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37강(출8:16-19)(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4. 18:39

출애굽기 강해 제37(8:16-19)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25()

 

땅의 티끌이 가 되는 세 번째 재앙의 의미(8:16-17)

 

첫째로, 처음 두 가지 재앙은 모두 물에서 비롯되고 있습니다; 먼저 강물이 피로 변하고 그 다음에는 나일 강에서 개구리가 무섭게 번식하여 사람이 살고 있는 지역으로 쳐들어온 것입니다.  그러나 세 번째 재앙은 땅에서 시작이 되고 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명령으로 땅의 티끌이 이가 되도록 만들고 있기 때문입니다(8:16). 땅에서 생겨나는 이(lice)는 물에서 생겨나서 사람을 못 살게 굴고 있는 개구리와 다릅니다. 강물은 깨끗한 것이기에 개구리가 사람에게 질병을 유발하지는 않습니다. 그러나 세균이 많이 살고 있는 땅에서 티끌이 날리고 그것이 이로 변하여 사람과 가축에게 달라붙고 있습니다(8:17). 이에 물리게 되면 피부병이 발생하게 됩니다. 그러므로 개구리 재앙보다 이로 인한 재앙이 더 심각한 것입니다.

둘째로, 개구리 재앙과 이 재앙은 다릅니다. 개구리는 물에서 나와서 사람들이 거주하고 있는 공간으로 이동을 해왔습니다. 자꾸만 위치이동을 해온 것입니다. 그래서 그것이 생활에 불편을 초래한 것입니다. 그러나 이라고 하는 것은 본래 사람이나 가축에 기생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리고 사람이 목욕을 자주 하지 아니하면 사람의 옷과 몸에 이가 더 많이 서식을 하게 됩니다. 이제 하나님이 모세와 아론에게 명령하여 세상의 티끌을 공중으로 날리고 그것이 모두 가 되도록 만듭니다(8:16). 그 말은 의 번식을 극대화시키고 있음을 의미합니다. 따라서 개구리 재앙이 위치이동(relocation)을 의미한다면, 이로 인한 재앙은 의 엄청난 속도의 번식(multiplication)을 뜻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개구리를 동원했던 애굽의 요술사들이 작은 이를 만들 수 없는 이유(8:19)

 

뱀을 만들고 개구리까지 조종할 수 있는 애굽의 요술사들이 왜 그 작은 이(louse)를 만들 수 없었을까요?(7:11-12, 8:7, 18) 현대과학으로도 만들 수 없는 뱀을 만들고 개구리의 움직임까지 애굽의 요술사들이 조종했다고 하는 것은 놀라운 일입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사실은 그들이 작은 를 만들 수 없어서 이를 만드는 것은 하나님의 능력이다”(8:19)라고 인정하고 있다는 것입니다. 애굽 사람들이 뱀을 만들 수 있는 능력을 지니고 있었다고 한다면 그것은 상고(上古, 더 오랜 옛날)시대로부터 그들에게 전수되어온 과학의 능력일 것입니다. 세상문명이 몇 번 사라지는 동안에 극히 일부의 과학이 후대에 전해졌다고 한다면 뱀을 만들고 개구리를 조종하는 능력이 나타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왜 작은 이를 만들 수는 없는 것일까요?

사람들이 무엇인가 만든다고 하면 그것은 장난감으로 사용하려고 하는 경우가 대부분입니다. 사람들은 만질 수가 있고 쉽게 볼 수 있는 것을 우선적으로 연구하고 만들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그것이 친숙한 세계입니다. 그러므로 친숙하지 아니한 세계에 있어서는 연구가 부진합니다. ‘라고 하는 작은 생물도 그러한 부류에 속합니다. 혹시 큰 를 만든다고 하면 얘기가 되지만 작은 를 만든다고 하면 그것은 실용성이 없다고 하겠습니다. 게다가 사람을 물게 되고 피부병을 일으키는 그러한 벌레를 만들 이유는 더더구나 없는 것입니다.

여기서 한 가지 알 수 있는 사실이 있습니다. 그것은 매우 작은 세계와 거대한 세계는 사람들의 관심권역에서 쉽게 벗어나 있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그렇게 친숙한 세계가 아닙니다. 따지고 보면, 사람들은 쉽게 볼 수 있는 크기의 세계 곧 cm meter의 세계에 익숙합니다. 따라서 mm이하의 세계나 km를 벗어나는 세계에 대해서는 무심하거나 연구가 미흡한 것입니다. 그 옛날의 사라진 과학의 시대에도 분명히 그러한 것 같습니다.  

 

하나님의 권능이라고 말하는데도 바로가 여전히 고집을 피울 수 있는 이유(8:19)

 

작은 해충인 가 사람과 가축을 괴롭힌다고 하여 200만명이 넘는 노예를 해방시켜줄까요? 그 대답은 부정적일 수밖에 없습니다. 그래서 애굽의 황제인 바로가 모세와 아론의 요구를 거절하고 있습니다(8:19). 사실 벌레에게 물린다고 하여 생명에 지장이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러므로 바로가 그 정도의 재앙은 견딜 만하다고 판단을 하고 있습니다.

그렇다면 하나님께서는 왜 해충인 를 번식시켜 애굽의 사람들과 가축들을 괴롭히는 재앙을 선택하고 계시는 것일까요? 그 이유는 애굽에 큰 심판을 내리기 전에 바로가 마음을 돌리기를 원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로는 그 정도의 능력을 선보이고 있는 여호와라고 하는 신에 대하여 최소한 관심을 표명하고 자세히 알아보아야만 할 것입니다. 그 결과 사람의 죽음과 생명까지 관장하는 창조주이심을 알고서 그 명령에 순종할 줄을 알아야만 합니다. 그런데 바로는 아직 그러한 노력을 전혀 하지 아니하고 있습니다. 바로가 왜 그토록 무신경한 것일까요? 그 이유는 자신의 절대권력에 취해서 우주의 창조주까지 우습게 여기게 되는 함정에 스스로 빠지고 만 것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