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62강(출15:27-16:4)(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4. 19:24

출애굽기 강해 제62(15:27-16:4)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21()

 

이스라엘 백성들이 오아시스 엘림’(Elim)에서 행한 일(15:27-16:1)

 

엘림’(Elim)의 위치가 어디인지는 정확하게 모릅니다. 하지만 그 위치를 짐작할 수 있는 방법은 있습니다; “에담 광야와 수르 광야가 계속 나타나고 있기 때문입니다(15:22, 33:8). 그 다음에는 또 신 광야가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엘림이야말로 사막 가운데 존재하고 있는 오아시스입니다. 그래서 물 샘 12과 종려나무 70그루가 있는 곳이라고 표현이 되고 있습니다(15:27)”.

그렇다면 그곳 오아시스에서 안식을 취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무엇을 하였을까요? 한 마디로, 예배를 드렸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회중’(會衆, congregation)이라는 용어를 유월절 행사에 이어서 다시 사용하고 있기 때문입니다(16:1). 용어의 뜻으로 볼 때, ‘회중이란 어떤 목적을 가지고 모인 백성의 무리를 의미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용어가 성경에서 처음으로 등장하고 있는 때는 유월절 행사의 기간입니다(12:3, 6, 19, 47).

출애굽기 제12장을 살펴보면, 이스라엘 회중(the whole congregation of Israel)은 처음 유월절 행사를 치르기 위하여 각 집안에 함께 모여 있었습니다. 그들은 아빕월 14일 저녁에 어린 양을 잡고 그 피를 대문에 발랐습니다. 그리고 구운 양고기를 씹으면서 무교병과 쓴 나물을 함께 먹었습니다. 유교병을 사용하지 아니한 것은 애굽의 누룩을 멀리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리고 장자의 죽음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렇다면 회중이라는 용어가 사용된 이유가 그날 밤의 특별한 종교적인 의식(儀式) 때문임을 알게 됩니다. 그날 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면서 애굽의 묵은 떼를 벗어나고 죽음에서 구원을 얻은 것입니다.

그렇다면 마라를 지나서 엘림에 이르게 되었을 때 이스라엘 회중은 무엇을 위하여 예배를 드렸을까요? 그것은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주신 말씀과 관련이 되고 있을 것입니다. 특정한 나뭇가지를 던져서 마라의 쓴 물을 단물로 만들어줍니다(15:25a). 그리고서는 백성들의 믿음을 시험하시겠다고 선언하십니다(15:25b). 쓴 물을 단물로 만들 수 있는 것이 무엇일까요? 특정한 나무의 효력일까요? 아니면 하나님의 능력일까요? 분명히 후자입니다. 하나님의 능력을 의심하지 아니하고 믿는 것 그리고 하나님의 말씀은 반드시 성취가 된다고 하는 사실을 믿는 것이 신앙생활입니다.

그러므로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만을 쳐다보면서 애굽의 누룩을 제거하고 구원의 은혜를 찬송하는 예배를 드려야만 합니다(12:6-19). 그러한 예배를 위하여 모이는 군중이 바로 회중입니다(12:6, 19). 그와 같은 의미를 지니고 있는 용어를 본문 출애굽기 제16장 제1절에서 다시 사용하고 있는 것입니다.

 

시내 산으로 예배를 드리기 위하여 가는 길에 그들을 기다리고 있는 것(16:1-3)

 

이스라엘의 백성은 엘림에서 안식을 하면서 예배를 드렸습니다(15:27). 그들은 하나님의 산인 시내 산에 이르게 되면 다시 감격적인 예배를 드릴 수 있게 될 것입니다(16:1). 하나님의 임재가 예상이 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이르시되, 내가 반드시 너와 함께 있으리라. 네가 그 백성을 애굽에서 인도하여 낸 후에 너희가 이 산에서 하나님을 섬기리니 이것이 내가 너를 보낸 증거니라”(3:12).

그런데 예배인생을 살아가는 일이 이 세상에서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닙니다. 엘림과 시내 산 사이에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경험하고 있는 어려움이 그 점을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그들은 오아시스 엘림에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회중이었습니다. 그러나 신 광야에서 먹을 것이 없어서 굶주리게 되자 더 이상 예배를 드릴 수 있는 회중이 아닙니다(16:3b).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원망하게 됩니다(16:2). 그 원망은 사실 말을 바로 못해서 그렇지 하나님을 원망하고 있는 것입니다. 행군에 지치고 오죽이나 배가 고팠으면 그 옛날 애굽에서 종살이를 하고 있을 때가 더 좋았다고까지 말하고 있을까요?(16:3a)

