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3강(마1: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5. 20:46

마태복음 강해 제3(1:3-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10()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으로 이방인출신 네 여자가 등장하고 있는 이유(1:3-6)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 있습니다; 첫째, 예수 그리스도가 완전한 여자의 후손으로 이 세상에 태어난다는 예언 때문입니다(3:15). 둘째, 선민만의 구원이 아니고 이방인까지 구원하는 만민구원의 원칙을 예수 그리스도가 복음으로 선포하고 있기 때문입니다(8:11-12). 창조주 하나님의 공의의 원칙은 선민의 범위를 넘어서서 만민과 모든 피조물에게 동일하게 적용이 되고 있는 대 원칙입니다(5:45, 3:16, 8:14-15, 19-22). 그 공의의 정신이 하나님의 말씀의 근본취지가 되고 있으며 그것이 복음으로 재조명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한 만민구원의 뜻이 이미 예수 그리스도의 조상들의 계보에 상징적으로 담겨있습니다. 이방여인들의 참여가 바로 그것입니다. 좀더 설명을 해보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로, 나사렛 예수는 하나님의 능력으로 처녀 마리아에게서 태어난 순수한 여자의 후손입니다(1:34-38). 생물학적인 아버지가 없으므로 완전한 여자의 후손입니다. 그러한 출생의 비밀이 성경적인 중요성을 가지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하나님의 예언 때문입니다; “내가 너(옛 뱀 또는 사탄의 화신, 3:1, 12:9)로 여자의 원수가 되게 하고 네 후손도 여자의 후손과 원수가 되게 하리니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 너는 (예수 그리스도)의 발꿈치를 상하게 할 것이니라 하시고”(3:15).

참고로, 사탄이 이 세상에 오면 천하를 꾀는 자 마귀가 되며 그의 부하들은 귀신이 됩니다(1:6, 20:2). 정치적인 권력을 장악하게 되면 바벨론이 되고 음모자가 되어 사람들을 영육간에 타락시키고 있으므로 소위 음녀가 됩니다(17:5). 그리고 종교적인 권력을 장악하여 그리스도를 대항하게 되면 적 그리스도가 되며 그의 하수인들은 거짓 선지자가 되고 맙니다(요일2:22, 19:20). 히브리 전승에 따르게 되면 음악과 찬양을 담당하던 하나님의 천사장 루시엘이 타락하여 창조주에게 대항하는 적대세력의 괴수인 사탄이 되었다고 합니다(14:12-20). 그래서 그 이름자 가운데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는 자가 떨어져나가고 방종과 탐욕과 악한 지배를 상징하고 있는 자가 붙어서 루시퍼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정확한 전승인지는 몰라도 영적인 개념을 파악하는 데에는 도움이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사도 바울의 로마서 제7장과 제8장을 참조하면 사탄이 지니고 있는 가장 큰 권세는 죄와 사망아래로 사람을 끌고 가는 것입니다(7:23-24). 그런데 사탄의 머리라고 할 수 있는 그 최고의 권세가 그만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대속과 무덤 속 부활로 말미암아 깨어져버리게 됩니다(8:1-2). 그리고 성령님의 강림과 성도의 속사람 속 내주 역사하심으로 말미암아 이제는 사탄의 육체적인 정죄와 지배권도 깨어져버립니다(7:22, 8:3-6, 고전6:19-20). 따라서 이제 영적인 삶을 그리스도 안에서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시작하게 된 성도들은 하나님의 양자가 되는 특혜까지 누리고 있습니다(8:15).

요컨대, 사탄은 여자의 후손인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임으로써 그의 발뒤꿈치를 물고서 치명적인 독소를 주입하는 데에는 성공합니다. 하지만 대속의 죽음이 하나님의 공의를 만족시키며 무덤 속 부활을 초래하게 되는 원인이 된다는 사실에 대해서는 깜박하고 있습니다. 만약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서 처형하는 것이 자신의 죄와 사망의 권세가 깨어지는 계기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악한 영이 진작에 눈치를 챘더라면 결코 그러한 일을 벌이지 아니했을 것입니다(11:49-53). 그러므로 하나님의 뜻과 생각이 사람의 뜻과 생각을 초월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55:8-9) 사탄의 책략보다 월등하다는 사실을 십자가 사건에서 한 눈에 알 수 있다고 하겠습니다(48:5-7).

소 결론을 맺어보자면, 사탄이 그리스도와 성도를 괴롭힐 수는 있지만 결코 죄와 사망의 권세 아래 완전히 가두어둘 수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사탄의 책략과 능력이라고 하는 것이 결코 창조주의 의도를 완전히 읽어낼 수가 없으며 동시에 그 창조적인 능력의 발휘를 끝까지 방해할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 선례는 욥기에서 이미 선을 보이고 있으며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말미암아 최종적으로 완전히 입증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1:12, 2:6, 8:31-39).

