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애굽기 강해(작성자; 손진길 목사)

출애굽기 강해 제33강(출6:28-7:7)(작성자; 손진길 목사)

손진길 2023. 3. 22. 22:27

출애굽기 강해 제33(6:28-7:7)

작성자; 손진길 목사(갈릴리한인교회 담임)

작성일; 주후 2014621()

 

하나님의 말씀을 모세가 바로에게 그리고 요나가 앗수르의 왕에게 곧이곧대로 전하는 경우 그들은 어떤 운명에 처하게 되는가?(6:28-30, 1:2-3, 3:4, 6:17-29)

 

모세에게 하나님이 위탁을 하고 있는 말씀의 내용은 한 마디로, 애굽 땅에서 강제노역을 감당하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을 모두 애굽 바깥으로 내보내주라고 하는 것입니다. 그 말씀을 애굽의 황제인 바로는 절대로 수용을 할 수가 없습니다. 고대국가에서 노예화되어 있는 이민족을 모두 나라 밖으로 내보내고 자유를 주는 경우는 없습니다. 노동력이 귀한 고대사회에서 그와 같은 손해를 감수할 이유가 없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명령이라고 그 말씀을 모세가 바로 앞에 직접 그대로 전하게 되면 분명히 바로가 노발대발할 것입니다. 그때에는 모세의 목숨의 안전도 보장할 수가 없게 될 것입니다.

훗날 유사한 사례가 선지자 요나의 글에서 발견이 됩니다; “하나님께서 요나에게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이방민족인 니느웨의 주민들이 하나님 앞에 악하므로 회개하지 아니하면 40일후에 멸망할 것임을 전달하는 내용입니다. 요나는 이방 땅에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는 일이 마음에 들지를 않습니다. 그래서 도망을 칩니다. 그러나 죽을 고비를 넘기고 어쩔 수 없이 니느웨로 들어갑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명령을 전달합니다. 이제 문제는 그들이 그렇게 자신들의 멸망을 예언하고 있는 자신을 곱게 살려서 보내줄까 하는 것입니다.”(1:1-3, 3:3-4). 요나가 죽임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그의 생각을 뛰어넘어 앗수르의 왕과 니느웨의 주민들이 한 마음으로 하나님 앞에 회개를 합니다(3:5-10). 그 결과 멸망 대신에 구원을 얻게 됩니다. 요나는 무사히 그곳을 떠나게 됩니다.

물론 선민인 요나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방인까지 용서하시는 것을 보고서 기분이 상해서 그들이 다시 죄를 범하고 멸망을 당하는 광경을 보기 위하여 니느웨 인근 동산에 계속 머무르고 있습니다(4:1-5). 하지만 요나가 아무런 상해를 입지 아니하고 출 니느웨하였다는 것은 사실입니다. 그러므로 모세와 아론이 바로에게 하나님의 강력하신 말씀을 곧이곧대로 전한다고 하더라도 결과론적으로 그들의 신변에는 위험이 없을 것입니다. 다만 과정에 있어서는 다음과 같은 위험이 있을 수가 있습니다; 첫째,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바로는 더 압제를 가할 것입니다. 둘째, 바로는 모세와 아론을 감시하고 연금할 수가 있을 것입니다.

그러나 출애굽기의 실제내용을 살펴보면, 실제과정에 있어서 그와 같은 일이 앞으로는 전혀 발생하지를 못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조치가 신속하면서도 정신 없이 연속적으로 발생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함께 묵상을 해보아야만 하는 한 가지 문제가 남게 됩니다. 그것은 세례 요한의 경우입니다. 그는 갈릴리의 분봉 왕인 헤롯의 잘못에 대하여 강하게 질책을 하다가 그만 옥에 갇히고 맙니다(6:17-18). 헤롯이 이복동생의 아내를 취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요한을 강하게 보호해주시지 않습니다. 그 결과 헤롯의 생일날 세례 요한의 목이 잘리고 맙니다(6:21-28). 왜 그러한 결과가 나타날까요? 완전한 해답은 찾기 힘들지만 아무래도 요한이 하나님의 직접적이고도 명백한 명령을 받아서 분봉 왕 헤롯에게 전한 것이 아닌 것으로 보입니다. 그것이 모세의 경우와 다른 점이라고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모세를 보호하기 위하여 그를 아론과 바로 앞에 신과 같은 권위자로 만드시고 그에게 미래지사를 모두 설명하여 주다(7:1-7).

