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76강(출19:3-8)(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11. 23:10

출애굽기 강해 제76(19:3-8)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88()

 

시내 산에서 이스라엘 백성에게 선포하고 있는 하나님의 말씀 세 가지(19:3-6)

 

첫째로, 하나님께서 애굽 사람을 징계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이끌어내어 이곳 하나님이 계시는 곳으로 데리고 왔다는 주장입니다(19:3-4). 그것이 사람의 능력으로 가능한 일이 아니었다는 사실을 다음과 같이 표현하고 있습니다; “내가 어떻게 독수리 날개로 너희를 업어 내게로 인도하였음을 너희가 보았느니라”(19:4). 그와 같은 신위(神威, 신의 위력이나 위용)적인 이적이 역사 가운데 발생했음을 목격하고 그 증거자가 되는 사람들이 바로 이스라엘 백성들이라는 의미까지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창조주의 능력으로 그들을 애굽에서 탈출을 시켰을까요?

둘째로, 그렇게 하나님께서 신적인 능력으로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끄집어낸 첫 번째 이유가 드러나고 있습니다; “내 말을 잘 듣고 내 언약을 지키면 모든 민족 중에서 하나님의 소유가 된다는 것입니다”(19:5). 세상 모든 민족들이 모두 하나님의 창조물입니다. 그 가운데 특별히 이스라엘 민족을 하나님의 것으로 선택하는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잘 듣고 그 언약을 지키는 조상이 있었기 때문입니다(2:24-25)”. 이제 그 후손인 이스라엘 백성들이 믿음의 조상들처럼 언약에 신실하다면 세상의 백성이 아니라 하나님의 백성이 될 것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백성이 된다면 어떠한 특혜가 있을까요?

셋째로, 출애굽의 궁극적인 이유와 함께 그 특혜가 밝혀지고 있습니다; “너희가 내게 대하여 제사장나라가 되며 거룩한 백성이 되리라. 너는 이 말을 이스라엘 자손에게 전할지니라”(19:6). 매우 쉬운 표현이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 제사장나라가 된다는 것입니다. 둘째, 거룩한 백성이 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의미는 결코 간단한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구체적인 의무이면서 동시에 엄청난 권세라고 하겠습니다.

여기서는 간단하게 기본 개념만 말씀을 드리고자 합니다. 먼저 제사장이 제 역할을 감당하자면 두 가지의 일을 행해야만 합니다; 첫째, 제물의 피를 자신에게 뿌립니다. 자신부터 속죄를 하는 것입니다(29:20). 자신의 속죄함이 없이 남의 죄를 지적하고 대속을 한다고 덤비는 것은 순서가 잘못된 경우입니다. 반면에 자신부터 먼저 속죄를 하고 나서 제사장의 직무를 제대로 행하게 되면 그 효과는 엄청날 것입니다. 그 제사는 받아들여질 것이며 그 중보기도는 불치의 병자와 장애자를 일으켜 세울 것입니다. 그리고 귀신이 떠나갈 것입니다. 둘째, 그 다음에 그 피를 제단에 뿌리고 다른 사람 또는 백성들을 위하여 속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것은 이웃 사람뿐만 아니라 다른 민족까지 포괄하는 개념입니다. 예를 들면, 속죄의 범위를 자기 집안 사람으로 국한시키고 있으면서도 계속 자신은 하나님의 제사장이며 의인이라고 우겼던 인물이 욥입니다(1:5, 6:28-30, 16:19-21). 그가 하나님을 만나고 나서 창조주의 눈으로 세상을 다시 보고 있습니다(42:4-6). 자신을 대적했던 세 친구를 위하여 제사를 드려줍니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제대로 행하고 있는 제사장의 역할입니다. 그때 놀랍게도 신원의 회복이 이루어지고 있습니다(42:10).

다음으로 거룩한 백성은 세상과 구별되는 말과 행동을 보여주는 사람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러한 자들이 바로 성도들입니다. 하나님 자녀로서 부끄럽지 아니한 행실을 보여주어야만 합니다. 그리하여야 그들의 공동체가 부러움의 대상이 됩니다. 칭찬을 받으며 찾아오는 자들이 많아집니다. 한 마디로, 지역사회에서 전도의 문이 열리는 것입니다. 초대교회의 모습이 그러합니다; “날마다 마음을 같이하여 성전에 모이기를 힘쓰고 집에서 떡을 떼며 기쁨과 순전한 마음으로 음식을 먹고 하나님을 찬미하며 또 온 백성에게 칭송을 받으니 주께서 구원 받는 사람을 날마다 더하게 하시니라”(2:46-47).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19:8)고 대답은 잘 하였으나 여전히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니고 있는 큰 문제점 두 가지(20:18-21, 4:1-5)

