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08강(출25:31-4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25. 18:53

출애굽기 강해 제108(25:31-4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911()

 

성막의 구조와 성물의 배치에 관한 고찰(26:33-35, 29:42, 30:1, 6, 18, 40:3, 5, 6-8)

 

첫째로, 성막은 회막 안에 위치하고 있습니다(33:7-11, 40:2). , 회막이 성막을 둘러싸고 있습니다. 그리고 성막의 문이 동쪽에 있는데(27:13-15). 회막의 문도 동쪽으로 나있습니다(27:16). 그런데 동쪽 성막의 문과 회막의 문 사이에는 성막의 뜰이 있습니다(27:17-18). 그리고 제사장이 회막 문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성막의 뜰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물두멍입니다(30:18, 40:7). 그 다음 물두멍과 성막의 문 사이에 번제단이 위치하고 있습니다(40:6). 그런데 이와 같은 해석은 회막이란 성막의 뜰을 둘러싸고 있는 일종의 울타리라고 확고하게 정의했을 때에 가능한 것입니다(27:9-19). 하지만 출애굽기의 기록에 있어서 모세는 회막과 성막을 같은 개념으로 사용하는 경우가 자주 있어서 성막의 뜰 성물의 배치에 있어서 혼란이 발생하고 있습니다(40:2). 구체적으로, 번제단과 물두멍의 위치가 뒤바뀌게 되기 때문입니다. 그 경우에는 다음과 같이 설명이 될 것입니다; “제사장이 회막 문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성막의 뜰에서 가장 먼저 만나게 되는 것이 번제단입니다(40:6). 그 다음 번제단과 성막의 문 사이에 물두멍이 위치하고 있습니다(30:18, 40:7)”.

일반적으로, 출애굽기 제40장 제2절 모세의 기록을 존중하여 바깥에서 성막의 뜰에 들어서게 되면 먼저 번제단이 있고 그 다음에 물두멍이 있으며 그리고 성막의 문에 이르게 된다고 보고 있습니다(40:6-8). 그렇지만 반대의 경우 즉 번제단에 접근하기 전에 물두멍이 먼저 배치되고 있다고 해석할 경우에는 다음과 같은 교훈이 더욱 강조가 되는 유익이 있습니다; “제사장이 일단 물두멍의 물로써 손과 발을 깨끗이 한 다음에 번제를 바치게 됩니다(30:19). 깨끗하지 아니한 손과 발로써 제단에 다가가게 되면 제사장의 직분을 행할 수 없으며 당장 죽임을 당하게 되기 때문입니다(30:20-21)”. 그것은 마치 호렙 산에서 불꽃 가운데 하나님을 만나게 되는 모세의 모습과 같습니다(3:3-5). 하나님께서 사자를 통하여 사전에 모세에게 네가 선 곳은 거룩한 땅이니 네 발에서 신을 벗으라”(3:5)고 명령하시고 계십니다. 그냥 무작정 호기심 때문에 접근을 했다가는 목숨을 부지하기 힘들기 때문입니다. 여기 회막의 뜰에 위치하고 있는 번제단에 접근을 하는 것도 마찬가지입니다. 제사의 직무를 수행하게 되는 제사장조차 수족을 깨끗하게 하고 제단을 거룩하게 한 다음에 본연의 직분을 행하도록 되어 있는 것입니다(29:20-21, 44, 30:21, 28-29, 40:30-32, 1:5).

둘째로, 유일한 출입구인 동쪽 성막의 문을 들어서게 되면 성소(holy place)를 만나게 됩니다. 성소의 끝에는 휘장이 있습니다. 그 휘장 안에 지성소(the most holy place)가 자리를 잡고 있습니다. 일단 성소에 들어서게 되면 오른쪽인 북쪽에 진설병 상이 놓여 있습니다(40:22-23). 그것은 이미 말씀을 드린 대로, 하나님의 말씀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그 맞은 편인 왼쪽 곧 남쪽에 등잔대가 배치되어 있습니다(40:24-25). 그것은 캄캄한 성소를 밝히고 있는 예수님의 불빛을 의미하고 있습니다(8:12). 또한 지성소와 구별하고 있는 휘장 앞에는 분향하는 제단이 마련이 되어 있습니다(40:26-27). 그 향기는 휘장을 뚫고서 지성소 안으로 들어가고 있습니다. , 향기로운 기도가 하나님께 상달이 되고 있다는 의미입니다(2:23, 5:8, 8:3).