 

예수님은 요한복음에서 제자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맡은 자는 신과 같다고 언급하고 계십니다(10:35). 그 말씀은 시편의 다음 말씀을 인용한 것으로 보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신들의 모임 가운데에 서시며 하나님은 그들 가운데에서 재판하시느니라”(82:1), “내가 말하기를 너희는 신들이며 다 지존자의 아들들이라 하였으나”(82:6). 말씀의 성육신이신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자신의 주인님으로 모시고 살아가는 자들이 성도들입니다. 그러므로 성도들이 진리의 성령님의 도우심으로 복음 안에서 하나님의 말씀의 뜻을 깨닫고 예수님처럼 살아가게 되면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얻을 수가 있습니다(1:12-14, 14:17, 26). 그러한 관점에서 하나님의 자녀의 권세를 가지고 있는 성도들을 신이라고 부른다고 하여 하자가 있는 것은 아닙니다. 그런데 그와 같은 개념전개의 원형(prototype)을 출애굽기에서 명쾌하게 보여주고 있습니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이르시되, 볼지어다. 내가 너를 바로에게 신()같이 되게 하였은즉 네 형 아론은 네 대언자가 되리니”(7:1), “그가 너를 대신하여 백성에게 말할 것이니 너는 그에게 하나님같이 되리라”(4:16).

하나님은 창조주입니다. 하나님만이 새로운 역사를 만들어나가십니다. 우상은 그러한 능력이 없습니다. 그와 같은 차이를 사람들이 정확하게 깨달을 수 있도록 하나님은 다음과 같은 조치를 취하시고 있습니다; 첫째, 새로운 창조를 하시기 이전에 대체적인 것을 하나님의 사람을 통하여 백성들에게 미리 알려줍니다(48:5-6). 그것이 예언입니다. 둘째, 때가 되어 그 예언이 현실적으로 성취가 됩니다. 그러면 그것을 보고서 하나님께서 역사하신 것인 줄 알게 된다는 것입니다(48:7). 말씀으로 전해지는 하나님의 예언을 가지고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선포하고 있는 자들이 선지자들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받은 자들이므로 신과 같은 권위를 지니게 됩니다.

구체적으로 하나님께서 모세에게 다음과 같은 미래지사를 예언의 말씀으로 주시고 있습니다; 첫째, 모세가 형 아론을 통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하게 합니다(7:2). 그러나 바로가 완강하게 하나님의 뜻을 거부할 것입니다(7:3-4a). 둘째, 바로를 징계하기 위하여 하나님께서 표징(7:9, 뱀이 된 지팡이)과 열 가지 이적(7-12, ①물이 피가 되다, ②개구리가 올라오다, ③티끌이 이가 되다, ④파리가 가득하다, ⑤가축의 죽음, ⑥악성 종기가 생기다, ⑦우박이 내리다, ⑧메뚜기가 땅을 덮다, ⑨흑암이 땅에 있다, ⑩장자의 죽음)을 연속적으로 사용할 것입니다. 셋째, 바로가 견디지를 못하고 마침내 굴복하게 됩니다. 출애굽이 이루어지고 애굽사람들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섬기고 있는 하나님이 바로 창조의 신이라는 사실을 깨닫게 될 것입니다(7:4b-5).

모세와 아론은 이제 한 가닥의 의심도 없이 용감하게 하나님의 말씀을 바로에게 전하게 됩니다(7:6). 하나님께서 새로운 세상을 창조하기 위하여 이스라엘 자손들을 애굽에서 이끌어내시고 있습니다. 그 일에 앞장을 서고 있는 자들이 놀랍게도 80세의 노인 모세와 그의 형 83세의 아론입니다(7:7). 그들은 청년이 아니므로 직접 칼을 들고서 적과 싸울 수가 없습니다. 그 대신에 하나님의 말씀을 들고서 적들과 싸우게 됩니다. 그들의 성취가 젊은이들의 성취보다 더 클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창조주의 말씀을 전하는 신으로서 약한 인간들을 상대할 것이기 때문입니다(7:1).