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37강(출33:6-1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5. 5. 10:49

출애굽기 강해 제137(33:6-1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1011()

 

금송아지 우상숭배의 사건을 수습하는 과정에서 드러나고 있는 여러 가지 문제들; 모세의 회막 설치 및 하나님과의 대화와 관련하여(33:6-17)

 

첫째로, 모세는 하나님께 새로운 보좌역이나 동역자를 보내어 달라고 요청하고 있습니다(33:12). 지금까지의 경과를 살펴보면, 출애굽 직후부터 이스라엘 백성들의 갈 길을 인도한 것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입니다(13:20-22). 그 인도함을 따라서 한치의 흐트러짐도 없이 백성을 인솔한 책임자는 모세입니다. 그리고 그를 측근에서 도운 보좌역은 대제사장 아론과 장로들의 수장인 훌입니다(17:10-12). 또한 장정들을 훈련시켜서 전쟁을 수행한 장군은 여호수아와 여분네의 아들 갈렙입니다(17:9, 14:6-9). 나아가서 열두 지파를 책임지면서 모세의 명령을 따랐던 자들은 70명의 장로들입니다(24:9). 그러한 지휘체제가 시내 산 앞에서 모세의 부재기간 중에 발생한 금송아지 우상숭배 사건으로 말미암아 허물어져버립니다. 모세가 더 이상 대제사장 아론과 70명의 장로들을 신임할 수가 없게 되고 말았기 때문입니다.

모세는 아무리 자신이 부재중이라고 하더라도 하나님의 말씀과 십계명을 백성들이 이미 배워서 알고 있었는데 그들이 어떻게 하나님의 말씀을 그렇게 쉽게 완전히 어기고 우상을 만들어서 여호와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섬길 수가 있었는지 이해를 할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자신을 보좌하고 있던 백성들의 지도자 그룹이 우상을 만들고 출애굽의 하나님이라고 부르면서 제사를 드리자고 먼저 제안을 했다고 하는 사실에 대하여 깊은 배신감을 느끼고 있습니다(32:1-10). 따라서 하나님에게 강력하게 요청하고 있습니다. 자신을 도울 수 있는 새로운 보좌역이나 동역자를 보내어달라는 것입니다. 그 대목이 구체적으로 다음과 같습니다; “주께서 내게 이 백성을 인도하여 올라가라 하시면서 나와 함께 보낼 자를 내게 지시하지 아니하시나이다”(33:12).

둘째로, 모세는 백성들의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떠나고 싶어합니다(33:14). 부디 백성들의 잘못을 용서해달라고 하나님께 끊임없이 매어 달리는 것도 이제는 진력이 나고 있습니다. 따라서 최고지도자의 자리를 떠나려고 하는 것입니다. 모든 것을 포기하려고 하는 모세를 하나님께서는 모세 자신의 구원과 영생의 문제를 가지고 붙들려고 하신 것으로 보입니다. 그러나 모세는 막무가내입니다. 백성들의 죄만 용서를 해주신다고 한다면 자신의 구원과 영생의 문제도 포기를 하고서 모든 것을 그만두고 싶다는 것입니다(32:32). 그것이 모세가 하나님께 아뢰고 있는 속사정으로 보입니다. 그러자 모세와 대화를 나누시던 하나님의 불편한 심기가 다음과 같이 구체적으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 “(모세 너를 포함하여) 누구든지 내게 범죄하면 내가 내 책에서 그를 지워버리리라”(32:33).

셋째로, 우상을 버렸다는 표시를 백성들이 자신들의 몸을 단장하지 아니하며 장신구를 떼어내는 것으로 보여주고 있습니다(33:4). 그것이 일종의 회개의 표현입니다. 세속적인 방식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돌아가고자 하는 사람은 무엇보다도 먼저 이방신상들을 버리고 자신을 정결하게 하고 자신들의 의복을 바꾸어 입으며 장신구들을 제거해야만 합니다(33:5-6). 거룩하신 하나님께로 돌아가기 위하여 세상의 누룩과 때를 제거하는 방법입니다(3:5, 12:15). 그 방법은 일찍이 이스라엘 백성들의 조상인 야곱의 일행이 세겜 사건을 당하여 살길을 찾아 하나님이 계시는 벧엘로 피신을 하고 있을 때에 실시하던 일과 동일한 것입니다(35:1-7).