셋째로, 휘장을 헤치고 지성소 안으로 들어서게 되면 증거궤와 속죄소를 볼 수 있게 됩니다(26:34, 40:3).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를 십계명으로 새겨놓은 증거판이 그 증거궤 안에 들어 있습니다(25:21, 34:28).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의 취지와 권위를 상징하고 있습니다. 영이신 하나님, 말씀으로써 천지만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그 무상(無上, 가장 높음)의 권위가 증거궤 안에 담겨있습니다. 지극히 거룩한 증거궤에는 사람들이 함부로 접근하지 못하도록 그 뚜껑에 그룹(천사를 말함) 한 쌍이 조각이 되어 있습니다. 그룹이 서로 날개를 포개어서 증거궤의 뚜껑을 보호하고 있는 것입니다(25:17-22). 그 뚜껑이 이름하여 속죄소입니다. 이미 설명을 드린 바와 같이 일년에 한 차례 대제사장이 지성소에 들어가서 백성들의 죄를 모두 속죄합니다(16:34). 그러면 백성들의 죄를 사한다는 하나님의 말씀이 증거궤 속에서 생성이 되어 뚜껑을 울리면서 음성으로 터져 나오게 됩니다. 대제사장이 그 신탁을 얻게 되면 기쁜 마음으로 성전 뜰로 나가서 백성들에게 선포하게 됩니다(29:42, 16:29-30). 그것이 유대인 달력으로는 710일 또는 양력으로 1010일 소위 대 속죄일의 풍경이라고 하겠습니다(16:34, 7:37).

 

성막 성소 안에 두는 순금 등잔대의 신기한 모양과 그 꺼지지 아니하고 있는 등잔불의 의미(25:31-40, 27:20-21)

 

출애굽기 제25장 제31절부터 제39절 사이에서 모세는 등잔대의 모습을 상세하게 설명하고 있습니다; “순금 한 달란트를 녹여서 등잔대 하나와 기타 불 집게와 불똥 그릇 등 하나의 등잔대 세트를 제조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25:31, 36-39). 등잔대의 모습은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서 환상 가운데 보여주신 양식 그대로입니다(25:40). 첫째, 등잔대는 줄기가 하나인데 양쪽으로 각각 가지가 세 개씩 뻗어 있습니다(25:32). 둘째, 각 가지는 세 마디로 되어 있는데 가지의 끝에는 각각 세 개의 잔과 꽃받침과 꽃이 디자인이 되어 있습니다(25:33-34). 잔의 모습은 살구꽃 형상입니다. 셋째, 줄기와 가지가 만나는 곳에도 꽃받침 디자인이 되어 있습니다(25:35-36). 넷째, 중앙에서 위로 뻗어있는 등잔대 줄기의 끝에는 네개의 잔과 꽃받침 그리고 꽃이 디자인이 되어 있습니다(25:34). 물론 살구꽃 모양입니다. 다섯째, 잔의 수를 모두 합산해보면 3X6+4=22개입니다. 그 가운데 등불을 밝히는 등잔은 7개입니다(25:37). 그 개념의 연장선상에서 일곱 금 촛대라는 용어가 나타나고 있습니다(1:12)”.

