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34강(출7:8-13)(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2. 22:28

출애굽기 강해 제34(7:8-13)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22(주일저녁)

 

바로는 왜 재차 입궁하여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고 있는 모세와 아론을 즉석에서 내어쫓지를 아니하고 구태여 이적을 보이라고 명령하고 있는가?(7:9-10)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하기 위하여 재차 바로를 만나는데 있어서 자신들의 목숨을 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바로를 예방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전달하고 있는 그들의 태도는 참으로 당당하기가 그지 없습니다. 한 마디로, 그들은 몸을 죽일 수 있는 세상의 황제인 바로를 두려워하고 있지를 않습니다. 오로지 몸뿐만 아니라 영혼까지 죽일 수 있는 창조주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있는 것입니다(10:28). 그와 같은 놀라운 자세를 그들에게서 볼 수 있게 된 바로는 태도가 신중해지고 있습니다. 그는 사람을 그렇게 변화시킬 수 있는 여호와 하나님이 과연 어떠한 능력을 보유하고 있는 신인지를 알고자 합니다. 그래서 다음과 같이 명령하고 있습니다; “너희는 이적을 보이라”(7:9a).

그와 같은 사건이 발생할 것임을 하나님께서 미리 아시고 모세와 아론에게 다음과 같이 지시를 하시고 계십니다; “(모세)는 아론에게 말하기를 너의 지팡이를 들어서 바로 앞에 던지라 하라. 그것이 뱀이 되리라”(7:9b). 실제로 하나님의 예언대로 지팡이가 뱀이 되는 이적이 바로 앞에서 발생을 합니다(7:10). 그런데 바로는 창조주의 능력이 나타난 표징으로 그 기적을 읽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저 모세와 아론이 일부 괴상한 요술을 배워서 자신 앞에서 시범을 보여주고 있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습니다. 따라서 애굽의 지혜자들과 마술사들을 불러서 동일한 이적을 행하도록 지시하고 있습니다. 한 마디로, 모세와 아론에게 임하고 있는 창조주 하나님의 정체와 능력을 전혀 간파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는 지금 그 옛날 블레셋의 황제인 아비멜렉의 깨달음에도 이르지를 못하고 있다고 하겠습니다; “그때에 아비멜렉과 그 군대장관 비골이 아브라함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가 무슨 말을 하든지 하나님이 너와 함께 계시도다”(21:22).

 

창조주의 능력이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이적으로 나타나자 애굽의 현인들과 마술사들도 겉으로 보기에는 똑 같은 이적을 만들어서 보여주고 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표징과 애굽 요술사들의 요술의 차이는 무엇입니까?(7:10-13)

 

  창조주 하나님이 모세의 지팡이로 뱀을 만드는 장면은 이미 우리가 본 바가 있습니다. 모세에게 출애굽 지도자의 사명을 부여하시면서 하나님께서 자신의 능력을 뱀을 만드는 것으로 슬쩍 보여주신 것입니다(4:3). 사실 세상만물을 만드시고 모든 동식물을 창조하신 하나님의 능력을 생각할 때에 그 정도의 이적은 매우 작은 것입니다(1:1, 31). 그래서 별로 놀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실제로 놀랄 일이 그 다음에 발생을 하고 있습니다; “애굽의 요술사들이 요술을 부려서 뱀을 만들어내고 있습니다”(7:11). 그것이 참으로 신기한 일입니다. 오늘 날도 과학자들이나 마술사들이 그러한 이적을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런데 3,400여년 전에 애굽의 바로의 궁에서 그러한 일이 있었다고 성경에 기록이 되어 있습니다. 어떻게 그 사실을 받아들여야만 합니까?

생물학의 목표는 사람의 힘으로 생물을 만들어내는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도 유기체를 만들어낼 수가 없습니다. 그저 유전자의 조작을 통해서 변종을 만들어낼 따름입니다. 그런데 고대 애굽에서 인공적으로 유기체를 만들어내고 있습니다. 어떻게 된 일일까요? 두 가지로 유추해볼 수가 있습니다; 첫째, 비정상적으로 고대 애굽 사람들이 특정부문 곧 일부 생물학적인 첨단과학을 지니고 있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 첨단과학은 사라진 옛날의 인류로부터 전달되어 왔을 수가 있습니다. 둘째, 모세가 그의 지팡이로 만든 뱀을 가지고 애굽의 요술사가 만든 뱀을 공격하여 집어삼킵니다; “아론의 지팡이가 그들의 지팡이를 삼키니라”(7:12). 분명히 뱀을 집어 삼킨 것인데 기록은 지팡이를 삼킨 것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왜 뱀과 지팡이가 헷갈리고 있을까요? 그것은 실상인 살아있는 동물이 아니라 사실은 일종의 허상이며 그저 살아 있는 동물로 보이는 지팡이이기 때문일 것입니다. 그렇다면 그것은 일종의 환상과 같습니다. 그와 같은 환상의 세계는 현대인보다 고대인들이 더 자주 접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러나 본문에서 말해주고 있는 두 가지 교훈이 있습니다; 첫째, 창조주의 능력이 나타나게 되면 허상의 세계는 마치 밤안개처럼 사라진다는 것입니다. 그것은 마치 주님이 무덤에서 부활하게 되면 죽음의 세력이 그 힘을 잃어버리는 것과 같습니다(8:1-2). 둘째, 창조주 하나님의 능력을 아직도 부인하고 있는 바로는 마술사들이 만들어내고 있는 허상의 힘을 의지하고 있습니다(7:13). 일종의 환각과 같은 그것을 의지하여 창조주를 부인하고 있는 바로가 불쌍하게 느껴집니다. 따라서 이왕 추구하시려면 실상을 추구하시기를 바랍니다(11:1). 사족을 더하자면, 믿음생활에 있어서 감정적인 호소나 환상적인 분위기를 앞세우고 있는 종교적인 행사에 현혹되지 말아야 합니다. 요컨대, 하나님의 말씀의 진리와 성령님의 영적인 능력을 그러한 것들과 엄격하게 분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하겠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