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79강(출19:16-2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13. 13:18

출애굽기 강해 제79(19:16-2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812()

 

여호와 하나님 시내 산 강림에 대한 묘사의 특징 몇 가지(19:16-25)

 

첫째로, 삼일 째 되는 날 아침에 산 위에 임하고 있습니다(19:16a). 오늘과 내일 이틀 동안 옷을 갈아입고 몸을 깨끗하게 하고 있으면 모레 아침에 하나님께서 강림하시는 현장을 볼 수가 있다는 뜻입니다(19:10-11). 그와 같은 절차는 묘하게도 무덤 속에서 삼일 만에 부활을 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경우를 생각나게 합니다. 금요일 오후 3시경 십자가에서 죽음을 맞이하신 예수님의 시신은 공회원 아리마대 요셉과 니고데모에 의하여 깨끗하게 씻겨졌으며 세마포 옷으로 갈아 입혀졌습니다. 그리고 여러 가지 향품으로 처리가 되어 무덤 속에 안치가 되었습니다(15:34, 19:31, 38-42). 그 속에서 다음 날까지 지내게 됩니다. 드디어 안식일 토요일이 지나고 다음날이 밝아오자 일요일 아침에 부활의 날을 맞게 됩니다(20:1). 창조주 하나님께서 강림하시고 임재하신 것입니다. 산 자의 하나님께서 찾아오셨으니 죽음의 세력이 물러가고 새로운 부활의 몸으로 하나님 앞에 예수님이 바로 서게 되는 것은 당연한 논리의 귀결이라고 하겠습니다(12:27). 그러한 설명과 이해가 가능하도록 그 원형적인 사건이 지금 본문의 시내 산에서 발생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우레와 번개와 빽빽한 구름을 동반하면서 하나님께서 시내 산 정상에 강림하시고 계십니다(19:16b). 사도 요한의 기록에 따르면 하나님의 영광은 햇빛보다도 더 강렬한 빛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21:23-25, 22:4-5). 사도 베드로는 그 빛을 직접 쪼이게 되면 피조물의 체질이 녹아 내리게 된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벧후3:12). 하나님께서도 모세에게 여호와의 영광이 빛나고 있는 그 얼굴을 보고서 살 수 있는 자가 없다고 경고를 하시고 있습니다(33:20). 그러므로 그 빛을 직접 쪼이지 못하도록 빽빽한 구름으로 막을 씌우고 있는 것은 이해가 가능한 대목입니다. 모세는 그러한 모습을 더 구체적으로 묘사하고 있습니다; “시내 산에 연기가 자욱하니 여호와께서 불 가운데서 거기 강림하심이라. 그 연기가 옹기 가마 연기같이 떠오르고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19:18). 따지고 보면, 창조주 하나님의 무게를 견딜 수 있는 피조물은 없습니다. 시내 산이라고 하더라도 예외가 아닙니다. 그 무게를 견딜 수가 없어서 크게 진동을 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온 산이 크게 진동하며 땅이 흔들리고 있으므로 그 위에 서서 하늘을 쳐다보고 있는 백성들이 매우 두려워하고 있습니다(19:16d). 그리고 비록 빽빽한 구름 같은 것으로 가리워져 있지만 하나님의 위력이 땅으로 쏟아지고 있습니다. 그것이 우레와 번개로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19:16b). 그리고 산 위에서부터 큰 나팔소리가 울려 나오고 있습니다(19:16c). 그 나팔소리가 두려워서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시선을 산 위로 향하도록 만들고 있습니다.

셋째로, 백성들을 대표하여 모세가 산 위를 향하여 소리를 치자 나팔소리가 그치고 음성이 들려오고 있습니다(19:17, 19). 그 대목은 마치 일반백성들에게는 두려움의 하나님으로 임하시고 반면에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에게는 친근하신 하나님으로 임하시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의 음성은 시내 산 정상에서부터 모든 백성들에게 들려오고 있습니다(19:9, 19). 그 음성을 들을 수 있다는 점에서 차별이 없습니다. 그렇지만 하나님께서는 모세를 산 위로 불러서 지시사항을 모세에게만 전달하시고 계십니다(19:20). 나중에는 아론과 함께 올라오라고 하십니다(19:24). 왜 그렇게 차별이 없는 가운데 또 차별을 만들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모세와 아론을 세워주기 위함인 것으로 보입니다. 240만명을 헤아리고 있는 민족이 이스라엘입니다. 앞으로 그들을 인도하여 사람이 살 수 없는 많은 사막과 힘든 광야를 통과해야만 합니다. 그리고 가나안의 원주민들을 몰아내고 제사장나라를 건설해야만 합니다. 그 일을 수행하기 위해서는 강력한 지도력이 필요합니다. 그 점을 아시고 하나님께서 모세와 대제사장에게 권위를 부여해주시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따라서 누구에게나 들려오는 하나님의 말씀이며 누구나 차별 없이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실천할 수 있다고 하더라도 성도들이 공동체생활을 영위하기 위해서는 인정을 해야만 하는 사항이 하나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영적인 지도자에게 공동체를 이끌어나갈 수 있도록 필요한 영적인 권위를 부여하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넷째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호하시고자 조치를 취하시고 계십니다. 모세를 통하여 산 아래에 운집해있는 백성들에게 전달하시고 있는 주의사항은 다음과 같습니다; 첫째, 함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지경을 침범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호기심 때문이라고 하더라도 그 경계선을 넘어서게 되면 죽임을 당하게 됩니다(19:21). 둘째, 여호와에게 가까이 접근을 하여 직무를 수행해야만 하는 제사장들도 주의를 해야만 합니다. 만약 그 몸을 거룩하게 그리고 깨끗하게 보전하지 아니하면 치리(治理)를 당하게 된다는 것입니다(19:22). 셋째, 하나님께서 강림하시어 임재하고 계시는 산을 아예 거룩하게 구별하라는 것입니다(19:23). 경계표시를 함으로써 백성들이 함부로 산을 오를 수 없도록 예방조치를 하라는 것입니다. 요컨대, 미리 경계선을 표시해주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그 경계선을 뻔히 보면서도 이제 침범을 하게 되면 하나님의 징계를 받게 될 것입니다(19:24).

끝으로, 위의 말씀은 마치 믿음생활에 있어서 분수와 법도를 지키라는 말과 동일합니다(26:5, 15:25, 18:20, 18:4-5). 눈에 보이지는 아니하지만 창조주와 피조물 사이에는 엄격한 구별이 있습니다. 그 어떠한 경우에라도 성도는 하나님의 창조주의 권리를 인정하고 그 섭리와 처분 앞에 겸손해야만 한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종이며 피조물로서의 법도와 분수를 지키는 방법입니다. 그와 같은 법도와 율법을 백성들에게 전달해주기 위하여 모세가 부지런히 시내 산을 오르락내리락하고 있습니다(19:20,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