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65강(출16:13-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7. 02:17

출애굽기 강해 제65(16:13-2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25()

 

만나의 의미와 그 모양에 관한 설명(16:13-15)

 

만나는 매일 새벽에 하늘에서 비같이 내리는 양식입니다(16:4, 13). 그것은 식물성인 곡식의 일종이며 새벽에 이슬과 함께 내려서 이스라엘 백성들의 천막 주위의 땅을 덮고 있습니다. 반면에 메추라기로 표현이 되고 있는 동물성 먹거리는 저녁에 공급이 되고 있습니다. 그것 역시 저녁에 나가보면 천막 주위의 땅을 덮고 있습니다(16:13). 그러므로 광야를 헤매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조석(朝夕, 아침과 저녁)으로 그 먹거리를 수집하여 매일의 식량문제를 해결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이스라엘 민족의 생존문제는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사실이 광야생활을 통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에게 각인이 되고 있습니다. 그렇게 강조가 되고 있는 말씀이 다음과 같습니다; “보라, 내가 너희를 위하여 하늘에서 양식을 비같이 내리리니 백성이 나가서 일용할 것을 날마다 거둘 것이라. 이같이 하여 그들이 내 율법을 준행하나 아니하나 내가 시험하리라”(16:4).

그런데 위의 말씀 가운데에는 약간 다른 의미가 하나 내포되어 있습니다; “매일의 식량을 주시는 것과 율법의 준수가 서로 직결되어 있다는 것입니다. 그 점을 사람들이 인정을 하는지 아니하는지를 하나님께서 시험하시겠다는 것입니다”. 말을 바꾸면, 생존의 문제와 하나님 말씀을 준행하는 문제가 하나로 결부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그렇다면 하나님의 말씀을 준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하나님께서 하늘로부터 양식을 비같이 내려주심으로 자신이 이 세상에서 생을 영위할 수 있다는 사실을 모르거나 아예 인정하지 아니하고 있는 자입니다. 그런 자는 자신의 지혜와 능력으로 잘 살고 있으며 앞으로도 모든 문제를 스스로 해결할 수 있다고 자부하고 있습니다. 자연히 하나님의 개입을 극도로 싫어합니다. 그 점을 미리 아시고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와 같은 사조에 빠지는지 아니하는지를 눈 따갑게 지켜보시겠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매일같이 하늘에서 비같이 양식을 내려주게 되면 그것은 머지않아 보통의 일 곧 일상사가 되어버리고 말 것입니다. 처음에는 생존의 문제를 해결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찬양하면서 엄청 고마워할 것입니다. 하지만 세월이 지나게 되면 그것은 마치 자연적인 것으로 인식이 되고 맙니다. 혹시 하루치 식량을 깜빡 제공하지 아니하게 되면 오히려 불평과 원망이 나타날 것입니다. 그 점을 하나님께서 미리 예측하시고서 너희들의 믿음을 시험하겠다고 언급하고 계시는 것으로 보입니다. 같은 의미로 훗날 예수님도 제자들에게 강조하고 계십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6:11). 일상사 가운데 자연적인 것으로 보이지만 먹고 살도록 만들어 주시는 하나님의 배려와 섭리가 숨어 있습니다. 그 사실을 잊지 말고서 감사의 기도를 간구하는 내용으로 올려드리라는 뜻입니다.

메추라기와 만나가 매일 공급이 된 것으로 보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세를 통하여 너희가 해질 때에는 고기를 먹고 아침에는 떡으로 배부르리니 내가 여호와 너희의 하나님인줄 알리라”(16:8, 12)고 백성들에게 두 차례나 선포하신 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 가운데 만나에 대한 설명이 다음과 같이 상세하게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 이슬이 마른 후에 광야 지면에 작고 둥글며 서리같이 가는 것이 있는지라. 이스라엘 자손이 보고 그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여 서로 이르되, 이것이 무엇이냐 하니 모세가 그들에게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주어 먹게 하신 양식이라”(16:15). 만나는 작고 둥근 모양입니다. 색깔은 서리같이 희다고 합니다. 물론 식물성 곡식종류이며 녹말의 공급원입니다. 그렇다면 그 모습은 원시적인 쌀에 가깝습니다. 오늘 날 할미(割米, broken rice)와 비슷합니다. 과학자들이 20세기 중반부터 옛날의 종자를 개량하여 크고 길쭉한 쌀을 생산하고 있지만 그것이 고대사회에서는 그러하지가 않습니다. 마치 만나처럼 쌀의 종자가 작고 둥글며 희다고 짐작이 됩니다. 참고로 밀의 경우에 있어서 만약 그 원조가 야생밀(wild wheat, 또는 ryegrass)이라고 한다면 그 모습은 오늘 날의 밀과 너무나 다릅니다. 곡식류는 그렇게 필요한 부분만이 크게 개량이 되어 왔습니다. 하지만 만나는 그 모습이 야생밀과는 상당히 다른 것으로 보입니다. 따라서 야생 쌀에 가까운 것이 아닌가 하고 추정을 해본 것입니다.  

