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60강(출15:10-21)(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4. 3. 15:09

출애굽기 강해 제60(15:10-21)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19()

 

모세는 왜 노래를 만들어서 출애굽 사건과 홍해 사건을 백성들에게 기억시키고 있는가?(15:1-18)

 

모세 당시 주전 15세기에도 글자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글로써 파피루스나 양피지에 기록을 했습니다. 때로는 신성글자를 그림과 함께 돌에 새겨 넣기도 했습니다. 모세의 기록인 출애굽기에서도 그 사실을 증거하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이것을 책에 기록하여 기념하게 하고 여호수아의 귀에 외워 들리라. 내가 아말렉을 없이하여 천하에서 기억도 못하게 하리라”(17:14), “모세가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기록하고 이른 아침에 일어나 산 아래에 제단을 쌓고 이스라엘 열두 지파대로 열두 기둥을 세우고”(24:4). 그런데 왜 모세는 글이 아니라 노래를 만들어서 하나님을 찬양하고 있는 것일까요? 두 가지 이유를 생각할 수가 있습니다.

첫째로, 글로 적은 기록은 후세에 남기거나 많은 사람들에게 읽히게 하기 위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은 하나님께서 읽으시도록 사용이 되고 있는 것은 아니라고 하겠습니다. 실제로 예배를 드릴 때에 찬양과 기도를 올려드리고 있습니다. 찬양과 기도 대신에 간단하게 글로 써서 바치는 예배를 드리라고 하나님께서는 말씀하고 계시지를 않습니다. 그것은 마치 외국에서 살고 있는 자녀가 맨날 편지만 보내오고 몇 년이 지나도 고향의 부모님을 한번도 보러 오지 아니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것은 간단하게 소식을 주고 받을 수 있는 편리함은 있을지 몰라도 진정으로 자식이 부모님을 사랑하고 있는 친밀한 관계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사랑이라고 하는 것은 근본적으로 서로가 체취를 맡으면서 그리고 얼굴을 마주보면서 함께 살아가는 것을 의미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글로 적는 것이 아니라 노래로 찬양을 불러서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는 것이 옳습니다.

둘째로, 모세 당시에 글을 배운 사람의 수가 무척 적습니다. 그리고 글로 적어놓은 양피지나 파피루스의 값이 고가이므로 일반백성들이 쉽게 접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따라서 모세와 장로들은 후세에 길이 보존하기 위하여 하나님의 말씀과 역사를 글로 적어두었을 뿐입니다. 일반백성들의 종교교육을 위해서는 글을 사용한 것이 아니라 말을 사용했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하나님의 역사를 백성들에게 가르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딱딱한 말로 되어 있으면 외우고 기억을 하기가 어렵습니다. 가장 좋은 방법은 음률과 가락을 가진 노래로 만들어서 전파를 시키는 것입니다. 그러한 취지를 가지고 하나님의 출애굽사건과 홍해사건을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에 담고 있습니다(15:1-18). 이제부터 그 노래를 백성들이 외우고 기억하여 그것을 찬양으로 사용하여 하나님께 예배를 드릴 것입니다.

 

모세가 지은 노래의 내용(15:1-18)

 

  1절은 여호와 하나님은 높고 영화로우시지만 피조물인 사람과 동물들은 낮고 천하다는 사실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애굽의 병사와 말을 바다에 던지실 수 있는 것은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2절은 여호와 하나님을 찬양하는 이유를 적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힘을 주시고 구원을 베풀어주셨다는 것입니다. 이제는 승리의 노래까지 부를 수 있게 해주시고 있습니다. 그리고 모세와 백성들은 아버지를 존중히 여기고 높여드리는 고대의 가부장사회에서 살고 있습니다. 그들의 관념으로 바라볼 때, 아버지의 하나님 곧 조상님들의 하나님은 높고도 높은 존재입니다. 그러므로 최대로 높여드리는 것이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3절은 여호와께서는 나를 위하여 적들과 싸워주시는 용사가 되신다는 점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구체적으로 바로의 군대를 홍해에 던져버리셨습니다(4). 그리고 바닷물로 그들을 수장시켜버리셨습니다(5). 6절에서는 하나님의 오른 손의 강력하심을 찬양하고 있습니다. 그 능력의 오른 손으로 원수를 쳐부수셨다는 것입니다. 그 말은 바로의 군대는 하나님의 한 주먹거리도 못 되는 미약한 존재라는 의미가 됩니다.

7절은 여호와의 말씀의 위엄에 대하여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그 말씀의 위엄으로 세상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1:3). 이제 그 위엄에 찬 말씀으로 진노를 나타내셨기에 피조물들은 모두 멸망을 당한다는 사실을 진술하고 있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의 코에 생기를 불어넣으셔서 만물의 영장으로 살아갈 수 있도록 만드셨습니다(2:7). 반대로 생기 대신에 분노의 콧김을 내쉬게 되시면 자연과 사람들에게 대 재앙이 발생하게 됩니다. 먼저는 해일이 일어나고 바닷물이 갈라지게 됩니다(15:8). 다음에는 칼로써 약탈을 일삼으며 자신의 욕망을 채우려고 하는 자들을 멸망시키는 큰 재앙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15:9).

