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17강(마3:7-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21. 06:20

마태복음 강해 제17(3:7-1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23(주일)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만 기록이 되고 있는 불 심판에 대한 이야기(3:7-12, 3:7-9, 16-18)

 

마태복음 제3장에는 저자가 세례 요한의 입을 빌려서 유대교지도자들인 사두개인들과 바리새인들에게 강력한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고 있습니다. 그 내용은 빨리 회개를 하지 아니하면 곧 불 심판이 임하게 된다는 것입니다(3:7, 10-12). 그 요지는 마치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그의 조카 롯이 살고 있는 소돔 성과 그 인근 고모라 성이 곧 망하게 될 것이라고 일러주시고 있는 말씀과 비슷합니다(18:20-23). 그때 아브라함은 하나님께 조카가 살고 있는 성읍을 임박한 불 심판으로부터 구하기 위하여 중보기도로써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18:24-33). 그 결과 의인 열 명만 있어도 불 심판을 내리지 아니하겠다고 하는 약속을 얻어내게 됩니다. 여기 본문에서는 사도 마태가 세례 요한의 입을 통하여 하나님의 저주 가운데에서도 구원으로 나아갈 수 있는 방법을 유대인들에게 은근히 알려주고 있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해서는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고 선민사상을 버리며 물세례와 성령세례를 받으라는 것입니다”(3:8-11).

사도 마태의 글을 의사 누가가 자신의 복음서에 그대로 싣고 있습니다(3:7-9, 16-17). 그리고 특히 합당한 회개의 열매를 맺는 방법에 대해서 구체적으로 세 가지를 예시하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먹을 것이 없는 자에게 나누어주고 베풀어주라, 세리들은 부과된 세금 외에는 더 징수하지를 말라, 그리고 군인들은 받는 급료를 족한 줄 알고 힘이 있다고 하여 남의 것을 함부로 강탈하거나 조직적으로 거짓고발을 하지 말라는 것 등입니다”(3:10-14). 의사 누가가 왜 마태의 글에서 그 대목을 수집하여 자신의 복음서에 그대로 수록을 하고 있을까요? 또한 어째서 상세한 내용을 더 수집하여 덧붙이고 있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세 가지로 보입니다; 첫째, 의사 누가 역시 사도 마태의 생각과 비슷하기 때문입니다. 그 역시 당시 유대교의 최고기관인 산헤드린 공회를 장악하고 있는 유대교지도자들이 예수 그리스도의 만민구원사상을 수용하지 아니하고 그를 십자가에 처형하도록 획책한 일을 결코 용서할 수가 없는 것입니다. 둘째, 세례 요한이 유대교지도자들에게 소개하고 있는 그리스도는 유대교의 전통적인 선민사상을 혁파할 것이라는 사실을 그 역시 믿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만약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그리스도의 새로운 해석을 받아들이지 아니하면 역사적인 불 심판을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 셋째, 그는 유대교에 도전하는 새로운 종교적인 엘리트가 등장하고 있음을 자료 수집하여 로마제국의 정보책임자에게 문서로써 보고하고 있는 것입니다(1:3).

이제는 본문의 내용에서 세 가지 사실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1) 임박한 진노, 나무를 찍는 도끼, 타작마당의 키질, 불에 던져지는 쭉정이와 나무 등이 의미하고 있는 것들은 과연 무엇인가? 하는 것입니다. (2) 역사적으로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이방인인 앗수르의 수도 니느웨 사람들에게 임박한 하나님의 심판에 대하여 전한 사실과 이 대목이 어떻게 연결이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3) 니느웨 사람들의 선택과 유대인들의 선택이 어떻게 달랐으며 그 결과가 어떻게 나타나는가? 하는 것입니다.

첫째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망하게 됩니다. 하나님의 진노가 실제로 임박하고 있습니다. 나이 30에 예수님이 공생애에 나서게 됩니다(3:23). 세례 요한이 요단 강가 동편 마을 베다니에서(1:28) 그에게 세례를 주면서 보라,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이로다!”(1:29)라고 백성들에게 소개를 하고 있습니다. 그때로부터 꼭 40년의 세월을 회개할 기한으로 유대인들에게 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을 로마군정의 힘을 빌려서 십자가에서 처형을 해버리고 맙니다(27:22-26). 여전히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선민사상에 젖어서 살고 있습니다. 그 결과 40년의 기간이 지나자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로마의 군대에 의하여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예루살렘 성전이 불에 타서 없어지고 맙니다(24:2). 그것은 예언 그대로 불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3:12). 유대인들이 그토록 믿고 의지하던 그들의 신앙의 본거지인 성전이 완전히 심판을 받고서 사라지게 됩니다.