넷째로, 하나님께서 모세를 부르시고 율법을 교육시키며 돌판을 주신 장소는 시나이 반도 남쪽 꼭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이른 바 시내 산입니다(19:1-3, 20, 31:18). 그 시내 산은 시내 광야에 있습니다. 그러므로 아라비아 반도 서북쪽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 산과는 다른 산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모세는 시내 산을 호렙 산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6).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모세가 출애굽기를 기록하면서 너무 고생을 많이 하여서 지명을 혼동하고 있는 것일까요? 그렇지는 아니할 것입니다. 하나님과 직접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세의 기억력은 뛰어나며 그 지혜와 총명이 대단합니다(33:12-18, 34:7). 그러므로 다른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가장 적합한 설명은 호렙 산이나 시내 산이나 모두 하나님의 산이라고 하는 뜻입니다(18:5, 24:13). 호렙 산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신 하나님께서 다시 사정에 의하여 시내 산으로 이동을 시키시더라도 그 산에 역시 하나님께서 임재를 하신다면 그곳은 호렙 산과 다를 바가 없다고 하는 해석이 가능합니다. 따라서 그 어느 곳에 있든지 하나님을 만나고 있는 그 장소가 하나님의 산 호렙이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미디안 땅에서 양치기 생활을 하고 있는 모세를 르비딤 광야(17:1, 6) 호렙 산 떨기나무 불꽃 사이에서 부르셨습니다(3:1-5). 그리고 출애굽의 사명을 그곳에서 부여하셨습니다(3:9-10). 그때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켜서 호렙 산으로 데리고 오라고 명령하시고 계십니다(3:12). 그 명령을 따라 모세가 백성들을 르비딤 광야 호렙 산으로 인도했습니다(17:1, 6). 그리고 그곳에서 자신을 찾아온 장인 이드로와 처자식을 상봉합니다(18:2-5). 그러나 미디안 광야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마냥 머무는 것은 미디안 족속에게 불안요소가 되고 있습니다. 아라비아의 마적이며 무법자인 아말렉 족속을 물리친 이스라엘 민족이(17:8-16) 미디안 광야에 함께 살고 있다는 것은 잘못하면 두 민족 사이에 갈등이 생기고 마침내 미디안 족속이 그들에게 망하게 될 가능성이 농후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디안 족속의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사위인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의 장로들에게 환심을 산 후에 부디 미디안 땅을 떠나달라고 부탁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18:11-12, 24-27). 그 요청을 받아들여서 모세는 미디안 땅 르비딤 광야를 떠나서 다른 민족이 살지 아니하고 있는 시나이 반도 남쪽 시내 광야로 옮겨갔다고 하겠습니다(19:2). 바로 그때가 출애굽한지 3개월이 되던 날이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19:1).

다섯째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따르지 아니하고 애굽에서 배운 방식을 따라서 금송아지 우상을 만들어서 여호와라고 부르면서 섬기고 절하는 것을 보고서 모세는 크게 실망을 합니다(32:18-20). 그는 엄청난 배신감을 느끼고서 아예 자신의 거처를 옮겨버립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진을 멀리 떠나서 자신의 장막을 설치하고 있습니다(33:7a). 그리고 하나님을 앙모하는 자는 모세 자신의 장막 가까이로 모이라고 합니다. 그 말을 따라서 레위 족속과 많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자신들의 장막을 떠나서 모세의 장막 가까이로 모여들고 있습니다(33:7c). 그래서 모세는 자신의 장막을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이 모여드는 장소라는 뜻으로 아예 회막’(會幕)이라고 부르고 있습니다(33:7b).

처음 모세가 두 돌판을 들고서 하산을 하였을 때에는 백성들이 두 무리로 나누어지고 있었습니다. 하나님 편에 서는 자는 모세 주변으로 모이라고 했을 때 레위 지파만이 가까이 나아왔습니다(32:26). 기타 열한 지파는 그대로 남아 있다가 레위 지파와 함께 칼부림을 했습니다(32:27-28). 그러나 이번에는 다릅니다; “모세가 회막으로 나아갈 때에는 백성이 다 일어나 자기 장막 문에 서서 모세가 회막에 들어가기까지 바라보며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때에 구름기둥이 내려 회막 문에 서며 여호와께서 모세와 말씀하시니 모든 백성이 회막 문에 구름기둥이 서 있는 것을 보고 다 일어나 각기 장막 문에 서서 예배하며”(33:8-10). 모든 백성이 하나님을 예배하는 자로 변화가 되고 있습니다. 특히 모세의 시종인 여호수아는 아예 레위 인이나 된 것처럼 하나님이 임재하고 계시는 회막을 도무지 떠날 생각을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33:11). 그 때문에 여호수아에게 하나님의 영이 머무르게 되며 그가 에브라임 지파이지만 차기 모세의 후임자가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7:16-23).

끝으로, 하나님의 산 정상에 임재하여 그곳으로 모세를 불러서 말씀을 나누시던 하나님이 왜 갑자기 모세의 장막인 회막으로 그를 찾아오시는 것일까요? 구름기둥이 이제는 모세의 장막에 머무는 것을 보고서 백성들은 경악을 하고 있습니다(33:9-11). 지도자 모세의 권위가 하늘로 치솟고 있습니다. 감히 이제부터는 모세에게 항명을 할 엄두가 나지를 않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모세의 영적인 권위를 엄청나게 강화해주고 계시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모세의 회막으로 찾아오셔서 함께 대화를 나누는 그것이 은혜 중의 은혜입니다(1:14-16).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모세야 말로 하나님의 사람이며 무상의 영광과 권위를 지니고 있는 사람으로 비치게 됩니다. 그와 같은 강력한 신적인 권위와 지도력이 없으면 도저히 금송아지 우상이나 만들어서 섬기기를 좋아하는 이스라엘 백성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탈바꿈시킬 수가 없다고 하는 것이 하나님의 판단으로 보입니다.

결론적으로, 모세는 자신의 권위를 한없이 높여주시는 하나님께 한 가지 특별한 청을 드리고 있습니다. 부디 이스라엘 백성을 버리지 마시고 하나님의 백성으로 계속 삼아달라는 것입니다. 그 말은 여호와 하나님이 친히 이스라엘 백성들과 동행을 해달라는 간곡한 요청입니다. 다시 주의 백성으로 삼아주시고 영원히 함께 동행을 해주시면 모세는 자신이 확실하게 하나님께 은총을 입은 사람임을 인정하겠다는 것입니다(33:13-14, 16-17). 한 마디로, 모세 자신을 돌보듯이 그렇게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아달라는 간청입니다. 모세의 호소는 하나님의 마음을 움직이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십자가를 지시기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하나님 아버지께 올려드리고 있는 기도와 한치의 오차도 없는 동일한 요청이기 때문입니다(17:15-24). 그것은 하나님께서 가장 기뻐하시는 중보의 기도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