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43강(출10:1-20)(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7. 05:19

출애굽기 강해 제43(10:1-20)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71()

 

바로와 신하들의 완악한 마음이 역설적으로 하나님의 능력의 위대함을 이 땅에 크게 드러내게 하다(10:1-2)

 

지금까지 일곱 번의 재앙이 애굽에 내렸습니다. 그 가운데 세 번 바로가 굴복을 했습니다. 두 번째 재앙인 개구리 재앙(8:8), 네 번째 재앙인 파리떼 재앙(8:28), 일곱째 재앙인 악성종기의 재앙(9:28) 때입니다. 그러나 바로는 모세가 하나님께 간구하여 재앙이 물러가도록 해주자 그 마음이 다시 완악해지고 맙니다. 그러면 다시 하나님께서 더 강력한 재앙을 애굽에 내리십니다. 애굽의 사람들은 이스라엘의 조상신인 여호와 하나님의 강력한 능력을 다시 실감하게 됩니다.

그렇다면 애굽의 황제인 바로와 대신들의 완악한 마음이 역설적으로 여호와 하나님의 놀라우신 능력을 더 많이 애굽 땅에 소개해주고 있는 셈입니다. 그 사실을 익히 알고 계시는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이 설명을 하시고 있습니다; “바로에게로 들어가라. 내가 그의 마음과 그의 신하들의 마음을 완강하게 함은 나의 표징을 그들 중에 보이기 위함이며 네게 내가 애굽에서 행한 일들 곧 내가 그들 가운데에서 행한 표징을 네 아들과 네 자손의 귀에 전하기 위함이라.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10:1-2).

하나님의 목적은 애굽 백성뿐만 아니라 이스라엘 자손들에게도 창조주 여호와의 존재와 능력을 정확하게 각인시켜주고 싶은 것입니다. 창조주 하나님만이 행할 수 있는 사건이 표징입니다. 그 표징을 똑똑하게 기억함으로써 우상이나 사람들의 능력과 구별을 하라는 것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을 제대로 섬기는 방법입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과 다른 존재를 정확하게 구별하고 그 능력의 차이를 확실하게 인식하는 것이 믿음생활의 시작이라고 하겠습니다. 지금 그 작업이 애굽에서 숨가쁘게 전개가 되고 있다고 볼 수 있습니다.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재앙의 성격(10:3-7)

 

첫째로, 일곱 번째의 재앙인 우박의 피해는 들판에 있는 모든 식물과 동물을 사상시켜버린 것입니다(9:25). 그러나 들판에는 아직 먹거리가 일부 남아 있습니다. 그것을 메뚜기 떼가 내습을 하여 모두 먹어 치워버리는 것입니다(10:4-5, 12).

둘째로, 메뚜기 떼가 너무나 많이 날아왔기에 애굽사람들이 살고 있는 집과 들판을 완벽하게 뒤덮어버리고 있습니다(10:5-6). 애굽의 바로와 신하들 그리고 백성들은 메뚜기 떼를 밟지 아니하고는 걸음을 옮길 수도 없습니다.

셋째로, 지면뿐만 아니라 메뚜기 떼가 하늘까지 뒤덮고 있습니다(10:15a). 그래서 온 세상이 캄캄해지고 있습니다. 세상이 어두워지고 먹을 것이 완벽하게 메뚜기 떼로 말미암아 사라지고 있습니다(10:12, 15b).

넷째로, 메뚜기 떼의 재앙은 바로가 굴복을 할 때까지 계속이 될 것입니다; “네가 어느 때까지 내 앞에 겸비하지 아니하겠느냐? 내 백성을 보내라, 그들이 나를 섬길 것이라. 네가 만일 내 백성 보내기를 거절하면 내일 내가 메뚜기를 네 경내에 들어가게 하리니”(10:3-4).

끝으로, 여덟 번째 재앙인 메뚜기 떼의 재앙의 가장 큰 특징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그것은 메뚜기 떼의 재앙이 내리게 되면 애굽의 천지가 어떻게 변하고 말 것이라고 모세와 아론이 바로와 신하들 앞에서 설명을 한 결과 그들이 놀라운 반응을 보이고 있다는 것입니다(10:4-7). 모세와 아론의 자세한 설명을 듣자마자 바로의 신하들은 사색이 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바로에게 강력하게 간언을 하고 있습니다; “메뚜기 떼의 재앙이 발생한다면 애굽 제국이 망하고 말 것입니다. 그러므로 부디 재앙의 빌미가 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어 버리십시오”(10:7).

 

바로와 모세와의 협상과정(10:8-11)

 

대신들의 압력을 받게 된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불러서 제안을 하고 있습니다; “장정만을 데리고 가서 여호와를 섬기도록 하라”(10:11a). 그것은 완전한 출애굽이 아닙니다. 처자식을 애굽의 고센 땅에 남겨두고서 장정들만 시나이 반도로 나간다면 여호와께 제사만을 드리고 바로 돌아오라는 뜻입니다. 그래서 모세가 반대를 하고 있습니다; “우리가 여호와 앞에 절기를 지킬 것인즉 우리가 남녀노소와 양과 소를 데리고 가겠나이다”(10:9).