아빕 월 보름께 유월절 기간 중에 출애굽을 하게 된 이스라엘 백성들입니다. 그들은 다음 달 보름이 되자 드디어 신 광야에 들어서고 있습니다. 신 광야는 돌이 많은 울퉁불퉁한 광야이며 사막입니다. 그곳에는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구할 수가 없습니다. 다행스럽게도 모세가 함께 하고 있기에 하나님의 능력에 힘입어서 물을 구해주고 있습니다(15:25, 17:6). 그러나 출애굽 당시에 준비한 한달 치의 양식이 모두 소비가 되고 말았습니다. 고픈 배를 움켜쥐고서 240만명의 백성들이 광야 길과 사막 길을 행군하는 것은 정말 고역중의 고역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왜 엘림이나 시내 산과 같은 예배의 장소를 주시기 전에 에담 광야, 수르 광야, 신 광야와 같은 사막을 지나게 하시는 것일까요? 되돌아보자면, 출애굽을 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인도하고 있는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길안내는 다음과 같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고센 땅 라암셋을 출발하여 남쪽 비돔을 거쳐서 동쪽으로 애굽의 국경을 벗어났습니다. 그리고 큰 들판 숙곳을 만났습니다(12:37). 그곳 넓은 들판에서 이스라엘의 자손들이 하룻밤 숙박을 하였기에 그 옛날 조상인 야곱처럼 그곳을 숙곳이라고 부른 것으로 보입니다(33:17). 자유민이 되어 첫날밤을 감격 가운데 보낸 그들은 다음날부터 직선거리로 가나안으로 가려고 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을 보내셔서 그들의 길을 전혀 다르게 고난의 길로 인도하셨습니다“.

구체적으로, 북쪽으로 올라가서 지중해 연안 길을 타고서 동쪽으로 나아가게 한 것이 아닙니다. 그렇게 되면 시나이 반도의 해안 길을 벗어나자마자 블레셋 족속의 땅을 만나게 되는데 그것을 회피하게 만듭니다. 전쟁으로 이스라엘 자손들이 상하는 것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한 것입니다(13:17). 그래서 구름기둥과 불기둥은 남쪽으로 내려갑니다. 에담 들판이 나타나자 그곳에서 일박을 합니다(13:20). 그 다음에는 동쪽으로 나아갑니다. 홍해바다가 나타나면서 넓은 해안 믹돌이 나타나고 있습니다(14:2). 그곳에서 추격하는 애굽 군대를 만나게 되고 죽음의 위기를 만나게 됩니다. 위기일발의 순간에 하나님께서 홍해바다를 갈라서 자신들의 발로 일일이 건너게 해주십니다. 홍해를 건너왔지만 위기는 계속이 됩니다. 마실 물과 먹을 양식을 구할 수 없는 광야와 사막으로 인도하시는 것입니다. 에담 광야, 수르 광야, 신 광야 등이 연거퍼 나타나면서 마침내 시내 산에 이르게 됩니다. 하나님을 만나러 가는 길은 한 마디로, ‘천로역정’(天路歷程, 천국으로 가는 어려운 길)이라고 하겠습니다.

 

구름기둥과 불기둥 외에 그들에게 또 필요한 것(16:4)

 

구름기둥과 불기둥 외에 양식을 비같이 하늘에서 내려주고 있습니다(16:4). 그것을 일주일에 한번씩 내려주는 것이 아닙니다. 매일 한 번씩만 내려줍니다. 일용할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매일 예배를 드리는 회중이 되라는 의미입니다. 그래서 주님께서 주기도문을 다음과 같이 제자들에게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오늘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시옵고”(6:11). 그것은 육적인 양식만을 이야기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영적인 양식을 동시에 말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영육간에 강건함을 주시는 은혜가 광야에서 임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렇게 만나를 얻어서 먹으면서 매일 걸음을 걷다가 보면 어느 사이엔가 시내 산에 이르게 될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그 산이 시나이 반도 아래 꼭지점에 위치를 하고 있는 산인지 아니면 아라비아 반도 서북쪽 미디안 광야에 있는 호렙 산인지에 관심을 가지고 있습니다. 출애굽기와 민수기에 기술이 되고 있는 행로를 참고해보면 에담 광야, 수르 광야, 신 광야를 지나서 시내 산이 등장을 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그 코스는 미디안 광야로 가는 경로와 더 비슷합니다. 하지만 여기서는 어느 산이 더 정확한 하나님의 산인가가 주요 관심사가 아닙니다.

성경은 지형적인 조건을 가지고 더 높은 차원의 이야기를 하고 있습니다. 세 군데의 광야나 사막을 지나서 하나님의 산에 다다르게 된다는 사실을 이야기해주고 있습니다. 그리고 광야와 사막을 통과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한지를 가르쳐주고 있습니다; 첫째, 구름기둥과 불기둥의 인도함의 은혜 둘째, 세상의 누룩을 멀리하는 성결함 셋째, 쓴 나물을 먹으면서 어려운 시절을 잊지 아니하는 것 넷째, 영적인 양식과 육적인 양식을 주시는 하나님을 매일 기억하는 것 등이 요청된다는 사실을 출애굽기에서 특별히 말해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