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세기의 2호2룡(손진길 소설)

7세기의 2호2룡82(손진길 소설)

손진길 2023. 4. 17. 13:10

7세기의 2282(손진길 소설)

 

13. 당나라를 견제하는 22룡의 활약

 

귀왕 책귀677년에 무오가 귀왕국을 다녀간 이후 첩자를 당의 수도인 장안에 밀파하여 당 조정의 내정을 살피게 한다. 그 일의 책임자로 그는 그 옛날 장안에서 백제의 대사로 활약한 바 있는 여자신(餘自信)의 아들인 여신우(餘信友)를 발탁한다. 그 이유는 여신우가 장안에서 태어나 그곳에서 자란 인물이기 때문이다;

여신우의 나이가 무오보다 10살이나 연하이다. 귀왕 책귀는 그의 밀서를 젊은 여신우에게 맡겨서 당의 수도인 장안에 들어가도록 한다. 그리고 현지에서 신라의 첩자로 은밀하게 행동하고 있는 장군 무오를 만나도록 조치한다. 귀왕의 밀서를 받아본 무오여신우에게 첩자와 간자로서의 행동에 관하여 가르친다.

37세인 여신우가 뒤늦게 첩보원이 되고 있지만 그는 본래 장안에서 나고 자랐기에 그 행동이 아주 자연스러워 보인다. 그것을 보고서 3년후에 장군 무오가 동북국경지대 영주로 떠난 것이다. 그후 여신우는 장안에서 신라의 첩보부대는 물론 귀왕국에서 데리고 온 인자들을 이끌고서 첩자 및 간자로서의 활동을 계속한다;

여신우가 수집하여 귀왕 책귀에게 보낸 정보들이 굉장히 유용하다. 그 가운데 귀왕은 당의 황제인 이치의 황후 무비의 행동을 상세하게 파악하고 있다. 아무래도 이치가 죽고 나면 그녀가 당제국을 혼자서 지배할 것으로 보이기 때문이다.

귀왕 책귀가 파악하여 머리속에 정리하고 있는 무비의 출신성분과 성격 그리고 행동의 특징이 다음과 같다;

(1)  무비의 부친은 당나라를 건국한 이연과 행동을 같이한 동지이다. 이연이 당의 황제가 되자 부친은 높은 벼슬을 받았다. 그러나 이연의 아들인 이세민이 황제의 자리를 차지하자 그만 낙향하여 생활이 어렵게 되고 만다. 그런데 이세민이 우연히 12살인 무비를 보고서 그 미모에 반하여 636년에 그녀를 후궁으로 삼는다. 그러나 당의 황제인 이세민 곧 태종이 649년에 죽을 때까지 25세인 무비는 자녀가 없다. 따라서 태종이 붕어하자 후사가 없는 그녀는 절로 들어가서 비구니 신세가 되고 만다.

(2)  그런데 당 태종의 뒤를 잇고 있는 이치가 태자시절에 부왕을 간호하고 있는 젊은 무비를 보고서 4살 연상인 그녀를 좋아하게 된다. 이치는 황제가 되자 비구니인 무비를 후궁으로 삼고자 황궁으로 불러들인다. 신하들이 선황의 후궁을 취하는 것을 반대하였지만 이치는 그녀가 깨끗한 처녀라고 둘러대고서 자신의 의지를 관철한다. 그와 같은 황제의 억지를 편들어준 자가 바로 황후인 왕씨이다. 그녀는 후궁 가운데 황제의 총애가 대단한 연적 소숙비(蕭淑妃)를 제거하기 위하여 무비를 이용하고자 한 것이다.

(3)  하지만 650년에 무비가 일단 황제 이치의 후궁이 되자 그녀의 총명함이 황제나 황후의 상상을 뛰어넘는다;

 무비가 황제와의 사이에 아들을 낳고 그 다음에 딸을 출산한다. 그녀는 황후 왕씨를 도와 먼저 소숙비를 제거한 다음에는 황후마저 제거하고자 흉계를 꾸민다. 딸을 마치 황후 왕씨가 죽인 것으로 꾸미고 그녀를 모함하여 결국 제거한다. 655년에 자신이 황후의 자리에 오르자 그 다음에는 황제 이치를 도우면서 정치적으로 공동통치의 길을 마련한다. 664년부터 황제인 이치는 두통이 심하여 국정을 제대로 돌보지 못하게 되자 총명한 황후 무비에게 대신 국정을 돌보도록 상당히 위임하고 있다;

 이치는 사실 선황 이세민9남이다. 지차인 그가 태자가 될 수 있었던 이유는 그만큼 총명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무비의 총명함에는 도저히 따라갈 수가 없는 것이다.

