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태복음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마태복음 강해 제2강(마1:2)(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15. 20:44

마태복음 강해 제2(1:2)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19(주일)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이 야곱을 낳고 야곱이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게 되는 기적에 관하여(1:2, 21:7, 25:21, 29:31-35)

 

하나님의 자녀는 어떻게 탄생하게 되는 것일까요? 사도 요한은 자신의 복음서 제1장에서 그 비결을 다음과 같이 설명하고 있습니다; “영접하는 자 곧 그(하나님 말씀의 성육신인 예수 그리스도) 이름을 믿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자녀가 되는 권세를 주셨으니 이는 혈통으로나 육정으로나 사람의 뜻으로 나지 아니하고 오직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들이니라”(1:12-13). 그리스도의 제자인 성도들은 사람에 의해서가 아니고 오로지 하나님에 의하여 태어난 자라는 새로운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는 의미입니다. 그와 같은 어려운 의미를 사도 마태는 다음과 같이 실제의 예를 들어서 쉽게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1:2). 왜 그러한지 그 이유를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아브라함은 100세에 약속의 아들 이삭을 얻게 됩니다(21:5). 그때 아내 사라가 90세입니다(17:17). 그녀는 일년 전에 하나님께서 남편 아브라함을 통하여 자신의 몸에서 약속의 아들이 태어날 것이라고 예언을 해주셨지만 그때에는 그 말씀을 도통 믿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 이유는 두 가지입니다; 첫째, 자신은 오래 전에 경수가 끊어진 몸입니다(18:11). 난자가 생산이 되지 아니하고 있는데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가 있겠습니까? 둘째, 사라는 평생 동안 아기를 낳아본 적이 없는 여성입니다. 한 마디로 불임여성입니다(11:30). 그런데 어떻게 아기를 낳을 수가 있겠습니까? 과학적으로 불가능한 말씀입니다. 그래서 사라는 장막 문 뒤에서 그 말씀을 엿듣고서 냉소를 날렸습니다(18:12). 그 모습을 투시하여 보시고서 여호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통하여 꾸중을 하셨습니다; “사라가 왜 웃으며 이르기를 내가 늙었거늘 어떻게 아들을 낳으리요 하느냐? 여호와께 능하지 못한 일이 있겠느냐? 기한이 이를 때에 내가 네게로 돌아오리니 사라에게 아들이 있으리라”(18:13-14).

사실은 사라보다 먼저 그 예언을 들었던 아브라함도 믿지를 못하고 그냥 웃은 적이 있습니다(17:15-17). 그들 부부의 불신앙을 보신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믿음이 무엇인지 영원히 기억을 시켜주고 싶어하셨습니다. 그 방법이 이듬해에 태어날 아들의 이름을 이삭으로 명명하는 것입니다(17:17-19). 그 뜻은 웃음입니다. 그 이름을 부를 때마다 그들 부부는 하나님의 전능하심을 기억할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이란 사람의 능력과 생각을 믿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의도와 능력을 믿는 것임을 절실하게 되새기게 될 것입니다. 소 결론을 맺어본다면, 약속의 아들 이삭은 사람의 능력으로 만들어진 아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능력으로 생산이 되고 이 땅에 보내어진 아들입니다. 그리고 이삭의 정체성과 그 믿음을 대물림하는 자가 앞으로 영적인 장자가 되며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선지자가 될 것입니다.

둘째로, 이삭의 가정에서도 똑 같은 사건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삭의 아내 리브가가 불임이었던 것입니다(25:21a). 그래서 이삭이 20년 동안 끊임없이 기도를 했습니다(25:20, 21b, 26). 그가 줄기차게 간구할 수 있었던 이유는 자신의 출생의 비밀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아브라함의 나이 100, 불임여성이었던 어머니 사라의 나이가 90세였지만 그들을 동시에 회춘시키고 임신의 능력을 주신 분이 바로 전능하신 하나님이십니다(21:1-2). 아버지 아브라함의 체험적인 증언에 따르면 하나님은 여인의 태를 닫기도 하시고 또한 열기도 하시는 창조주이십니다(20:17-18). 그러므로 이삭이 하나님께 아내 리브가의 태를 열어달라고 기도하는 것은 당연합니다. 이삭이 20년 동안 끈질기게 기도하는 것을 보시고 하나님께서 그들 부부에게 쌍둥이 아들을 선물하셨습니다(25:23-26). 그 가운데 누가 영적인 장자가 되며 다음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방백이 될까요? 둘째인 야곱이 되고 있습니다.

