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7강(마1:1-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8. 06:01

마태복음 강해 제7(1:1-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14()

 

 

예수님에 관한 마태복음의 족보(1:1-17)와 누가복음의 족보(3:23-38)와의 차이

 

네 편의 복음서 가운데 마태복음과 누가복음에 예수님의 족보가 실려 있습니다. 그런데 두 개의 족보는 전혀 다른 모습을 지니고 있습니다. 한눈에 척 보더라도 다음 사실을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1)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목수 요셉에 이르고 있는 족보입니다. 물론 요셉 다음에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등재가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조상인 아브라함으로부터 자손에게로 총 42대가 시간의 흐름을 타고서 자연스럽게 흘러서 내려오고 있는 족보입니다. 그와 반대로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조상에게로 올라가고 있는 족보입니다. 그것은 마치 시간과 물의 흐름이 하나님의 뜻으로 반대방향으로 거꾸로 흐르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2)  마태복음의 족보는 아브라함으로부터 시작하여 예수 그리스도로 끝이 나고 있습니다. 그에 비해서 누가복음의 족보는 예수 그리스도로부터 시작하여 아브라함에 이르고 그 다음에는 아담으로 올라가고 마침내 최종적으로 하나님에게 다다르고 있는 족보입니다. 그 의미가 무엇일까요? 그것이 묵상의 과제입니다.

 

(3) 마태복음의 족보는 다윗 왕가의 족보라는 사실이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반면에 누가복음의 족보는 중시조 다윗 대왕의 이름이 왕으로서 한번 거명(擧名)이 되고 있을 뿐입니다. 그 다음의 나머지 조상들의 이름은 전혀 유다의 왕들의 이름이 아닙니다. 그렇다면 목수 요셉이 다윗 왕가의 대를 이어오고 있는 정상적인 왕의 후예가 아니라는 말일까요? 그것은 그렇지가 아니할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를 찾아보고자 하는 것이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고찰입니다.

 

이제부터 이상과 같은 차이가 무엇을 말하고 있는지를 두 가지 측면에서 한번 살펴보고자 합니다. 그것은 정치적인 측면과 영적인 측면입니다.

 

정치적인 측면에서의 고찰

 

첫째로, 여기서 우선적으로 생각해보고자 하는 정치적인 측면은 외세나 다른 지파의 왕조가 다스리고 있는 유다 지역에서 이스라엘의 정통성을 지니고 있는 다윗 왕가의 후손들이 어떻게 살아남을 수가 있는가 하는 점입니다. 자신들의 왕가의 족보를 그대로 내세우고 있다가는 맞아 죽기 쉽습니다. 그러므로 당연히 다윗의 자손이기는 하지만 그 다음에는 조상 가운데 전혀 왕이 없는 한 마디로 별볼일이 없는 집안이라고 가짜 족보를 만들어서 그 뒤에 숨을 수밖에 없는 것이 현실적으로 옳다는 측면입니다.

 

비근한 예로 한국의 중세의 역사에 있어서도 고려 왕()씨의 왕조가 조선 이()씨의 왕조로 뒤바뀌는 시점에 있어서 역성(易姓)혁명에 성공한 자들이 고려 왕의 후예들인 왕씨를 닥치는 대로 잡아들여서 서해바다에 수장을 시켜버린 사례가 있습니다. 당시의 위기를 모면하고자 왕씨들이 지방으로 흩어져서 그 성씨마저 왕씨를 버리고 비슷한 한자를 찾아서 변조하여 살아남은 역사가 있습니다. 그래서 옥(), (), (), ()씨 등은 모두 왕()씨라고 하는 이야기가 전해지고 있는 실정입니다. 그와 같은 현상이 다윗의 가문에서 발생을 했다고 보는 것이 정치적인 안목입니다.

 

둘째로, 그와 같은 은둔형의 족보가 누가복음에 실려 있다는 것이 더 설득력을 지니고 있습니다. 누가복음의 저자인 누가는 그 직업이 공식적으로는 의사입니다. 지성적이고도 과학적인 직업을 지니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가 은밀하게 하는 일은 로마당국에 유대인들의 고급정보를 제공하는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그는 로마의 정보책임자로 보이는 별칭 데오빌로각하에게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와 그 제자들의 활동상황을 정확하게 조사하고 기록하여 문서로 보고를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3, 1:1).

