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44강(출10:21-2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7. 05:21

출애굽기 강해 제44(10:21-2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2()

 

아홉 번째 재앙인 흑암 재앙의 특징(10:21-23)

 

첫째로, 온 세상에 임하고 있는 흑암입니다. 그렇다고 완전한 흑암은 아닙니다. 그저 손으로 더듬을 만한 여지는 남겨두고 있는 어두움입니다(10:21). 겨우 더듬어서 물체를 식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큰 도움이 됩니다. 왜냐하면, 백성들이 물을 마실 수가 있으며 화장실도 다닐 수가 있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평상시의 일상생활은 전혀 불가능한 상황입니다.

둘째로, 애굽 땅에 흑암이 있다고 하더라도 불을 피울 수는 있을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 불빛을 의지하여 생활이 가능할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불을 피우는 일이 허용이 되고 있지를 않습니다. 그렇게 볼 수 있는 이유는 다음의 구절 때문입니다; “그 동안은 사람들이 서로 볼 수 없으며 자기 처소에서 일어나는 자가 없으되”(10:23a). 애굽 사람들이 불을 피울 수 없도록 하나님께서 어떻게 조치하셨는지는 모릅니다. 그러나 그것이 불가능했다는 사실만은 확실합니다. 하나님의 전능하신 능력이 역사를 하셨기 때문입니다.

셋째로, 하나님의 전능하심은 애굽 사람의 땅과 이스라엘 사람의 땅을 완벽하게 구분하시는 것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신기하게도 애굽 사람들이 살고 있는 땅에는 흑암이 지배를 하고 있습니다(10:21). 반면에 이스라엘 자손들이 살고 있는 고센 땅에는 빛이 존재하고 있습니다(10:23b). 한 마디로, 그것은 창조주의 능력입니다; “해 뜨는 곳에서든지 지는 곳에서든지 나밖에 다른 이가 없는 줄을 알게 하리라. 나는 여호와라, 다른 이가 없느니라. 나는 빛도 짓고 어둠도 창조하며 나는 평안도 짓고 환난도 창조하나니 나는 여호와라. 이 모든 일을 행하는 자니라 하였노라”(45:6-7).

여기서 엿볼 수 있듯이 재앙을 애굽 땅에 연속적으로 일으키시는 하나님의 목적은 두 가지입니다; 첫째, 세상제국의 노예로 살고 있는 이스라엘의 자손을 그 조상들에게 언약한대로 해방시키고 거룩한 백성으로 살도록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둘째, 세상나라에 창조주의 능력을 보여주고 하나님을 두려워하도록 만들겠다는 것입니다. 그것이 먼 훗날 그들 이방인들마저 구원을 얻게 되는 첫걸음이 되기 때문입니다.

끝으로, 흑암의 재앙만은 특이하게 삼일 동안 임하고 있습니다(10:22). 그리고 애굽 사람들은 마치 무덤 속에 머물고 있는 것처럼 자신들의 처소에서 꼼짝없이 누워서 지내고 있습니다(10:23). 캄캄한 어둠 속에서 삼일 동안 지내야만 하는 것은 이미 죽었거나 아니면 죽음을 맛보고 있는 것과 같습니다. 마지막 장자의 죽음을 목전에 두고서 하나님의 마지막 경고는 그렇게 무덤 속을 일찍 경험하게 되는 암흑의 재앙으로 찾아오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바로와 모세와의 협상과정(10:24-27)

 

메뚜기 떼가 날아든 것이 여덟 번째 재앙입니다. 그때 바로는 이스라엘 장정만 출애굽을 시켜주겠다고 모세와 협상을 시도한 적이 있습니다(10:11a). 물론 그 제안은 모세에 의하여 거절을 당했습니다(10:9, 11b). 이제 아홉 번째 흑암의 재앙이 임했기에 바로가 진일보한 제안을 가지고 모세와 협상을 재개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가서 여호와를 섬기되, 너희의 양과 소는 머물러 두고 너희 어린 것들은 너희와 함께 갈지니라”(10:24). 한 마디로, 재물은 그대로 남겨두고 몸만 나가라는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광야에서 무엇을 먹고서 살겠습니까? 200만명이 넘는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유를 얻는 대신에 굶어서 죽을 것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제물로 사용할 수 있도록 가축을 달라고 하소연을 하고 있습니다(10:25-26). 그 요구를 바로는 꼭 필요한 제물만 주면 되는 것으로 제한을 하고자 합니다. 따라서 모세가 모든 가축을 남김 없이 달라고 분명하게 요구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어느 가축을 제물로 하나님께서 요구하실지 모르는 것이기 때문입니다(10:26).

그와 같은 팽팽한 신경전과 교섭이 진행되다가 급기야는 결렬에 이르고 맙니다. 아마도 흑암의 재앙이 3일 동안만 계속이 된다고 하는 사실을 바로와 신하들이 눈치를 챈 것으로 보입니다(10:22). 그래서 바로는 모세와 협상을 진행하면서 시간을 끌다가 마침내 본색을 드러내고 있습니다; “너는 나를 떠나가고 스스로 삼가 다시 내 얼굴을 보지 말라. 네가 내 얼굴을 보는 날에는 죽으리라”(10:28).

 

협상이 완전히 결렬되고 마지막 승부는 하나님의 손으로 넘어가다(10:28-29)

 

바로의 막말에 모세가 대항을 하고 있습니다; “당신이 말씀하신 대로 내가 다시는 당신의 얼굴을 보지 아니하리이다”(10:29). 모세가 다시는 바로와 함께 협상의 테이블에 앉지를 아니하겠다고 선언을 하고 있습니다. 그 말은 하나님의 선지자가 바로의 회개를 권고하는 일에서 손을 떼겠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면 어떻게 되는 것일까요? 바로를 회개시키는 일이 전적으로 하나님의 손으로 직접 넘겨지는 것입니다.

중보자가 없는 하나님의 직접 개입은 대단히 위험합니다. 그 이유는 생명과 사망을 모두 관장하시는 하나님께서 손수 나서시기 때문입니다. 창조주의 진면목이 애굽 땅에 직접 나타나시게 되면 그 모습을 보는 자마다 죽음을 맞이할 것입니다(11:4-6). 요컨대,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모든 애굽 백성들의 장남이 죽임을 당하게 되는 유월절의 재앙이 그 모습을 드러내려고 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바로와 모세가 서로 극한대립을 하고서 마지막 협상테이블을 떠나게 되자 마침내 발생하려고 하는 것입니다(10:27-29). 이제 모세에게는 그 죽음의 열 번째 재앙이 임할 것이라는 소식을 바로에게 한번 더 전해주는 일만이 남게 됩니다(11: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