10절에서는 하나님께서 동풍을 크게 불게 하여 홍해의 바닷물을 갈라지게도 하고 덮어버리게도 하신 역사를 다시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결과 바로의 군대가 모두 수장이 되고 맙니다. 많은 신을 모시고 사는 애굽의 군대가 모두 멸망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애굽의 주신인 태양신 와 바람의 신 아몬도 고개를 숙였습니다. 자칭 태양과 달의 아들이며 매의 눈으로 천하를 감찰하며 나일 강을 소유하고 다스리는 신이라고 큰소리를 치고 있던 현인신 아멘호텝2세도 홍해바닷가에서 숨을 죽였습니다. 모두 생기가 사라지고 있습니다. 마치 반감기가 계속되어서 마지막으로 남게 되는 원소인 납 덩어리처럼 딱딱하게 굳어지고 말았습니다. 하나님의 중압감을 이기지 못하고 깊은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습니다. 그래서 제11절에서 모세가 다음과 같이 노래하고 있습니다; “여호와여 신 중에 주와 같은 자가 누구니이까? 주와 같이 거룩함으로 영광스러우며 찬송할 만한 위엄이 있으며 기이한 일을 행하는 자가 누구니이까? 주께서 오른 손을 드신즉 땅이 그들을 삼켰나이다”(15:11).

12절에서 마지막 절인 제18절 사이에서는 애굽인들을 처벌하시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하신 하나님의 신위(神威, 신적인 위엄)가 온 세상에 전해지고 세상사람들이 두려움에 떨게 된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특히 제13절과 제17절에서는 하나님의 구원하심의 광대하심에 대하여 찬양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구원은 출애굽과 약속의 땅 차지에 머무르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비하신 하나님께서는 백성들을 구원하셔서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계시는 거룩한 처소로 들어가게 하신다는 것입니다(13). 그리고 이 세상에서 살아가는 동안에도 하나님의 산으로 인도하시고 거룩한 땅을 주시며 성소를 세우게 하시고 예배인생을 살 수 있도록 해주실 것이라는 찬양입니다(17)”. 그렇게 택하신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는 영원무궁한 찬양이 되시는 하나님이십니다(18).

반면에 이스라엘 백성들이 행진하여 약속의 땅으로 들어가는 행로에 존재하는 여러 나라들 곧 블레셋, 에돔, 모압, 그리고 가나안의 백성들에게 있어서는 정반대입니다(14-15).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운 이적을 전해들은 그들은 심히 놀라서 두려워 떨다가 마침내 크게 낙담하여 돌같이 침묵을 지키게 될 것입니다. 그리고 이스라엘 자손들이 지나는 길을 묵묵히 지켜보게 될 것입니다(16).

 

모세의 누나 미리암의 간단한 하나님 찬양을 수록하고 있는 이유(15:19-21)

 

19절에서 제21절까지를 미리암의 노래라고 분류하고는 있으나 실제로 찬양의 내용은 한 구절에 불과합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찬송하라. 그는 높고 영화로우심이요, 말과 그 탄 자를 바다에 던지셨음이로다”(15:21). 그렇게 짤막한 내용을 구태여 본문에 싣고 있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적어도 네 가지의 이유가 있습니다;

첫째로, 하나님께서는 사람을 지으실 때에 자신의 형상과 모양을 남자와 여자에게 나누어주셨습니다(1:26-27). 그리고 세상을 다스리고 경영하며 번성하는 축복도 그들에게 함께 주신 것입니다(1:28). 남자에게만 주신 것이 결코 아닙니다. 또는 여자에게만 주신 것이 아닙니다. 그와 같은 의미에서 남자인 모세가 하나님을 찬양하는 노래를 지었다면 여자인 그의 누나 미리암도 찬양의 노래를 짓는 것이 당연합니다(15:21). 심히 당연하지만 고대 가부장사회에서는 잊어버리기 쉬운 진리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구원하심은 남녀모두에게 해당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다시 한번 일깨워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2:28).

둘째로, 모세의 노래가 어떻게 불려지고 있는가를 보여주고 있습니다. 먼저 모든 여인들이 모세의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20). 그러자 선지자 미리암이 그들에게 화답하고 있습니다(21). 그것은 마치 예루살렘 성전으로 백성들이 올라갈 때에 합창을 하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그러면 성전 위에서 레위 인들이 화답을 하고 있습니다. 그 찬양하는 레위 인들의 원형이 바로 선지자 미리암의 역할이라고 하겠습니다.

셋째로, 하나님을 어떻게 찬양하는가의 모습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춤을 추면서 찬양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악기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여기서는 손에 잡고서 사용하는 작은 북인 소고가 언급이 되고 있습니다(20).

끝으로, 하나님의 역사를 경험하고 구원을 얻으며 하나님을 높여드리는데 있어서 남녀의 차별이 없다는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15:19-21).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는데 있어서도 그러합니다. 실제로 모세만이 선지자가 아닙니다. 그의 누이인 미리암도 선지자라고 기록이 되고 있습니다(20). 하나님의 영이 남자에게만 임하고 있는 것이 아닙니다. 여자에게도 이미 임하고 있습니다. 사사시대가 되면 여자인 드보라가 대 사사가 되고 있습니다. 참으로 모세오경인 출애굽기에서부터 남녀차별을 하지 아니하시는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보여주고 있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