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9강(마4: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1. 18:57

마태복음 강해 제19(4: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25()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음성까지 듣고 나자 신앙생활에 있어서 그 다음에 반드시 발생하고 있는 일(4:1)

 

변방 갈릴리 그것도 산골마을 나사렛에서 성장을 한 예수가(2:23) 나이 30이 되자(3:23) 요단 강가로 세례 요한을 찾아옵니다(3:13). 세례 요한은 의사 누가가 수집한 자료에 의하면 예수의 외가 쪽으로 아주 가까운 친척이며 예수보다 6개월 연상입니다(1:36). 누가복음에 의하면 예수의 어머니 마리아가 세례 요한을 잉태한 친족 엘리사벳의 집에서 석 달쯤 공짜로 함께 지내고 있습니다(1:56). 그 기록은 두 사람의 관계가 보통 가까운 피붙이가 아니라는 사실을 명백하게 시사해주고 있습니다(1:56).

세례 요한은 아버지가 제사장 사가랴이며 어머니가 초대 대제사장 아론의 자손입니다(1:5). 그러므로 그의 집안은 정통 레위 제사장 가문입니다. 그는 정통 레위인이라는 집안의 영향도 있지만 부모님이 전해준 자신의 출생과 특별한 사명을 알게 되자(1:13-17, 76-79) 그 과업을 이루기 위하여 일찍 집을 떠났습니다(1:80). 그는 마치 엣세네 사람들처럼 광야에서 금욕생활을 하면서 히브리 경전을 공부하고 신앙생활에 정진을 합니다(3:4). 그리고 유대인 사회에서 제사장을 맡을 수 있는 나이 30이 되자(4:3) 요단 강가 사람들이 살고 있는 마을로 들어옵니다(1:28). 그때부터 세례 요한은 죄 사함을 받게 하는 회개의 침례를 전파합니다(3:2, 6, 3:3).

많은 유대인들이 세례 요한을 찾아와서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3:5-6). 그 가운데 나사렛 예수가 있습니다. 예수의 차례가 되자 세례 요한이 그가 누구인지를 알아채고 있습니다(3:13-14). 그 옛날 어릴 때 보았던 친척 예수의 모습을 다시 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세례 요한은 태어날 때부터 나실인입니다(1:15-16). 그는 나실인답게 일찍 집을 떠나서 홀로 광야생활을 했습니다(1:80). 따라서 30세가 되어 갑자기 만나게 된 예수를 타향에서 못 알아보는 것이 당연합니다. 다만 그는 영적인 깨달음으로 예수님이 누구이신가를 알아채고 있는 것입니다; “나도 그를 알지 못하였으나 나를 보내어 물로 침례를 베풀라 하신 그이가 나에게 말씀하시되, 성령이 내려서 누구 위에든지 머무는 것을 보거든 그가 곧 성령으로 침례를 베푸는 이인 줄 알라 하셨기에 내가 보고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증언하였노라 하니라”(1:33-34).

사양하는 세례 요한을 설득하여 예수님이 그로부터 물세례를 받고 있습니다(3:14-15). 그런데 진작에 예수님과 함께 하시고 계신 성령님이십니다(1:33). 그래서 세례 요한이 처음 예수님을 보았을 때에 메시아이심을 알아챌 수가 있었습니다(1:34). 그런데 이상하게도 예수님이 물세례를 받고 나자 갑자기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성령이 비둘기같이 내려 예수님 위에 다시 임하시고 있습니다(3:16). 그것은 무엇을 말하고 있는 대목일까요?

그것은 하나님의 영은 시간과 공간을 초월하고 있는 존재라는 사실을 정확하게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세례 요한의 증언 그대로 성령님은 먼저 예수님 안에 그 심령 속에 신성(神性)으로 함께 지내고 계십니다(1:33, 3:14). 그리고 동시에 하나님으로부터 이 세상에 다시 임하시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3:16). 그것은 성령님이 창조주에 속하는 하나의 위격이기에 시공간을 초월하여 스스로 존재하고(3:14) 또한 역사하고 있음을 드러내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시공간에 갇혀서 한 평생만을 살게 되는 유한한 인간이 영적인 신비에 속하고 있는 하나님의 존재양식이나 섭리의 방식에 대하여 함부로 재단하거나 왈가왈부할 수는 없을 것 같습니다.

그 뿐만이 아닙니다. 성부 하나님의 음성이 예수님과 세례 요한의 귀에 들려오고 있습니다;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3:17). 예수님께서 그리스도이시고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선언입니다(16:16). 일이 이 정도 되었으면 이 세상에서 모든 백성과 나라들이 그리스도를 받아들이고 하나님의 아들 앞에 무릎을 꿇어야만 합니다. 그런데 신앙생활이라고 하는 것이 그것이 아닙니다. 거룩한 백성으로 택함을 받고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고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게 된 그때부터 세상을 지배하고 있는(6:12, 4:8-9) 마귀의 시험과 유혹이 물밀듯이 몰려오기를 시작하는 것입니다(4:1). 그 대목에 대하여 사도 마태가 정확하게 기록을 하고 있습니다; “하늘로부터 소리가 있어 말씀하시되, 이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요 내 기뻐하는 자라 하시니라. 그때에 예수께서 성령에게 이끌리어 마귀에게 시험을 받으러 광야로 가사”(3:17-4:1).

만민을 구원하기 위하여 복음을 선포하는 예수님의 공생애가 이제부터 36개월간 있게 됩니다. 그 기간 동안에 사탄의 시험과 유혹이 줄기차게 계속이 되고 있습니다. 그 시험과 유혹의 끝에는 십자가가 기다리고 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의 뜻을 이루기 위해서는 예수님이 연약한 인간의 육체를 가지고 그 대속의 십자가를 져야만 합니다(26:39). 그런데 사탄은 마지막 순간까지 그렇게 어려운 방법을 선택하지 말고 천하의 지배권을 그냥 넘겨줄 것이니 적당히 자신과 타협을 하자고 유혹하고 있습니다(4:8-9). 그 유혹은 모든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자 끊임없이 기도하며 복음적인 삶을 영위하는 동안에 죽을 때까지 계속이 될 것입니다(17:14-21). 그러나 그 처방이 은혜롭게도 마태복음 제4장에 상세하게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4:2-11).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