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67강(출16:30-36)(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7. 21:04

출애굽기 강해 제67(16:30-3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27(주일저녁)

 

백성들이 일곱째 날에 안식할 수 있는 이유(16:30)

 

첫째로, 하나님께서 이틀 치의 양식을 주시기 때문에 일곱째 날 하루를 쉬면서 하나님과 함께 안식의 복을 누릴 수가 있습니다(16:5, 22-24). 하나님의 약속이기 때문에 믿음으로 그대로 행하면 앞으로도 그 복이 임할 것입니다. 그런데 그 약속을 의심하게 되면 시험에 빠지게 됩니다. 실제로 당시 광야생활을 하고 있던 이스라엘 백성 가운데 일부가 안식일 날 만나를 수집하기 위하여 들판에 나갔습니다(16:27). 하지만 그들은 전혀 만나를 구하지 못하고 집으로 돌아왔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꾸지람만 들었습니다; “어느 때까지 너희가 내 계명과 내 율법을 지키지 아니하려느냐? 볼지어다. 여호와가 너희에게 안식을 줌으로 여섯째 날에는 이틀 양식을 너희에게 주는 것이니 너희는 각기 처소에 있고 일곱째 날에는 아무도 그의 처소에서 나오지 말지니라”(16:28-29). 사족을 더하자면, 하나님의 약속과 말씀을 믿지 못하게 되면 세상살이에 있어서 안식을 누릴 수가 없다고 하겠습니다.

 

둘째로, 쉬지를 아니하고 열심히 일을 했으나 그 결과가 허무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 안식의 복을 추구하게 됩니다(16:16-21); “세상적인 방법으로 열심히 추구하였으나 쉬지도 못한 채 오히려 영적인 평안과 기쁨만이 사라져버렸습니다. 그러한 결과를 깨닫게 되었기에 이제는 하나님과 함께 안식의 복을 누리기를 원하고자 합니다”. 모두들 자신의 인생살이가 끝나면 창조주 앞에 돌아가서 심판을 받게 됩니다(5:27-29). 자신의 생각과 고집대로 엄청난 의지를 가지고 성취한 세상적인 성공과 업적을 하나님께서 높이 평가해주실까요? 그 반대로 보입니다. 자신의 생각과 이익을 내려놓고 모두의 생명을 살리기 위하여 하나님의 뜻에 따르고 주님처럼 인생을 살아갔느냐 하는 문제를 따질 것입니다(6:39, 7:21). 요컨대, 하나님의 뜻과 생각을 따르기 위하여 자신의 생각을 주님의 생각에 맞추어나가는 시간이 필요합니다. 그와 같은 거룩한 작업이 이루어지는 조율의 날이 바로 안식일이라고 하겠습니다.

 

만나 한 오멜을 항아리에 담아서 언약궤에 보관을 하는 이유(16:31-36, 9:4)

 

언약궤는 두 가지의 기능을 수행하고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의 말씀이 울려 나오는 곳입니다(25:21-22). 언약궤의 뚜껑이 속죄소입니다. 그곳에서부터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자손을 위하여 명령할 모든 일을 모세에게 말씀하시겠다고 선포하고 있습니다(25:22). 모세가 죽은 다음에는 대제사장만이 일년에 한 차례씩 대 속죄의 기간에 언약궤 앞으로 들어갑니다(16:2, 29, 34). 그 목적은 일년 동안 지은 백성들의 죄를 속죄하기 위함입니다(16:15-19, 9:7).

둘째로, 모세의 돌 판과 아론의 싹난 지팡이 그리고 만나 한 오멜을 보관하고 있는 곳입니다(9:4, 17:8-10). 그 목적은 하나님의 역사와 말씀의 권위를 증거하기 위함입니다. 그 가운데 특히 백성들을 먹이고 입히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가장 잘 대변하고 있는 것이 만나입니다. 장차 자손들이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에 들어가서 자신들의 힘으로 농사를 지어서 풍족하게 살게 되었을 때에는 만나의 기억을 잊어버리게 될 것입니다. 그 때를 대비하여 만나를 항아리에 담아서 법궤 안에 보관을 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만나를 보관하고 있는 이유는 백성들의 풍요로운 생활이 모두 하나님의 선물이라는 사실을 한시도 잊지 아니하도록 교육을 시키고자 하는 것입니다. 그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특별한 조치를 취하시고 있습니다. 하루 또는 이틀이면 부패하고 사라지는 만나를 영원히 보관이 가능하도록 만들어주고 있습니다(16:20, 24). 그것은 하나님의 능력입니다. 그와 같은 목적과 방법으로 만나가 언약궤에 보관이 되고 있음을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족속이 그 이름을 만나하였으며 깟씨같이 희고 맛은 꿀 섞은 과자 같았더라. 모세가 이르되, 여호와께서 이같이 명령하시기를 이것을 오멜에 채워서 너희의 대대 후손을 위하여 간수하라. 이는 내가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낼 때에 광야에서 너희에게 먹인 양식을 그들에게 보이기 위함이니라 하셨다 하고 또 모세가 아론에게 이르되, 항아리를 가져다가 그 속에 만나 한 오멜을 담아 여호와 앞에 두어 너희 대대로 간수하라. 아론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령하신 대로 그것을 증거판 앞에 두어 간수하게 하였고 사람이 사는 땅에 이르기까지 이스라엘 자손이 40년 동안 만나를 먹었으니 곧 가나안 땅 접경에 이르기까지 그들이 만나를 먹었더라. 오멜은 십분의 일 에바이더라”(16:31-36).