둘째로, 그것은 전면심판이 아닙니다. 그 이유는 그 가운데 회개를 하고서 기독교인이 된 자들이 살아남게 되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알맹이와 쭉정이를 구별하고 있을까요? 어떻게 도끼로 찍어버리는 나무와 살려주는 나무를 구별하고 있는 것일까요? 사도 마태는 양과 염소를 구별하는 예수님의 이야기를 그의 복음서 제25장 제31절과 제46절 사이에 싣고 있습니다. 하나님 아버지의 뜻대로 행하는 자 그리고 주님의 복음대로 생활을 하는 자는 구원함을 받게 된다는 내용입니다. 사실 그들은 AD 33년경 집사 스데반이 순교를 당하고(8:1-4) 44년경 사도 야고보가 순교를 당하게 되자(12:1-5) 이방 땅으로 탈출하여 그곳에서 복음을 전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유대교지도자들과 헤롯 왕가의 기독교인 탄압이 오히려 기독교인들을 이방 땅으로 내몰아서 예루살렘 함락의 비극에서 구해내게 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측량할 수 없는 구원의 방법론의 일부를 잠시 보여주고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

또한 사도 요한은 그의 복음서 제15장에서 성도가 자신을 깨끗하게 하고 포도열매를 많이 맺지 아니하면 농부이신 아버지께서 그 나뭇가지를 찍어버리신다고 말하고 있습니다(15:1-4). 그러므로 성도들은 회개를 하고서 거듭난 순간부터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불에 태워지는 심판을 면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15:4-6). 실제로 요한복음의 저자인 사도 요한의 경우가 그러합니다. 그는 예루살렘이 망하자 예수님의 모친이며 자신의 큰 이모가 되는 마리아를 모시고 소아시아 에베소로 이주하여 그곳에서 남은 평생 동안 교회를 돌보게 됩니다. 그리고 노년에 20년 이상 헬라의 철학과 학문을 공부하고서 제4복음서와 3개의 요한 서신 그리고 요한계시록을 기록하여 후세에 남기게 됩니다. 알맹이는 그렇게 살아남아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게 됩니다.

끝으로, 심판에 관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 있는 요나 선지자와 예수 그리스도와의 비교를 간략하게 해보고자 합니다(3:3-4:5, 3:9, 15, 3:5-6);

(1) 요나 선지자는 여전히 선민사상에 빠져 있습니다. 그는 이방인의 도시 니느웨를 방문하여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 후에 도시가 멸망을 당하게 된다는 하나님의 메시지를 전하라는 명령을 수행하기를 싫어하고 있습니다(1:3, 3:4). 그래서 처음에는 도망을 쳤으며 나중에는 억지로 그 메시지를 전하게 됩니다(3:1-4). 하지만 예수 그리스도는 다릅니다. 선민뿐만 아니라 이방인들도 구원의 대상이라고 분명히 말씀하고 계십니다(3:9, 8:10-13).

(2) 요나 선지자의 예언을 듣자마자 니느웨 왕과 신하 그리고 백성들이 곧바로 회개를 합니다(3:1-9). 그 결과 하나님께서 심판 대신에 구원을 베푸십니다(3:10). 그러나 유대인들은 그 반대입니다. 대부분 예수 그리스도를 배척하고 40년 동안이나 회개를 하지 아니합니다. 그 결과 주후 70년에 예루살렘과 유대 땅이 초토화가 되고 맙니다.

(3) 요나 선지자는 니느웨 도시 동쪽 언덕에 올라가서 다시 그곳 이방인들이 하나님께 범죄를 하고 망하는 모습을 보고자 합니다(4:1-5, 11). 그러나 예수님은 제자들이 만민을 구원하여 함께 새 예루살렘 성으로 입장하는 모습을 보고 싶어하십니다(28:18-20, 66:20-22, 21:22-27). 한 마디로, 만민을 모두 구원하기를 원하며 온 종일 그 팔을 벌리고 기다리고 계시는 것입니다(10:2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