 

첫째로, 백성들이 하나님의 음성을 직접 듣기를 두려워하고 있습니다(20:19). 그래서 지도자 모세를 대신 내세우고 있습니다. 모세가 두려워하지 말라고 설득을 해보지만 막무가내입니다(20:20). 할 수 없이 모세가 홀로 하나님이 계신 시내 산 정상으로 올라가고 있습니다(20:21). 모세가 하나님 앞에 올라가니 여호와께서 산에서 그를 불러 하신 말씀이 바로 율법입니다(19:3). 그 율법을 올바르게 지키게 되면 제사장나라 거룩한 백성이 될 수가 있다는 것입니다(19:5-6). 모세가 하산을 하여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율법을 전해줍니다. 백성들은 모두 이구동성으로 답변을 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명령하신 대로 우리가 다 행하리이다”(19:8). 그러나 그 신앙은 간접신앙입니다. 직접 하나님의 음성을 제대로 듣고서 기도를 드리고 있는 신앙이 아닙니다. 기본적으로, 하나님께서는 그 음성을 모든 백성들에게 들려주기를 원하시고 계십니다(11:29, 2:28).  율법도 그렇게 직접 전해주기를 원한 것으로 보입니다. 하지만 백성들이 그것을 원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5:25-27).

역사적으로 1,500년 가까운 세월이 흐르게 되면 하나님이 백성들을 직접 만나고 그 음성을 들려주는 새로운 시대가 전개가 됩니다. 하나님의 아들이 성육신을 하여 인간들과 함께 살면서 복된 구원의 소식을 직접 전한 것입니다. 부활 승천 후에는 하나님의 영이 직접 강림하여 성도들의 영혼 속에 좌정하여 역사하게 되는 시대가 전개됩니다(24:49, 1:8, 2:1-4). 간접신앙의 시대가 지나가고 직접신앙의 시대가 도래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믿는 자들의 마음 속에 자리를 잡기를 시작하고 있습니다(2:36-42).

둘째로, 모세를 통하여 백성들에게 전달이 된 하나님의 율법은 그 가치가 평가절하가 되고 있습니다. 백성들이 모세의 율법으로 생각하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그것은 만나의 경우와 같습니다(6:32). 출애굽의 지도자 모세가 준 것으로 생각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자손들은 율법을 대할 때에 모세와 출애굽 사건을 함께 생각합니다; “하나님은 이방국가인 애굽을 처벌하시고 이스라엘 자손을 출애굽시켜서 자신의 백성으로 삼으셨습니다. 따라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거룩하게 구별하신 선민입니다. 반면에 주변의 나라들은 모두 애굽과 같은 이방국가이며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입니다”. 그 생각은 역사상 처음으로 이방도시 니느웨에 파송이 된 갈릴리의 선지자 요나의 경우에도 동일합니다(1:1-2, 왕하14:25). 그는 40일 내에 하나님의 진노로 니느웨가 멸망할 것이라고 외칩니다(3:4). 그 예언을 들었던 니느웨의 왕과 백성들이 한 마음 한 뜻으로 회개를 합니다. 그러자 하나님께서 멸망 대신에 구원을 베푸십니다(3:10). 그것을 요나 선지자는 도저히 수용할 수가 없습니다. 이방인을 구원하시는 하나님이 너무나 생소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그는 고국으로 돌아가지 아니하고 니느웨 사람들이 곧 다시 악을 행하고 멸망을 당하는 것을 지켜보고자 하고 있는 것입니다(4:1-5).

한 마디로, 출애굽의 주역인 모세를 통해서 율법을 받았기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모세와 율법을 분리할 수가 없습니다. 그러한 관념 때문에 유대교인들은 지금까지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만을 전심으로 섬기고 있습니다(6:4-9). 그 하나님은 선민에게는 항상 플러스이지만 이방인들에게는 항상 마이너스입니다. 무서운 국수주의 민족우월주의가 유대인들을 지배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신 취지가 아니라는 사실을 2,000년 전에 예수 그리스도가 유대인들의 땅에서 설파를 합니다(8:10-12, 3:15-17, 4:20-26). 그 결과 어처구니가 없게도 자칭 하나님의 백성이라고 자부하고 있는 유대인들에 의하여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가 처형이 되고 마는 역사적인 비극이 발생하게 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