 

그러므로 의사 누가는 보고서를 작성함에 있어서 정확성과 진실성을 확보하기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그는 반드시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여 정보를 수집하고 그 진실성을 검증합니다. 쉽게 말하자면 의사 누가는 항상 발로 뛰면서 현지취재를 통하여 글을 쓰고 있는 일종의 르뽀 작가와 같다고 하겠습니다. 그와 같은 입장에서 의사 누가가 예수 그리스도의 생애를 뒤쫓아서 기적이 일어난 사건의 현장을 방문하고 자료를 수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예수의 고향인 나사렛을 방문하여 지역사람으로부터 목수 요셉과 동정녀 마리아에 관한 이야기를 수집합니다(1:5-79). 또한 예수가 태어난 베들레헴도 방문하고(2:1-21) 그 다음에는 예루살렘 성전도 방문을 하여 꼬치꼬치 예수님과 관련된 이야기들을 수집하고 있습니다(2:22-38). 그 결과 그의 복음서가 저술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생각해보면, 의사 누가가 나사렛에서 수집한 예수 그리스도의 족보는(3:23-38) 굉장히 사실적인 것이며 동시에 정치적인 색깔을 띠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말할 수 있는 이유는 목수 요셉의 가문과 같은 다윗 왕가의 직계가 살아남기 위하여 자신들의 족보를 어떻게 변형을 시켜서 이웃에게 이야기해오고 있는지를 한 눈에 파악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들이 살아남기 위해서 만들어 놓은 가짜 족보라고 하는 것이 자세히 살펴보면 영 이상합니다. 목수 요셉의 가문이 세상에 내놓고 있는 그 족보의 내용 그대로 만약 그들의 중시조인 다윗만이 왕이며 그 다음의 조상들은 아무도 왕위에 올라간 자가 없다고 한다면 그렇게 상세한 족보를 지속적으로 만들어서 보관하고 있을 하등의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이른 바 동방예의지국’(東方禮儀之國)이라고 하는 조선이나 한국의 전통적인 사회에 있어서는 소위 양반의 뼈대를 자랑하기 위하여 오랜 세월 족보를 기록하여 보존을 해오고 있습니다. 그러나 이웃나라의 경우에는 왕족이나 대단한 귀족의 집안이 아니면 아예 족보가 없습니다. 따라서 28대 조상이 한번 왕위에 있었다고 하여 그 후예들이 계속 족보를 기록하여 천 년 세월을 보전해오는 경우는 비현실적인 이야기입니다.

 

요컨대, 다윗 대왕을 제외한다면 그 다음 27대에 이르기까지 목수 요셉 집안의 조상들은 한 사람도 왕위에 오른 자가 없습니다. 따라서 단지 조상이라고 하여 그들의 이름을 전부 빠짐없이 기억할 필요가 없습니다. 더구나 양피지도 귀한 시대에 그렇게 가짜 족보로 만들어서 천 년의 세월 동안 끈질기게 보전해올 필요는 전혀 없습니다. 따라서 그 가짜 족보는 자신들의 신분을 속이고 살아남기 위한 위작(僞作)이라는 사실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논리적인 반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정치적인 측면에서 누가복음의 족보가 더 현실적인 것이며 그것이 정확하게 목수 요셉의 집안이 정통왕가의 후예라는 사실을 역설적으로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영적인 측면에서의 고찰

 