특이한 모양을 가지고 있는 등잔대입니다. 그것은 금 한 달란트라는 엄청난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먼저 그 값어치는 얼마일까요? 은 한 달란트는 6,000데나리온에 해당합니다. 1데나리온이 장정의 하루치 품삯입니다(20:2). 간편하게 일당을 100불이라고 가정한다면 은 1달란트는 60만불에 해당합니다. 그런데 금은 은의 15배의 가치를 지니고 있습니다. 따라서 금 한 달란트는 900만불에 해당합니다. 성소에 들어가는 금 등잔대 세트의 값어치가 900만불이나 된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와 같이 비싼 재료로 등잔대를 만들라고 했을까요?(25:39, 37:24) 그리고 왜 맏물인 좋은 올리브 기름을 계속 공급하여 등불을 꺼지지 않도록 잘 관리를 하라고 말씀하고 계시는 것일까요?(27:20-21) 몇 가지 이유를 도출할 수 있습니다;

첫째로, 캄캄한 성소를 유일하게 등잔대가 밝히고 있기 때문입니다. 지성소에 하나님께서 영적으로 임재를 하신다고 생각한다면 성소는 영적 임재로 말미암아 성도들에게 나타나는 여러 기능들입니다. 진설병으로 상징이 되고 있는 것이 생명의 양식을 먹는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분향제단은 성도들의 끊임없는 영적인 기도를 의미합니다. 마지막으로 등잔대는 주님의 교훈과 행적을 인생의 빛으로 삼겠다고 하는 결단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명실상부하게 주님의 제자로 남은 인생을 살아가겠다고 결심하면서 자신의 생각과 행동방식을 주님의 선택에 맞추어나가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마치 캄캄한 바다에서 등대불을 보고서 배가 항해를 올바르게 해나가듯이 성도들이 그와 같은 인생을 살아갈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이 구원과 영생의 길이기에 비싼 금으로 등잔대를 만들고 끊임 없이 기름을 공급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금 등잔대는 일곱 개의 금 촛대로 요한계시록에서 다시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1:12-13). 그것은 세상의 빛이 되고 있는 일곱 교회를 상징하고 있습니다(1:20). 교회의 머리가 되시는 그리스도 예수께서 금 촛대 사이를 왕래하시면서 그것을 돌보고 계십니다. 만약 회개하지 아니하는 교회가 있으면 그 촛대를 옮겨버리겠다고 말씀하고 계십니다(2:5). 교회가 말씀과 기도 그리고 지상명령을 실천하는데 있어서 앞장을 서야만 할 것입니다. 세상에 복음의 빛을 비추어주지 못하는 교회에 대해서는 꾸지람이 있다는 사실을 일곱 교회가 말해주고 있습니다(2:4).

셋째로, 등불을 켜고 있는 것은 9개의 등잔인데 왜 22개의 등잔을 만들어 두고 있는 것일까요? 2-3개의 여분을 가지고 있는 이유가 궁금합니다(25:33-34, 37). 이 세상에 빛을 밝히도록 등잔을 만들어 두었습니다. 하지만 기름이 공급되지 아니하면 등잔으로서의 기능을 발휘할 수가 없습니다. 성소는 사람의 심령을 상징하고 있습니다. 그 심령에 주님의 말씀에 대한 깨달음과 성령님의 내주 역사하심으로 획기적인 변화가 일어나야만 합니다. 하나님께서 직접 말씀해주시고 영적인 능력을 공급해주시지 아니하시면 도저히 자신의 능력과 힘만으로써는 성도로서의 올바른 인생을 살아갈 수 없다고 하는 고백이 늘 있어야만 합니다. 그러한 성도에게 기름이 공급이 될 것입니다. 그 결과 이 세상을 밝힐 수 있는 빛의 자녀가 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숫자가 많지를 않습니다. 3분의 1 또는 4분의 1에 불과합니다.

결론적으로, 만약 나 자신이 등불을 켜지 아니하면 기름의 공급선은 다른 등잔으로 옮겨질 것입니다. 그러므로 겸허한 마음으로 그 공급의 통로를 보전하는데 엄청 신경을 써야만 합니다. 마치 포도나무에 붙어있는 가지처럼 좋은 열매를 맺기 위하여 깨끗하고 거룩한 삶에 힘써야만 합니다(15:1-7). 그것이 믿음의 성숙이며 성화를 이루는 길입니다. 나아가서 아브라함처럼 이 세상 모든 민족에게 큰 복을 전하는 비결이라고 하겠습니다(12: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