(4)  무비는 황제 이치와의 사이에 4아들을 두고 있다. 그녀는 656년에는 태자를 반역으로 모함하여 폐위하고 그 자리에 자신의 장남을 세운다.  그런데 장남 이홍(李弘)675년 젊은 나이에 과로로 사망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무비는 자신의 2이현()을 다시 태자로 세운다. 그러나 680년에  2남마저 태자의 자리에서 폐위가 되고 지방으로 쫓겨난다. 그 이유는 태자가 무비의 책망하는 말을 굉장히 싫어하였기 때문이다. 당시 무비는 분노하여 자신의 2남인 태자를 폐위하여 당장 죽이려고 한다. 그것을 보고서 황제인 이치가 목숨만은 살려주라고 말하면서 귀양을 보내고 만 것이다. 그 정도로 권력독점욕이 강하고 자신의 눈 밖에 나면 아들조차 제거하는 무자비한 여인이 바로 무비이다.

(5)  황후인 무비는 자신의 3남을 680년에 다시 태자로 세운다. 3남인 이현(李顯)의 성격은 유약하다. 그러므로 태후의 말을 잘 듣고 있다. 황제인 남편 이치는 병석에 누워서 모든 권력을 무비에게 위임하고 있다가 3년후 683년에 별세하고 만다. 그러자 태후 무비는 태자인 3이현을 황제로 삼고 자신이 섭정한다. 그렇지만 성년인 황제를 좌지우지하는 태후를 신하들이 싫어한다. 그것을 보고서 무비는 3이현을 이듬해 684년에 황제의 자리에서 끌어내리고 그를 도운 처족을 모조리 죽여버리고 만다. 그 다음에 막내아들을 황제의 자리에 앉히고 그녀가 섭정을 계속한 것이다. 그리고 그녀는 대신들에게 정치에 뛰어난 자신이 황제의 자리를 맡는 것이 좋지 않는가?고 넌지시 그들의 의사를 물어보게 된다.  

(6)  그대로 가면 이씨의 당나라가 무씨의 나라로 바뀌게 될 지경이다. 그것을 보고서 684년에 이적의 손자인 이경업(李敬業, 636- 684)이 양주에서 황족들에게 격문을 돌리고 난을 일으킨다. 그러나 무비는 30만 대군을 동원하여 단 40일만에 조기에 반란을 진압하고 만다. 그녀는 이경업의 성씨를 다시 서씨로 만들어 서경업의 난이라고 역사책에 기록하게 한다;

 그런데 4년이 지나자 688년에 산동지역에서 당 태종의 아들인 월왕 이정(李貞)이 이씨의 당나라를 회복하자고 난을 일으킨다. 그러나 다른 황족들이 무비를 두려워하여 호응하지 아니하였기에 실패로 끝나고 만다;

 그것을 보고서 황태후 무조2년후 690년에 기어코 당나라의 이름을 ’()라고 바꾸고 자신이 황제의 자리에 나아가고 마는 것이다. 이름하여 중국의 역사에 처음 등장하는 여자 황제 측천무후’(則天武后)가 바로 그녀이다. 그리고 역사가들은 그녀가 16년간 황제가 되어 다스리고 있는 나라를 다른 주나라와 구별하여 무주’(武周)라고 부르고 있다.

(7)  비록 비정하고 잔혹하게 스스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공포정치를 실시하였지만 측천무후는 정치가로서 대단히 유능한 인물이다. 무엇보다 그녀는 국법을 엄격히 적용하고 사회적 안정을 구축한 것이다. 그녀는 과거제도를 개편하고 자주 실시하여 제국의 운영에 필요한 유능한 인재를 많이 발굴하여 적재적소에 사용하였다. 그들 과거로 등용된 인재들이 조정에서 측천무후의 지지세력이 되고 있다. 그 뿐만이 아니라 그녀는 과거 당나라 때의 실력 있는 대신들도 재상의 자리에 중용하고 있다. 대표적인 인물이 적인걸 (狄仁杰, 630- 700)이다;

 그녀가 다스리던 시기는 태종 이세민이 다스리던 시대에 버금갔으며 백성들의 생활이 풍족하다. 특히 천하지대본인 농업에 있어서 2 3모작이 가능해져서 경제적으로 풍요로운 시대이다. 게다가 50년 동안 내침을 받지 아니하여 무조의 시대는 태평하다. 따라서 일부 역사가들은 측천무후의 통치시대를 '무주의 치’(武周之治)라고 높이 평가하고 있다;

