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35강(출32:30-33: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5. 08:04

출애굽기 강해 제135(32:30-33: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9()

 

시내 산 정상에서 40일간 머무는 동안에(24:18) 모세는 하나님으로부터 백성들의 타락상과 전멸시켜버릴 계획을 전해 듣고서(32:7- 10) 부디 용서해달라고 매어 달린 바가 있음(32:11-13).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진노를 거두어버리셨다고 이미 기술하고 있음(32:14). 그런데 어찌하여 하산을 한 모세가 돌판을 던져서 깨뜨리며 금송아지를 불태워서 그 가루를 백성으로 하여금 마시게 하고 동족상잔을 일으켜서 삼천 명을 죽였으며 또 하나님께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하실지 아니하실지 모르겠다고 말하면서 다시 시내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가?(32:15-30)

 

영원하신 하나님의 속성에 비추어볼 때 모세의 행동과 처신은 분명히 앞뒤가 맞지 아니하는 것만 같습니다. 그 이유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십계명을 어기고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섬긴 잘못을 하나님께서 보시고 그들을 전멸시켜버릴 것으로 모세에게 내심을 밝히셨으나 모세의 간구를 듣고서 그 진노를 거두셨다고 한다면 이제 완전히 용서함을 받은 것이 아닌가 하고 생각을 할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자세히 묵상을 해보면 무엇인가 성도들이 속단을 하고 있다고 하는 생각을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을 전멸시켜버리겠다고 하는 계획을 일단 철회하였다고 하는 내용만을 모세가 기록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2:14). 그 이상의 내용을 적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마치 그 옛날 노아 시대의 홍수심판처럼 전멸시켜버릴 완전심판의 계획만을 철회한 것이므로 부분적이고도 제한적인 징계는 얼마든지 남아 있습니다(8:21, 9:11, 18, 24, 19:24-25). 그와 같은 사실을 꿰뚫고 있는 자가 바로 모세입니다. 그는 여전히 하나님의 징계가 두렵습니다. 어떻게 하면 하나님의 징계의 수준을 경감시킬 수가 있을까요? 백성을 구하고자 하는 모세는 최소한의 희생으로 그 일을 마무리를 짓는 한편 차제에 백성들에게 엄중경고를 함으로써 재발을 예방하고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모세의 노력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하산을 하자마자 두 돌판을 내던져서 깨뜨리는 것으로 하나님의 강력하신 진노를 알려줍니다(32:19). 둘째, 금송아지를 불태워서 가루로 만들어 그것을 물에 타서 마시도록 함으로써 우상을 만들어서 섬긴 죄악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지를 몸으로 느끼게 만들고 있습니다(32:20). 셋째, 하나님 말씀을 따르겠다고 결단하는 자와 그러하지 아니한 자 사이를 구분하여 전투를 하도록 함으로써 서로가 인간적인 지연과 혈연을 뛰어 넘어서 오로지 하나님의 뜻만을 따르고 헌신하는 성도로 거듭나게 만들고 있습니다(32:26-27). 모세를 통하여 나타나고 있는 그 방법은 예수님의 말씀과 사도 요한의 기록에 비추어볼 때 하나님의 생각과 일치가 되고 있는 것입니다(3:31-35, 1:12-13).

모세는 쌍방전투의 과정에서 불가피하게 삼천 명 정도의 희생이 있었지만 그것으로 하나님께 헌신하는 것이 무엇인지를 백성들이 알게 되었을 것으로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32:28-29a). 따라서 그들에게 축복의 말씀을 전하고 있습니다(32:29b). 하지만 그 이튿날이 되자 역시 걱정이 밀려들고 있습니다. 모세의 생각으로는 그 정도의 자체징계를 행했으면 하나님께서도 만족하실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생각을 모세가 다 알 수는 없습니다. 만약에 더 이상의 징계를 말씀하신다면 어찌하면 좋습니까? 그래서 하나님께 중간보고를 드리기 위하여 시내 산으로 올라가고 있는 모세의 발걸음이 엄청 무겁다고 하겠습니다(32:30).

 

모세의 필사적인 중보기도와 하나님의 추가조치(32:31-33:3).

