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72강(출18:1-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9. 22:37

출애굽기 강해 제72(18:1-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82()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이 끝나자 미디안 제사장 이드로가 모세의 가족을 데리고 이스라엘 진영 곧 하나님의 산에 진친 곳을 방문하고 있는 이유(18:1-6)

 

첫째로, 모세의 장인이며 미디안의 제사장인 이드로가 여호와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을 출애굽을 시키고 마침내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해오신 모든 일을 들었기 때문입니다(18:1, 5). 그 모든 하나님의 역사가 충격적이지만 특히 하나님의 산 가까이에 있는 르비딤 광야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아말렉 족속을 격파한 일은 미디안 족속과 결코 무관하지가 않습니다(17:8-16). 그 이유는 그 지점이 바로 미디안 땅에 속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미디안 족속들이 자신들의 제사장을 그곳으로 보내고 있다고 볼 수가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께서는 모세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하나님의 산 호렙으로 인도하여 오라고 분명하게 명령을 하셨습니다(3:1, 12). 그 명령대로 구름기둥과 불기둥이 움직이고 있었으며 모세가 호렙 산으로 백성들을 인도한 것입니다(17:6, 18:5). 그때 호렙 산 가까운 지점 르비딤 광야에 왔을 때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이 발생을 합니다(17:1). 전투가 끝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모두 호렙 산에 당도를 하고 무사히 진을 쳤을 때에 미디안 제사장이며 모세의 장인인 이드로가 모세의 가족을 데리고 그들을 방문한 것입니다(18:1-5)”.

둘째로, 이드로의 맏사위인 모세가 이끌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기적적으로 아말렉 족속을 물리친 일은 아라비아 땅에 살고 있는 여러 민족들에게 있어서는 큰 사건입니다. 모두들 환영을 하면서도 다른 한편으로는 걱정을 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의 약탈민족인 아말렉 족속을 크게 혼을 내주었다는 것은 명백하게 좋은 일입니다. 하지만 이제는 아말렉 족속보다 더 강한 족속이 자신들이 살고 있는 땅으로 들어오고 있으니 장차 어떻게 대처해야만 할지 그것이 걱정인 것입니다. 당장은 이스라엘 족속들이 미디안의 지경 안에 있는 호렙 산으로 들어와서 진을 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장 먼저 미디안 족속들이 반응을 하는 것이 당연합니다.

그들은 다행스럽게도 모세의 처가 집안을 자신들의 제사장으로 모시고 있습니다. 따라서 모세에게 장인 이드로를 먼저 보내어서 자신들의 우호적인 입장을 전달하고자 합니다. 친선의 입장을 분명히 하면서 아울러 모세의 의중을 타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한 마디로, 이드로는 일종의 친선사절인 셈입니다. 그러므로 장인 이드로는 모세의 처자식을 챙겨서 함께 모세를 방문하고 있습니다(18:2-6). 꼭 그와 같은 공식적인 임무가 아니더라도 그는 개인적으로 맏사위의 얼굴을 보고 싶습니다. 아들이 없는 이드로의 입장에서는 얼마나 자랑스럽고 감사한 일인지 모를 지경입니다. 그래서 그 발걸음이 행복합니다. 그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찬양하고 있습니다(18:9-11). 그리고 이드로는 미디안 족속들이 챙겨준 많은 음식을 가지고 와서 그 음식으로 이스라엘 지도자들을 모두 초청하여 큰 잔치를 베풀고 있습니다(18:12).

셋째로, 모세의 장인의 이름은 두 개입니다; “그는 르우엘 또는 이드로라고 불리고 있습니다”(2:18, 3:1). 모세가 애굽에서 도망하여 미디안 땅에서 그를 처음 만났을 때에는 제사장인 그의 이름을 르우엘이라고 적고 있습니다(2:18). 그런데 모세가 그 집안의 맏사위가 되고 나서는 그때부터 계속 장인의 이름을 이드로라고 기록하고 있습니다(2:21, 3:1, 4:18, 18:1-2, 5-6, 9-10, 12). 자신이 기록하고 있는 출애굽기에서 모세가 왜 장인을 처음에만 르우엘이라고 부르고 그 다음부터는 계속 이드로라고 부르고 있는 것일까요? 그 해답의 실마리를 두 이름의 뜻의 차이에서 발견을 할 수가 있습니다; 모세의 장인은 미디안 족속들의 지도자인 제사장입니다. 하지만 그것은 영적인 의미에서의 지도자이지 정치적인 의미의 지도자는 아닙니다. 그러므로 평소에는 별로 권세가 없는 사람입니다; “실제로 미디안의 목자들이 제사장의 딸들을 우습게 여기고 있습니다. 제사장의 딸들을 쫓아내고서 목자들이 들판의 우물물을 자신들이 먼저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2:16-17). 그렇지만 부족들이 하나님께 제사를 지낼 때에는 제사장으로서의 권위가 되살아납니다. 그때 사용할 수 있는 이름자가 르우엘입니다; “르우엘이라는 이름의 뜻이 하나님의 친구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미디안 족속이나 그를 처음 만나는 사람은 모세의 장인을 높여서 제사장 르우엘이라고 부르는 것이 옳습니다(2:18).