모세는 동족을 모두 이끌고 출애굽을 하여 하나님만을 진심으로 섬기는 새로운 제사장나라를 만들고 싶은 것입니다. 그러므로 결코 바로와 타협을 할 수가 없습니다. 그 결과 모세와 아론은 바로의 궁에서 쫓겨나게 됩니다(10:11b). 협상이 결렬이 되고 만 것입니다. 아직 메뚜기 떼의 재앙이 발생하기 전이므로 바로가 여유를 부리고 있습니다. 된 맛을 보기 전에는 결코 물러서지를 아니하고 있는 바로입니다.

 

협상의 결렬과 메뚜기 재앙의 도래(10:12-15)  

 

  협상의 결렬을 지켜보신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명령을 하십니다; “애굽 땅 위에 네 손을 내밀어 메뚜기를 애굽 땅에 올라오게 하여 우박에 상하지 아니한 밭의 모든 채소를 먹게 하라”(10:12). 모세가 그대로 행했더니 하루 낮과 밤 동안 동풍을 타고서 엄청난 메뚜기 떼가 애굽으로 들어옵니다(10:13). 그 결과 이미 예언한 대로 이적이 나타나고 있습니다. 역사상 한번도 경험한 적이 없는 공포와 재앙이 밀려들고 있습니다(10:14). 애굽 온 땅에 먹거리가 완전하게 사라지고 있습니다(10:15). 도저히 더 이상 견딜 재간이 없습니다. 바로가 두 손을 들고서 항복을 하고 있습니다(10:16)

 

바로의 항복과 배신 그리고 동풍과 서풍의 의미(10:13, 16-20)

 

바로가 모세와 아론을 급히 궁으로 불러서 사정을 하고 있습니다; “내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와 너희에게 죄를 지었으니 바라건데 이번만 하나님 여호와께 구하여 이 죽음만은 내게서 떠나게 하라”(10:16-17). 바로는 하나님의 명령을 거역하였기에 하나님의 진노의 대상이 되고 재앙이 찾아왔다는 사실을 정확하게 진술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죄인이 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이제 재앙을 피할 수가 없게 되었으므로 마침내 죽고 말 것이라는 판단입니다. 따라서 죽음에 이르지 아니하도록 재앙을 거두어달라는 부탁입니다. 바로가 하나님의 정체와 능력에 대하여 정확한 인식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이제 그의 부탁을 들어줄 차례입니다.

모세가 바로의 궁을 벗어나서 하나님께 간구합니다(10:18). 메뚜기 재앙을 거두어달라는 것입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의 간구를 들으시고 서풍을 불게 하십니다. 그러자 그 바람에 날려서 메뚜기 떼가 일시에 홍해로 들어가게 됩니다(10:19a). 그리고 애굽 땅에서 완전히 사라져버립니다(10:19b). 그것은 동풍을 타고서 날아들 그때와 똑 같은 이적입니다. 여기서 하나님께서 일으키시는 동풍과 서풍은 재앙의 발생과 거두어가심을 각각 상징하고 있습니다.

일찍이 호렙 산에서 하나님이 모세에게 창조주의 능력을 보여줍니다. 문둥병을 일으키고 그 다음에 완전하게 치유하는 두 가지 능력입니다(4:6-7). 그것이 메뚜기 떼의 재앙에 있어서는 동풍과 서풍의 기적으로 나타나고 있습니다. 복음서를 보면 바람은 영적인 능력의 발생을 의미하고 있습니다; “바람이 임의로 불매 네가 그 소리는 들어도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지 알지 못하나니 성령으로 난 사람도 다 그러하니라”(3:8). 비록 동풍과 서풍으로 두 가지로 보일지 몰라도 그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성령의 움직임으로 일으키시는 능력을 말하고 있습니다. 그 하나님의 능력이 이 땅에서는 발병과 치유라는 두 가지의 모습으로 각각 다르게 나타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런데 일단 메뚜기 떼가 사라지자 바로는 다시 배신행위를 되풀이하고 있습니다(10:20). 아직 장자의 죽음이라는 가장 큰 재앙에 이르지 아니하고 있기 때문입니다(4:22-23). 한 마디로, 관 뚜껑을 보아야만 정신을 차릴 바로입니다. 그런데 사실은 바로가 다른 사람이 아니라 나 자신이라고 가정을 해본다면 순식간에 아찔한 생각이 듭니다. 사도 바울의 고백이 새삼 떠오르게 됩니다; “죄인 중에 내가 괴수니라!”(딤전1:15). 결론적으로, 바로만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자신의 선입견과 고집 그리고 우상시하고 있는 이념과 절대권력에 대한 맹신이라고 하는 것이 그 정도로 집요한 것이라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