둘째로, 유다의 족보는 다윗 대왕으로 이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의붓 아버지가 되고 있는 왕손인 목수 요셉에게까지 내려오고 있습니다(1:3-16). 그런데 그 계보의 가장 큰 특징은 네 명의 이방여인이 들어 있다는 것입니다(1:3-6). 유다의 아들 베레스를 낳게 되는 가나안 족속 출신인 다말(1:3, 38:2, 6, 29), 살몬의 아들 보아스를 생산하는 여리고 성의 기생 출신 라합(1:5a, 2:1, 11-24, 6:25), 보아스에게 다윗 대왕의 조부 오벳을 낳아주는 모압출신 여인 룻(1:5b, 4:13-22), 그리고 다윗 왕에게 후계자 솔로몬 왕자를 생산해주고 있는 헷 족속 출신 여인 밧세바(1:6, 삼하11:3, 12:24) 등입니다. 이방여인들의 피가 선민이 자랑하고 있는 다윗 왕가에 생생하게 섞여 있습니다. 그러므로 유대인들이 혈통적인 선민사상을 부르짖고 있는 것은 순수하지 못하며 원인무효라고 하는 사실을 사도 마태가 그의 복음서 제1장에서 여실하게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뿐만 아니라 4명의 이방인 여인들은 모두 죄인의 신분임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선민들의 율법적인 관점에서 판단하게 되면 결코 의롭지가 않습니다; 첫째, 다말은 시아버지 유다와 관계하여 아들 베레스를 얻은 여인입니다. 둘째, 라합은 여리고 성에서 남자를 많이 상대하던 기생출신입니다. 셋째, 룻은 이스라엘 회중에 결코 참여할 수 없는 모압 출신의 여자입니다(23:3). 그리고 그녀는 과부의 신세였습니다. 넷째, 밧세바는 다윗 대왕을 유혹했으며(삼하11:4) 자신 때문에 남편 우리아 장군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삼하11:5-6, 15-17). 어느 여인 하나 율법적으로나 도덕적으로 완전한 의로움이 없습니다.

반면에 전혀 다른 측면이 하나 공통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모두가 마치 이삭의 아내 리브가처럼(24:58) 믿음의 조상인 아브라함 집안의 여인이 되고자 일생일대의 중요한 선택을 했다는 것입니다. 그들은 모두 하나님을 경외하고 있으며 하나님을 섬기는 가문의 여인이 되고 싶어하고 있습니다;

(1) 다말은 유다의 맏며느리였지만 아들 하나 없이 그만 과부가 되고 말았습니다. 수혼제(嫂婚制, 아들이 없이 과부가 된 형수를 아내로 맞이하여 아들을 생산하여 형의 대를 잇게 하고 재산을 상속받을 수 있도록 만들어 주는 고대사회의 관습)에 따라 시동생과 합방을 했지만 아기를 만들어 주지를 아니했습니다(38:9-10). 친정으로 돌아가서 막내 시동생이 성장하기를 기다렸지만 시아버지 유다가 약속을 어기고 있습니다(38:11, 14). 다말은 다시 유다의 가문에서 대를 이어주고 그곳에서 살고 싶어한 여인입니다. 맞아 죽을 각오로 창녀행세를 하면서 시아버지 유다의 씨를 받게 된 다말입니다(38:13-18, 24).

(2) 여리고 성 기생이었던 라합은 하나님을 두려워했습니다(2:11). 여리고 성이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에게 멸망을 당할 운명임을 깨닫고 있습니다(2:9). 그녀는 이스라엘의 정탐꾼을 살려주면서 자신과 가문의 안전을 부탁합니다(2:12-13). 그녀는 멸망의 와중에서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자 모든 것을 걸었던 여인입니다.

(3) 모압 여인 룻은 끝까지 시어머니 나오미를 따라가기로 결심했습니다(1:18).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시집의 하나님을 자신의 하나님으로 섬기고 싶었기 때문입니다(1:16). 둘째, 역시 과부이며 늙은 시어머니 나오미를 끝까지 봉양하고 싶었기 때문입니다(1:17). 그것은 완벽한 하나님 사랑이며 이웃사랑의 모습입니다(12:30-31).

(4) 밧세바가 남편 우리아를 떠난 것은 잘못입니다. 하지만 그녀가 왜 전 남편 헷 족속 출신의 장군 우리아를 떠나서 유다 출신의 왕 다윗을 새로운 남편으로 선택하고 있을까요?(삼하11:26-27) 그리고 다윗은 자신의 잘못을 항상 생각나게 해주는 여인 밧세바를 왜 한평생 죽을 때까지 아내로 곁에 두고자 했을까요?(삼하11:27, 12:13, 24, 왕상1:15) 그리고 그녀에게서 왜 첫째 아들이 죽고 그 다음에 하나님의 섭리로 다윗의 후계자인 솔로몬 왕자가 태어나고 있는 것일까요?(삼하12:14-16, 19-24) 그것은 풀 길이 없는 수수께끼입니다. 사람의 정의의 판단을 넘어서고 계시는 하나님의 공의로운 생각이 과연 무엇인지를 계속 물어보아야만 하는 대목입니다. 요컨대, 더 깊은 영적인 묵상이 앞으로도 요구되고 있는 분야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