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36강(출33:3-1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5. 08:05

출애굽기 강해 제136(33:3-1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10()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 말씀에 대한 지식이 부족하여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 여호와라고 섬긴 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하나님의 세 가지 정책방향과 모세의 역할(32:7-11, 33-35, 33:3-14).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하나님의 부름을 받고서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간 후 오랫동안 감감무소식입니다(32:1b). 최고지도자를 잃어버린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어찌할 줄을 모르고 있습니다. 그래서 장로들이 아론을 찾아가서 백성들의 동요를 잠재우기 위해서 여호와 하나님을 보여주자고 합니다. 그 방법은 그들이 애굽에서 배운 그대로 금송아지 신상을 만드는 것입니다(32:1a). 백성들은 여호와 하나님을 상징하고 있는 금송아지 신상을 만들기 위하여 정성을 다하고 있습니다. 금 귀고리를 모두 수집하여 녹였습니다(32:2-3). 그 녹인 금을 송아지 조각 틀 사이에 부어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든 것으로 보입니다(32:4). 그리고 제사를 드리고 축제를 벌였습니다(32:6). 백성들의 불안감이 사라지고 기력이 회복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보면 정말 큰일이 날 일입니다; 첫째, 십계명 가운데 중요한 대목 제2계명을 그대로 어기고 있습니다(20:4-5). 피조물의 형상을 만들어서 절하며 섬기고 있기 때문입니다. 둘째, 3계명도 어기고 있습니다(20:7). 금송아지를 출애굽의 신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고 있기 때문입니다. 셋째, 하나님이 모세를 통하여 십계명을 백성들에게 가르쳐준 지 얼마 되지 아니한 시점입니다. 그대로 지키겠다고 백성들이 제물의 피를 두고서 맹세까지 했습니다(24:3-8). 그런데 벌써 하나님 말씀의 핵심인 십계명까지 잊어버리고 애굽에서 배운 우상문화 그대로 사고하며 행동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출애굽의 목적이 상실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 크게 노하십니다(32:7-11).

이스라엘 백성들의 무지와 잘못은 하나님의 진노를 초래했으며 다음과 같은 세 가지 처벌방법이 수면 위에 떠오르고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을 전부 몰살하고 그 대신에 모세의 가문으로 새로운 이스라엘을 형성하게 한다는 것입니다(32:10). 둘째, 하나님께서 더 이상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하지 아니하겠다는 것입니다(33:3). 셋째,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이월하여 보응하는 날에 한꺼번에 청산을 하겠다는 것입니다(32:34). 그 가운데 처음 두 가지의 처벌방향에 대해서는 모세가 사력을 다하여 중보의 기도를 드리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 뜻을 돌이키실 때까지 매어 달리고 있습니다. 그래서 성공적인 결과를 얻고 있습니다.

하지만 마지막 방안에 대해서는 속수무책입니다. 다만 더 이상 잘못을 범하지 아니하도록 예언과 더불어 엄중하게 경고를 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율법을 어긴 경우에 얼마나 심각한 저주와 진노가 임할 것인지 그 내용을 기억하기 쉽도록 생생하게 노래로 만들어서 백성들에게 보급을 시키고 있습니다(6:4-25, 8:11-20, 28:15-68, 29:14-29, 31:16-22). 그 내용을 중심으로 기록이 되고 있는 모세오경이 바로 신명기라고 하겠습니다.

그렇지만 모세의 예언 그대로 이스라엘 자손들은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으로 끝까지 살아가지를 못했습니다. 그 결과 주전 586년에 다윗 왕조의 유다 왕국마저 망해버리고 맙니다. 세상 모든 족속들의 죄를 대속해주는 제사를 드리고 하나님 말씀을 전하며 중보의 기도를 들려주는 제사장나라로서의 역할을 전혀 하지 아니했기에 지상에서 사라지는 것이 당연한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렇다면 언제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순종에 대한 징계가 이월이 되어 한꺼번에 청산이 되고 있을까요?

그 시점이 바로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하여 공생애를 지내고 마침내 세상 죄를 지고 가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대속의 십자가를 지게 되는 그 순간이 될 것입니다(1:29, 19:30). 구 언약의 시대가 십자가에서 청산이 되고 새로운 언약의 시대가 예수님의 부활로 말미암아 시작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16-17, 8:1-2). 그때까지는 아무리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하더라도 인간의 노력으로는 100% 율법의 준수가 불가능했습니다(3:9-18, 7:21-24). 하나님의 뜻을 올바르게 준행할 수가 없었던 시대로 점철이 되어 있습니다. 따라서 십자가의 대속의 은혜와 성령님의 강림과 내주 역사하심으로 비로서 새로운 시대가 열리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8, 2:1-4, 7:25-8:15).

