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 제71강(출17:13-16)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년 8월 1일(금)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출17:14)는 구절의 의미
첫째로, 위의 구절은 책에 기록하는 것과 귀에 외워 들리는 것의 의미가 다르다는 사실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책에 기록을 하는 이유는 기념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것은 ‘여호와 닛시’의 의미를 역사적으로 보전하기 위한 것입니다. ‘여호와 닛시’는 두 가지의 의미를 지니고 있습니다; 첫째, ‘하나님의 승리, 하나님의 깃발’은 전쟁의 승리가 군사력의 우월에서 비롯되고 있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능력으로부터 비롯되고 있다는 사실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산 위에서 하나님께 그들의 지도자가 두 팔을 들고 간구하고 있는 모습을 바라보고 있는 이스라엘 장정들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반드시 전투에서 승리할 수가 있다고 믿고 있습니다. 그 믿음에서부터 승리가 찾아오고 있습니다. 둘째, 실제로 전쟁을 승리로 이끌고 있는 하나님의 능력이 모세의 두 팔을 타고서 이 세상으로 전파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러므로 그 장면을 보지 못한 후세대가 그 사실을 기억할 수 있도록 책에 기록하여 오래 보전하고자 하는 것입니다. 기록이 살아 있는 한 하나님의 역사는 다시 이 세상에 나타날 것이기 때문입니다.
다음으로 여호수아의 귀에 ‘여호와 닛시’의 의미를 계속 외워 들리게 하고 있습니다. 그것은 지도자 교육의 일환입니다. 모세는 훗날 ‘므리바’ 사건 때문에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들어가지를 못하게 됩니다(민20:12, 신32:51-52). 그를 대신하여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백성을 이끌고 가나안 정복전쟁을 수행하게 됩니다(신31:3). 그는 가나안 원주민들과 수 많은 전투를 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여호수아는 똑똑히 기억을 해야만 합니다; “원주민들과의 전쟁은 사람들의 전쟁이 아니라 하나님과 우상들과의 전쟁이라는 사실을 먼저 인식해야만 합니다. 그러므로 전쟁의 승리가 사람들의 손에 달려있지 않습니다. 우상을 쳐부수는 하나님의 능력과 역사섭리에 달려 있습니다”. 모세가 르비딤에 제단을 쌓고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에서 하나님의 깃발로 승리했다는 사실을 ‘여호와 닛시’라고 부르면서 백성들에게 인식을 시키는 것도 역시 그와 같은 교육적인 차원의 배려라고 하겠습니다(출17:15).
둘째로, 아말렉 족속과 같은 생각으로 하나님의 백성을 괴롭히게 되면 반드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게 된다고 하는 사실을 교훈하고 있습니다. 아말렉 족속은 에서의 손자인 아말렉의 후손들입니다(창36:10-12). 그러므로 역시 아브라함과 이삭의 자손들입니다. 그러나 그들은 아브라함과 이삭의 하나님 신앙을 모조리 잊어버리고서 살고 있습니다. 가나안 남부 시나이 반도와 아라비아 반도에서 오랜 세월 약탈민족으로 살아오고 있습니다(출17:8). 그들은 남의 재산만 약탈할 수 있다면 그것으로 만족하면서 살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따른다거나 생명을 귀하게 생각하는 사상은 전혀 없습니다. 힘으로 빼앗으면 그것이 모두 자신의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그것은 한 마디로, 무신론이며 약육강식의 논리입니다. 그들이 지나간 곳에는 무죄한 약소민족의 피가 흘러 넘치고 있습니다. 일찍이 하나님의 자녀들이 세상의 논리를 숭상하여 하나님의 가르침을 버리고 약육강식의 사회를 이루었을 때에 하나님께서 육신화된 그들을 떠나셨습니다(창6:2-3). 그리고 홍수심판이 노아의 시대에 이 세상에 임했습니다(창6:5-7). 똑 같은 역사가 다시 나타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끝까지 무신론자와 약육강식의 논리로 세상을 경영하는 자들과 싸우시겠다고 선포를 하시고 계시기 때문입니다(출17:14, 16).
‘여호와 닛시’의 위력은 언제까지 역사 가운데 발휘가 되고 있는가?(출17:13-16, 삼상15:2-9, 에3:1, 8:7-17)
출애굽의 역사가 있은 지 한달 남짓 만에 호렙 산 가까이 있는 ‘르비딤’ 광야에서 첫 번째 전투가 있었습니다(출17:1, 6, 19:1-2). 약탈민족인 아말렉 족속들의 기습이 있었기 때문입니다(출17:8). 그때가 주전 1,446년경입니다. 400년 가까운 세월이 흘러 주전 1,050년경 이스라엘의 초대 왕 사울의 시대에 다시 아말렉 족속과의 전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때 대사사이며 선지자인 사무엘이 사울 왕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다음과 같이 전하고 있습니다;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같이 말씀하시기를 아말렉이 이스라엘에게 행한 일 곧 애굽에서 나올 때에 길에서 대적한 일로 내가 그들을 벌하노니, 지금 가서 아말렉을 쳐서 그들의 모든 소유를 남기지 말고 진멸(盡滅, 모조리 끝까지 없애버리는 것)하되 남녀와 소아와 젖 먹는 아이와 우양과 낙타와 나귀를 죽이라 하셨나이다 하니”(삼상15:2-3). 하나님의 명령 그대로 아말렉 족속이 거의 전멸을 당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아말렉의 왕 아각의 후손 가운데 살아남은 자들이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 후손으로 보이는 한 사람이 먼 훗날 페르시아의 역사 가운데 등장을 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주전 486년에 즉위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는 아하수에로 황제 때 신임재상으로 아각의 후손인 하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에1:1, 3:1)”. 그리고 이스라엘 사울 왕의 아버지 기스의 후손으로 추정이 되고 있는 모르드개가 역시 동시대에 페르시아 수산 궁이 있는 도성에서 살고 있습니다(에2:5-6). 그의 사촌 여동생이 바로 페르시아의 황후가 되는 에스더입니다. 하만은 조상들의 원수를 갚겠다고 그러는지 몰라도 평소 자신에게 허리를 굽히지 아니하고 있는 오만한 모르드개와 그의 족속인 유대인들을 모조리 페르시아 제국 내에서 말살을 시키고자 획책을 합니다. 그래서 전국적으로 유대인들을 일망타진하고자 제비를 뽑아서 길일(吉日, 좋은 날)을 택하고 있습니다. 그 날이 바로 그해 주전 474년 12월 13일로서 소위 ‘부림(purim, 제비뽑기) 일’입니다(에3:7, 9:17). 그러나 하나님의 역사로 오히려 그들이 거사일로 제비를 뽑은 그 좋은 날에 어처구니가 없게도 반 유대인 세력들이 일제히 소탕을 당하게 됩니다(에7:10, 9:5-10). 그리고 페르시아 제국 내의 유대인들이 그 역사를 기념하기 위하여 ‘부림절’ 행사를 마련하여 자손 대대로 시행하기에 이릅니다(에9:17-28).
그와 같은 일련의 역사는 한 가지 사실을 똑똑히 기억하게 해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맹세하시기를 여호와가 아말렉과 더불어 대대로 싸우리라 하셨다 하였더라”(출17:16). 하나님의 맹세는 반드시 역사 가운데 실현이 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깃발과 메시아의 깃발이 휘날리는 전투에 참여하고 있는 성도들은 이미 승리를 얻고 있다고 하겠습니다(출17:15-16, 사11: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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