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69강(출17:8, 11-15)(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9. 02:55

출애굽기 강해 제69(17:8, 11-15)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30()

 

에서와 야곱의 다툼이 아말렉 족속과 이스라엘 족속 사이의 전쟁으로 나타나다(17:8, 11-15, 25:22-26)

 

아말렉 족속은 아말렉의 후손들입니다. 아말렉은 에서의 손자입니다(36:10-12). 에서의 장자가 엘리바스인데 그는 딤나라는 첩이 있습니다. 그 첩의 소생이 바로 아말렉입니다(36:12). 그러므로 아말렉은 자랄 때부터 서자출신으로서 설움을 받고 자란 인물이라고 하겠습니다. 그 후 아말렉은 그의 할아버지 에서처럼 칼로써 문제를 해결하는 투쟁적인 삶을 영위한 것으로 보입니다(25:27, 27:40, 32:6). 그것이 그의 후손인 아말렉 족속의 전통이 되고 있습니다. 따라서 가나안 남부와 시나이 반도 그리고 아라비아 땅에서 아말렉은 약탈민족으로서 크게 악명을 떨치고 있습니다.

모세가 기록한 창세기의 기록은 에서가 장인 아나의 오아시스와 온천 등의 재산을 지키기 위하여 400명의 사병을 거느리고 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32:3-6, 36:2, 24-25). 그리고 에서는 아예 처가 동네인 세일 산으로 이주를 하였으며(36:6-8) 그 덕택에 훗날 그의 후손인 에돔 족속은 염해 아래쪽 세일 산과 그 주변의 넓은 들판을 모두 차지하게 됩니다. 그래서 모세는 옛날 소돔과 고모라 등의 도시가 있었던 그 넓은 들판을 진작부터 에돔 들로 기술하고 있습니다(32:3). 그 지역은 히위 족속의 한 갈래라고 볼 수 있는 호리 족속의 땅입니다(36:2, 20, 25). 그 땅을 에서의 자손들이 무력으로 빼앗고 호리 족속과 민족의 합병을 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와 같은 일련의 과정을 보고서 성장한 에서의 손자 아말렉이 약탈민족의 시조가 되는 것은 당연한 것으로 보입니다.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이 야곱의 자손 곧 이스라엘 백성들을 기습하고 있습니다. 그것도 출애굽을 하여 광야에서 헤매고 있는 그 때에 습격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들이 애굽에서 가지고 나온 금은 패물 등과 가축을 약탈하고자 하는 것입니다(12:32-36). 이스라엘 백성들은 애굽에서 노예생활을 했기에 전혀 군사훈련이 되어 있지를 못합니다(1:10-14). 한 마디로, 어중이떠중이들이며 오합지졸입니다. 그것도 아말렉 족속들이 자신들에게 가장 유리한 지형과 시간을 선택하여 기습을 감행한 것입니다. 평소 같으면 이스라엘 장정들이 전멸을 당하고 그들의 재산과 부녀자들이 모두 약탈을 당하는 것이 당연합니다(34:25-29). 그런데 전쟁의 승패를 결정짓고 있는 강력한 변수 하나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믿음의 조상들에게 주신 하나님의 예언과 하나님의 깃발입니다(25:23, 17:15)”.