이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금송아지 우상 숭배사건을 처리하는 과정에서 불거져 나온 하나님의 두 가지 정책의 방향에 대해서 좀더 살펴보고자 합니다;

첫째로, 모세의 간구로 이스라엘 백성을 진멸하겠다고 말씀하신 하나님의 뜻은 철회가 되고 있습니다(32:10-14). 모세는 만약 하나님이 애써 출애굽을 시킨 이스라엘 백성을 광야에서 전멸을 시켜버리실 경우에는 이방인들이 그 속사정을 자세히 모르고서 하나님의 처사에 대하여 조소할 것이라는 점을 지적하고 있습니다. 굉장히 날카로운 지적입니다. 하지만 천지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 그 정도의 논리를 모르시지는 않습니다. 그러므로 모세의 지적이 효력을 발휘한 것이 아니라 실제로는 모세의 그와 같은 논리적인 간구가 있기를 하나님께서 은근히 기다리고 계셨다고 보는 것이 더 정확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실현하고자 하는 중보기도가 꼭 필요하다는 사실을 재삼 발견할 수가 있습니다.

둘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제부터 직접 이스라엘 백성과 동행하지를 아니하시겠다고 선언을 하고 계십니다(33:3b). 간접적으로 들고 있는 이유는 또 다시 우상을 섬기는 백성들의 교만한 행위를 보시게 되면 더 이상 참지를 못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전멸시켜버릴 것이 아닌가 하는 의구심이 들기 때문이라는 것입니다(33:3c). 하지만 그 선언을 듣고 있는 모세와 백성들은 즉시 깨달을 수가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지금까지 백성들이 누려온 모든 혜택을 그대로 유지시켜주겠다고 하십니다(32:34a, 33:1). 그것은 불기둥과 구름기둥의 은혜, 만나와 메추라기를 주시는 은혜를 말하고 있습니다. 나아가서 장차 가나안 땅에 들어갈 수 있도록 하나님께서 사자를 보내셔서 원주민까지 축출을 해주겠다고까지 언급을 하시고 계십니다(33:2-3a). 그러나 결정적으로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직접 동행입니다. 만약 하나님께서 함께 동행하지 아니하시게 되면 아무리 천사의 호위를 받는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소위 앙꼬가 없는 찐빵과 같습니다. 환언하면, 구원과 영생이 사라지고 세상적인 복만 누리는 것입니다. 그것을 모세와 백성들은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33:4a). 그래서 모세가 철저하게 매어 달리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첫째, 백성들이 몸단장부터 제거하고 있습니다(33:4b, 6). 그것은 일찍이 세겜 사건을 일으키고 벧엘로 피신을 하고 있는 야곱의 가족과 같습니다. 이방신상 드라빔을 파묻고 장신구를 제거합니다(35:4). 세상적인 자랑이나 기쁨을 내려놓겠다고 하는 상징적인 행동입니다. 그렇게 근신하는 모습을 지켜보시고 하나님께서 정책의 변경을 검토하시겠다는 언급을 하시고 있습니다(33:5). 둘째, 하나님의 정책에 약간의 변경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들이 진을 치고 있는 곳을 떠나서 좀 떨어진 곳에 자신의 장막을 설치하고 있습니다. 그러자 백성들의 눈이 모세의 장막으로 쏠리고 있습니다(33:8). 그래서 그 이름을 회막’(會幕, tent of meeting)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7).

그때부터 하나님께서 회막에 임재를 하십니다(33:9). 백성들은 구름기둥이 회막 위에 멈추어 있는 것을 보고서 하나님의 회막 임재를 알아채고 있습니다. 무사히 모세가 하나님을 잘 설득을 하여서 백성들과 함께 동행해주시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원하고 있습니다(33:11a). 그 마음 때문에 백성들은 각자의 장막에 서서 모세의 회막을 바라보면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33:10). 금송아지 우상이 아니라 구름기둥이 머물고 있는 회막을 향하여 보이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는 것입니다. 모세의 시종 노릇을 하고 있는 총사령관 여호수아는 아예 그 회막을 떠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33:11b). 그 정성이 대단합니다.

백성들의 마음의 변화와 결단을 모세가 피부로 느끼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의 기도에 다음과 같이 힘이 실리고 있습니다; “보시옵소서,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 주께서 전에 말씀하시기를, 나는 이름으로도 너를 알고 너도 내 앞에 은총을 입었다 하셨사온즉, 내가 참으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었사오면 원하건대, 주의 길을 내게 보이사 내게 주를 알리시고 나로 주의 목전에 은총을 입게 하시며 이 족속을 주의 백성으로 여기소서”(33:12-13). 하나님께서는 백성을 대신하여 거듭 용서를 빌면서 부디 선처를 해달라고 매어 달리고 있는 지도자 모세의 형편의 곤고함과 중보자로서의 피곤함을 깊이 통찰하고 계십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쉬게 해주고자 다음과 같이 정책을 완전히 바꾸고 계십니다; “내가 친히 가리라, 내가 너를 쉬게 하리라”(33:14). 그 말씀은 마치 예수님의 말씀을 미리 듣는 것과 같습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할렐루야! 참으로 좋으신 하나님과 은혜를 베푸시는 주님께 감사를 드립니다. 한 마디로, 백성과 하나님 사이에서 한 없이 시달리고 있는 모세와 같은 목회자에게 큰 은총을 베푸시고 있는 복된 장면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