두 양도해주겠다고 합니다. 참으로 쉬운 타협안을 제시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 속에 엄청난 함정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그 제안을 받아 들이는 찰나 이 세상을 죄와 사망에서 해방시키는 그리스도의 신성한 과업은 날라가 버리게 될 것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이 독생자를 이 땅에 보내신 그 목적이 달성되지를 못하게 되는 것입니다.

셋째로, 예수님이 이 세상에 오신 목적은 죄와 사망의 굴레에서 모든 사람들을 해방시키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사탄에게 경배를 한다는 것은 사탄이 장악하고 있는 죄와 사망 속으로 들어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결국 그 방법은 예수 그리스도의 사역을 도와주는 것이 아니라 망치게 만드는 것입니다. 세상적으로 타협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선하신 생명구원의 목적을 궁극적으로 달성할 수가 없게 되고 만다는 사실을 가르쳐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더구나 마귀는 거짓말을 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세상을 창조하시고 여전히 섭리를 하고 계십니다. 세상은 하나님의 뜻대로 경영이 되고 있는 피조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의 주인은 여전히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그런데 어떻게 마귀가 자신의 것이라고 주인행세를 할 수가 있습니까? 궁극적인 의미에 있어서는 어불성설(語不成說, 말도 되지 않는 소리)입니다.

넷째로, 그리하여 예수님이 마귀의 제안을 일언지하(一言之下, 한 마디로 딱 부러지게 함) 에 거절을 하고 있습니다; “사탄아 물러가라. 기록되었으되, 주 너의 하나님께 경배하고 다만 그를 섬기라 하였느니라”(4:10). 예수님의 말씀은 출애굽기에 기록이 되고 있는 십계명 가운데 첫 번째 계명을 말씀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주 외에는 다른 신을 두지 말라고 하십니다(20:3). 그런데 그 정체가 사탄인 마귀는 세상의 권세를 줄 터이니 자신을 섬기라고 제안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 제안을 받아들이게 되면 즉시 제1계명을 어기게 됩니다. 아무리 마귀가 제안하고 있는 방법이 효율적이고 쉬운 것이라고 하더라도 그 방법을 사용하는 즉시에 하나님의 뜻이 어그러지게 된다고 한다면 그 방법은 물리쳐야만 합니다. 예수님의 제자라면 당연히 그리하여야만 합니다. 그와 같은 마지막 유혹을 물리치고 시험을 통과하게 되자 드디어 하나님의 상급이 임하고 있습니다. 마귀가 떠나가고 천사들이 나아와서 예수님의 수종을 들게 됩니다(4:11).

참고로, 마태복음 제4장에 기록되어 있는 세 가지 마귀의 시험과 관련하여 예수님의 다음 말씀을 함께 묵상할 필요가 있습니다; “너희는 먼저 그의 나라와 그의 의를 구하라. 그리하면 이 모든 것을 너희에게 더하시리라”(6:33). 여기서 그 의미를 헤아려보고자 합니다;  

(1) 하나님의 나라를 먼저 추구하라고 하십니다. 그 나라는 사탄이나 마귀가 지배를 하고 있다가 성도에게 물려주는 나라가 아닙니다. 그 나라는 오로지 하나님의 방법으로 건설해야만 하는 나라입니다. 왜냐하면, 그 나라는 하나님만을 경배하는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만약 세상과 타협하고 마귀에게 힘을 얻어서 하나님 나라를 건설하겠다고 한다면 그것은 세 번째 시험에서 탈락하게 되는 경우입니다.

(2) 하나님의 의를 먼저 구해야만 합니다. 자신의 의로움을 드러내거나 자신의 생각에 옳다고 하여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의라고 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흔히 신앙생활에 있어서 실족하게 되는 경우가 바로 자신의 생각과 이데올르기가 옳은 것이므로 모두들 자신에게 동의를 하고 따라야만 된다고 주장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고집이며 아집일 가능성이 농후합니다. 성도가 하나님의 생각을 따라야 하는 것이지 나의 생각을 하나님의 생각이라고 우기거나 하나님께서 무조건 나의 생각을 지지해주셔야만 한다고 주장을 해서는 안됩니다. 자신의 생각과 뜻 그리고 의를 앞세우게 되면 하나님을 종으로 또는 도구로 격하시키는 엄청난 패역함을 보이게 됩니다. 두 번째 시험에 당하고 있는 것입니다.

(3) 성도의 삶에 있어서 무엇이 생존을 위하여 필요한 것인지를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알고 계십니다(6:32). 그런데 그것들을 추구하는 것이 인생의 목적이 아닙니다. 그것은 본질적인 것이 아니라 부가적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은 성도들이 하나님의 나라와 공의를 먼저 추구하게 되면 그 필요를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이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6:33). 너무 걱정하지를 말고 하나님께 맡겨 드리고 성도들은 자신에게 맡겨진 하루의 일과에 충실하라고 말씀하십니다(6:34). 그 사실을 명심하고서 우선순위를 제대로 하여 성도의 삶을 살아가게 되면 마귀의 첫 번째 시험문제를 너끈하게 통과하게 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