하지만 개인적으로 집안에서 그는 다릅니다; “그는 집안의 가장일 뿐만 아니라 지혜가 출중하고 탁월한 사람입니다. 집안 사람들이 어른인 그에게서 많은 것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의 다른 이름자인 이드로가 그러한 의미로 사용이 되고 있습니다”. 모세는 르우엘의 맏사위가 되어 40년간 미디안 땅에서 함께 지내게 됩니다. 모세는 장인의 지도하에 양을 치면서 동시에 하나님 제사법과 광야에서의 삶을 배우고 있습니다. 그런 까닭에 장인은 모세에게 있어서는 새로운 삶의 방식을 가르쳐준 스승과 같습니다. 집안의 어른이며 존경하는 스승이기에 모세가 장인을 탁월한 사람 곧 이드로라고 호칭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장인 이드로는 호렙 산으로 사위인 모세를 찾아와서 관료제도를 마련하고 활용하는 방법까지 구체적으로 가르쳐주고 있습니다(18:17-26). 그리고 나서 그는 이스라엘의 실력자 모세의 곁에서 조용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18:27). 그는 세도정치를 원하고 있는 사람이 결코 아닙니다. 요컨대, 참으로 행정에 밝으며 동시에 정치적인 처신이 뛰어난 사람이 제사장 이드로라고 말할 수가 있다고 하겠습니다.

 

모세의 두 아들 게르솜과 엘리에셀의 이름이 여기서 등장하고 있는 이유(18:1-4)

 

게르솜과 엘리에셀은 모세의 두 아들입니다. 그런데 장자인 게르솜의 이름은 한창 처가살이를 하고 있는 동안에 나타나고 있습니다(2:22). 하지만 차자인 엘리에셀의 이름과 흔적은 아주 나중에 나타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모세가 출애굽의 인도자로 세움을 받고 나서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4:20, 25, 18:4). 그와 같은 차이에 유의를 하고 보면, 두 아들의 이름자의 뜻과 모세의 인생살이의 고난과 영광이 묘하게도 다음과 같이 연관이 되고 있습니다;

 첫째로, ‘게르솜은 모세의 고난을 말해주고 있는 아들의 이름입니다. 모세는 비록 노예취급을 받고 있는 히브리인의 가정에서 태어났지만 그 신분이 철저하게 세탁이 된 사람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생모로서 유모의 행세를 하고 있는 요게벳의 젖을 떼고 나자 바로의 딸의 양자로 입적이 되어 애굽의 황궁에 들어가서 살았습니다(2:7-10, 6:20, 7:21). 모세는 40세가 될 때까지 애굽의 학문과 통치술을 배웠으며 왕자의 대접을 받으면서 백성들 위에 군림을 했습니다(7:21-23). 그러했던 그가 하루아침에 도망자가 되어 미디안의 땅에서 겨우 생존을 하게 됩니다(2:21, 3:1). 미디안의 제사장 이드로의 사위가 되고 양치기로서의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그때 장남이 태어납니다. 모세는 자신의 처지가 하도 막막하고 서러워서 아들의 이름을 게르솜이라고 짓습니다. 그 이름은 내가 타국에서 나그네가 되고 말았구나!라고 하는 한탄의 뜻을 담고 있습니다(2:22).

둘째로, 모세의 차남 엘리에셀은 한참 나중에 얻은 아들로 보입니다. 그 이름의 뜻이 묘합니다;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 나를 도우사 바로의 칼에서 구원하셨다 함이더라”(18:4). 모세는 애굽의 정치적인 변화를 모르고서 미디안 땅에서 40년을 살고 있습니다. 그러한 그에게 하나님께서 나타나셔서 출애굽의 지도자로서의 사명을 맡기십니다(3:10). 아울러 애굽으로 떠나기 전에 그곳의 형편을 다음과 같이 전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미디안에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애굽으로 돌아가라. 네 목숨을 노리던 자가 다 죽었느니라!”(4:19). 그와 같은 정세의 변화를 파악하게 된 모세가 기뻐하면서 당시에 태어나 있는 두 번째 아들의 이름을 엘리에셀로 작명한 것으로 보입니다. 차남이 그렇게 어린 나이였기에 길가던 숙소에서 아내 십보라가 돌칼로써 간단히 그 포피를 베고서 할례를 시행할 수 있었다고 하겠습니다(4:25).

어쨌든 차남 엘리에셀의 이름은 모세의 신원이 회복이 되고 이제는 출애굽의 영광을 누릴 수 있게 된 기쁨을 반영하고 있습니다. 그 두 번째 아들이 외할아버지와 함께 모세를 방문하고 있습니다(18:4-6). 모세는 기쁨이 배가되고 있습니다. 무사히 동족을 출애굽시켜서 하나님의 산 호렙에 인도했다고 하는 안도감과 더불어 장인이 자신의 처자식을 모두 데리고 환영인사차 방문을 했다는 반가움이 그 자리에 함께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3:12, 18:6-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