한 마디로, 마태복음의 족보는 선민의 족보이며 누가복음의 족보는 거듭난 자의 족보의 모습을 잘 보여주고 있습니다. 선민의 자존심은 다윗 왕가의 정통성에 근거하고 있습니다. 역사상 처음으로 다윗 대왕이 아브라함에게 준 하나님의 언약을 일부 성취하고 있습니다(12:1-3, 15:18). 메소포타미아 지방과 애굽 지역을 제외하고 그 사이에 있는 모든 땅을 아브라함의 자손에게 주겠다고 여호와 하나님께서 약속을 하셨는데 그 약속을 실현시킨 자가 다윗 대왕입니다(삼하8). 따라서 다윗 대왕의 왕가야 말로 하나님께서 인정을 하시는 정통왕조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복을 받아서 선민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당당하게 나누어줄 수 있는 왕조입니다. 그들의 신념은 주전 722년에 북조 이스라엘 왕국이 앗수르에 의하여 망하고 나자 더욱 강화된 것입니다(왕하17:6). 지상에서 유일한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들이 바로 다윗 왕조가 다스리고 있는 남조 유다 왕국의 신민이기 때문입니다(왕하19:34-35).

 

따라서 다윗 대왕의 뒤를 잇게 되는 메시아가 이 땅에 온다면 그는 선민의 나라를 재건할 것입니다. 다윗 왕가의 왕들의 족보를 그대로 잇게 될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유대인들의 신념체계는 이사야 선지자의 메시아의 족보에 관한 정확한 예언을 살펴보면 8분의 1의 확률에 지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이새는 아들이 8명이나 되기 때문입니다(삼상16:10-11);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 그의 위에 여호와의 영 곧 지혜와 총명의 영이요 모략과 재능의 영이요 지식과 여호와를 경외하는 영이 강림하시리니 그가 여호와를 경외함으로 즐거움을 삼을 것이며, 그의 눈에 보이는 대로 심판하지 아니하며 그의 귀에 들리는 대로 판단하지 아니하며 공의로 가난한 자를 심판하며 정직으로 세상의 겸손한 자를 판단할 것이며 그의 입의 막대기로 세상을 치며 그의 입술의 기운으로 악인을 죽일 것이며 공의로 그의 허리띠를 삼으며 성실로 그의 몸의 띠를 삼으리라”(11:1-5).

 

그러함에도 불구하고 마태복음에는 목수 요셉의 본래 족보를 싣고 있습니다. 그 족보는 다윗 대왕의 뒤를 잇고 있는 다윗 왕가의 왕들의 이름이 하나도 빠짐없이 거론이 되고 있는 선민의 족보입니다. 다만 요시야 왕의 아들들로서 모두 왕좌에 앉아본 적이 있는 여호아하스 왕여호야김 왕시드기야 왕등 세 명은 그냥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갈 때에 요시야는 여고냐와 그의 형제들을 낳으니라”(1:11)고 이상하게 기록하고 있을 뿐입니다. 사실은 전란 중에 여호야김 왕이 승하를 하자 그의 아들 여고냐(대상3:16-17)가 그 뒤를 이어 여호야긴 왕이 된 것으로 보이기 때문입니다(왕하24:6, 15, 25:27). 그런데 마치 여호야김 왕의 이름이 여고냐이며 그가 바벨론으로 끌려간 것으로 기술이 되고 있는 것은 역대상의 다윗 왕가의 족보기록에 비추어보더라도 신빙성이 약하다고 하겠습니다(1:11, 대상3:15, 대하36:6).

 

어쨌든 사도 마태가 그의 복음서 제1장에서 다윗 왕가의 왕들의 이름을 쭉 거론하면서 목수 요셉이 왕손임을 입증하고 있는 것은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의 왕인 메시아로서 이 세상에 왔다는 정통성을 주장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의사 누가의 입장은 다릅니다. 그는 마태가 이야기 하고 있는 선민의 족보에 대해서는 관심이 없습니다. 그가 바라보고 있는 예수 그리스도는 다윗의 뒤를 잇고 있는 선민들의 메시아가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 그리스도가 다윗의 가문과 선민 이스라엘뿐만 아니라 아담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는 모든 인류를 십자가에서 구원하여 가슴에 품고서 하나님께 메시아의 나라와 함께 예물로 바치기 위하여 올라가는 그것을 바라보고 있습니다(3:23-38, 6:39, 고전15:24). 그것은 한 마디로, 거듭난 성도들이 어떠한 마음가짐으로 예수님처럼 거룩하게 살아가야만 하는가를 상징적으로 말해주고 있는 영적인 족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