(8)  그렇지만 귀왕 책귀가 보고 있는 관점은 다르다. 그는 측천무후가 기본적으로 지니고 있는 능력의 한계를 정확하게 꿰뚫어보고 있다. 그것은 군사전략면에서 그녀가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무비는 전투에 참여한 경험이 전혀 없다. 그저 황궁에서 원정군사령관을 자신의 입맛에 맞게 결정하고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녀가 백제와의 전쟁 그리고 고구려와의 전쟁에서 신라군과 연합하여 승전을 거둘 수 있었던 것은 어디까지나 백제와 고구려에서 내분이 발생했기 때문이다. 그리고 무비가 내세운 원정사령관들이 다른 대장군들과 서로 경쟁하기 위하여 전공을 세우기에 열심이었기 때문이다. 결정적으로, 무비는 다음과 같은 전략상의 결점을 지니고 있다;

1)    첫째로, 그녀는 당나라의 수도인 장안에서 주로 생활하고 있다. 따라서 변방의 사정을 잘 모르고 있다. 그녀가 중시하고 있는 안전보장은 어디까지나 수도인 장안과 제2의 수도인 낙양이다. 그러므로 무비는 중앙군 50만명 정도로 수도권 방어에 총력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2)    둘째로, 변방지역에서의 방어는 현지의 오랑캐들을 활용하여 이이제이의 수법을 사용하는 것을 기본으로 하고 있다. 그러므로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족이 새로운 나라를 세우고자 하면 그것을 타도하기 위하여 거란족을 회유하여 사용하고자 할 것이다. 그리고 가능하면 거란족과 돌궐족이 서로 협력하지 못하도록 이간책을 사용할 것이다.

3)    셋째로, 그녀는 무자비한 성격이다. 그러므로 패전의 책임을 모조리 현지 사령관에게 떠넘길 것이다. 필요한 경우에는 자신의 아들까지 제거한 무비이기에 그녀가 살아남아 권력을 계속 독점하기 위해서는 고육지책마저 사용한다. 그리고 그녀가 생각하고 있는 자신의 제국은 어디까지나 중원이다. 기타 고구려의 옛 땅이나 돌궐의 옛 땅에 대해서는 크게 애정이 없다. 그 점을 귀왕 책귀가 예리하게 분석하면서 잘하면 고구려의 옛 땅에 새로운 한민족의 국가를 세울 수 있다고 보고 있는 것이다.

귀왕 책귀는 697년에 장군 아비를 집무실로 불러서 그에게 위와 같은 측천무후에 관한 정보를 상세하게 알려준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아비장군, 짐이 그대에게 무주의 여황제인 측천무후에 관하여 상세하게 말해주는 것은 이유가 있다. 그것은 지금 만주와 중원 사이에 있는 영주지방에서 거란군과 무주의 군대와의 전쟁이 한창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

귀왕은 잠시 숨을 쉬면서 장군 아비의 얼굴을 주시한다. 마치 젊은 시절의 친구 좌백을 보는 것과 같다. 부자간에 엔간히 닮아 있다. 따라서 귀왕 책귀가 자신도 모르게 빙그레 미소를 머금고 있다.

그 다음에 정색을 하고서 말한다; “고구려 유민과 말갈족들이 그 틈에 동쪽으로 달아나고 있다. 그 뒤를 무주의 군대가 곧 추격할 것이다. 짐이 생각하기로는 무주의 군대가 아니라 사실은 다른 족속의 군대가 그들을 추격할 것이다. 왜냐하면, 측천무후는 투항한 이민족 곧 거란족의 군대를 이용하여 그들을 추격할 공산이 크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

귀왕 책귀가 다시 숨을 돌리고 천천히 말한다; “아비장군, 그대는 우리 귀왕국의 정예병인 특수부대 5천명을 이끌고 만주 영주로에서 고구려 유민들과 말갈족을 만나 그들의 도주를 돕도록 하라. 추격하는 적들을 물리치고 그들이 고구려의 뒤를 잇는 나라를 만주에 건국하도록 최선을 다하여 지원하라. 그것이 과인이 바라는 바이다!... “.

장군 아비가 귀왕의 특명을 받고 있다. 그는 그 자리에서 읍을 하면서 외친다; “장군 아비, 귀왕 전하의 왕명을 받습니다. 목숨을 걸고서 사명을 완수하겠습니다!”. 그 말을 듣자 귀왕 책귀가 말한다; “반드시 살아서 돌아오라. 좌백 상장군의 아들인 그대 아비 장군은 짐의 아들과 같다. 과인의 말을 명심하도록 하라!... “.

아비 장군은 왕명에 따라 군부대신 싸울이 내어주는 특수군 5천명을 이끌고 함선을 이용하여 만주의 동해안으로 들어간다. 그가 천리장성 서편에 있는 영주에서 만주의 길림성으로 연결이 되고 있는 영주로를 따라서 동편에서 서편으로 이동한다;

 그때 그는 척후로부터 한가지 보고를 받는다.