에서와 야곱은 본래 쌍둥이입니다. 그들은 모태에 있을 때부터 서로 먼저 태어나고자 결사적으로 싸우던 자들입니다(25:21-22). 고대족장사회에 있어서는 장자가 모든 권리를 차지합니다(27:37). 지차로 태어나게 되면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 사실을 잘 알고 있었는지 에서와 야곱은 태중에서부터 싸웠습니다. 그 결과는 힘이 상대적으로 약한 야곱이 둘째로 태어나게 되는 것입니다. 그렇지만 그는 끝까지 투쟁했습니다. 막 태어나고 있는 에서의 발목까지 잡았지만 역부족입니다(25:26). 야곱은 모든 것을 빼앗기게 되는 운명을 맞이하게 됩니다. 그러나 야곱은 단념하지를 않습니다. 그것이 야곱의 장점입니다. 그는 77세가 될 때까지 결혼도 하지 아니한 채 어머니 리브가의 장막에서 함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께 자신의 운명을 바꾸어달라고 호소합니다. 그 결과 타고난 운명을 바꾼 사람이라는 뜻으로 이스라엘이라는 위대한 이름을 하나님으로부터 얻게 됩니다(32:28, 35:10). 그리고 그의 미래는 태어난 순서로 끝나지 않습니다. 사람의 운명을 궁극적으로 결정하게 되는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이 나타났기 때문입니다; “두 국민이 네 태중에 있구나. 두 민족이 네 복중에서부터 나누이리라. 이 족속이 저 족속보다 강하겠고 큰 자가 어린 자를 섬기리라”(25:23).

사람의 타고난 운명이 과연 바뀔 수가 있을까요? 인력(人力, 사람의 힘)으로써는 그것을 바꿀 수가 없습니다. 하지만 창조주 하나님께서는 가능하십니다. 유일하게 사람의 생명과 운명을 창조하고 계시는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한번 창조하셨는데 두 번 창조하지 못하시겠습니까? 예수님께서 거듭 태어나는 경우를 언급하고 계십니다;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3:3),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거듭)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3:5).  훗날 메시아의 오심과 성령님의 오심으로 새로운 언약의 시대 곧 중생(重生, 거듭 남, born again)을 얻게 되는 새 시대가 도래하게 됩니다. 그렇지만 그러한 운명의 변화가 장차 있게 된다는 사실을 창세기에서 이미 에서와 야곱의 운명을 통하여 보여준 바가 있습니다. 그리고 본문에서는 그들의 후손 사이의 전쟁을 통하여 다시 한번 보여주고 있습니다. 뻔한 전쟁에서 어처구니가 없게도 아말렉 족속이 패배를 맛보고 있기 때문입니다(17:11-13). 본문이 그 점을 상세하게 설명해주고 있는 것입니다.

참고로, 흔히 사람들은 정치적인 대권을 차지하거나 재벌이 되면 자신의 운명을 능히 바꿀 수가 있다고 큰 소리를 치게 됩니다. 하지만 본질적인 운명의 요소들은 전혀 바꿀 수가 없습니다; “죽어가는 세포를 살릴 수가 없으며, 불치의 병과 장애에서 나음을 얻을 수가 없습니다. 그리고 죄와 사망에서 벗어나는 것은 더욱 불가능합니다. 한 마디로, 죽을 수밖에 없는 운명에서 도저히 탈출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면 누가 그렇게 타고난 운명을 영생의 운명으로 바꾸어줄 수가 있을까요? 구약의 기록에서부터 신약의 복음에 이르기까지 그 점에 대하여 설명을 하고 있습니다; “유일한 방법이 인간의 능력과 세상적인 방법의 한계를 초월하고 있는 창조주의 능력을 옷 입는 것입니다. 그 능력을 일부나마 예언으로 그리고 하나님의 임재로 맛보고 있는 자들이 이스라엘의 자손들입니다. 나아가서 훗날 메시아의 오심으로 그 은혜를 충분하게 맛보고 있는 자들이 새로운 이스라엘 곧 성도들입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능력으로 거듭난 사람들이 이제는 새로운 운명을 가지고 그리스도의 사람으로서의 인생을 살아가고 있는 것입니다. 그와 같은 사실을 사도 바울이 알기 쉽게 다음과 같이 말하고 있습니다; “너희 지체를 불의의 무기로 죄에게 드리지 말고 오직 너희 자신을 죽은 자 가운데서 다시 살아난 자같이 하나님께 드리며 너희 지체를 의의 무기로 하나님께 드리라”(6:13),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 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殿, palace)인 줄을 알지 못하느냐? 너희는 너희 자신의 것이 아니라. 값으로 산 것이 되었으니 그런 즉 너희 몸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라”(고전6:19-2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