참고로 두 가지 사실을 검토해보고자 합니다; 첫째, 만나와 유사한 모양의 것이 중동 땅에서 발견이 되고 있다는 것입니다. 둘째, 오멜과 에바의 크기가 한국사람들이 오랜 세월 사용하고 있는 되와 말과 비슷하다는 것입니다.

첫째로, 만나(manna)의 모양이 중동 땅에서 위성류 나무에 기생하면서 그 수액을 빨아먹고서 살고 있는 깍지벌레가 뱉어놓은 분비물과 흡사하다는 견해가 있습니다, 그 분비물에는 탄수화물이 다량 포함이 되어 있으며 크기가 1-3mm정도인 고수풀씨(일명 깟씨’) 정도라고 합니다. 하지만 그 분비물은 6-7월 달에만 소량을 새벽에 수집할 수 있을 뿐입니다. 설혹 그것이 만나의 원형이라고 하더라도 40년 동안이나 매일 새벽에 자연이 제공해줄 수는 도저히 불가능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만나는 처음부터 끝까지 하나님이 하늘에서 비같이 내려준 양식임이 분명하다고 하겠습니다.

차제에 헵시바라는 필명을 사용하고 있는 분의 만나에 대한 견해가 탁월하므로 그대로 인용을 하고자 합니다. 참조하시기를 바랍니다; “만나는 사람이 농사를 지어 만든 것이 아닌 광야라는 한정된 장소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비상양식입니다. 그래서 만나는 ①하늘양식(78:24,105:40) 권세 있는 자의 떡(78:25) 하나님의 양식(9:20) 신령한 식물(고전10:3) 열조와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양식(8:3,16)이라고 합니다. 만나의 맛은 기름 섞인 과자맛입니다(11:8). 여기서 기름이란 땅에서 농사를 지어 짠 기름이 아닌 하늘의 기름입니다. 하늘의 기름 맛은 말과 글로 표현이 안 될 정도이며, 씹으면 윤기가 돌며 소화가 잘 됩니다. 그리고 만나는 꿀 섞은 과자맛입니다(16:31). 사람이 설탕가루를 많이 먹게 되면 당뇨병에 걸리지만, 꿀은 100드럼을 먹어도 당뇨병에 걸리지 않으며 몸에 좋습니다. 만나의 모양은 작고 둥글며 서리 같이 세밀합니다. 또한, 가시 같고 희며 마치 반짝이는 진주와 같습니다(11:7). 만나를 요리하는 방법은 맷돌에 갈기도, 절구에 찧기도, 가마에 불을 떼면서 삶기도 하는 것 입니다(11:8). 만나는 밤에 이슬과 함께 내리는데, 슬금슬금 내리는 것이 아니라 비같이 쏟아집니다(11:9).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은 밤에 잠을 자고 일어난 후, 아침에 만나를 거둘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해가 뜨게 되면 언제 만나가 내렸나 싶을 정도로 땅 속으로 다 스며들어 사라지게 됩니다(16:21). 이와 같이 하늘에서 내려주신 특별한 양식인 만나는 지금까지 광야에서 먹은 사람들 외에는 먹은 역사가 없습니다”.

둘째로, 고체의 부피를 잴 수 있도록 용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사용하고 있는 것은 오멜에바입니다. 1오멜은 보통 2.2리터 정도라고 합니다. 그것은 공교롭게도 한국사람들이 사용한 적이 있는 에 해당합니다. 그리고 10오멜이 ‘1에바라고 합니다(16:36). 그렇다면 에바는 에 해당이 될 것입니다. 중동과 극동에서 비슷한 크기의 용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곡식의 부피를 재기 위하여 고안된 그릇들이 서로 비슷하다면 그 옛날 같은 문명권에서 살았다는 또 하나의 증거가 될 수도 있을 것입니다. 요컨대, 바벨탑 붕괴사건 이후에 동방으로 진출한 족속이 오랜 세월 수천 년 동안이나 동일한 도량형을 사용했을 가능성이 농후하다고 하겠습니다(10:25-32, 11:8-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