그 내용이 다음과 같다; “지금 고구려 유민과 거란족 사이에 큰 전투가 벌어지고 있습니다. 그런데 거란족이 우세합니다. 어떻게 할까요?... “;

장군 아비가 즉석에서 대답한다; “우리는 고구려 유민을 보호하라는 왕명을 받고서 여기까지 왔다. 척후는 즉시 전장으로 우리를 인도하라!... “.

귀왕이 상장군 좌백의 도움을 받아 싸울과 함께 조련해 놓은 귀왕국의 특수부대는 가히 천하무적이다. 장군 아비가 그들을 지휘하여 전투의 한복판에 뛰어들자 한식경이 지나지 아니하여 고구려 유민들이 득세를 하고 있는 것이다. 시간이 경과할 수록 거란족의 피해가 엄청나게 늘어나고 있다.

그것을 보고서 거란군대를 지휘하고 있는 이해고(李楷)는 작전상 후퇴를 한다. 무주의 군대에 투항한 대장군 이해고는 거란의 전사 30만명으로 영주에서 동쪽으로 도주하고 있는 고구려 유민의 뒤를 추격하였다. 그는 전투의 결과 적장 대걸걸중상을 죽이고 승리를 목전에 두고 있다가 그만 의문의 특수군의 개입으로 낭패를 당한 것이다;

일단 거란군이 전장에서 대패하여 물러가자 고구려 유민을 지휘하고 있던 젊은이가 대성통곡을 한다. 그의 품에는 싸늘한 주검이 되어 있는 대걸걸중상이 안기어 있다; “아버지, 저 보고 어떡하라고 여기서 전사를 하고 마십니까? 불쌍한 고구려 유민들은 또 어떻게 합니까? 부디 눈을 떠보십시오. 불효자 조영이가 아버지의 말씀을 듣고 싶습니다, 엉엉엉… “.

그 소리를 듣자 장군 아비는 상황을 대강 짐작한다. 영주지방에서 당나라의 통제를 받고 있던 고구려 유민의 지도자 대걸걸중상이해고가 지휘하고 있는 거란전사를 맞아 싸우다가 현장에서 죽임을 당한 것이다. 따라서 그의 아들 대조영이 흐느껴 울고 있는 것이다.

그때 한 떼의 무리가 동편에서 이쪽으로 달려온다. 말갈족이다;

 가장 앞서 달려오던 자가 대걸걸중상의 시신이 있는 곳으로 곧장 달려간다. 그리고 목놓아 운다; “형님, 걸사비우입니다. 제가 너무 늦게 와서 그만 형님이 변을 당하고 말았군요. 교활한 무주의 측천무후가 기어이 이해고의 거란군을 보내어 형님을 죽이고 말았군요. 나는 어떻게 하라고 형님이 먼저 세상을 떠나고 마십니까? 엉엉엉… “.

그 광경을 보다가 장군 아비가 천천히 대조영에게 다가간다. 그리고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대가 대걸걸중상의 아들 대조영인가? 나는 귀왕국의 특수부대장 아비이다. 나는 왕명으로 그대 고구려 유민들의 탈출을 도와주고자 바다건너 여기까지 왔다. 이제는 정신을 차리도록 해라. 거란족의 침입을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

그때서야 대조영이 부친의 시신을 품에서 내려놓고 아비 장군을 바라본다. 그리고 고개를 깊이 숙여서 감사의 뜻을 표한다; “정말 고맙습니다. 구명의 은혜를 입었습니다. 저희를 돕기 위하여 바다를 건너오셨다고 하시니 부디 저희를 길림의 동모산까지 갈 수 있도록 도와 주십시요. 부탁드립니다!... “;

전후사정을 알게 된 걸사비우 역시 고개를 숙이면서 아비 장군에게 말한다; “저는 말갈족을 이끌고 있는 걸사비우입니다. 고구려 유민과 함께 행동하고 있습니다. 대조영의 말과 같이 저희들이 동모산까지 도달할 수 있도록 도와주십시오. 간곡히 부탁드립니다!... “.

그들이 동쪽으로 계속 전진하자 고구려 유민의 수와 말갈인의 수가 계속 증가한다. 만주에 흩어져 살고 있는 백성들이 고구려의 유민과 말갈인들이 고구려를 계승하는 새로운 나라를 건국하기 위하여 행진하고 있다는 소식을 듣고서 계속 모여들고 있기 때문이다. 과연 그들의 앞길은 어떻게 되는 것일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