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89강(출21:18-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18. 05:17

출애굽기 강해 제89(21:18-2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822()

 

모세의 율법에 있어서 치상자(致傷者) 곧 상해를 입힌 자에 대한 처리의 대 원칙(21:18-19)

 

사람을 죽인 경우와 상해만을 입힌 경우는 그 처벌이 다릅니다. 그 이유는 전자는 사람의 목숨을 해친 경우이지만 후자는 사람의 몸만을 해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목숨을 해친 경우에는 원칙적으로 자신의 목숨으로 그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21:23). 고의가 있는 경우에는 율법에 의해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21:12, 14). 고의가 아닌 경우에는 예외적으로 살길을 하나 마련해주고 있습니다; “재빨리 피난성으로 도망을 쳐야만 합니다. 그러나 도망이 늦게 되면 잡혀서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21:13, 4:42, 19:6). 그렇게 강하게 처벌을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흙으로 사람을 지으시고 그 코에 생명의 기운을 불어 넣으셨기 때문입니다(2:7). 그리고 하나님의 형상과 모양을 사람에게 나누어주셨기 때문입니다(1:26-27). 따라서 마치 자식과 같은 분신을 창조주 하나님께서 돌보고 아끼시는 것은 당연합니다(9:5-6). 그런데 사람들이 그 목숨을 해치고 있으니 강력하게 처벌을 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서로 싸우다가 죽음에 이른 경우가 아니라 상대방이 크게 상해만 입은 경우가 있습니다. 그러한 경우를 다음과 같이 알기 쉽게 표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서로 싸우다가 하나가 돌이나 주먹으로 그의 상대방을 쳤으나 그가 죽지 않고 자리에 누웠다가 지팡이를 짚고 일어나 걸으면 그를 친 자가 형벌은 면하되, 그간의 손해를 배상하고 그가 완치되게 할 것이니라”(21:18-19). 그 경우에는 구태여 목숨으로 책임을 지지 아니하여도 됩니다. 일단 형벌을 면제합니다. 그러나 민사상 손해배상의 책임을 져야만 합니다. 우선 완치를 시켜주어야 합니다. 다음에는 그 동안의 손해를 전부 배상해주어야만 합니다. 천만다행입니다. 돌이나 주먹으로 상대방을 쳐서 죽이고자 한 경우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다행스럽게도 상대방이 자리에서 일어났습니다. 비록 지팡이를 짚고서 일어났지만 정말 다행입니다. 자신의 목숨을 내놓지 않아도 됩니다. 민사상 책임만 지면 됩니다. 돈으로 생명을 대신하고 있는 경우에 해당이 되고 있습니다. 그 경우에는 고의나 과실을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냥 돈으로 치료를 해주고 배상금을 주면 되는 것입니다(21:19).

 

주인이 종을 때려서 죽인 경우와 상해를 입힌 경우의 차이(21:20-21)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자손들의 행태 가운데 좋아하시지 아니하는 것 다섯 가지가 있습니다. 우선 네 가지만 거론해봅니다; 첫째, 애굽에서 배운 방법으로 하나님을 경배하고 제사를 드리는 것을 싫어하십니다(32:1-7). 십계명 가운데 처음 세 가지가 그 점을 강조하고 있습니다(20:1-7). 둘째, 사람을 종으로 삼는 것을 좋아하시지 않습니다. 그래서 히브리 종에 대해서 6년이 지나고 7년째 안식년이 되면 해방을 시켜주라고 하십니다(21:2). 가나안 원주민들도 종으로 삼지 말라고 명령하십니다(20:16-18). 이방 부녀자를 전쟁포로로 얻어서 부득이 종으로 삼는 경우에 있어서도(20:12-15) 이방인 거류민을 가혹하게 대하지 말라고 하는 율법의 정신이 그대로 적용이 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19:33-34). 셋째, 이스라엘이 왕 제도를 마련하는 것을 별로 좋아하시지 아니하십니다(17:14-20, 삼상8:4-22). 하나님의 통치보다 사람의 통치를 더 원하고 있는 백성들의 심성을 좋아하시지 아니하시기 때문입니다. 넷째, 이혼하는 것을 좋아하시지 아니하십니다(24:1-4, 19:8-9). 아담과 하와를 부부로 짝 지워주시고 서로 사랑하면서 가정을 꾸려가는 것을 보시고 그토록 기뻐하시던 하나님이십니다(2:20-25). 요컨대,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고생을 하던 그 시절을 생각하면서 사람을 노예로 부리지 말고 인간대접을 해주라고 명령하시고 계시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 사랑이며 이웃사랑의 근간이 되고 있습니다.

그와 같은 측면에서 종을 때려서 죽인 주인에 대해서도 원칙적으로 형벌을 받도록 되어 있습니다(21:20). 그러나 그 형벌은 자신의 목숨을 내놓아야만 하는 수준의 것은 물론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왜냐하면, 종은 주인의 재산의 일부로 취급이 되고 있는 고대사회이기 때문입니다(21:21). 그런데 그 형법의 처리마저 면제를 받게 되는 경우가 있습니다. 매를 맞은 종이 당장 죽지를 아니하고 하루 이틀 연명을 하는 경우입니다. 그때는 즉사의 책임을 면하면서 동시에 형법의 적용도 배제가 되고 있습니다. 그냥 종의 몸값에 해당하는 은 30내지 50의 손해만 보게 되는 것입니다. 참으로 서글프고 억울한 것이 종의 신세라고 하겠습니다.

참고로, 하나님께서 싫어하시는 것 가운데 다섯 번째의 것은 소위간접적인 신앙의 행태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0:19). 시내 산에 강림하시는 하나님의 행차의 모습을 보았기 때문입니다(20:18). 우뢰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 가운데 큰 나팔소리가 울리며 하나님께서 시내 산에 강림을 하시고 계십니다(19:18-19). 그 가운데 전혀 어울리지 아니하는 세미한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19:19). 신기하게도 그 음성은 산 아래에 시립을 해있는 모든 백성들의 귀를 파고들고 있습니다. 백성들은 공포를 느끼고 있습니다. 그 음성이 사라지면 천지개벽이 있을 것만 같습니다. 그 옛날 소돔과 고모라처럼 불 심판이 임할지도 모릅니다. 그래서 모세에게 요구를 하고 있습니다. 부디 저 음성을 당신만 듣고서 그 내용을 자신들에게 알려달라는 것입니다(20:19-21). 그 내용이 무엇이든지 간에 순종을 하겠다는 맹세입니다. 그 결과 모세 혼자서 산 위에 올라가서 하나님의 말씀을 듣게 됩니다. 그 내용을 율법으로 백성들에게 알려줍니다(34:27-35).

결론적으로, 율법을 가지고 믿음생활을 한다고 하는 것은 간접신앙을 유지한다는 뜻입니다. 직접 하나님 앞에서 먹고 마시며 말씀을 듣고 영적인 교제를 나누는 친밀한 신앙생활이 아닙니다. 간접적으로 전해져 오는 말씀이기에 그 과정에 있어서 인위적인 왜곡과 변질의 가능성이 커지고 있습니다(7:5-23). 그 결과 하나님 말씀의 완전한 뜻은 메시아 예수님께서 이 세상에 오시는 때에 비로서 드러나고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복음으로서 그리고 자신의 공생애와 십자가 대속의 죽으심으로써 하나님 말씀의 뜻을 밝히 보여주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4:44-4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