 

모세는 그 정도의 징벌로써 이제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달라고 하나님 앞에서 빌고 있습니다(32:31-32a). 그리고 더 이상의 징계를 원하신다면 아예 모세 자신의 이름을 하나님의 생명의 책에서 지워버리는 것으로 심판을 끝내어달라고 말씀을 올리고 있습니다(32:32b). 그것은 죽기살기로 하나님께 매어 달리고 있는 모세의 중보자로서의 간구를 충분히 보여주고 있는 대목입니다. 마치 그 옛날 얍복 시냇가에서 처자식과 자신의 목숨을 살려달라고 하나님의 사자에게 씨름으로 밤새 매어 달리고 있던 야곱의 모습을 다시 보는 것과 같습니다(32:22-32). 필사적인 간구의 결과 야곱은 숙적 에서와 다음날 화해를 하게 되는 극적인 순간을 맞이하게 됩니다(33:4-11).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야곱의 그 다음의 행보를 지켜보시고 계십니다; “야곱이 진실로 생명구원의 은혜를 감사하면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을 인생의 최우선으로 둘 것인지 아니면 또 옛날 자신의 꾀로 소원성취를 하고자 하는 고약한 근성으로 돌아갈 것인지를 눈여겨보고자 하시는 것입니다”. 아니나다를까 야곱은 그 후 곧바로 가나안으로 들어가지를 아니하고 있습니다. 그는 얍복 시내와 요단강이 서로 만나고 있는 곳 곧 물이 풍성한 숙곳 들판에서 가축을 먹이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리고 부자가 되자 비로서 요단 강을 건너 서편 가나안지역으로 들어갑니다. 하지만 야곱은 남행을 하지를 않습니다. 남쪽으로 가야 하나님과의 서원을 지킬 수 있는 벧엘이 있고 아버지 이삭이 살고 있는 헤브론과 브엘세바가 나타날 것입니다. 그 대신에 그는 도시생활이 그리워서 북쪽에 위치하고 있는 가나안 땅의 중심 대도시인 세겜 성으로 들어가고 맙니다. 그 결과 야곱은 하나님의 채찍을 맞게 됩니다. 그것이 소위 세겜 사건입니다(34:25-31).

야곱이 바로 이스라엘입니다(32:28, 35:10).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태도 그 조상 야곱과 다를 바가 없다는 사실을 하나님께서 이미 아시고 계십니다. 그래서 모세가 죽기살기로 매어 달리고 있지만 하나님의 판단과 결정사항은 냉정하기 이를 데가 없습니다; 첫째, 하나님께 범죄하는 당사자의 이름을 생명의 책에서 지워버리는 것은 하나님의 고유권한이므로 모세는 더 이상 자신의 영생을 두고서 왈가왈부를 하지 말라는 것입니다(32:33). 둘째, 일단 백성들을 살려주고 구름기둥 불기둥을 앞세워서 그 길을 인도하는 혜택을 계속 누리게 해줄 것이라고 언급하고 있습니다(32:34ab). 셋째, 이미 약속한대로 사자를 보내어서 가나안 땅을 점령할 수 있도록 도와주겠다고 하십니다(33:2-3a).

마지막으로, 그러나 결정적인 무서운 말씀을 하시고 계십니다; 하나님께서는 더 이상 모세와 모세의 백성들과 동행하지를 아니하시겠다는 선언입니다(33:3). 그 준엄한 말씀을 듣고 모세와 백성들은 두려움에 떨고 있습니다. 하나님 없이 어떻게 살아갈 것입니까? 불가능합니다. 그래서 백성들이 회개를 하며 모세가 다시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33:4-12). 부디 살려주십시오. 하나님께서 동행하시지 아니하시면 모세 자신은 아무 것도 할 수가 없다는 사실을 고백하고 있습니다(33:12-13).

결론적으로,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용서하지 아니하고 백성들이 저지르는 죄를 그대로 보응을 하시겠다고 선언을 하십니다(32:34c). 그 말씀은 예수님의 말씀을 다시 생각나게 해주고 있습니다; “나도 너를 정죄하지 아니하노니 가서 다시는 죄를 범하지 말라 하시니라”(8:11). 간음현장에서 잡혀온 여인의 죄를 한번은 용서를 해주시고 계십니다. 그러나 재범을 하는 경우에는 용서함이 없다는 사실을 분명히 선포하고 계시는 말씀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십자가 대속의 은혜로 죄 사함을 받은 바가 있는 성도들은 남은 인생을 하나님의 뜻에 맞게 철저하게 살아가야만 합니다(7:21). 부지런히 말씀공부를 통하여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처럼 살아갈 수 있도록 기도로써 성령님의 도우심을 구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매일 매일 거룩한 하나님 자녀로서의 성화를 이루어가야만 할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