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107강(출25:23-3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25. 18:52

출애굽기 강해 제107(25:23-3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910()

 

진설병 상의 크기와 상 차림의 특징(25:23-30)

 

고대 이스라엘은 유목민 사회입니다. 그들의 삶의 특징은 다음과 같습니다; (1) 목초지를 찾아서 떠돌이 생활을 합니다. (2) 집과 가구가 모두 이동식입니다. (3) 하늘의 별을 보고서 방향을 찾습니다. 그만큼 천체와 자연을 만드신 하나님을 의지하여 살아갑니다. (4) 말이나 낙타 그리고 나귀를 이용하여 이동을 합니다. 이동의 속도가 생각보다 빠릅니다. (5) 약탈민족으로부터 가족과 재산을 보호해야 합니다. 따라서 틈나는 대로 군사훈련을 하고 있습니다. (6) 떠돌이 민족이 함께 살아가기 위해서는 그들 사이에 규율이 엄격합니다. 이스라엘 백성의 경우에도 엄격한 율법을 가지고 있습니다. (7) 혼자서는 살아갈 수가 없는 유목생활입니다. 그래서 씨족과 부족이라는 혈연적 유대의식이 매우 강합니다. 자연히 조상의 경험과 이야기의 전승이 풍성합니다. 그리고 조상의 하나님을 함께 섬기면서 살아갑니다. (8) 다른 유목민들과 가능하면 우호적으로 평화공존을 해야만 합니다. 함부로 적으로 만들어서는 고대 유목민의 지경에서는 살아가기가 무척 힘이 들기 때문입니다. 그와 같은 이스라엘 자손들의 경험과 생활여건이 성막을 만들고 그 안의 기물을 만드는데 있어서 상당히 다음과 같이 반영이 되어 있습니다;

첫째로, 성막과 모든 기물이 이동식입니다. 이미 살펴본 증거궤의 디자인도 운반이 가능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 발치에 고리가 있으며 채로서 양쪽 고리를 꿰어 장정들이 운반을 합니다(25:14). 진설병 상도 마찬가지입니다. 역시 발치에 금고리 네 개를 만들어 운반용 채 두 개를 양쪽에서 나란히 꿰도록 되어 있습니다(25:26-28).

둘째로, 조상의 하나님께 떡을 올려드리는데 있어서도 그 음식의 상과 그릇의 모습이 마치 산 사람에게 식사를 올려드리는 것과 같습니다. 다만 차이 하나가 있다고 한다면 그것은 살아있는 사람이 그 자리에서 식사를 하기에는 불편하다는 것입니다: “진설병 상은 제법 높아서 쉽게 앉아서 먹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높이가 1.5규빗이므로 67.5센티미터나 됩니다(25:23b). 만약 그것이 높은 식탁이라고 한다면 의자가 있어야 하는데 그것이 없습니다(25:23, 30)”. 참고로 진설병 상은 일인용 식탁입니다. 그 이유는 가로가 90센티미터, 세로가 45센티미터에 불과하기 때문입니다(25:23a). 그러므로 전체적으로 보아, 진설병 상은 하나님께만 올려드리는 것입니다.

셋째로, 진설병 상에는 여러 가지 식사용 기물이 모두 배치가 되어 있습니다. 예를 들면, 대접과 숟가락과 병과 잔 등이 모두 갖추어져 있는 것입니다(25:29). 그러므로 그 상에는 각종 음식과 술이 차려져 있었을 것으로 짐작이 됩니다. 하지만 모세가 기술하고 있는 것은 상 위에 진설병(陳設餠, the bread of the Presence)을 두어 항상 내 앞에 있게 할지니라”(25:30)는 하나님의 명령 뿐입니다. , 다양한 음식을 차려서 술과 함께 올렸을 것 같은데 유독 빵만을 올린 것으로 기록하고 있습니다. 빵만을 항상 올리라고 강조까지 하고 있습니다. 을 강조하고 있는 것일까요?

넷째로, 진설병 상이라고 하는 것은 여러 가지 음식과 술을 잔과 함께 올려드리는 상이 맞습니다. 하지만 모세는 하나님의 명령으로 매일 신선한 을 올려드려야만 된다고 강조하고 있습니다. 왜 그렇게 말하고 있는 것일까요? 약간 이상하게 들리는 그곳에는 엄청난 영적인 깨달음이 담겨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 앞에 있는 그 빵은 생명의 빵’(the bread of life)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둘째, 그 빵이 이 세상에 왔습니다. 그 빵의 소유자가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6:48, “I am the bread of life”). 셋째, 매일 그 빵을 구해서 먹음으로 영적인 삶을 풍성하게 하라고 예수님이 말씀하고 있습니다. 아예 그와 같은 사실을 주기도문에 실어서 제자들에게 외우게 하고 있습니다(6:11).

역사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출애굽 직후 광야생활을 할 때에 매일 새벽에 그들에게 하늘에서 만나라는 양식이 공급이 되었습니다(16:14). 하지만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에 들어가서 농사를 지어 그 소출을 먹게 되자 만나의 공급이 중단이 되었습니다(5:12). 그렇다고 하더라도 먹거리를 하나님께서 공급해주신다고 하는 사실에는 변함이 없습니다. 더구나 물질적인 양식뿐만 아니라 영적인 양식이 매일 공급이 되고 있습니다. 예수님과 함께 동행했던 제자들이 매일 하나님의 말씀을 스승으로부터 풍성하게 들었기 때문입니다. 훗날 성령님이 내주하셔서 예수님의 말씀을 매일 새롭게 기억하며 깨달을 수 있도록 도와주자 그 제자들이 모두 사도적인 삶을 살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성도들이 매일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하면서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신선한 깨달음을 얻고 있습니다. 따라서 능력 있는 영적인 삶을 살 수가 있게 되는 것입니다(4:24, 8:5-9).

끝으로, 증거궤와 마찬가지로 하나님의 말씀을 상징하고 있는 그 진설병 상도 거룩한 것입니다. 따라서 모세는 그 상과 기물들 그리고 운반용 채까지 모두 금으로 만들거나 금박을 입히라고 명령하고 있습니다(25:24-29). 그리고 상위의 그릇이 쏟아지지 아니하도록 상의 테두리에 금으로 턱을 만들라고 합니다(25:25). 겉으로 보면, 호화 사치스럽기가 그지없습니다. 하지만 그 속에 담기어 있는 생명의 떡, 곧 하나님의 말씀이라고 하는 것은 물질적으로 그 값어치를 따질 수가 없는 것입니다. 결론적으로, 그 값진 말씀을 매일 구해서 자신의 생각을 바꾸고 행동을 변화시켜나감으로써 영적인 삶을 살고 영생을 소유하는 성도들이 모두 되라고 하는 것이 본문말씀이 주고 있는 깊은 메시지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