서열을 중시하고 있는 고대 가부장 족장사회에 있어서는 꿈도 꾸지를 못할 대 사건입니다. 장남이 버젓이 살아 있는데 어떻게 둘째가 장자의 축복을 얻을 수가 있을까요? 불가능한 이야기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은 다르십니다. 세상적인 족장과 영적인 족장을 분리시키신 것입니다. 이삭의 재산과 세상적인 족장의 지위는 쌍둥이 형 에서가 전부 차지했습니다(32:6, 33:9). 동생 야곱에게는 아버지의 재산을 하나도 나누어주지를 아니했습니다(36:6-7). 그러나 에서는 영적인 장자나 선지자의 직분에 대해서는 전혀 관심이 없었습니다(25:34). 그 모든 권리는 고스란히 야곱의 차지가 되고 있습니다(28:13-15, 35:10-12). 요컨대, 하나님의 나라를 구하며 자신의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과의 언약의 상대방이 되고 있는 자는 둘째인 야곱입니다. 형 에서는 더 큰 부를 찾아서 처가동네 세일 산으로 떠나가 버립니다(36:6-8). 동생인 야곱이 아버지 이삭의 영적인 권위를 물려받고서 가나안 땅에서 하나님이 세운 대 족장임을 의미하고 있는 이름 이스라엘로 우뚝 서게 됩니다(32:28, 37:14, 17, 48:22). 그의 슬하에서 열두 지파의 족장이 탄생하고 있습니다(38:1, 12, 49:1-28).

셋째로, 야곱의 넷째 아들인 유다가 어떻게 영적인 장자가 되고 있을까요? 하나님의 섭리가 다음과 같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첫째, 야곱의 제일 부인 레아가 첫 아들 르우벤을 생산합니다(29:32). 사내답고 늠름합니다. 당연히 차기 족장 감입니다. 하지만 서모 빌하와 통간을 하면서 아비 야곱의 침상을 더럽히고 있습니다(35:22). 그래서 결코 이스라엘의 뒤를 잇지를 못하고 있습니다(49:3-4). 둘째, 차남 시므온과 삼남 레위는 단짝입니다(49:5-7). 그들은 함께 종들을 이끌고서 세겜 성의 히위 족속을 급습합니다(34:25). 히위 족속의 남자들은 할례를 받은 지 3일째 되는 날이라 통증 때문에 운신을 할 수가 없습니다. 따라서 세겜 성의 지배족속들은 하룻밤에 멸문지화를 당했습니다. 친 여동생 디나의 치욕을 칼로써 갚은 자들이 시므온과 레위입니다(34:31). 그들은 무자비합니다. 승리를 얻기 위해서는 세상적인 속임수를 동원하고 있습니다(34:13-17). 결코 하나님 신앙을 지켜나가는 집안의 족장으로서는 적격자들이 아닙니다. 따라서 결론은 사남인 유다입니다. ‘유다라는 이름의 뜻은 하나님 찬송입니다(29:35). 어머니 레아가 남편의 사랑을 끝까지 얻지 못하자 넷째 아들을 낳고서 신앙적인 큰 결단을 합니다; “이제는 하나님만 찬송하면서 여생을 보내겠다고 결심하고 있습니다”.

유다는 다음과 같은 장점을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이복동생 요셉의 목숨을 살리고 동시에 다른 형제들의 위기를 벗어나게 해주고자 요셉을 살려서 애굽의 노예로 팔자는 제의를 합니다(37:26-27a). 모두가 살 수 있는 대안이므로 형제들의 동의를 얻어서 그렇게 처리가 됩니다(37:27b-28). 둘째, 맏며느리 다말이 과부가 되고 친정에 돌아가서 살고 있는데 임신을 했다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38:24a). 율법에 따라서 불태워 죽이라고 유다가 명령을 합니다(38:24b). 하지만 다말이 그 사람으로 인하여 임신을 했다고 하면서 유다 자신의 담보물을 인편으로 보내어 옵니다(38:25). 만약 족장인 유다가 자신의 체면을 지키고자 모른 체하게 되면 다말은 죽고 자신은 떳떳해질 것입니다. 그러나 유다는 진실을 외면하지 않습니다. 다말의 말이 옳다고 인정을 해주면서 뱃속의 아기까지 살려주고 있습니다(38:26-27). 그 줄기에서 훗날 다윗의 가문이 탄생을 하고 있습니다(38:29, 1:3-6). 셋째, 애굽의 총리 집에 꼼짝없이 노예로 살게 될 막내 동생 베냐민을 구원하고자 최선의 노력을 경주합니다. 자신이 막내 동생 대신에 종이 될 터이니 부디 베냐민을 아버지 집으로 돌려보내달라고 애원을 합니다(44:33). 그 이유는 아버지 야곱과의 약속을 지키기 위함입니다(44:32). 그리고 베냐민을 잃어버리게 되면 노인 야곱이 살 의욕을 완전히 상실할 것임을 잘 알고 있기 때문입니다(44:22, 31, 34). 유다의 자기희생적인 설득은 요셉 총리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45:1). 마침내 형제들 사이의 대 화해의 장이 마련이 되고 있습니다(45:3-15).

이상과 같은 드라마틱한 사건과 기적들이 아브라함이 이삭을 낳고 이삭은 야곱을 낳고 야곱은 유다와 그의 형제들을 낳고”(1:2)라는 족보 가운데 들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섭리와 능력이 아니면 결코 이 세상에 탄생할 수 없는 가문입니다. 그들이 그들의 세대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며 하나님 신앙을 보전하고 있는 족장들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선택과 뜻에 의하여 탄생하고 있는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1:12-13). 그 점을 마태복음 제1장에 등재되어 있는 아브라함 자손의 족보가 웅변적으로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