 

만나를 거두는 방법에 관한 교훈(16:16-21)

 

식구의 수를 참작하여 하루치의 만나만을 거두도록 정하고 있습니다(16:16a). 한 사람의 하루치 식량이 2리터에 해당하는 ‘1오멜이라고까지 친절하게 설명이 되고 있습니다(16:16b). 그렇지만 내일 또 만나가 제공이 될지 아니 될지 확실하게 모르고 있는 상황입니다. 비록 하나님의 약속의 말씀이 몇 차례나 있었다고는 하지만 내일의 일을 오늘 확정적으로 말할 수는 없습니다(16:4, 8, 12). 내일 일은 내일이 되어보아야만 확실하게 알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백성들은 만나를 거둘 수 있을 때에 더 많이 수집을 하기 위하여 애를 썼습니다. 하지만 그 이후 신기한 현상이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그같이 하였더니 그 거둔 것이 많기도 하고 적기도 하나 오멜로 되어본즉 많이 거둔 자도 남음이 없고 적게 거둔 자도 부족함이 없이 각 사람은 먹을 만큼만 거두었더라”(16:17-18). 가족 일인당 한 오멜씩만 남고 나머지 만나는 모두 사라지고 있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입니다. 없는 것을 있는 것같이 만드시고 또한 있는 것을 없는 것으로 환원시키기도 하십니다. 그것은 마치 떡 다섯 덩어리와 물고기 두 마리를 가지고 2만명의 사람들에게 나누어주시는 기적을 발생시키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리고 수 많은 재산을 바람과 같이 사라지게 만드시는 섭리와도 같은 것입니다(15:13). 아무리 욕심을 부려보았자 하나님의 장중에서 조정이 되고 있음을 거듭 알 수가 있는 대목이라고 하겠습니다(12:20).

참고로, 한 말씀을 더 드린다면 20세기 말에 밀어닥친 동구 공산국가의 몰락의 경우입니다. 그들은 고전적인 막스 레닌주의에 입각하여 열심히 공산사회를 운영했습니다. 당시 소련연방은 미국과 군비경쟁을 할 정도로 막강했습니다. 하지만 1980년대 후반에 공산사회가 경제적으로 붕괴를 맞이했습니다. 그 이유는 중앙정부의 계획경제와 배급정책의 영향 때문입니다. 그들의 말을 빌리면, “곡식의 3분의 1은 밭에서 감수가 되고 또 3분의 1은 유통과정에서 썩고 마지막 3분의 1은 배급과정에서 없어지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먹을 양식이 부족하여 더 이상 공산주의 이론을 적용하여 생산을 지속할 수가 없다는 것입니다. “능력대로 일하고 필요에 따라서 배급을 받는다는 공산주의 이념은 매우 훌륭할지 몰라도 그것은 지극히 이상적인 이론입니다. 현실적인 타당성은 빈약합니다. 이기적인 인간이 남을 위하여 전심전력으로 헌신하고 희생한다고 하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이 있어야만 가능한 것입니다. 그런데 공산주의 이론으로 그것을 실현하려고 했으니 실패한다는 것이 현실적으로 당연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날의 양식은 그날에 소비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내일의 양식마련에 염려가 있어서 다음날까지 남겨두었습니다. 그 결과 모두 먹지 못하도록 변질이 되고 있습니다(16:19-21). 하나님의 말씀의 위력이 다시 나타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아가도록 철저하게 훈련을 시키고 있는 장소가 바로 광야라고 하겠습니다. 결론적으로, 인간적인 노력으로써는 도저히 실현시킬 수 없는 것이 제사장나라입니다(19:6). 그와 같은 영적인 공동체를 이 땅 위에 현실적으로 이루기 위한 하나님의 방법이 실로 처절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